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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에서 잠간 쉬어라(마가복음 6:30-34)

by 【고동엽】 2024. 4. 13.
목차
 

한적한 곳에서 잠간 쉬어라(마가복음 6:30-34)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 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徒步)로 그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제일 빠지기 쉬운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쉬는 것 없이 일하는 것과, 일하는 것 없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마치 일하기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그저 쉬지 못하고 일하다가 그 일에 지쳐서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입니까? 그런가하면 하는 일없이 쉬는 것, 이 또한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허무와 절망에 빠져 살아가고, 쉰다는 그 소중한 기쁨마저도 얻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남는 것입니다.
"휴식의 참된 의미는 일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포드는 말했습니다. 일하고 쉬고, 또 쉬고 일한다는 것----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조화와 균형 속에서 인생은 행복을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흔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생각 없이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 없이 일하는 순간, 벌써 그는 비인간화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일해서는 안됩니다. 생각할 시간이 있은 후에 일을 해야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일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건전하지 않습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그 생각이 머리만 복잡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네기는「인생의 길은 열린다」라고 하는 그의 저서에서 정열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생의 철학 일곱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피로하기 전에 휴식하라'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는 피로라는 것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피로하기 전에 휴식해야 합니다. 피로로 인하여 몸이 지치게 되면 아무 일도 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일할 때에는 언제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입니다. 우선 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는 일은 성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건강과 용모를 지키도록 하라'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일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 용모와 자세는 단정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우선 순위를 결정하라'입니다. 이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다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 다하고 간 사람 없습니다. 완전한 일도 없습니다. 어차피 몇 가지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priority--우선 순위를 따라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 몇 가지만 하고, 나머지는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시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안되고, 다 하겠다고 오만을 떨어도 안됩니다. 어차피 다 못합니다. 그런고로 우선 순위가 중요합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결혼의 조건이 참 많습니다. 용모에다 지식에다 성격에다 가문에다 재산에다, 두루두루 조건을 생각해놓고, 이것들이 전부 자기 마음에 맞아야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만 부족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니 노처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는 시집 못 갑니다. 물론 내게 여러 가지 희망사항은 있겠지요. 그 중 그저 한두 가지만 맞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내게 맞추고 나머지는 내가 수용하겠다고 생각하고 결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몽땅 채워야 되겠다고요? 그런 상대는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상대가 있어서 결혼을 한다 해도 실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선 순위를 정하고, 우선 순위에 따라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조직과 대화를 배우라'입니다. 내가 할 일이 있고, 남에게 맡겨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조직을 해야 합니다. 내가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몽땅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언젠가 시카고에 갔을 내에 만난 목사님이 있습니다. 참 열심히 목회 하는 분입니다. 그 열심에는 누구도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그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입니다. 그분이 교회 업무를 마치고 새벽 2시경이면 돌아온다고 하기에 같이 자려고 기다리다가 그만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왜 그렇게 늦게까지 교회에 남아 있었습니까?"하고 들러 보았더니, 다음날 예배드릴 순서지를 만드느라 그랬답니다. 그래서 다시 "순서지 까지 왜 목사님이 만드느라 고생입니까?"하고 물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으니 마음에 안 들더랍니다. 실수도 많고, 다른 이유도 있고 해서 자기가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 참 피곤한 사람입니다. 아, 그것 좀 실수하면 어떻습니까?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내가 할 일은 내가 하고 남의 할 일은 남이 해야 합니다. 남의 할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다보면 정작 내가 할 일을 내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남자가 할 일이 있고 여자가 할 일이 있습니다. 여자가 할 일을 남자가 하려고 한다면, 남자가 저할 일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일을 분담할 줄 아는 지혜, 또 남에게 분담시킬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고민과 괴로움을 막기 위하여 정열적으로 일하라'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을 위하여 온 정신과 마음을 다 쏟아야 할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저쪽보고, 저쪽에서는 이쪽보고 하면 안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놀 때에는 공부걱정 하느라 놀지 못하고, 공부 할 때에는 놀고 싶어서 공부 못합니다.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놀 때에는 열심히 놀고, 공부할 때에는 공부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정열적으로 못하는 데에 실패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고민이나 괴로움 같은 것들이 틈탈 수 없을 만큼 정열적으로 일해야 합니다.
일곱 번째는 '수면 부족 때문에 죽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입니다. 잠 적게 잤다고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고로 열심히 뛰세요.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분들을 보면, 잠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더러 이렇게 물어보는 분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십니까?" "5시간 잡니다." "그것 가지고 됩니까?" "이렇게 살아 있지 않습니까?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적어도 사람은 하루에 8시간은 자야 한다던데, 세상에 5시간만 자고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이렇게 지레 걱정을 합니다. 여러분, 실컷 8시간씩 자고 제대로 되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래, 8시간, 9시간씩 잔다고 건강하던가요? 그런 것이 결코 아니올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창조의 섭리 중에 안식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쉬면서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일하면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할 때에는 일하고, 그 다음에 일을 멈추고 생각하고, 또 일하고…… 이렇게 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일하고 쉬면서 행복을 느끼도록 하셨고, 쉬고 일해서 능률적으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생의 믿음입니다.
파스칼의 유저(遺著)「팡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도 없이, 할 일도 없이, 전념할 일도 없이, 그야말로 하는 일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있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없다." 여러분, 일이 많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이렇게 일이 없고 그야말로 하는 일없이 완전한 휴식 속에 있을 때에 자기 허무, 자기 유기, 자기 불안, 자기 회의, 자기 무력, 자기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런 때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권태와 우울과 고뇌와 회한과 절망이 한꺼번에 쏟아져나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쁘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일이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일이 있다면 감사하고, 전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욱 감사하고, 특별히 즐거워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더더욱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휴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쉬는 것, 여기에 진정한 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됨됨이는 그 사람의 일하는 것에서 알아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휴식하는 것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쉬느냐, 그것을 보아서 그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휴식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우리 일을 해석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휴식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간화하고 비노예화한다는 것입니다. '휴식'을 통해서 일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 일 자체를 해석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목적을 생각합니다. 좀더 나아가서, '휴식'은 그 일을 누구에게 바쳐야 바람직한지를 확실히 알게 합니다. '이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누구를 위해서 이 일을 해야 하느냐'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를 합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일했고, 이렇게 가르치고, 이런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라고 낱낱이 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나서 '이제 쉬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그것을 네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따로 떠나서 쉬어라'하는 것입니다. '따로'라는 말은 복잡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정신없이 일을 해왔지만 잠간 멈추고, 그 일로부터 떠나라는 것입니다. 일에서 떠날 줄 알 때에 일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일에서 떠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한적한 곳으로 가라' 하십니다. '한적하다'라는 말은 헬라 원문으로는 '에레몬 토폰'----'광야'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곳은 한적한 곳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서 휴식을 취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휴식이라고 이름하여 더 복잡한 곳으로 갑니다. 휴식 찾아 술집으로 갑니다. 휴식 찾아 춤추러 갑니다.
여기에 망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휴식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그렇게 하면 몇 시간 후에는 녹초가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휴식입니까? 휴식하려면 한적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복잡한 곳이 아닌 한적한 곳,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곳, 자연만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하나님과 나만이 만날 수 있는 곳, 좀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휴식하는 방법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 가운데 한적한 곳으로 가시는 시간들을 많이 가지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고, 밤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고, 번잡한 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셔서 조용히 생각하시며, 하나님을 만나며 명상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와서 쉬어라' 하십니다. '와서'라는 말은 내게로 와서, 나와 함께 쉬어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잠간만 쉬어라' 하십니다. 너무 많이 쉬면 썩어요. 너무 많이 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잠간 쉬어라, 그리고 또 일하자 하는 말씀이 여기 이어지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따로, 한적한 곳에서, 와서 잠간----예수님께서는 이 네 가지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갑부 록펠러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우선 그는 98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의치 하나도 없이 자기 이를 가지고 먹는 것을 즐기면서 인생을 아주 즐겁게 산 사람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다음의 몇 가지가 달랐습니다. 첫째는, 너무나 바빠서 발등에 불똥이 떨어질 지경이라도,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점심식사 후에는 30분을 꼭 쉬었다고 합니다. 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절대로 흥분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산으로 인해서, 인간들로 인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무슨 비판을 듣더라도, 그 많은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도 절대로 흥분하지 않는 침착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주일을 꼭 지켰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네가 아무리 바빠도 주일에는 반드시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한 주일 동안 되어진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보고하여라. 그리하면 네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다." 이 교훈을 따라서 록펠러는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주일만은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삶을 윤택케 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지켜……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 : 2)" 하나님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복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주일을 지켜라-----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까?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주시는 휴식이요, 이 자체에 복의 근원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에 마침내 주일이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보장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중에 이런 말씀이 있음을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쉰다는 말씀, 여기에 복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적한 곳을 찾아 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남부에 위치한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 박(spring bok)'이라고 불리는 산양이 있습니다. 이 산양들은 보통 이 삼십여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데 어떤 때에는 수만 마리가 모여 이동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양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앞에 먼저 가는 양들은 다행히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뒤따라가는 양들은 풀을 먹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앞에 있는 양들은 계속 풀을 먹지만, 중간과 뒤에 있는 양들은 쫓아만 갈 뿐 풀을 못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남보다 앞서가야 풀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저마다 앞으로 나서고, 또 앞으로 나서고, 서로서로 앞서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풀을 못 먹습니다. 그대로 앞으로 달려만 갑니다. 풀을 먹자고 앞으로 가는 것인데, 너도나도 앞으로 앞으로 자꾸자꾸 나서다보니 자연히 줄달음질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달려나가다 보면 앞에 바다가 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못하고 바다에까지 그냥 뛰어들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을 합니다. 쉽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 사이에 일의 노예가 되고, 일의 종이 되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몸도, 영도, 운명도, 명예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공부뿐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어째서 이렇게도 어리석어야 합니까? 물론 열심히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적한 곳을 찾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영성을 재충전하고, 말씀과 영성을 재확인하고, 목적을 다시 세우고, 자기존재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능률적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밤의 섭리를 이해합시다. 안식일의 경륜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휴식의 뜻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심이요, 소생케 하심이요, 능력 있게 하심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심입니다.
'나아가서 전파하라'----명령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쉬라'--그것도 명령입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라'----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루는 쉬어라'-----이것도 명령입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와 이 축복이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생애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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