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에 문제 있다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철학이 있다. 하나는 직역(Formal Equivalency)이고 다른 하나는 의역이다(Dynamic Equivalency). 그리고 성경은 직접 원어에서 번역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원어성경에도 종교개혁시대에 사용된 Received Text(Majority Text)가 있어서 KJV같은 성경은 여기서 번역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중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Westcott-Hort 식의 헬라어 사본이 있는데 이는 요즘 새로 나온 성경들이 대개 이것에서 번역되어 나온다.
Brooke Foss Westcott(1825-1901)와 Fenton John Anthony Hort(1925-1901)는 두 사람 모두 영국의 Cambridge 대학의 교수들인데 이들은 나름대로 1881년에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여 그들이 성경번역의 도구로 삼았다.
이들은 Majority Text(Byzantine text)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향하여 Received Text는 복사된 시기가 늦다는 것을 강조하며 거부한다. Received Text는 대개 6세기 7세기 에 복사된 비잔틴계통(Byzantine text)의 사본들이다. 그러나 늦다고 반드시 부정확한 것도 아니고 복사 시일이 빠르다고 해서 모두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사본의 종류에는 대개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Byzantine text, Western text, Alexandrian Text 및 Neutral Text(중립사본)이다. Westcott 와 Hort는 Neutral Text가 가장 원본에 가깝다고 주장했는데 중립사본에 속한 성경 사본은 알레프 즉 시내사본과 B, 즉 바디탄 사본이다.
또 번역하는 것도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번역하는 사람의 철학이나 신학에 따라서 번역이 달리질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방법이란 직역(直譯Formal Equivalency)이 있고, 의역 (意譯Dynamic Equivalency)이 있다. 직역이란 원어 성경을 번역할 때 문장의 흐름은 약간 무리가 있어도 원어에 충실하게 원어 단어 중심으로 번역하는 방법인데 가령 KJV(1611)이나 Geneva Bible(156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번역)성경이고, 의역한 성경은 너무도 그 수가 많다. 우선 NIV 를 들 수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 Today's English Bible. English Bible 등이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나 English Standard Bible 은 모두 직역한 것이지만 Received Text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의역하는 방법인 Dynamic Equivalency이 생긴 것은 근래일이다. 1960년대에 시작되어 성경번역 학자들 사이에 급속이 번져갔다. 솔직히 성경을 의역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 세계적으로 성경번역의 추세는 대개 의역법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가령 미국의 UBS (United Bible Societies) 는 모두 137개의 성서공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0개국에서 활동하는 성서공회들이다. 이들 성서공회는 지금 세계 600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2002년 한 해 동안에 UBS 성서공회가 배포한 성경의 부수는 신약만 2,500만부이다. 그리고 성경의 일부만 배포한(쪽복음) 수는 5억 3100만 부에 달한다.
UBS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의역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UBS 운영에 드는 비용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미국 성서공회(ABS)가 Today's English Bible과 Contemporary English Bible 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Living Bible in English 성경은 지금 전 세계에 배포되고 있는데 모두 의역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1997년 한 해 동안 Living Bible 판매고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두 4,000 만부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은 전에 직역법을 사용하던 Wycliffe Bible Translators도 점점 의역제도를 채택하는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번역학교에서 그런 방법을 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는 의역제도를 선호하고 의역으로 이루어진 Today's English Bible 을 널리 배포하고 있는 중이다.
의 영향은 대단하다. 2002년에 WBT는 무려 전 세계 70개국에서 1,500개 언어로 번역을 담당했다. WBT는 매년 Texas에서 열리는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를 통해서 성경번역에 종사하는 인재들을 교육하고 있으니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WBT는 성경번역 교재를 집필한다. 예를 들면, John Beekman 과 John Callow 같은 사람은 의역법을 가르치는 교재를 출판하여 전 세계 모든 성경번역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목표는 효과있는 의역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중 NIV 와 Today's English BIble, Good News for Modern Men, New Living BIble, Simple English Bible, Contemporary English Bible, The Message 등이 의역법의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1960년대에 시작된 의역법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성경번역 방법이 되었다.
의역법의 문제점들
성경을 의역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교리가 모호해 진다(obscure). 의역법은 말씀보다도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생각만 전하는 문학 작품이 아니다. 신학을 연구하려면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의역법을 쓰면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으니 교리가 흐려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 사람들이 의역법을 선호하는가? 대답은 성경의 정확성과 교리를 흐리게 할 목적이다.
성경번역가인 Kenneth Taylor나 Eugene Nida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사상을 번역하고 그 사상을 오늘의 형편에 맞게 번역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상중심이며 단어는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이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단어 대 단어 번역이 아니라 사상 대 사상 번역(思想 對 思想飜譯)을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단어가 중요치 않다는 말은 수긍 할 수 없다.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알아야 바른 번역이 나온다. 이 점을 의역주의자들은 모르고 있다. 대개 의역판을 보면 사상만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단어를 무시하는데, 사용된 단어를 무시하고 어떻게 바른 사상을 전달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의역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경의 원문에 충실 한다고 말은 하지만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에 충실하지 않고 정확한 의미를 알 길이 없다. 원어 성경에서 단어를 무시하면 필연코 성경의 의미를 변경하게 된다. 변경된 번역은 성경도 아니고 사람의 말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의역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번역과정에서 줄곧 단순한 언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려고 한다. 심지어 Lynn A. Silvernale 이라는 인도선교사는 인도의 Bengal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하는 말이(BY THE WORD PP. 25) “이 지방에는 모두 문맹자이고 글을 아는 사람은 20%도 안되므로 우리는 성경번역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단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말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의역법은 문제가 많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목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있는데 어떻게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낮추어서 번역할 수 있는가? 이는 언어도단이다.
Berno Ramaker가 화란어로 번역한 Dutch Living Bible은 “13살 먹은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하자”고 하여 아주 쉬운 말로 번역했는데 결과 13살 짜리 어린이가 모두 다 이해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은 13살 먹은 어린애가 창세기 에 나오는 어려운 말을 목사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모두 알아들었을까?하고 의문을 제기 했더니 번역자가 하는 말이 “애들이 알기에 어려운 것은 모두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인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잘라 버려도 된다는 허락을 했는가? 하나님은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있는가? 그런 권한이 없다.
의역법은 단순한 단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여 모두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침 조간신문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간신문을 누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는가? 한번 보면 그만이다. 성경은 한 번 보고 버리는 조간신문이 아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자는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들어야 하는데 의역하는 자는 모두 삭제하거나 가감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들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사람이 제멋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해주신 단어로 기록한 것이며 단어 하나하나에 뜻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등을 보라(요 21장)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의 대화를 보라 의역법을 배격해야하고 의역법으로 번역한 성경은 읽지 말아야 한다. 의역한 성경은 마귀의 작간이다.
의역법을 사용하는 번역방법은 불신자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신자에게 전도한다는 미명으로 그의 말씀을 번경해도 된다는 허락을 한 적이 없다. 계시록 22:18-19말씀을 읽어보라. 사람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른다. 또한 잠언 30:5-6 말씀을 읽으라. 주의 말씀은 순전하여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방패가 된다. 책망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주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의역하는 사람은 교사의 일과 번역자의 일을 혼동한다. 번역하는 사람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만 하면 되고 교사는 그 번역문을 설명하면 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번역하는 사람이 성경을 해석까지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번역에 포함시킬 권한이 없다. 해석은 가르치는 교사가 할 일이다. 주객이 전도될 수도 없고 월권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번역자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진 적이 없다.
의역법은 전통적 교회 용어를 피한다.
칭의, 성화, 성도, 구속, 속죄, 장로, 집사, 목사 등의 단어가 누락된다. 이런 단어들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 단어들을 누락하면 신학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령 가장 최근에 나온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CEB)에 사용된 다음 문장을 보라.
계시록 22:21 을 번역한 것을 보라:
KJV 에는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을
CEB 에는 “I pray that the Lord Jesus will be kind to all of you" 라고 번역됨
‘은혜’라는 말은 단지 친절하다는 말이 아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런 단어를 삭제하고 친절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은 성경의 원의미를 잠식하는 것이다.
엡 2:8의 말씀도
KJV: For by grace have you been saved through faith
CEB: You were saved by faith in God's kindness
이것은 전혀 성경원어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첫째 완료시제인 you have been saved 를 과거 시제로 고친 것이며 through the faith 를 by the faith 로 고친점이 다른다. 믿음은 수단이다. CEB 에서는 믿음은 수단이 아닌 행위자로 둔갑했다.
빌립보 1:1
KJV: bishops and deacons
CEB: all of the church officials and officers 로 고침. 장로와 집사를 혼동하게 만음
빌 1:1
KJV: Saints in Christ
CEB: all of God's people who belong to Christ Jesus 로
롬 3:10
KJV: none righteous
CEB: none acceptable to God
번역가가 해석까지 해 놓았다. 자기 나름대로.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롬 3:24
KJV being justified freely
CEB: he freely accepts us 로
justification 이란 의롭다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언해 주신다는 의미인데 그 말이 없어졌다. 의역법은 문화에 동화하는데서 비성경적이다. 성경을 문화에 동화시킬 수 없다. 문화가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문화에 맞게 해석한다고 하면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심리분석학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말고 문화에 맞게 동화해야 한다고 한다. 입으로는 성경에 충실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충실하지 못하다.
북인도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지방에 사는 사람은 양을 번제물로 드린 적이 없으니 양을 희생물로 드린다는 말을 모르지만 이 지방에서는 이방신에게 제사할 때 수탉을 사용하므로, 요 1:29말씀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수탉을 보라” 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문화에 동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퇴폐적 성경 번역방법이다. 성경에서 “양”은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도저히 “수탉” 이 “양”을 대신할 수 없다.
눈이 안 오니 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사야 1:18을 “너의 죄가 주홍 같아도 코코낫 속처럼 희어 지리라”라고 했다. 코코낫 속도 희고 눈도 희지만 양자는 다르다. 눈은 우리를 정결케 해주는 뜻이 있지만 코코낫이나 솜뭉치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한 단어를 고치면 그 여파가 대단함을 본다.
의역법을 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살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독자가 아는 말로 씌어 진 것이 아니다. 성경저자들이 사용한 말들이 모두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아 듣는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가령 parousia, eirene 같은 말은 보통 사람들은 각각 “왕이 행차하신다” “무지개의 아름다운 색갈” 등으로 알아듣지만 성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전자는 “주의 재림,” 후자는 “평화, 화평, 평안, 평강” 의 의미로 쓰인다.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이런 말들을 첫 독자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을 기록할 당시 성경기록자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나 문장을 모든 사람이 알아 들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성경기록자 자신도 벧전 1:10-11에 보면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 못했다. 베드로는 바울이 하는 말 중에 심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했다(벧후 3:16).
예수님의 비유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믿는 자에게는 계시를 알려주고 불신자에게는 진리를 감추는 목적이 있다 (마태 13:10-13 을 보라). 모든 성경은 원래 독자가 모두 알아들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용된 모든 언어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알아듣던 말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라, 그의 성막을 보라, 제사장 제도를 보라, 제사법을 보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시내 산에서 계시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대부분의 계시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의 모형이다 (히브리 9:23을 보라). 율법의 세미한 부분 제사장 제도, 성막과 제사법 등이 이스라엘 문화에 동화되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문화가 이 계시된 말씀에 입각하여 조성된 것이다. 혼동하지 말자.
성경을 문화에 동화할 수 있는가? 요즘 시대가 바꾸어졌으니 성경도 시대에 맞게 변개하자 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이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두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서 제56문을 보라.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기록할 때 모든 내용을 모든 사람이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교회에 대한 일이나, 구원, 속죄. 칭의 성화 세례 성찬식 등에 대한 지식은 우리와 같았다. 우리가 배워서 아는 것처럼 저들도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웠다. 특히 알아야 할 것은 심지어 보통 쓰는 말도 성경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됨을 저들이 알아야한다. 가령 앞서 언급한바 있는 , 같은 단어를 생각한다. 이런 말들은 보통 쓸 때와 성경에서 사용될 때 각각 의미가 달라진다.
세상의 문화는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생각대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성경을 맞출 수 없다. 성경에 문화를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 17:14. 16).
성경의 어떤 부분은 어린애도 알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상당히 유식한 사람도 힘들다.
헬라어를 공부하는 학생은 요한복음을 잘 해석해도 바울 서신이나 누가복음은 어렵다. 문체(style)와 단어(vocabulary)가 다르고 깊은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은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간소화할 수 없다. 간단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는 것을 인간이 간소화하는가?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가?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가?
또한 요즘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매상고를 높이고 있는 소위 TEV, Today's English 일명 Good News for Modern Man이라는 성경판을 보도록 하자. 이 성경이 얼마나 기독교의 교리를 오도하는가를 성경구절들을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이 성경의 특징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피, haima tou Christou)에서 "haima, 피” 를 번역도 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생략, omit" 했다는 점이다.
TEV Today's English Version 은 가장 notorious 한 성경으로 절대로 사용해서 안 되는 성경이다. 1966년에 나온 이 성경은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도록 교묘하게 번역한 번역판으로 taboo 이지만 놀라운 것은 무서운 속도로 이 성경이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1년 현재 미국 성서공회에서 발행하는 Record 잡지의 보도에는 3,000만부가 일 년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성경이 천주교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한 문자 그대로 <에큐메니칼> 적이라는 점과 또 한 가지는 <읽기가 쉽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이 성경은 United Bible Societies 란 큰 <연합성서협회>의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 성서공회(American Bible Society)에서 펴내고 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그리고 그 어느 version 보다 가장 많은 부수가 보급되어가는 것이 바로 TEB 또는 Good News for Modern Man(현대인을 위한 좋은 소식) 이라는 성경인데 이는 성경 번역의 원칙에서 <단어 대 단어> 번역 방식이 아니고 순연히 <사상만을 전하는> 의역한 것으로 translation 보다는 차라리 paraphrase 로 보아야 한다. 성경은 paraphrase 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첫째 하나님이 그런 권한과 자유를 우리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고, 둘째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은 원본에 있어서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완전영감으로 정확무오하게 취사선택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기록하셨는데 paraphase 해서 사상만 전달 받으면 하나님의 <온전한 뜻 (whole counsel of God)> 을 알 수 없게 되므로 성경의 구실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은 그 수가 허다하다. 가령 Living Bible 도 그런 모양이고 Bible in Today's English 라는 성경도 그렇고, English Bible 이라는 것도 그렇고 Contemporary Bible 은 더 악명 높고, 영어로 발행되는 성경의 종류는 지금 줄 잡아 120가지 성경이 있다. 그 중에서 KJV 나 ASV, NASV 등은 단연 top급에 속한다. 물론 요즘에는 ESV가 나왔는데 English Standard Version 이라는 성경인데 일명 이라고도 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혹독하게 이 성경을 비난한다. 이유는 도무지 에큐메니칼 운동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번역했다는 점과 또 어려운 성경의 용어들을 쉬운 현대어로 풀이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런 비난들은 축복의 찬사로 들리며 그 성경의 진가를 높여 줄 뿐이다.
필자도 어느 분으로부터 선사받아 지금 참고하고 있는 중인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미국 창조과학회(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에서 나온 Defenders's Bible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좋은 성경이고 요즘 King James Version(1611)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사탄의 경” 이라고 매도하는 그릇된 무리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고 물론 KJV 가 단어대 단어로 Formal Equivalency 철학으로 번역한 점은 인정하지만 KJV가 perfect하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번역판은 어느 성경도 완전할 수가 없다. KJV에는 약 50개의 단어가 현대의 의미와 다른 점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KJV로 자라면서 KJV에 익숙하여 성경구절을 외운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성경으로 바꾸려 들지 않고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NASV와 Martin Luther 판 성경을 사랑하여 집착하는 것과 같다.
1611년의 KJV는 Scotland의 James VI 왕이 James I 로 옷을 바꾸어 입고 영국의 왕이되어 당시 유행하며 인기를 누리던 1560년에 Geneva에서 나온 왕자 같은 Geneva Bible (Scotland는 이 성경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에 성공함) 에 시기가 나서 그 보다 더 좋은 성경을 만들자고 하여 학자들을 초청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Good News for Modern Man(TEV)가 성도들에게 왜 해로운가를 보도록 하자.
1. 의역 (Dynamic Equivalency)의 철학을 택했다는 점.
2.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 (word-to-word) translation 이 아니라 thought-to-thought translation 이니 정확한 성경 원어 (original language) 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인데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요 1:1
TEV: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the Word already existed; he was with God"
KJV: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여기서 문제는 TEV 에는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라는 말을 첨가했는데 왜 원문에 없는 이 말을 왜 첨가했을까? 하나님은 시작한 때가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인데 하나님을 세상이 창조되기 전 어느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성경을 오도함이 분명하다. 고로 이런 성경은 사용하면 안 된다.
빌 2:6
TEV: He always had the nature of God, but he did not think that by force he
should try to become equal with God'
KJV: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인데 (KJV) TEB 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분으로 주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우를 범했으니 사용하면 안된다.
사도행전 20:28
TEB: So keep watch over yourselves and over all the flock which the Holy Spirit has placed in your care. Be shepherds of the church of God, which he made own through the sacrificial death of his Son.
KJV: Take heed therefore unto yourselves, and to all the flock, over the which the Holy Ghost hath made you overseers, to feed the church of God, which he hath purchased with his own blood.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사신 귀한 성도들을 말함인데
TEB 는 이 점을 간과하여 그의 희생으로 라는 말로 대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삭제해 버렸으니 이는 졸역이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 TEV 에는 예수님의 “피” 라는 원문의 단어 (haima) 를 모두 고의적으로 삭제했다. 이는 개혁주의 성도로서 용서 할 수 없는 죄이다.
특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누가복음 1;27이다.
TEB: He had a message for a girl promised in marriage to a man named Joseph,
who was a descendant of King David. The girl's name was Mary.
KJB: To a virgin espoused to a man whose name was Joseph.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말씀인데 핵심은
그냥 ‘소녀“ 가 아니라 ”동정녀, 처녀’ 와 혼약했다는 말인데 그 말을 TEB는 삭제해 버리고 엉뚱한 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마치 구약 이사야 7:14 절에서 <처녀>라는 말(원어에서 비툴라)란 말을 그냥 “young woman"으로 번역한 사례 같은 경우이다. 그 성경구절에서 ”처녀“라는 원문의 단어는 그저 보통의 ”젊은 여자“ 가 아니다 ”동정녀, 처녀“ 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여기 TEB 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교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했으므로 읽어서는 안다.
Good News for Modern Man (TEV)를 번역한 Dr. Robert Bratcher 라는 사람의 신학은 어떠한가?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의 신학을 아는 것은 그 번역된 성경의 성격을 아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Bratcher 는 미국 성서공회에 전속되어 있는 수석 성경 번역관이다.
그는 1970년 10월 15일 South Carolina 주 North Augusta 라는 도시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일문일답했다고 Donald T. Clark 가 쓴 “Bible Version Manual”(Millersburg: Bible Truth Institute, 1975년 간행) 라는 책의 98-99 면에서 발표하고 있는데 그의 응답은 <걸작 중 걸작> 이다. 이런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다니 천인공노할 노릇이다. 요즘에 나오는 성경번역을 모두 바른 검증 없이 믿을 수 있을까?
기자: TEV 성경을 번역하면서 로마서 5:9과 14절 또 그 밖에 여러 곳에서 “blood of Jesus Christ” 라는 말을 왜 삭제했는가?
대답; 그것은 번역상의 문제이다.
기자: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가?
대답: 그런 질문엔 대답 안한다.
기자: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인간중심인가?
대답: 그런 것 묻지 말고 성경번역에 관한 것만 이야기 하자.
기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은가?
대답: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다.
기자: 오늘 죽으면 당신은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답: 나는 그런 질문에 대답 안한다.
이런 사람이 번역한 Good News for Modern Man 즉 Today's English Version 성경을 교회에서 목사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교인들에게 권한다면 그는 뭇 교인들에게 독약 (venom)을 먹이는 사람이다.
요즘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언제 주님이 홀연히 오실지 모르니 말이다. 어디를 가도, 무슨 책을 보아도 전부 성경을 떠나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위크리프 성경번역위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도 전에는 직역 (Formal Equivalency)를 위주로 해왔지만 지금은 모두 성경을 파괴하는 Dynamic Equivalency 만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계에 정통을 사수 하는 성경번역 기관은 없다는 증거로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요즘은 모두 이런 종류의 성경 일색이다. 따라서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않으니 교리가 무너지고 교리가 무너지니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고 사회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이단들이나 사이비 종파가 우후죽순처럼 창궐하고, 결국 기독교가 결단난다. 물론 그 전에 주님이 재림하시지만. 지금은 가장 어려운 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거듭난 성도들은 울며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이 땅에 아무도 믿을 자 없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 교리 공부와 교리 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교리 설교를 하는 교회가 우리 주변에 과연 몇이나 되는가? 부흥회는 교리를 설명해야 하는데 비성경적인 신비주의나 기복신앙, 오락성 만담이나 희극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교인들이 어떻게 믿는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히 4:14하).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William Tyndale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는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것을 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쾌락이나 명예나 부귀를 다 준다 해도 성경의 한구절도 양심에 어긋나게 변개하여 번역한 적이 없으며 오늘도 변개하지 않으리라”라고 한 사실을 아는가?
성경의 의역은 하나님이 금하신다. 말세의 사람들이 성경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려는 계교이다. 단연 배격해야 한다. 직역한 성경을 읽자. 영어의 ESV(English Standard Bible)이 좋다. 이 성경은 근래에 나온 직역판 성경으로 일명 Reformation Bible이라고 불리는데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성도들이 애용하는 성경이다. 한글 성경은 톰슨 성경이나 엠마오 성경 등을 권할 수 있다.
-성경번역에 문제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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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 Theological Institute(TTI)는 오늘 빗나가는 기독교 교계의 그릇된 신학 풍토를 역사적 신앙고백에 의한 개혁주의 신앙으로 바로 잡으려고 교육하는 선교기관이며 인터넷 www.tulipministries.com을 운영합니다. 또한 본 선교회는 북한 2,300만 동포의 인권 회목을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와 협력하여 사역합니다.
출처: 좁은길을걸으며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
성경 번역에는 두 가지 철학이 있다. 하나는 직역(Formal Equivalency)이고 다른 하나는 의역이다(Dynamic Equivalency). 그리고 성경은 직접 원어에서 번역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원어성경에도 종교개혁시대에 사용된 Received Text(Majority Text)가 있어서 KJV같은 성경은 여기서 번역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중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Westcott-Hort 식의 헬라어 사본이 있는데 이는 요즘 새로 나온 성경들이 대개 이것에서 번역되어 나온다.
Brooke Foss Westcott(1825-1901)와 Fenton John Anthony Hort(1925-1901)는 두 사람 모두 영국의 Cambridge 대학의 교수들인데 이들은 나름대로 1881년에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여 그들이 성경번역의 도구로 삼았다.
이들은 Majority Text(Byzantine text)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향하여 Received Text는 복사된 시기가 늦다는 것을 강조하며 거부한다. Received Text는 대개 6세기 7세기 에 복사된 비잔틴계통(Byzantine text)의 사본들이다. 그러나 늦다고 반드시 부정확한 것도 아니고 복사 시일이 빠르다고 해서 모두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다. 사본의 종류에는 대개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Byzantine text, Western text, Alexandrian Text 및 Neutral Text(중립사본)이다. Westcott 와 Hort는 Neutral Text가 가장 원본에 가깝다고 주장했는데 중립사본에 속한 성경 사본은 알레프 즉 시내사본과 B, 즉 바디탄 사본이다.
또 번역하는 것도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번역하는 사람의 철학이나 신학에 따라서 번역이 달리질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방법이란 직역(直譯Formal Equivalency)이 있고, 의역 (意譯Dynamic Equivalency)이 있다. 직역이란 원어 성경을 번역할 때 문장의 흐름은 약간 무리가 있어도 원어에 충실하게 원어 단어 중심으로 번역하는 방법인데 가령 KJV(1611)이나 Geneva Bible(156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번역)성경이고, 의역한 성경은 너무도 그 수가 많다. 우선 NIV 를 들 수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 Today's English Bible. English Bible 등이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나 English Standard Bible 은 모두 직역한 것이지만 Received Text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의역하는 방법인 Dynamic Equivalency이 생긴 것은 근래일이다. 1960년대에 시작되어 성경번역 학자들 사이에 급속이 번져갔다. 솔직히 성경을 의역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 세계적으로 성경번역의 추세는 대개 의역법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가령 미국의 UBS (United Bible Societies) 는 모두 137개의 성서공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0개국에서 활동하는 성서공회들이다. 이들 성서공회는 지금 세계 600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중이다. 2002년 한 해 동안에 UBS 성서공회가 배포한 성경의 부수는 신약만 2,500만부이다. 그리고 성경의 일부만 배포한(쪽복음) 수는 5억 3100만 부에 달한다.
UBS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의역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UBS 운영에 드는 비용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미국 성서공회(ABS)가 Today's English Bible과 Contemporary English Bible 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Living Bible in English 성경은 지금 전 세계에 배포되고 있는데 모두 의역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1997년 한 해 동안 Living Bible 판매고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두 4,000 만부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은 전에 직역법을 사용하던 Wycliffe Bible Translators도 점점 의역제도를 채택하는 편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번역학교에서 그런 방법을 택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는 의역제도를 선호하고 의역으로 이루어진 Today's English Bible 을 널리 배포하고 있는 중이다.
의 영향은 대단하다. 2002년에 WBT는 무려 전 세계 70개국에서 1,500개 언어로 번역을 담당했다. WBT는 매년 Texas에서 열리는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를 통해서 성경번역에 종사하는 인재들을 교육하고 있으니 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WBT는 성경번역 교재를 집필한다. 예를 들면, John Beekman 과 John Callow 같은 사람은 의역법을 가르치는 교재를 출판하여 전 세계 모든 성경번역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목표는 효과있는 의역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중 NIV 와 Today's English BIble, Good News for Modern Men, New Living BIble, Simple English Bible, Contemporary English Bible, The Message 등이 의역법의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1960년대에 시작된 의역법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행하는 성경번역 방법이 되었다.
의역법의 문제점들
성경을 의역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교리가 모호해 진다(obscure). 의역법은 말씀보다도 생각을 중심으로 하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생각만 전하는 문학 작품이 아니다. 신학을 연구하려면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어떤 단어가 사용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의역법을 쓰면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으니 교리가 흐려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 사람들이 의역법을 선호하는가? 대답은 성경의 정확성과 교리를 흐리게 할 목적이다.
성경번역가인 Kenneth Taylor나 Eugene Nida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사상을 번역하고 그 사상을 오늘의 형편에 맞게 번역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상중심이며 단어는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이므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단어 대 단어 번역이 아니라 사상 대 사상 번역(思想 對 思想飜譯)을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단어가 중요치 않다는 말은 수긍 할 수 없다.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알아야 바른 번역이 나온다. 이 점을 의역주의자들은 모르고 있다. 대개 의역판을 보면 사상만을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단어를 무시하는데, 사용된 단어를 무시하고 어떻게 바른 사상을 전달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의역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경의 원문에 충실 한다고 말은 하지만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에 충실하지 않고 정확한 의미를 알 길이 없다. 원어 성경에서 단어를 무시하면 필연코 성경의 의미를 변경하게 된다. 변경된 번역은 성경도 아니고 사람의 말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의역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번역과정에서 줄곧 단순한 언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려고 한다. 심지어 Lynn A. Silvernale 이라는 인도선교사는 인도의 Bengal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하는 말이(BY THE WORD PP. 25) “이 지방에는 모두 문맹자이고 글을 아는 사람은 20%도 안되므로 우리는 성경번역에서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단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말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의역법은 문제가 많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목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있는데 어떻게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낮추어서 번역할 수 있는가? 이는 언어도단이다.
Berno Ramaker가 화란어로 번역한 Dutch Living Bible은 “13살 먹은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하자”고 하여 아주 쉬운 말로 번역했는데 결과 13살 짜리 어린이가 모두 다 이해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은 13살 먹은 어린애가 창세기 에 나오는 어려운 말을 목사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모두 알아들었을까?하고 의문을 제기 했더니 번역자가 하는 말이 “애들이 알기에 어려운 것은 모두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인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잘라 버려도 된다는 허락을 했는가? 하나님은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인간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있는가? 그런 권한이 없다.
의역법은 단순한 단어와 단순한 문체를 사용하여 모두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침 조간신문을 보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간신문을 누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는가? 한번 보면 그만이다. 성경은 한 번 보고 버리는 조간신문이 아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자는 성경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들어야 하는데 의역하는 자는 모두 삭제하거나 가감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들을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성경은 사람이 제멋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해주신 단어로 기록한 것이며 단어 하나하나에 뜻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등을 보라(요 21장) 베드로와 부활하신 주님의 대화를 보라 의역법을 배격해야하고 의역법으로 번역한 성경은 읽지 말아야 한다. 의역한 성경은 마귀의 작간이다.
의역법을 사용하는 번역방법은 불신자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신자에게 전도한다는 미명으로 그의 말씀을 번경해도 된다는 허락을 한 적이 없다. 계시록 22:18-19말씀을 읽어보라. 사람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른다. 또한 잠언 30:5-6 말씀을 읽으라. 주의 말씀은 순전하여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 방패가 된다. 책망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주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의역하는 사람은 교사의 일과 번역자의 일을 혼동한다. 번역하는 사람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만 하면 되고 교사는 그 번역문을 설명하면 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번역하는 사람이 성경을 해석까지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번역에 포함시킬 권한이 없다. 해석은 가르치는 교사가 할 일이다. 주객이 전도될 수도 없고 월권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번역자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진 적이 없다.
의역법은 전통적 교회 용어를 피한다.
칭의, 성화, 성도, 구속, 속죄, 장로, 집사, 목사 등의 단어가 누락된다. 이런 단어들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런 단어들을 누락하면 신학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령 가장 최근에 나온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CEB)에 사용된 다음 문장을 보라.
계시록 22:21 을 번역한 것을 보라:
KJV 에는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ll" 을
CEB 에는 “I pray that the Lord Jesus will be kind to all of you" 라고 번역됨
‘은혜’라는 말은 단지 친절하다는 말이 아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런 단어를 삭제하고 친절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은 성경의 원의미를 잠식하는 것이다.
엡 2:8의 말씀도
KJV: For by grace have you been saved through faith
CEB: You were saved by faith in God's kindness
이것은 전혀 성경원어의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첫째 완료시제인 you have been saved 를 과거 시제로 고친 것이며 through the faith 를 by the faith 로 고친점이 다른다. 믿음은 수단이다. CEB 에서는 믿음은 수단이 아닌 행위자로 둔갑했다.
빌립보 1:1
KJV: bishops and deacons
CEB: all of the church officials and officers 로 고침. 장로와 집사를 혼동하게 만음
빌 1:1
KJV: Saints in Christ
CEB: all of God's people who belong to Christ Jesus 로
롬 3:10
KJV: none righteous
CEB: none acceptable to God
번역가가 해석까지 해 놓았다. 자기 나름대로.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롬 3:24
KJV being justified freely
CEB: he freely accepts us 로
justification 이란 의롭다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언해 주신다는 의미인데 그 말이 없어졌다. 의역법은 문화에 동화하는데서 비성경적이다. 성경을 문화에 동화시킬 수 없다. 문화가 성경을 따라가야 한다. 문화에 맞게 해석한다고 하면서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심리분석학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말고 문화에 맞게 동화해야 한다고 한다. 입으로는 성경에 충실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충실하지 못하다.
북인도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지방에 사는 사람은 양을 번제물로 드린 적이 없으니 양을 희생물로 드린다는 말을 모르지만 이 지방에서는 이방신에게 제사할 때 수탉을 사용하므로, 요 1:29말씀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수탉을 보라” 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문화에 동화하는 자유주의자들의 퇴폐적 성경 번역방법이다. 성경에서 “양”은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도저히 “수탉” 이 “양”을 대신할 수 없다.
눈이 안 오니 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사야 1:18을 “너의 죄가 주홍 같아도 코코낫 속처럼 희어 지리라”라고 했다. 코코낫 속도 희고 눈도 희지만 양자는 다르다. 눈은 우리를 정결케 해주는 뜻이 있지만 코코낫이나 솜뭉치는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서 예를 든 것처럼, 한 단어를 고치면 그 여파가 대단함을 본다.
의역법을 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 살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기록된 것으로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독자가 아는 말로 씌어 진 것이 아니다. 성경저자들이 사용한 말들이 모두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알아 듣는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가령 parousia, eirene 같은 말은 보통 사람들은 각각 “왕이 행차하신다” “무지개의 아름다운 색갈” 등으로 알아듣지만 성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전자는 “주의 재림,” 후자는 “평화, 화평, 평안, 평강” 의 의미로 쓰인다.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 이런 말들을 첫 독자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므로 성경을 기록할 당시 성경기록자들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나 문장을 모든 사람이 알아 들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성경기록자 자신도 벧전 1:10-11에 보면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 못했다. 베드로는 바울이 하는 말 중에 심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했다(벧후 3:16).
예수님의 비유도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믿는 자에게는 계시를 알려주고 불신자에게는 진리를 감추는 목적이 있다 (마태 13:10-13 을 보라). 모든 성경은 원래 독자가 모두 알아들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용된 모든 언어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알아듣던 말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보라, 그의 성막을 보라, 제사장 제도를 보라, 제사법을 보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시내 산에서 계시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대부분의 계시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알고 있던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의 모형이다 (히브리 9:23을 보라). 율법의 세미한 부분 제사장 제도, 성막과 제사법 등이 이스라엘 문화에 동화되어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문화가 이 계시된 말씀에 입각하여 조성된 것이다. 혼동하지 말자.
성경을 문화에 동화할 수 있는가? 요즘 시대가 바꾸어졌으니 성경도 시대에 맞게 변개하자 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이 그런 허락을 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두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서 제56문을 보라.
성경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기록할 때 모든 내용을 모든 사람이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교회에 대한 일이나, 구원, 속죄. 칭의 성화 세례 성찬식 등에 대한 지식은 우리와 같았다. 우리가 배워서 아는 것처럼 저들도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웠다. 특히 알아야 할 것은 심지어 보통 쓰는 말도 성경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됨을 저들이 알아야한다. 가령 앞서 언급한바 있는 , 같은 단어를 생각한다. 이런 말들은 보통 쓸 때와 성경에서 사용될 때 각각 의미가 달라진다.
세상의 문화는 하나님을 떠나서 인간의 생각대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성경을 맞출 수 없다. 성경에 문화를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 17:14. 16).
성경의 어떤 부분은 어린애도 알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상당히 유식한 사람도 힘들다.
헬라어를 공부하는 학생은 요한복음을 잘 해석해도 바울 서신이나 누가복음은 어렵다. 문체(style)와 단어(vocabulary)가 다르고 깊은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은 것을 인간이 마음대로 간소화할 수 없다. 간단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간소화하지 않는 것을 인간이 간소화하는가? 누가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가?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가?
또한 요즘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매상고를 높이고 있는 소위 TEV, Today's English 일명 Good News for Modern Man이라는 성경판을 보도록 하자. 이 성경이 얼마나 기독교의 교리를 오도하는가를 성경구절들을 예로 들어 보고자 한다. 이 성경의 특징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피, haima tou Christou)에서 "haima, 피” 를 번역도 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생략, omit" 했다는 점이다.
TEV Today's English Version 은 가장 notorious 한 성경으로 절대로 사용해서 안 되는 성경이다. 1966년에 나온 이 성경은 모든 성경 중에서 가장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도록 교묘하게 번역한 번역판으로 taboo 이지만 놀라운 것은 무서운 속도로 이 성경이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1년 현재 미국 성서공회에서 발행하는 Record 잡지의 보도에는 3,000만부가 일 년에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성경이 천주교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한 문자 그대로 <에큐메니칼> 적이라는 점과 또 한 가지는 <읽기가 쉽다>는 이유에서이다.
물론 이 성경은 United Bible Societies 란 큰 <연합성서협회>의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 성서공회(American Bible Society)에서 펴내고 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그리고 그 어느 version 보다 가장 많은 부수가 보급되어가는 것이 바로 TEB 또는 Good News for Modern Man(현대인을 위한 좋은 소식) 이라는 성경인데 이는 성경 번역의 원칙에서 <단어 대 단어> 번역 방식이 아니고 순연히 <사상만을 전하는> 의역한 것으로 translation 보다는 차라리 paraphrase 로 보아야 한다. 성경은 paraphrase 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첫째 하나님이 그런 권한과 자유를 우리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고, 둘째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은 원본에 있어서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완전영감으로 정확무오하게 취사선택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기록하셨는데 paraphase 해서 사상만 전달 받으면 하나님의 <온전한 뜻 (whole counsel of God)> 을 알 수 없게 되므로 성경의 구실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경은 그 수가 허다하다. 가령 Living Bible 도 그런 모양이고 Bible in Today's English 라는 성경도 그렇고, English Bible 이라는 것도 그렇고 Contemporary Bible 은 더 악명 높고, 영어로 발행되는 성경의 종류는 지금 줄 잡아 120가지 성경이 있다. 그 중에서 KJV 나 ASV, NASV 등은 단연 top급에 속한다. 물론 요즘에는 ESV가 나왔는데 English Standard Version 이라는 성경인데 일명 이라고도 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혹독하게 이 성경을 비난한다. 이유는 도무지 에큐메니칼 운동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번역했다는 점과 또 어려운 성경의 용어들을 쉬운 현대어로 풀이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런 비난들은 축복의 찬사로 들리며 그 성경의 진가를 높여 줄 뿐이다.
필자도 어느 분으로부터 선사받아 지금 참고하고 있는 중인데 큰 도움이 된다. 또 미국 창조과학회(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에서 나온 Defenders's Bible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좋은 성경이고 요즘 King James Version(1611)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사탄의 경” 이라고 매도하는 그릇된 무리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고 물론 KJV 가 단어대 단어로 Formal Equivalency 철학으로 번역한 점은 인정하지만 KJV가 perfect하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번역판은 어느 성경도 완전할 수가 없다. KJV에는 약 50개의 단어가 현대의 의미와 다른 점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KJV로 자라면서 KJV에 익숙하여 성경구절을 외운 사람들은 좀처럼 다른 성경으로 바꾸려 들지 않고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NASV와 Martin Luther 판 성경을 사랑하여 집착하는 것과 같다.
1611년의 KJV는 Scotland의 James VI 왕이 James I 로 옷을 바꾸어 입고 영국의 왕이되어 당시 유행하며 인기를 누리던 1560년에 Geneva에서 나온 왕자 같은 Geneva Bible (Scotland는 이 성경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에 성공함) 에 시기가 나서 그 보다 더 좋은 성경을 만들자고 하여 학자들을 초청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Good News for Modern Man(TEV)가 성도들에게 왜 해로운가를 보도록 하자.
1. 의역 (Dynamic Equivalency)의 철학을 택했다는 점.
2.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 (word-to-word) translation 이 아니라 thought-to-thought translation 이니 정확한 성경 원어 (original language) 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인데 다음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요 1:1
TEV: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the Word already existed; he was with God"
KJV: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여기서 문제는 TEV 에는 “Before the world was created" 라는 말을 첨가했는데 왜 원문에 없는 이 말을 왜 첨가했을까? 하나님은 시작한 때가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인데 하나님을 세상이 창조되기 전 어느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성경을 오도함이 분명하다. 고로 이런 성경은 사용하면 안 된다.
빌 2:6
TEV: He always had the nature of God, but he did not think that by force he
should try to become equal with God'
KJV: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인데 (KJV) TEB 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분으로 주님이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우를 범했으니 사용하면 안된다.
사도행전 20:28
TEB: So keep watch over yourselves and over all the flock which the Holy Spirit has placed in your care. Be shepherds of the church of God, which he made own through the sacrificial death of his Son.
KJV: Take heed therefore unto yourselves, and to all the flock, over the which the Holy Ghost hath made you overseers, to feed the church of God, which he hath purchased with his own blood.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사신 귀한 성도들을 말함인데
TEB 는 이 점을 간과하여 그의 희생으로 라는 말로 대체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삭제해 버렸으니 이는 졸역이고 사용해서는 안 된다. TEV 에는 예수님의 “피” 라는 원문의 단어 (haima) 를 모두 고의적으로 삭제했다. 이는 개혁주의 성도로서 용서 할 수 없는 죄이다.
특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누가복음 1;27이다.
TEB: He had a message for a girl promised in marriage to a man named Joseph,
who was a descendant of King David. The girl's name was Mary.
KJB: To a virgin espoused to a man whose name was Joseph.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알리는 중요한 말씀인데 핵심은
그냥 ‘소녀“ 가 아니라 ”동정녀, 처녀’ 와 혼약했다는 말인데 그 말을 TEB는 삭제해 버리고 엉뚱한 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마치 구약 이사야 7:14 절에서 <처녀>라는 말(원어에서 비툴라)란 말을 그냥 “young woman"으로 번역한 사례 같은 경우이다. 그 성경구절에서 ”처녀“라는 원문의 단어는 그저 보통의 ”젊은 여자“ 가 아니다 ”동정녀, 처녀“ 라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여기 TEB 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교리를 모호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했으므로 읽어서는 안다.
Good News for Modern Man (TEV)를 번역한 Dr. Robert Bratcher 라는 사람의 신학은 어떠한가?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의 신학을 아는 것은 그 번역된 성경의 성격을 아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Bratcher 는 미국 성서공회에 전속되어 있는 수석 성경 번역관이다.
그는 1970년 10월 15일 South Carolina 주 North Augusta 라는 도시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일문일답했다고 Donald T. Clark 가 쓴 “Bible Version Manual”(Millersburg: Bible Truth Institute, 1975년 간행) 라는 책의 98-99 면에서 발표하고 있는데 그의 응답은 <걸작 중 걸작> 이다. 이런 사람이 성경을 번역하다니 천인공노할 노릇이다. 요즘에 나오는 성경번역을 모두 바른 검증 없이 믿을 수 있을까?
기자: TEV 성경을 번역하면서 로마서 5:9과 14절 또 그 밖에 여러 곳에서 “blood of Jesus Christ” 라는 말을 왜 삭제했는가?
대답; 그것은 번역상의 문제이다.
기자: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가?
대답: 그런 질문엔 대답 안한다.
기자: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인간중심인가?
대답: 그런 것 묻지 말고 성경번역에 관한 것만 이야기 하자.
기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같은가?
대답: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다.
기자: 오늘 죽으면 당신은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답: 나는 그런 질문에 대답 안한다.
이런 사람이 번역한 Good News for Modern Man 즉 Today's English Version 성경을 교회에서 목사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교인들에게 권한다면 그는 뭇 교인들에게 독약 (venom)을 먹이는 사람이다.
요즘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바싹 긴장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언제 주님이 홀연히 오실지 모르니 말이다. 어디를 가도, 무슨 책을 보아도 전부 성경을 떠나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위크리프 성경번역위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도 전에는 직역 (Formal Equivalency)를 위주로 해왔지만 지금은 모두 성경을 파괴하는 Dynamic Equivalency 만 선택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더 이상 기독교계에 정통을 사수 하는 성경번역 기관은 없다는 증거로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요즘은 모두 이런 종류의 성경 일색이다. 따라서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않으니 교리가 무너지고 교리가 무너지니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고 사회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이단들이나 사이비 종파가 우후죽순처럼 창궐하고, 결국 기독교가 결단난다. 물론 그 전에 주님이 재림하시지만. 지금은 가장 어려운 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거듭난 성도들은 울며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이 땅에 아무도 믿을 자 없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야 한다. 교리 공부와 교리 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교리 설교를 하는 교회가 우리 주변에 과연 몇이나 되는가? 부흥회는 교리를 설명해야 하는데 비성경적인 신비주의나 기복신앙, 오락성 만담이나 희극 일색이다. 이런 가운데 교인들이 어떻게 믿는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히 4:14하).
영국의 종교개혁자인 William Tyndale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는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것을 안다. 세상에 있는 어떤 쾌락이나 명예나 부귀를 다 준다 해도 성경의 한구절도 양심에 어긋나게 변개하여 번역한 적이 없으며 오늘도 변개하지 않으리라”라고 한 사실을 아는가?
성경의 의역은 하나님이 금하신다. 말세의 사람들이 성경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려는 계교이다. 단연 배격해야 한다. 직역한 성경을 읽자. 영어의 ESV(English Standard Bible)이 좋다. 이 성경은 근래에 나온 직역판 성경으로 일명 Reformation Bible이라고 불리는데 개혁주의를 지지하는 성도들이 애용하는 성경이다. 한글 성경은 톰슨 성경이나 엠마오 성경 등을 권할 수 있다.
-성경번역에 문제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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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 Theological Institute(TTI)는 오늘 빗나가는 기독교 교계의 그릇된 신학 풍토를 역사적 신앙고백에 의한 개혁주의 신앙으로 바로 잡으려고 교육하는 선교기관이며 인터넷 www.tulipministries.com을 운영합니다. 또한 본 선교회는 북한 2,300만 동포의 인권 회목을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와 협력하여 사역합니다.
출처: 좁은길을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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