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는 1971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집회(Westminster Conference)에서 '청교도주의의 창시자,
존 녹스'(John Knox, The Founder of Puritanism)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이 제목은 스코틀랜드에 관한 한 사실이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은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선명한 이해를 위해 두 개의 독립된 개혁 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서로 병행되는 측면도 있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들은 별도로 분리해서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의 나라이다. 잉글랜드는 그런 적이 없었다. 현재 잉글랜드에는 활발한 소수의 장로교회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수백개 정도의 교회들이 1689년 침례교 신앙고백(1689, Baptist Confession of Faith)으로 알려진 런던 침례교 신앙고백 (London Baptist Confession of Faith)을 그들의 교리적 기반으로 채택하였다. 이러한 교회들이 없다면 청교도주의는 잉글랜드에서 거의 종식됐을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신학적으로 성경에 충실한 빛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경 말씀에 대한 신실성은 더 넓은 지역의 교회들을 윤택하게 하는 은혜로운 증거가 되었다. 잉글랜드의 교회들이 17,18,19세기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하강할 때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의 정통성이 굳게 지켜졌다. 또한 스코틀랜드는 부흥의역사로도 유명하다.
여기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다. 신앙고백에 대한 신실성은 중요하다. 예로서 특수 침례교(Particular Baptists)가 그들의 청교도 유산인 1689년의 신앙고백에서 멀어져 갔을 때 교회가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왔을 때 교회는 활기를 찾고 부흥되었다.
존 녹스(John Knox)가 잉글랜드의 종교개혁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주로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의 한 지도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잉글랜드에서 전례를 찾는다면 단연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을 청교도의 전주자로 손꼽아야 한다. 잉글랜드 평민들에게 성경책을 쥐어 준 사람은 틴데일이었다. 그는 잉글랜드의 절대적 군주권에 반기를 든 첫 번째 기수였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특징은 복음의 수호와 개혁의 진척을 위해 경건한 자들이 상호 도움과 지원을 하기로 결성한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언약'이라고 하는 이 최초의 결성은 1556년 존 녹스의 지도하에서 만들어졌다.
약 1천 자로 된 국가 언약서(National Covenant)는 1580년에 작성됐는데 이 문서에서 로마 카톨릭의 뿌리와 가지를 모두 부인하였다. '엄숙 동맹 언약서'(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는 1630년대의 스코틀랜드의 교회 개혁 지도자였던 알렉산더 헨더슨(Alexander Henderson)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이 언약서는 1643년 스코틀랜드 총회에서 통과되었고 잉글랜드 하원과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공동 회의에서 다시 통과되었다. 서명자들은 스코틀랜드에 개혁 교리를 보존하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개혁을 도우며 로마 카톨릭과 감독교회와 이단들을 포함한 일체의 그릇된 시스템들을 제거하기로 맹세하였다.
일치령(Act of Uniformity) 때문에 잉글랜드에서 2천 명 이상의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축출되었다. 이 사건이 스코틀랜드에도 영향을 미쳐 전체 목회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백여 명의 목사들이 강제로 교회에서 쫓겨났다. 콘벤티클즈(conventicles, 비밀집회)라고 불리는 무허가 집회에 모이는 자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가 내렸다. 양심에 따라 계속 비밀집회에 참석한 자들은 벌금, 투옥, 추방에 이어 노예로 팔리기까지 하였다. 이 기간을 잉글랜드에서는 비국교주의자들(Dissenters)의 시기라고 부르는데 스코틀랜드의 경우는 언약주의자들(Covenanters)의 시기였다.
1685-8년 사이는 특별히 잔혹한 기간이었는데 '살해의 시기'(The Killing Time)라고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법이나 민사 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은 채 군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다. 언약파들은 교리적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용하였다. 많은 언약파 목회자들이 총살이나 교수형이 아니면 추방을 당하였다. 이러한 살해는 언약파의 지도자들이 거의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언약파의 이야기는 알렉산더 스멜리(Alexander Smellie)의 '언약의 사람들'(Men of the Covenant)이라는 책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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