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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영적인 고백 (마 16:13-17)

by 【고동엽】 2021. 10. 29.

영적인 고백  (마 16:13-17)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보다는 한해를보내는 아쉬움이 더욱 큰 때입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행사로 많은 사람의 마음이 설레이는 때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념일이므로 성탄절(聖誕節)이라고합니다. 성경에 탄생일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12월 25일로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정확한 탄생일이 언제일가 하는 것보다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위해 이 따에 오심을 기념하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크라이스트(Christ)와 미사(Missa)의 복합어인데 크라이스트란 "머리에 성유(聖油)를 부음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왕이 즉위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어므로 '크라이스트'란 이스랑렝을 구하기 위하여 신이 보낸 장래의 왕이라는 뜻이며,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救世主)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사라의 선물을 주고 받는 즐거운 행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대속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감사하며 그를 경배하고 우리의 구세주로 기쁘게 맞이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분 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견해는 사람마다 제각기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 바라보며 우리와 같은 인간 예수로 보는 경우, 예수의 행함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선지자로 보는 경우,영적인 깨달은 속에서 주(主)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아들임을 인정하고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고백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이 고백을 하는 자라야 성타의 참 의미를 깨닫고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그의 행적을 밟아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고백은 무엇이며, 마음 중심에서 영적인 고백을 한다면 어떠한 열매가 맺히는가에 대해 살펴보므로 성탄을 축하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견해

1) 육으로 본 그리스도

예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고향 사람들은 놀라 "이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하며 감탄하면서도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55-57을 보면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유다라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면서 예수를 인간적인 관계로만 생각하니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여 배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의 말씀과 그의 권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오하려 거부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육으로 예수를 바라보면 구세주로 섬기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하고배신하는 것입니다.

서기관이나 대제사장,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을 듣고 참람하다고 하며 죽이려 하였고(마태복음 9:3,마가복음 14:64, 요한복음 10:33), 가롯 유다는은 삼십에 예수를 팔아 넘겼으며(마태목음 26:47-50),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불에 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마가복음 3:22)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 중에 모든 병과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며 선하고 좋은 일만 하셨지만 육으로 예수를 바라본사람들은 오히려 배척하고 핍박하고 잡아 죽이려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를 세계 4대 성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구세주가 되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행함으로 본 그리스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니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하나라 하더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복음 16:13-14).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예수의 말씀에 권능이 임하고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를 우리와 똑같을 사람이라고 여길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두렵고떨림으로 예수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선지 엘리야(말라기 4:5) 곧 세례 요한이나 능력 있는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육적으로 인간으로 바라보며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을지라도 혹기사와 표적을 베푸는 능력있는 서지자라고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를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심과 말씀에 따른능력을 보고 통회자복하며 참된 주님으로 영접한 것이 아니라 그 베푸신 기사와 표적을 보고 두렵고 떨림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23-25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에수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긴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에수께서 저희를 고치시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 허다한 무리가 좇았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6:1-27을 보면 예수께서 병인(病人)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큰 무리가 따랐는데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이 배부르게 먹게 하시니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며 예수를 억지로 잡아 임금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피하셨는데 오천명의 무리가 예수를 찾으러 다니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이때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들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애쓴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의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 두렵고 떨림으로 따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단계를 거쳐서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영적인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고는 도무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요한복음 4:48). 이러한 사람들은 행함의 능력과 권세를 보고 믿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도마는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는 동료 제자들이 말을 듣고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보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였습니다. 얼마 후 부활하신 예수를 복 만져 본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요한복음 20:24-28)요한복음 20:29에는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은 예수의 행하심을 보고 따르기 때문인데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으므로 (요한일서 4:18)두려움으로 섬기는것이 아니라 참 사랑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3)영적인 깨달음으로 본 예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세계 4대 성인 주의 하나로 알았다가 복음을듣고 기사와 표적을 보며 두렵고 떨림으로 믿게 되는데 이러한 단계를 지나면 영적인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니 시몬 베드로가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마태복음 16:16).이러한 답변은 영적인 깨달음 속에서 나오는답변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하여 알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2:3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주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낳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가 지나치게 배타적이라며왜 유독 예수 그리스도만 미등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참 믿음이 들어가므로 능력의 주님을 믿게 되고 베드로의 고백처럼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영적인 고백을 할 수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모두가 죄인이므로 죄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손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어야만 원죄가 없고 자범죄도 없으므로 죄를 대속할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일 뿐이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피흘리지 않으셨다면 결코 구세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죄인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곧 구세주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십자가를지고 피흘리며 흐생해도 그들을 구세주라 하지 않습니다.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십자가를 지고 보혈을 흘려야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고백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두 가지 고백이 다 포함되여야 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믿사오니" 라는 고백으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합니다.

이러한 고백이 영적인 깨달음 속에서 나와야만 하나님과 교통함을 이루고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응답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영적인 고백과 믿음의 순종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던 베드로는 주님의 물으셨을 때 담대하게 영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그후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주를 세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이는 마음 중심의 부인이아니라 입술로만 부인한 것이므로 회개할 때에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부활 숭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시므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의 자리에까지 기꺼이 나아가는능력있는 종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빠잗은 사람은 이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담대히 믿음을 지키고 항상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와 같이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서 영적인 고백이 나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깨닫고 예수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로 고백하는 사람은 당연히 열매가 나타납니다. 어떤 열매일까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순종할 것인가를 바로 알고 행함으로 나타내니중심을 다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며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는 오직"아멘"만 하게 됩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예수님처럼 기도하며 전도합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저주하고 때라고 못박아 죽이는 자까지도 용서하신 주님처럼, 돌을 들어 자기를 치는 자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기도하며 순교한 스데반 집사처럼 모드를 용서합니다 자기를 희생하시고도 들레지 않으시고 다투지 아니하시며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주님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지극히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을 육적으로 바라본 사람들은그녀를 책망하고 비난하였으나 주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녀의 행함도 알게 하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게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는 영적인 고백이 여러분에게도 마음 중심에서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인간 예수를 예찬하는 어떠한 찬사보다도 주님은 우리으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저 흥에 겨워 무의미하게 외치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왜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하는가를 깨달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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