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제2부 1-4장(구약 성경신학/박윤선 목사)
글쓴이: 최정열 http://cafe.daum.net/selck/HJbE/220
성경 신학 제2부1-4장 구약 성경 신학
제 1장 : 기원론
우리는 만물의 기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창세기 1장의 말씀 이상으로 알기 어려운 것은 인간의 체험 밖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만물 창조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데 그 기록의 목적은 인간을 섭리하시고 구원하시며 심판하시는 이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려 줌에 있다.
1. 창조의 순서에 대한 문제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창세기 1장에는 식물(11~13), 동물(20~23), 사람(26~31)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2장에는 사람(7), 식물(9), 동물(19)의 순서로 되어있어서 고등 비평가들은 아와 같은 차이를 들어 각각 다른 저작자들의 글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안델스는 창세기 1, 2장은 단일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1) 한 저작자가 1:1~2:3까지 에서는 창조 질서의 테두리를 말하고 2:4이하 에서는 창조된 세계의 역사를 말하면서 겸하여 1장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몇 가지 세목들을 밝힌 것이다.
2) 사람 창조에 있어서 1장에서는 인간의 구조의 신령한 방면을 강조하였고 2장에서는 그 물질적 방면을 알려 준 것이다.
2. 만물의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사43:7)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사용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3. 창조인가 복구인가
스코필드는 창1:2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란 말[Whbow: Whtoht;y_h;$r,a;h;w_]은 땅이 본래는 좋게 창조 되었었는데 천사의 타락으로 인하여 황폐해진 것을 의미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혼돈해지고 공허해졌다는 것으로 창1:3~25의 말씀을 만물의 복구의 의미로 보며 사14:12의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땅에 찍혔는고.”을 천사의 타락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하고 이 사건 때문에 땅이 황폐해졌다고 주장하며 겔28:12~16의 말씀으로써도 같은 주장을 세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혼돈하고 공허하며”란 문구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고”와 “하며”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예타[ht;y_h]가 “되었다”(become)란 뜻이 아니며 하예타는 변천을 의미하지 않고 본래의 상태를 보여 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14;12의 말씀은 단순히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아졌던 바벨론 왕의 세력이 패망할 것을 비유한 것뿐이며 에스겔의 말씀도 역시 두로 왕의 세력이 패망할 것을 풍자로서 예언한 것뿐이다.[참조 : 단 8:10]
4.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의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마다 매번 말씀으로 명령하셨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가라사대”[!yhil~a> rm,aYOw"]라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창1:3,6,9,11,14,20,24,26)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며 언약의신 이신 하나님의 진실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니 그가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언약하신 그것은 인간에게 더 없는 구원의 위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 그 자체이며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의 권능에 의해 본래 없었던 것을 있게 하신 것이다.
1) 진화론의 거짓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들어진 동물들은 “그 종류대로”(창1:21,24,25) 번성하는 진리에서 오늘날 까지 벋어난 적이 없다.
2) 유출설의 비진리가 드러난다.
유출설은 소위 만물의 모체라고 하는 太源과 만물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만물의 모체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본래 태원이나 만물은 동일체였으니 유출설은 만물의 참된 근원을 밝히지 못한다.
5. 창조 기사에 대한 위기 신학자들의 평가
바르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창조의 교리는 자명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역사적으로는 표현될 수 없고 계시 자체가 아니며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동일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칼빈주의 신학은 피조물 자체를 가리켜 일반 계시라고 부르며 바빙크는 말하기를 “일반 계시나 특수 계시는 자명하고도 확실하게 하나님을 보여 주며 사람은 자가 자신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그 증거를 받아야 된다.”라고 하며 이 말은 성경에 근거한 옳은 사상이다.
6. 창조에 대한 이해
우리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역사를 본적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직접 보는 것보다 더 확실히 아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방법이다.[참조: 히11:8]
7. 창조 신앙과 종교 생활과의 관계
1)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 겸손해진다.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 자신들은 본래 소유가 없었던 것을 깨닫게 되며 우리가 고난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송할 때 우리의 신앙 인격이 겸손을 이루게 된다.[참조: 욥1:21]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아야 된다.
2)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소망이 있다.
우리를 영원토록 도와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며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썩어지고 지나가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권세를 가지시고 영원히 살아계신다.[참조: 시121:1~2]
제 2장 : 원시 시대의 계시
1. 구속 운동 이전 계시
원시시대의 계시는 주로 상징이나 예표로 되어 있는데 여기 네 가지 상징 계시가 있으니, 생명의 원리는 생명나무로 나타났고, 시련의 원리는 선악과나무로, 시험의 원리는 뱀으로 영적 사망의 원리는 육신의 사망으로 각각 상징되어 나타났다.
1) 첫째 상징 나무 : 생명나무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동산”(겔28:13)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곳은 하나님께서 그 중심이 되신 장소였던 것이 분명하며 그곳은 사람이 살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한 곳이다.
(1) 루터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생명을 항상 건강하고 젊게 만들어 주는 나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게 했을 것이라고 하였다.(하나님 말씀 만능주의)
하나님만이 영생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영생하게 하기 위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고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 자체(나무 열매)에 의하여 사람에게 영생의 소망을 가지도록 하셨다고는 말할 수 없다.
(2) 칼빈은 “생명나무”의 열매 자체는 외부적 상징뿐이므로 거기에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니 아담은 자기의 받은 생명이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기억하고 열매를 먹을 때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함이 필요했다고 한다.
(3) 보스는 생명나무를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함에 있어서는 칼빈과 일치하나 아담이 범죄 전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했다고 하며 “생명나무 과실은 사람이 시험 받기 전에도 먹지 못했고(창3:22) 시험에서 실패한 후에도 못 먹게 되었다(창3:24)”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의 조상 아담이 행위 계약을 어기고 실패한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하여 행위 계약을 지켜 주심으로만 영생하게 된 것으로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행위 계약을 지켜 그들의 영생길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2) 둘째 상징 나무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1) 신화에 속한다고 하는 설로서 신들이 인간을 시기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동물 상태에 머물게 하려고 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금했다고 하는 것으로 이 해석은 다신론 사상으로서 잘못된 학설이다.
(2) 자율적으로 선악을 장하는 자리에 이르게 한 나무라고 하지만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자리며 사망으로 향한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은 마땅히 타율(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은 해석이다.
(3) 하나님께서 사람을 종교적 또는 도덕적 성숙 상태로 인도하시기 위한 도구라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이 해석을 지지하며 이 해석에서는 하나님이 선악과로써 사람의 순종 여부를 보신 것뿐이니 사람이 잘 통과했더라면 하나님을 순종하는 선을 얻었을 것이라고 한다.
3) 셋째 상징 : 뱀
뱀은 실물이지만 이때에 사탄의 도구로 사용 되었는데 인류의 대표자가 아담과 하와라면 뱀은 사탄의 대리자였다.
뱀은 실물이면서 동시에 마귀를 상징하며 마귀는 사람을 찾아오기 전부터 마귀였다.
[참조 : 계12:9, 요8:44, 유1:6]
4) 넷째 상징 : 몸의 붕괴
(1) 영적 죽음
그들의 몸이 “죽으리라”(창3:19)는 선고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그보다도 먼저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그것이 죽음인데 벗은 몸을 부끄럽게 생각한(3:7)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이다.
그들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였으므로 그 심령에 담력과 평안과 영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으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후에는 그들의 외모도 보기 싫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2) 육신의 죽음
그들의 죽음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온 것으로서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노동을 하되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그 고통의 종점에는 죽음이 온다는 것이다.(창3:17~19)
칼빈은 “아담은 고상하게 지음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이 그에게서 비취는 동시에 그 몸의 땅에 속한 성격은 사라질 정도였으나 그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늘에 속한 성품은 훼손되었으므로 이제 그에게서 천적생명은 떠나고 그 자신은 땅에 속한 것만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며 확실히 첫 사람이 옳게 살았더라면 더 좋은 생명으로 들어갈 뻔하였다. 그에게는 부패와 파멸이 없었을 뻔하였다.”라고 하였다.
(3) 사망의 결과
그들은 하나님과의 복된 교제에서 영구히 끊어지게 되었고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는 영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죄악과 사망 아래 있는 몸으로서 영생을 하게 된다는 오히려 저주라 할 수 있으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하신 것인 동시에 그들에게 대한 친절이었다.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주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우리는 생명과를 먹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2. 최초의 구속계시
행위 계약(창2:17)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단 한 가지 계명만을 주시고 그가 그것을 어길 때에는 죽음에 이르도록 규정하셨으며 인류의 대표자였던 아담은 그 때에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도록 되어있었다.
행위 계약을 어김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도 긍휼을 보여 주셔서(합3:2) 창3:15에 계시된 대로 그는 다른 언약, 곧 은혜 언약에 의해서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창3:9~24에 보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중에는 은혜도 내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①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찾아오신 은혜의 행위와 ② 하와가 해산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식을 낳도록 된 것이 은혜이며 ③ 비록 에덴동산에서는 쫓겨났으나 그들이 땅에서 문화를 건설하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은혜이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언약에서 그의 은혜는 어떤 내용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은 그가 사람에게 마귀를 이기는 축복을 약속하심인데 곧 마귀를 이기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으로서(요12:31, 롬16:20) 창3:15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말씀에서 중요한 진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사람과 마귀를 서로 원수가 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 마귀와 원수 된 사람을 구원받은 자(영생한 자)로 간주하신 것처럼 마귀의 말을 순종하는 것이 사망이다.
(3)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서로 적대 행위를 계속하게 하심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귀를 따르는 마귀의 자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4) 택한 백성의 승리는 그 백성이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성립되게 되는 것으로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귀를 이기게 된다는 표현으로 족하며 그 약속은 실질적으로 신약의 구원관과 같다.(계17:14)
[참조 : 요16:33, 롬8:37, 고전15:57, 엡6:11, 골2;15]
제 3장 : 홍수 이전 계시와 노아 시대의 계시
홍수 이전의 계시에 있어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첫째로 인종 번성에 대한 계시로 장차 계시될 구속 운동의 준비라는 것과 두 번째로 은혜의 역사가 죄악의 팽창으로 인해 그 역사는 최소한도로 제한될 것이다.
1. 가인 계통에서 나타난 죄악의 신속한 증가
물질의 문명이 발달하였으며 이것은 자연 은총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죄악을 증가시키는데 오용 되었다.[참조 : 창4:1~24)
2. 셋의 자손의 발달
셋의 자손들은 구속 운동과 관련되었는데 우리가 이점에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운동이 최소한도의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참조 : 창4:25~5:32]
[예 : 헬라인들은 예술을 발달시켰고 로마인들은 법률과 정치를 발달 시켰으니 이 두 민족은 문화 방면에서 사용된 것이고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사용 되었다.]
3. 가인의 자손과 셋의 자손의 통혼으로 인한 죄악 팽창
셋의 자손들의 통혼으로 인한 타협주의에서 되어진 일이다.[참조 창6:1~2]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경건한 셋의 자손들을 가리키는데 천사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해석은 옳지 않은 해석이다.
이들의 해석대로 한다면 인간의 타락사가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홍수 심판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팽창한 그 세대를 물로 심판하려 하시고 120년을 기한하셔서 노아를 세워 회개를 외치게 하셨는데 이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한 사람도 회개치 아니함으로서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서 멸망시키셨다.
고등 비평가들은 창 6:4의 “네피림”[!ylipiN_h']이란 말을 근거로 하여 홍수 심판이 있었던 사실을 부인하는데 그러나 이것은 성립될 수 없는 학설이다.
모세 때에 가나안에 갔던 정탐들의 보고대로 그 땅에 네피림이 있었다는 말에서 네피림 족이 모세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네피림은 거인 족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지만 정복자로 번역 할 수도 있으며 가나안에 갔던 정탐들이 이 말을 쓸 때에는 “옛날의 네피림과 같은 자들”이란 뜻으로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
1)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그 때의 죄악상은 심히 극심하였는데 그 때처럼 죄악이 팽창한 시대는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야 비로소 있을 것이다.(마24:37~39)
2)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와 자연계를 상대로 자연 언약을 설정하셨으니 이것은 사람들과 모든 생물들과 자연계를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으시리라는 것이다.(창8:20~9:17)
(1) 자연 언약과 은혜 언약의 관련성
① 자연 언약의 진설성은 은혜 언약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② 자연 언약에 의해 은혜 언약의 대상이 준비된다.(구원받을 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는 것)
[참조 : 딤전2:4, 계7:9~10, 창1:28]
③ 은혜 언약이 완성된 뒤에 자연 언약도 완성되어 만물도 새로워진다.[참조 : 롬8:19~23, 벧후3:13, 계21:5]
④ 특별히 성경은 자연 언약의 모형으로 말하고 있다.[참조 : 사54:9, 렘33:25~26]
(2) 하나님의 언약의 필요성
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믿음으로 성립되는데 믿음은 하나님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생긴다.
② 하나님은 인류를 취급하심에 있어서 한 시대의 한 사람을 상대하신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시므로 먼 장래와 관계된 일들도 약속하시며 그 언약하신 일들은 그가 정하신 때에 이르러서만 성취 여부가 알려진다.[롬5:6, 딤전6;15]
③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을 상대로 요구 조건이 있는 법으로 언약에 대한 인간의 순종(행위 계약에서는 율법에 순종, 은혜 언약에서는 믿음으로 순종) 여부는 장구한 시일을 두고 지내보아야 알게 된다.
(3) 하나님의 계약 성격
① 어학적으로 계약이라는 말은 노아와 아브라함을 상대하신 계약에서 처음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보면 무죄 시대보다 타락하고 거짓된 사회에 대하여 계약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로 계약하심에 있어서는 상대자의 의지를 알아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여 독자적인 주권으로 임하셨는데 그 자신은 계약 성취의 책임에 절대로 매이신다.
그는 그의 생명으로 이를 서약하신 것이다.
제 4장 : 선민 국가에 주신 기본 계시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은 실제적인 역사 인물이었음이 고고학의 최대 권위자인 올브라이트에 의하여 누지와 마리 지방에서 발굴된 토서판에 의하여 증명 되었으며 아브라함이 역사적 인물 이었던 사실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권위에 근거한다.
1. 계시의 방법
1) 환상(이상)으로 말미암은 계시
환상으로 계시를 받는 자의 의식이 전적, 부분적으로 제재를 받는 것은 헬라의 탈혼설에서 주장되는 말로서 성경의 인물들이 환상을 받은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성경의 인물들은 깨어 있어서 환상을 보았고 환상을 보면서 문답도 하였다.
[참조 : 출4장, 6장, 32:7, 사6장, 렘1장, 겔4~9장]
2)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심으로 인한 계시[창16:7,22:11~12,15, 31:11]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이다.
① 예전적 의미로 보이는 형상을 취하여 사람의 감각 접촉을 가능하게 한 것과 ② 영성 표시의 의미로 보이는 사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사람의 주의를 끌어 하나님을 제 삼자로 가리킨 점,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사자”가 바로 化肉 이전의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참조 : 창32:29~30, 호12:4, 슥3:1~2, 말3:1]
3) 꿈으로 말미암은 계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는 일반적인 꿈은 헛되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으나(렘23:28, 29:8, 슥10:2) 반면에 하나님께서 꿈을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하신 일들이 있었으니 특별히 계시 시대에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실 때에 꿈을 사용하셨고(민12:6) 때로는 이방인들에게도 그렇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로 보아 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실 때에 특별히 사용된 계몽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2. 계시의 내용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계시의 내용은 창12:2~3에 있다.
1) 큰 민족[l/dG: y/G]을 이루리라는 예언은 신정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긍국적으로는 메시야를 중심한 영적 왕국에 대한 예언이다.
2)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창17:5)은 많은 민족 중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 메시야 왕국에 참여할 것을 가리킨다.
3) 그 왕국에서 사람들이 받을 축복은 영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창12:2~3에 “복”이란 말이 다섯 번 나오는데 그것은 속죄로 말미암는 구원의 축복을 가리키기 때문이며 그 반대 되는 저주는 죄값인 반면에 복은 속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는데(창3;17)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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