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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에베소서 1:15-23)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저는 교역자로서 아주 난처한 일을 당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경우입니다. 언젠가 예배가 끝난 뒤에 교인들이 흩어져 다 가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성전 밖을 나서는 제게 술이 잔뜩 취한 사람이 다가와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사정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왜 술은 마시고 와서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까?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발음도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교회가 대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나 같은 사람 안 도와주고……"하고 대거리를 합니다. 여러분, 이 사람 도와줘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교역자라면 누구나 이런 난감한 일을 당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향하여 도대체 교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비난합니다. 주로 구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였다면서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면 그 교인들이 힘을 모아서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교회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냐고, 교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난을 듣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당연히 들어야 할 비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코 여기에는 오해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지식을 전달하는 학교인 것처럼, 학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동안 교회에 잘 나오던 사람이 뜸하기에 왜 안나오느냐고 물으니 "졸업했어요" 합니다. 하기사 말은 됩니다. 더는 들을 새로운 게 없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좋아서 한번 들으면 다 아니까요. 그래서 "졸업했어요"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지식을 전하는 곳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배우러 나왔습니까? 가만히 보면 이상하게도 똑똑한 사람들은 그저 한 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나와도 될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분들은 보면 낮에도 나오고, 저녁에도 나오고, 새벽에도 나오고 합니다. 다른 목사님들 만나서 성경공부 하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저와 더불어 만나는 시간만도 줄잡아 일 년에 사백 회가 넘습니다. 이것을 대학강의로 생각한다면 박사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16년을 지내오는 분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저도 더는 할말이 없고, 여러분도 더는 들을 말씀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목사님은 재주도 참 좋으십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그리도 늘 새로운 말씀과 지혜를 전하실 수 있습니까?" 하고 말씀들을 해줍니다마는 다행히 그분들이 건망증이 심해서 그렇지요. 허구헌날 한 소리 또 하는 것입니다. 새 말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에 공부하러 나왔다고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졸업하는 날이 장례 치르는 날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입니다.
교회는 친교기관도 아닙니다. 친절한 교회를 찾아서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디다. '나를 알아달라'하는 것입니다. 친절한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교회가 무엇입니까? 친절 베풀 사람은 누구고 친절 받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베풀지 않는 친절을 누구에게 받을 수 있습니까? 이 같은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옴으로 그 동기가 점점 바꾸어져야 합니다. 처음에 가졌던 그 생각이 자꾸 바꾸어져서 점점 순수해지고 고귀해지고 고상해지고 높아지고 신령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입니다. 몇십 년을 나와도 여전히 그 모양이 그 모양인 사람에게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교회는 친교기관이 아닙니다. 공동체성과 그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에 교회는 그 본질성과 본래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콜린 윌리엄스는 그의 저서 「교회론」에서 교회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 모티프를 내놓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 모티프(Abraham Motif)의 교회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죄악의 세상에 속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고향을 떠나라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일생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낯선 이방 땅에서 순례의 길을 살아갔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이요 순례적인 교회입니다. 말씀에 절대순종을 요구합니다. 이렇듯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덕을 전파하며 살아가는 아브라함 모티프의 교회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모세 모티프(Moses Motif)의 교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가나안까지 가는 과정이 바로 광야생활입니다. 이러한 광야생활이라고 하는 공동체를 이끌고나간 것이 모세입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나서 하늘나라까지 가는 과정에 많은 훈련이 있고, 시련이 있고, 교육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율법이 있고, 성서가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절대순종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믿음이 흔들림으로 더 많이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모세모티프----광야교회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 모티프(Paul Motif)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선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일 뿐더러, 오늘의 본문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우주의 충만한 절대적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는 꾸준히 확장되어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교회란 여기에 모여 있는 여러분만의 교회가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통하여 선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럼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그러한 선교적 사명을 띤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교회에 속하는 사람은 시간시간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무엇을 깨달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을 들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영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나 영으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흥하는 교회라면 마땅히 교인들이 나와서 더 밝게, 더 선명하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나와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에 그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안 보인다면 그 교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단순한 모임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교회를 영어로는 church라고 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큐리아코스'에서 유래된 말로, 주님께 속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라틴어와 독일어를 거쳐서 church로 변화한 것입니다.
독일의 순교 신학자 본훼퍼는 교회를 아주 강하게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실존하는 그리스도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다.' 이밖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그리스도, 그 공동체성과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교회를 생각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여기서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라는 공동체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다스려 계시고,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그 충만의 능력으로 현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섬기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 교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신앙인으로 태어납니다. 도(아가페)의 젖을 먹고 양육 받습니다. 많은 시련 가운데서 우리는 꾸준히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나갑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계 역사를 바꾸어놓았다고 하는 사도 바울의 회심(回心)을 생각해보세요. 바울은 본래 바리새인이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동참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아예 말살해버릴 생각으로 다메섹까지 원정을 가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로써 그의 생애는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세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울의 가는 길을 막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분명 바울에게는 반론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언제 당신을 핍박했습니까?"하고 여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미 대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핍박했고,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대로 무릎을 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바울의 생애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믿고, 그에게 충성을 약속합니다.
이제는 핍박 대신에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 교회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주님은 만유 뒤에 계십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주님은 주인으로 계십니다. 이것을 오늘의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선지자가 되시어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제사장이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친히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왕이 되시어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나 현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얼마나 체험하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여러분 모두 다같이 인정할 것입니다. 다같이 간증할 것입니다 마는 오늘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권을 얼마나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느냐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고 나는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 놀라운 왕권 앞에 내가 온유하게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느냐, 그 능력과 권세를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느냐----이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에 신비롭고 오묘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충만'이라고 하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충만'은 헬라어로 '플레로마'입니다. 이 말은 능동적으로 생각하면 충만케 하는 역사요, 수동적으로 생각하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가 이것을 아주 풍자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신부 없는 신랑, 가지 없는 포도나무, 몸 없는 머리----이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랑되시고, 포도나무되시고, 머리가 되십니다. 결국 충만은 사랑하는 신부와 함께 하는 신랑,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는 포도나무, 온전한 인격체를 지닌 몸의 머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충만입니다. 충만케 하는 생명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주적이요 절대적입니다. 구원을 이루고 성화(聖火)를 이루고 영광을 이룹니다. 우주적 충만함이 저 앞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충만케 하는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신앙적인 눈으로 보세요. 2천 년 역사 속에 많은 나라, 많은 땅, 많은 세력들이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아주 말살할 것같이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마다 다 무너졌습니다. 다 망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하고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가면서 한 말입니다. 'Oh! Galilean, you won'------'오! 갈릴리사람이여, 당신이 이겼소.' 나는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당신은 갈보리 언덕에서 비참하게 죽었으나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자마다 비참하게 종말을 고했습니다. 민족이고 개인이고 다 망했습니다. 반대로 부족한 가운데도 교회를 높이고 교회를 영화롭게 한 사람들은, 그 나라는, 그 민족은 부흥하고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럽에 가보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교회를 얼마나 영화롭게 꾸며놓았는지 모릅니다. 교회의 지붕을 아예 금으로 씌워놓은 곳도 있습니다. 아주 엄청납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마음으로 엄청난 문화재를 만든 것입니다. 그 성전을 만드는 데 돈 참 많이 들었겠다 싶습니다. 얼마나 돈이 많았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싶지마는 생각해보세요. 저들이 부강해서 그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를 세우고나서 부강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영화롭게 할 때에 그 나라가 태평했고, 그 민족이 영광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강해지면서 어느 사이 교회를 등한히 여길 때에 그 민족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보아오는 진실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갔었습니다마는, 조금 커서는 혼자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제가 새벽기도를 시작한 것은 열네 살 적부터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원래 새벽기도라는 예배가 따로이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불도 안 켜진 깜깜한 교회에 혼자 들어가서 남의 발밑에 엎드려 기도하고 오는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살짝 걸어 들어가서 그 마루에 엎드려 기도하고 오는 것이 새벽기도입니다. 어떤 때에는 많은 사람이 와서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 한산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특별히 어두운 가운데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 오는데 그 시간이 사람마다 전부 다릅니다. 좀 바쁜 사람은 일찍 왔다가고, 아닌 사람은 밤을 새워 기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환하게 밝은 다음에 다녀가기도 합니다.
어느 해 여름엔가 비가 아주 많이 왔습니다.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새벽기도를 하러 집을 나서는데 부모님께서 비가 너무 많이 오니 가지 말라고 말리더군요. 그러나 제가 좀 고집스러워야지요. "비가 온다고 중단하다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하고는 시원치 않은 우산을 쓰고 그 비를 다 맞으면서 교회를 갔습니다. 갔더니 아니나다를까 비가 와서인지 그 날은 교회가 텅 비어 있어요. 그런데 예배당 한가운데에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여인 것처럼 대성통곡하는 사람이 하나 있더군요.
얼마나 큰 소리로 우는지 무슨 큰일을 당했나 싶었습니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분이 대성통곡을 하며 우는 사연인즉, 새벽에 나와보니 교회에 비가 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릇을 가져다 받쳐놓았는데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그 빗물이 넘쳐 온 예배당으로 물이 번졌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여기 앉아 목을 놓아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불충했습니다, 게을렀습니다. 우리 집만 보살피고, 교회는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나쁜 놈입니다"하고 엎드려 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왕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다윗왕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 : 13).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서울 모 교회에 재벌 장로님 한 분이 있는데 연세가 꽤 돼요. 이름만 대면 여러분도 다 알 정도로 이름난 재벌입니다. 요즘 재벌이라 하면 이래저래 좀 좋지 않은 말들을 듣습니다마는 그분은 다릅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업에 실패가 없습니다. 불황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잘해오시는, 아주 신앙적인 어른입니다. 그분은 퇴근길에 꼭 교회를 들릅니다. 교회에 들러서 집으로 가는 것이 그분의 버릇입니다. 언젠가 한 번 그 교회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역시나 그 장로님이 보이더군요. 마당에 서 계시길래 "아니 이 늦은 시각에 웬일이십니까?" 했더니 "교회를 한 번 돌아본 뒤에 집으로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와보니 젊은 사람들이 난로 불을 안 끄고 갔어요. 그것을 보니 제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 불을 끄고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대답을 듣고 '다른 것은 다 비슷한데 이 점 하나가 달라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는가보다'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완전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복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 쓸데없이 교회를 비난하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엄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교회를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높이는 것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주님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그럼으로 그 개인과 그 민족이 큰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에도 교회의 예배당을 짓는다던가 할 때에 꼭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불황에 어찌 저렇게 돈을 많이 들여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까?"하는 말을 들을 때에 제 마음이 섬뜩해집니다. '저 사람 망하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실 가만히 두고보면 꼭 망합디다. 안 망할 수가 있나요.
자기는 얼마 짜리 집에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제가 이 시간에 노골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이 본당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 할 때에 맨 처음 2억7천만 원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설치한다고 몇몇 교인으로부터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자기 집은 6억 짜리 입니다. 6억 짜리 집에 살면서 2억7천 짜리 파이프 오르간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그 많은 비난 협박을 받으면서 두고보자 했습니다. 그 사람들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말조심하세요. 하나님의 일에 그렇게 섣불리 혀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파이프 오르간의 값을 확대해서는 몇 십억이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몇 십억 짜리 파이프 오르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도 그런 파이프 오르간은 없습니다. 이것을 이래저래 보완해서 지금 현가로 치면 한 6억이 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집이 얼마 짜리 입니까? 여러분의 자동차가 얼마 짜리 입니까? 그런데 교회에다 대고 사치니 뭐니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조심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영화롭게 하는 데에 아낌이 없어야 합니다. 생명을 바친들 아깝겠습니까? 그 마음과 그 중심과 그 정성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하여 크게 역사 하셨습니다. 16년 동안 놀라운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 교회 설립의 공신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 역사입니다. 이 충만케 하는 역사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 지체된 내 본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기에 복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 교회에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나를 영접했느니라. 넘치게 후하게 나를 섬겼느니라. 이제 너는 내 집을 섬기라. 그러면 나는 네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이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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