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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마음 (잠 23:17-26)

by 【고동엽】 202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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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마음  (잠 23:17-26)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자녀들을 낳으시고 기르시느라 애쓰신 모든 부모님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몇 해 전 신문에 기고되었던 한 아버지의 고백입니다.
“스물아홉 살에 나는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내가 산실에 들어가서 산고를 치르고 있을 때 나는 초조하게 무려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기쁨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서른일곱 살에 그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우등상장을 타왔을 때, 그걸 액자로 만들어서 방에 걸어놓고 쳐다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해했습니다. 누렇게 바래질 때까지… 마흔여덟 살에 자식이 대학에 입학한다고 입학시험을 치르게 될 때 직장에 나가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초조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생애에 있어서 가장 초조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다고 합니다.

쉰세 살에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아버지 내의를 하나 사 왔을 때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고  일단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보며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예순한 살에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놈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멀찍이 서서 나이 든 후 처음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오는 것을 느꼈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저 자나 깨나 부모는 자식 생각을 하며 지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내셨다. 하나님께는 등이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아기를 업어주셨고 가슴에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안아주셨으며, 하나님께는 젖줄이 없으시기에 어머니를 보내셔서 젖을 먹여 길러주셨고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돌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 땅에서 계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우리를 용서해줄 수 있는 분은 어버이밖에 없습니다. 어버이의 용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는 어버이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본문 17절과 18절 말씀에 보면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어버이들은 자식에 대한 천륜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인의 풍속 중에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효의식이 희박한 민족에게서 행해졌던 것인데 나이 많고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부모를 깊은 산에 갖다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삶이 힘들어 젊은 사람들이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한 방편이었던 걸로 압니다.

한 집에 고령의 어머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하기 위해 어머니를 업고 산에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자꾸 허리를 젖히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곤 해서 아들이 제대로 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을 합니다. “어머니, 내 등에 딱 붙어있어야지 왜 몸을 들어서 나뭇가지를 던집니까?”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고려장하고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길을 찾게 하려고 나뭇가지를 꺾어 던졌단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자기는 어머니를 고려장하려고 업고 가는데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갈 길을 잃을까 싶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를 고려장하지 않고 집으로 모셔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자식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 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연법이라고 부르는데 자연법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주신 양심의 법입니다. 부모에 대한 도리는 양심의 명령이요 부모는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의 눈물에서 하나님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부모님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이 수감생활에 대한 참회의 글을 썼습니다. 제목이 <어머니의 눈물> 입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 너머로 고개 숙인 채 땅만 내려다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 마디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그 한 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셨습니다. 이 한 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이었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 마디 하시고 면회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 무렵, 형이 면회를 왔을 때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말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 놈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하고 말하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 받으셔서 찾아가보니 엄동설한 추위 속에서 자식의 죄가 당신의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피우지 않고 같이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며 자식과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은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 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거스림이 하나님을 거스림입니다. 부모를 순종함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존재의 방식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이요, 약속된 복을 누리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 23:26 말씀에 보면 “내 아들이 내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라이언 화이트라고 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가 열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수술 과정에서 수혈이 잘못되어 후천성 면역 결핍증(에이즈)에 걸렸습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이 병원에서 잘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의사들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기쁘고 행복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건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이 소년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소년은 5 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려서 더불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전 지금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지만 아빠가 제게 준 것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빠는 제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고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셨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버이의 사랑을 그 누가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어버이는 내게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언제나 편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 옛날 어머니는 우리가 아파 누워 있을 때 열이 오른 이마에 손을 대시고 “네 대신 내가 아파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하시면서 기나긴 밤을 대신 아파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시며 홀로 지새우셨습니다. 부모님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식을 믿어주시고 끝까지 지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배반하고 버린다하여도 끝까지 믿어주고 도와주고 밀어주시는 분은 이 세상 가운데 어버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 동안 목회를 부지런히 하고 70 세가 되어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님 앞에 나와서 “목사님, 이제 은퇴하시니까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께 여생을 지내실 집을 하나 마련해드리겠습니다”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집문서를 꼭 쥐고 계세요. 틀림없이 사업하는 자식들이 와서 집문서를 내놓으라고 할 테니까 그 문서를 내놓으시면 목사님 부부는 길거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니 집문서만큼은 내주지 마세요.”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은퇴한 후 교회에서 사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맏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니까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집문서를 빌려 주세요. 잠시만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만 장로님들의 당부도 잊은 채 어려움을 당하는 아들 내외가 가여워서 집문서를 내어주었습니다. 그 후 아들의 사업은 부도가 나서 파산하여 아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도망을 갔고 그 노부부는 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노부부는 자식들을 원망하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큰 상처를 입히고 가면 마음속으로는 괴로워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식욕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성공과 기쁨은 부모의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자녀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부모의 마음은 흡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아드리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6:2 말씀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어느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에베소서 6:1-3 말씀을 읽으라고 하니까 이 대목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고 읽었답니다. 공격이 아니라 공경입니다. 순종이 의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라면 공경은 정서적 측면이 강조된 단어입니다. 즉,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순종이 외적활동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공경은 내적태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부모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즉  제가 사춘기를 막 시작할 때 부떠 중학교 3학년때 까지 어머니는 큰 양은다라이에 떡을 담아 머리에 이시고는 떡 장사를 다니셨습니다. 예전에도 하셨던 일이지만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은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넉넉지는 않았어도 먹고 살만은 했기에 별 문제는 없었는데 시골 살림에 자식들 도시에 내보내서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가기 전 어머니의 떡 다라이를 지게에다 지고 시골장이 서는 곳에 갖다 드리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동네에서 다니다 떡을 팔러 다니시는 어머니와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날 학교에 가면 반 아이가 “너희 엄마 우리 집에 떡 팔러 왔더라”하는 친구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그 때는 철이 덜 들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런 어머니가 부끄럽게도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생각해보니 우리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셨고 정직하고 당당한 분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앙의 대장부시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몸이 고되고 힘드셔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새벽예배에 나가 눈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땅 한 평, 논 한 평 물려받지 못했습니다만, 부모님의 신앙과 정신은 물려받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대전 큰 형님 댁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왔는데, 이제는 기력도 없으셔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시고 말씀도 어눌하셔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셨습니다. 당신의 고생과 수고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하여 끝까지 헌신하신 어머니의 모습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26 절 끝부분에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길은 여러 가지지만 부모님의 길, 신앙, 성격, 철학, 이상,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내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하여 후회와 아쉬움을 가지고들 계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지 못했지만 너는 지혜로워야한다, 나는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너만은 열심히 해서 좋은학교에 가야한다, 선하게 살아라, 의롭게 살라고 하시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술을 즐기는 자와 사귀지 말라, 게으른 자와 사귀지 말라, 단정히 행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길은 부모님의 길, 선택, 그의 살아온 생을 인정해드리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부모님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생을 잘못 살았다는 후회가 있을 때 부모님은 잘 살았다고, 훌륭하게 사셨다고, 부모님의 삶은 그런 상황 속에서 더없이 성공한 삶이었다고 인정해드리는 것이 부모공경의 도리인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서울을 떠나 개성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개성에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요청하기를 “내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임금님의 용안을 한 번도 뵙지를 못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을 멀리서라도 뵙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임금님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십 리 길을 어머니를 업고 어느 길가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해드렸는데 임금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으로 돌아온 임금님은 그 때 어머니를 업고 있던 그 사람을 궁궐로 불러들이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 “너는 효자다”라고 하면서 상으로 금 백 냥과 쌀 한 섬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한 불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원치도 않는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내용을 보면 상을 받을 것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임금님은 신하에게 금 백 냥을 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그 사람의 의도를 낱낱이 고했는데 임금님의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좋은 것이니 상을 주라”고 했다는 말에 그 사람이 진짜 효자가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 공경이 진심으로 우러나지 않는 분이 있다 할지라도 흉내라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공경의 도리를 통하여 여러분의 인생이 복 되고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명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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