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경(1): 하나님은 말씀을 어떻게 감동하셨는가?
2017년 2월 15일 John MacArthur GTY 블로그 2 Comments
여러분은 혹시 운동선수나 연주자의 “감동적인” 경기나 연주를 본 적이 있는가? 목사의 “감동적인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대개는 “감동”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경우에 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용어와 ‘성경이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의 논조가 너무 극단적으로 밀어부치는 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말씀의 권위가 유래 없이 다발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감동”의 성경적인 정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약성경의 단어, “감동 (또는 영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만 사용되고 있다. 성경은 특별히 선택 받은 사람들에 의해 특별한 상황에서 기록되었고 그렇게 정경은 완성되었다. 오늘날에 이와 같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노래, 책, 환상, 시, 설교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감동”과 우리가 가볍게 쓰는 ‘어떤 것이 감동적이었다’고 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한다. “감동”은 성경의 또 하나의 용어, “계시”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과 그의 뜻을 알려주는 것(열어 보여 주는 것-역자 주)이다.
“감동(영감)”은 그가 그 일(계시)을 행한 방법이다.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성경의 저자들을 통해, 정확하고 절대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인간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를 기록하셨다.
감동이 아닌 것
성경적 감동에 대해 바르게 정의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성경의 감동’을 논할 때 가지는 잘못된 개념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감동은 사람이 이룬 훌륭한 업적이 아니다. 항간에는 특히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이 호머의 <오디세이>, 모하메드의 <코란>, 단테의 <신곡> 또는 세익스피어의 <햄릿>과 같은 책 이상의 감동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누가 성경을 하나로 묶었든지 간에, 천재적 지능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 “자연적인 감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래, 맞아”라고 말하면서, “성경에는 수많은 오류와 실수가 있고, 많은 점에 있어서 틀릴 수 있지만, 윤리나 도덕, 인류에 대한 통찰 등에 있어선 아주 높은 수준의 천재성을 드러낸다”라고 말한다.
이 견해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을 격찬하지만 성경과 하나님과의 관련성은 부인한다.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이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흥미로운 견해이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우선, 똑똑한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책망하는 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에 대해서도 책을 쓰지 않을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구원받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완전한 희생을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추가하면, 가장 똑똑한 사람조차도 예수 그리스도 같은 인물을 상상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재능 있는 소설가라 하더라도, 세상에서 존재했던 어느 누구보다도 순결하고 사랑이 많으시며 의로우시며 완벽하신 분을 능가하는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감동”은 인간 저자의 생각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개념 감동설”을 가르치는 신학자, 설교자와 성경학자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들에게 기록할 말씀을 정확하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포괄적인 아이디어를 주셨고 그들은 이 아이디어를 그들의 생각과 언어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사랑에 대한 개념을 바울의 마음 안에 심으셨고, 이를 바울은 어느 날 펜을 들어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감동”을 생각이나 개념으로 보는 견해는 하나님이 계시의 포괄적인 흐름을 주셨지만 저자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의견에는) 성경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하나님이 음성으로 저자들에게 감동을 주시거나 감화하셨다는 것을 부인한다. 이러한 감동의 견해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아니라고 믿는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2:13에 바울은 명확하게 그가 말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다. 요한복음 17:8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언어를 통해 말씀하신다. 광야에서 숨어 있던 모세를 다시 보내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실 때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생각할 것을 주시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은 말씀 하시기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고 하셨다. 마태복음 24:35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바로 성경의 말씀을 직접 지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설교와 가르칠 때에 대명사, 전치사 등 세밀한 접속사까지도 조심해서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런 모든 “미세한 것(작은 단어)”들 안에는 종종 심오한 의미와 신령한 진리가 담겨있다.
돌이 없는 지질학이 있을 수 없고, 사람이 없는 인류학이 있을 수 없으며, 음이 없는 멜로디가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신령한 하나님에 대한 기록도 있을 수 없다. 생각은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고,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언어, 즉 말씀을 통해 계시하셨다.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성경은 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신학자들은 성경의 부분적인 말씀이 아닌, 모든 말씀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구두로 완전한 영감(verbal plenary inspiration)”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 점은 우리의 다음 논제로 이끈다.
셋째, “감동”은 하나님이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하시는 행위가 아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오늘날 “existential inspiration”(실존 감동)이라는 것을 가르치는데, 이는 성경의 일부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그것이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성경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소름 끼치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면, 그 읽었던 구절은 당신에게만큼은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신학자들도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성경은 실질적으로 권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신학자들에게, “성경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감동을 주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신학자는 답하기를, “네, 그래요”라고 하면서 자신이 믿고 뛰어든 일종의 ‘체험담’을 이야기 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믿고 뛰어든 것이나 직접 경험한 체험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캐 물으면, 그건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며 간단히 말해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성경을 비신화적으로 풀려고 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믿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성경에서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탄생 전에서 존재했다는 것이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 그의 기적들, 대속제물로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 마지막 심판 등을 성경에서 없애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다 없앤 후 주장하기를, 이들 중 그 어떤 것도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이 신령한 부분에 있어서, 또 실질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당신이 성경이 읽으면서 등골이 오싹하게 할 때만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면, 왜 내가 진리를 찾기 위해서 성경을 찾겠는가? 내 생각에는 만약 하나님이 내가 성경의 속성을 믿는 것을 원하신다면 역사적, 사실적인 성경의 속성이 신령한 진리를 입증하도록 했을 것이다.
어떤 의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감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류가 없는 성경을 주셨다는 기적을 믿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오류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오류 없는 인간의 말을 찾아서 믿게 하시는 더 큰 기적을 하나님이 매일 행하신다고 믿는다. 실존주의 운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쏘렌 커크가드(Soren Kierkegaard)는 “당신에게 유익한 진리만이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잘못된 책을 통해서 신령하고 올바른 경험을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만약 성경의 어떤 부분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성경의 영적인 주장과 진술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셨다. 진리는 진리이고, 단지 어떤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고 결정한다고 해서 거짓이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넷째, 성경은 저자가 기계적으로 받아 쓴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보수적인 근본주의 학자들이 성경이 일종의 기계적인 받아쓰기 방법으로 기록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을 비웃는다. 성경을 기록한 이들은 저자가 아닌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영적 기계 같은 기자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귀에 하신 말씀을 이들이 그저 받아 적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렇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이런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논리에 대해 반대하는 주요한 근거는 성경의 각 책마다 성경 기자의 인격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각 책은 특성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각기 다르다. 각 저자들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받아쓰는 방법으로 진리를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었다. 사실, 사람을 이용해야 했던 것도 아니다. (마치 몰몬교도들이 몰몬경을 받았다고 하는 것처럼) 금으로 된 판에 말씀을 새겨 하늘에서 떨어지게 할 수도 있었다.
나도 하나님이 왜 사람을 이용하셨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스타일이 있고 언어도 다르며 어휘도 다르다. 저자마다 각각 다른 독특한 성격이 드러나있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종이에 옮기며 느꼈던 감정도 우리는 느낄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질문이 있다. 어떻게 성경이 베드로와 바울 같은 사람의 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 복잡한 질문의 답변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바울과 베드로 등의 성경 저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할 인물들의 인격을 형성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들을 만드신 것이다. 그들의 유전과 환경을 조절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삶을 조정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와 의지를 허락하셨고,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들을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었을 때 그들의 자유의지와 언어의 선택을 지도하셨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진리를 제시하셨고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그들의 삶과 인격, 어휘, 감정 등을 통해서 원하시는 말씀을 고르신 것이다. 그 말씀은 이 사람들의 언어였지만, 실은 그들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서 틀이 잡혔기에 그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고 동시에 또한 하나님이 기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양쪽 다 맞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렇게 네 가지 그릇된 감동을 살펴 보았다. 그럼, 올바른 견해는 무엇인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 시간에는 감동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Adapted from Why Believe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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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무
2017년 2월 15일
성경의 영감과 그에 대한 오해 (딤후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주신 오류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성경책 중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깁니다. 또 어떤 이는 모세오경이나 복음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욥기, 룻기, 요나와 같은 책은 사람들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는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을 때, 내가 그 말씀과 만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교리들은 성경이 누구의 말씀이며, 그것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그것이 기록된 방법에 대하여 다루고자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분들이 이미 성경 말씀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성경의 영감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는 믿지만 그 용어와 개념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저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공격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영감에 대해 성경적으로 바르게 정의하고, 우리가 바르게 믿고 있는 부분을 올바른 용어로 표현하고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쓰는 글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도중에 그 동안 자기가 알고 있던 것과 약간 다른 내용이 있더라도 일단은 끝까지 다 읽으신 다음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일반적 의미로서의 영감과 성경적 개념으로서의 영감
어떤 개념에 대해서 의견을 진술하거나 토론을 할 때에는, 먼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서 명확하고 바른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용어에 대한 정의가 잘못 되어 있거나 동일한 용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큰 혼란이 빚어질 겁니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을 파병해야 한다”라는 논제로 토론을 한다고 합시다. 만약 토론자들이 자기 주장을 펼치기 전에 “한국군 파병”에 대해 명확한 개념 정의를 하지 않고 시작하면, 논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진 토론자들은 “왜 우리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서 외국인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느냐? 왜 다른 나라에 적대적인 침략 행위를 해야 하느냐?”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찬성 측 토론자들은 “우리는 건설지원병, 의무병을 파병하자는 이야기다”라고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즉 사전에 토론자들 사이에 “파병”이라는 용어에 대해 합의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서로의 논점이 어긋나게 됩니다.
제가 어떤 친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말하기를, “아직 교회에 안 다녀서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 같더라. 예수 믿으면 술도 못 마시게 되고, 주일에는 꼭 교회 나오라고 하는 걸 보니 예수님이 사람을 구속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제가 말하는 구속이 구속(redemption)인지, 구속(restriction)인지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오해가 생깁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라고 할 때의 자유와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라고 말씀하실 때의 자유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조국 통일”과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평화 통일”이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유”, “통일”과 같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용어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영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피차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1) 일반적 의미에서의 영감
우리말 사전에서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감[靈感][명사]
1.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
2.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
우리는 흔히 사람의 지적, 감성적, 예술적 활동에 자극을 주는 창조적인 발상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헨델은 영감을 받아서 를 작곡했다”라고 하거나,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라고 할 때의 영감은 위의 사전적 정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영감”이라는 개념을 이런 일반적인 용어로 이해하다보니 성경의 영감이라는 개념을 마치 발명가나 예술가가 머리 속에 떠오른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기발한 발상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듯이, 성경도 하나님을 통해 어떤 영적인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든 책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사람들이 쓴 글이다”(사람이 만들어낸 저작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됨), “하나님이 성경 저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주셨고, 사람들이 그것을 자기들의 말로 기록하였다”라는 주장들이 나타납니다.
(2) 성경적 개념으로서의 영감
그런데 성경의 용어는 성경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감은 “영적인 감동”이나 “창조적 발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성경의 영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역: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흠정역: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KJV: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개역은 이 구절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은 성경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사람들이 쓴 책”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개역의 번역을 따르자면, 비인격체인 책이 감동을 받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성경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성경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저작물”이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성경은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쓴 책이라면 그것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쓴 책이니만큼 그 안에는 역사적, 과학적, 도덕적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개역의 잘못된 번역은 저자 영감설, 사상 영감설, 개념 영감설이 널리 퍼지는 길을 열어 주었으며, 성경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대주의, 자유주의 신학이 힘을 얻는데 기여했습니다.
해당 구절을 영어 킹제임스 성경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All script-x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이 말씀에 성경의 기록자(writer)에 해당하는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God)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 기록(script-xure)이 있고, 그것이 영감(inspiration)으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성경 기록자가 영감을 받건, 감동을 받건 간에 이 구절에는 성경 기록자가 등장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에 의해 기록된 책”이라는 뜻이 되겠습니까?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영감된 것은 성경 기록이지 성경 기록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자가 영감을 받았다는 저자 영감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성경의 기록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령께서 움직이시는대로 기록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영감”과 “감동”은 서로 다른 용어입니다. 지금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말하는 것은 감동이 아니라 영감입니다. 개역과는 달리 킹제임스 흠정역에서는 이것을 감동이 아니라 영감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데오프뉴스토스(θεοπνευστοσ)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셨다(God breathed)”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영감되었다는 것은 그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당장 간단하게 실험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손바닥을 자기 입 앞에 대고 소리를 내어서 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성경을 진리의 말씀으로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도 좋고, “나는 내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의 고백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입 밖으로 말을 내보낼 때 손바닥에 와 닿는 숨결이 느껴집니까?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나오는 영감의 의미는 바로 그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숨을 쉬듯이 내쉬셨다는 겁니다. 즉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word)을 밖으로 내쉰 것이며, 이 모든 말씀들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감의 개념입니다.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고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곧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입을 통해 말씀(word, 단어)을 성경 기록자들에게 주셨다는 것이 “영감(inspiration)”입니다.
그러므로 영감된 것은 성경 말씀이지, 성경의 기록자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셨다”(God breathed)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는 것처럼 그 입에서 말씀을 내셨지, 하나님의 입에서 성경 기록자들이 튀어나온 적은 한번도 없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이 기록된 방법 – 성령께서 움직이시는대로
제가 성경의 저자들이 영감받은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개역)이라는 베드로후서 1장 21절을 가지고 와서 성경의 저자들이 영감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감동”과 “영감”은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의 구절로 성경의 “영감”을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나오는 영감(inspiration)은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외부적 자극”이 아니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과도 다릅니다. 영감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다”라는 개념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의 입으로 그 말씀을 내셔서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신 후에 다음 글을 계속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베드로후서 1장 2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벧후1:21).
For the prophecy came not in old time by the will of man: but holy men of God spake as they were moved by the Holy Ghost.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영감”과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나오는 “감동”(흠정역에서는 움직이시는대로, moved)이 같은 단어가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의 움직이시는대로(were moved by)라는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페로(φερω)인데, 이는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 움직이다”(be born along or driven)라는 뜻입니다. 이것과 동일한 단어가 사도행전 27장 15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배가 휘말려서 바람을 뚫고 나아갈 수 없으므로 가는 대로 그것을 두니라(행27:15).
And when the ship was caught, and could not bear up into the wind, we let her drive.
사도 바울 일행을 태운 배가 폭풍을 만나자 선원들은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배를 운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람에 떠밀려가는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배도, 선장도, 선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배를 움직이는 힘,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holy men of God)은 마치 바람에 밀려 다니는 배와 같이 성령님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이 아닌 성령님의 힘으로, 자기들의 목표가 아닌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을 따라, 자기들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자들이 최면에 걸렸다거나 기계적으로 받아쓰기하는 로봇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자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성과 스타일도 그대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가 눈으로 보지 못한 창세기의 사건들을 기록할 수 있었고, 욥은 물의 순환(욥36:27-28), 지구과학(욥26:7, 욥14:18-19), 별자리(욥9:9, 욥38:31-32) 등과 같은 과학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공관복음서지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각 기록자들의 개성과 학식과 그들의 스타일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실제로 기록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이끌고 움직이신 주체는 성령님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성경 기록자들은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대로(were moved by) 말하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기록된 말씀에는 오류나 모순이 전혀 없습니다(inerrent and infallible word of God without error or contradiction).
즉,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성경의 기원(divine origin)을 보여주는 말씀이며, 베드로후서 1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주신(그분의 입으로부터 나온) 그 말씀이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대로 따르는 성경 기록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성경의 기록 방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다, 성령님의 통제 하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자들이 영감(성경적 의미로서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면, 이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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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길어서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Reply
관리자
2017년 2월 20일
언어가 변하고 표현이 시대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어떤 표현들은 잘못 이해하면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님이 지적하신 “감동”이라는 단어도 그런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단어를 “영감”이라고 했다고 독자들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어를 잘 공부한 사람들의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주석이나 ESV 주석 같은 것을 참조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님이 감동에 대해서 잘 설명하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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