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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

by 【고동엽】 2021. 10. 7.
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
김경재(한신대, 조직신학)


1. 들어가는 말: 신학과 교회현장사이의 괴리 극복과제


21세기가 동튼지도 어언 두해가 지난 즈음, 한국 교계와 신학계는 한국 개신교의 자기성찰과 성숙을 위한 모색에 들어가 일종의 숨고르기 상태 또는 위기돌파를 위한 모색기에 있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중 치명적 약점 하나는 “신학 따로, 교회운동 따로”라는 분리현상이었다. 마땅히 모든 신학은 교회를 비판적으로 자기 성찰하는 교회의 학문적 노작이어야 하며, 신학자와 목회자는 상호 긴밀한 과계속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신학자들은 교회현장을 깊이 이해하거나 고려하지 못한체 새로운 신학 사조나 자기의 전문적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교회현장 목회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해온 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현장 교역자들의 책임도 크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다”라는 명제는 결코 현재교회의 모습과 교회의 선교지향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현장교회가 요청하는 교역자 인력수급을 위해 전도사 인력을 배출해내놓는 신학교육기관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거기엔 진보도 새로움의 모험도 개혁도 없는 안이한 보수와 시대에 뒤떨어진 도그마의 반복 신학만이 있을 뿐이다.
신학함의 주체는 구체적으로는 특정 신학자 개인이 수행하거나 집단 그룹이 수행하거나 그들의 신학적 실존은 언제나 본래적 의미에서의 ‘교회의 일원으로서, 어머니교회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 교회를 섬기려는 맘으로, 교회가 자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학문적 행위’이라야 하다는 사실은 신학자들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편, 목회자들은 목회현장의 엄청난 분량의 일처리를 하다보노라면, 세계신학계의 최근 동향이나 한국 신학계의 담론주제가 왜 생겨났으며, 왜 신학자들이 그 문제를 가지고 와가왈부 하는지 이해하면서 따라잡지 못하고 만다. 우선 교회가 부딪힌 문제를 당장 손쉽게 해결 하는데 써먹을 수 있는 ‘간이식품’(fast food) 같은 일회용 신학을 요청하고픈 유혹에 빠지는데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신학자와 목회자는 함께 신학하며,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바르고 좋은 신학 모색을 해가야 할 것이다. 신학강단과 목회현장은 건강한 신학을 수행하는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2. 한국 신학의 태동과 흐름의 몇가지 맥


한국 신학의 태동에 관한 신학적 성찰논문으로서는 유동식교수의 <한국신학의 광맥> 속에서 정립해놓은 지론을 능가 할 수 없다. 유동식은 위 책에서 한국 개신교 신학사를 크게 세가지 시대로 구분하여 명명하기를 ‘한국신학의 태동시대’(1885-1930), ‘한국신학의 정착시대’( 1930-1960), 그리고 ‘한국신학의 전개시대’(1960-2000)로 대별한 후에, 끝으로 한국신학의 과제를 큰 눈으로서 제기한다.
그리고, 유동식은 1930년대 한국신학의 삼대초석을 놓은 이로서 박형룡의 근본주의적 보수신학, 김재준의 진보주의적 역사 신학, 그리고 정경옥의 자유주의적 실존신학을 제시하였다. 위와 같은 한국 신학사 시대구분이나, 그 중요한 해석의 시각에 대하여 필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 1930년대 한국신학의 초석이 놓여지는 시기에 관과할 수 없는 두가지 신학적 흐름을 거기에 추가하여 주장하고자 한다.
그 한가지는 길선주에서 꽃피고 이용도에서 극치에 오른 성령론적 교회부흥신학의 흐름이요, 다른 또 한가지 흐름은 교단 밖에서 피어난 들꽃같은 주체적 토종신학의 흐름 유영모, 함석헌, 김교신, 최태용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생명론적 토착신학의 흐름이다. 필자의 견해로서는 위에서 언급한 1930년대에 골격을 갖춘 5대 신학적 흐름이, 그 뒤 시대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신학계의 다양한 신학사상의 변주곡이 되어 울려퍼지는데, 각각 벼주곡들의 밑 바탕에 놓여있는 한국개신교 신학운동의 모체요 그 핵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한가지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은 한국 신학계나 목회현장에서 가장 불분명하게 사용되는 어휘중 한가지가 ‘복음주의적 신학’ 이라는 단어이다. 유럽신학계에서 ‘복음주의적 신학’ 이라고 말 할 때는 카토릭 신학에 대비하여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곧 개신교 신학 일반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태동하고 성장해온 오순절 운동전통 및 교회성장론적 선교신학 써클에서는 대체로 성령은사, 성경권위, 선교사명, 그리고 교회성장을 강조하는 신학적 운동을 말 할 때 ‘복음주의적 신학’ 이라고 칭하면서 굳이 세계교회협의회(WCC) 신학적 로선과 차별하는 신학표지로 사용되곤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 신학자중에는 근본주의적 보수 정통신학, 자유주의적 신학, 및 진보주의적 신학운동을 견제하면서 신학적 중용의 길을 걷는다고 자부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입장을 ‘복음주의적 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욧점을 말할자면,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자기들이 수용하고 지지하는 신학적 견해가 가장 성경적이고, 정통적이고, 건전하고, 사도전승의 정통신학을 이어받는 신학이라고 주장하기위한 방편으로서 ‘복음주의적 신학’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신학적 특권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렇게도 좋은 용어 ‘복음주의적 신학’이라는 용어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한국 교계와 신학계에서 지극히 불명료하므로, 교통정리되어 안정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신학적 전문용어로서 사용하지 않기로 하겠다.
그렇게 보면 한국 신학의 태동과 흐름은 앞에서 말한 다섯가지 해류로서 대별 할 수 있고 그 다섯가지지 해류의 창조적 합류형태를 따라 무지개 색깔 같은 다양한 현대신학의 변주곡이 들려오게 된다. 다시한 번 다섯가지 근본 해저의 흐름을 아래에 써보고, 그 해류의 합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신학적 색갈과 과제들을 도표로 만들어 본다. 물론 이래 관계망의 관련 표지는 단순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므로 참고 하자는 것 뿐이다.


5대 기본 해류 다양한 합류 변주곡 신학이름(구성성분)


(1) 박형룡의 근본주의 보수 신학(C) *교회성장 부흥신학 (C*R)
(2) 김재준의 진보주의적 역사신학(H) *신정통주의 신학(C*H)
(3) 정경옥의 자유주의적 실존신학(E) * 민중신학, 통일신학(H*E*L)
(4) 이용도의 성령론적 부흥신학(R) * 성(誠)의 신학, 풍류신학, 문화신학(E*R)
(5) 함석헌의 토착적 생명신학(L) * 여성신학, 생태신학,과학신학 (L*H*R)
* 씨알신학, 생명신학,평화교육 신학 (L*H)
*실천신학,상담신학, 치유목회신학(E*R*L)


3. 한국 개신교 신학 5대 해류의 정체성


첫째흐름, 박형룡, 박윤선으로 대표되는 한국 근본주의적 보수신학은 좋게말해서 17세기 장로교 칼빈주의와 청교도적 경건주의가 19세기-20세기 초까지 불어닥친 서구 계몽정신의 격류를 해쳐나오는 동안 경직화된 기독교의 자기방어적 보수정통신학 이다. 비판적 성경연구 태도나, 역사주의 및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의 연구결과에 문호를 열기만 하면, 기독교 진리는 그 밑둥 뿌리부터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 가운데 형성되온 신학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 결과, 그 신학의 최종 형태는 20세기 초 미국장로교 신학을 풍미했던 근본주의(Fundamentalism) 신학형태로서 그 결정체를 이루었다. 이 근본주의 신학으로써 무장되고 훈련된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의 체질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는데, 그 신학체계의 핵심 주춧돌은 ‘성서무오 영감설’이다. 이 토양과 뿌리에서 한철하, 박아론등의 보수신학이 나왔다.
둘째흐름, 윤치호 김재준으로 대표되는 진보주의적 역사 참여신학은 앞에서 언급한 박형룡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적 보수신학을 개혁하여 장로교 본래의 ‘개혁파신학 전통’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신학적 비판정신 결과로서 형성된 신학 운동이다. 복음의 자유정신, 신앙양심의 자유존중, 우상타파정신, 사회윤리적 책임의식, 성서의 비판적 연구 수용등이 근본정신으로 나타났다. 김재준의 진보주의적 역사신학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역사참여신학 운동과 예언자적 저항운동의 토양이 되었다. 이 토양에서 안병무, 서남동, 박형규, 서광선등의 민중신학이 나왔고, 문익화, 문동환, 박순경등의 통일신학이 나왔다.
셋째흐름, 최병헌 정경옥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실존신학은 경직된 교리적 접근 보다는 인간 마음의 심층에서의 회심경험을 강조하는 감리교 웨슬리안의 전통에서 울어나왔다. 정통교리와 성경의 영감성이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실존적 신학의 경향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전통의 두꺼운 멍애를 깨뜨리고 항상 새로운 신학적 담론이 숨쉬는 풍토가 가능한 곳이 감리교 전통이요, 감리교 신학계열 학교의 학풍이다. 이러한 신학적 풍토 속에서, 토착화신학, 종교문화신학의 선구자들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등 창조적 신학운동이 나왔다.
넷째흐름, 길선주, 이용도로서 대표되는 성령론적 부흥신학은 체계적 신학 이론이기 전에 실질적으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심령을 지배해온 ‘살아 있는 신학운동’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 것은 기독교 복음은동 자체가 성령의 역사하심과 함께 움직이는 ‘성령의 능력과 역사 안에 있는 교회’의 본질적 성격 때문 이기도하지만, 근본적으로 한민족이 종교적 영성 자체가 감성적 풍류도 기질을 그 핵심적 기질로서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흥신학 운동의 맥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대형 선교집회열기와 각종 은사집회 기도원운동의 물줄기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령론적 부흥신학은 유용한 전기의 빛도 될 수 있고 천둥벼락이 되어 생명을 상하게 할 수 도 있다. 특히, 초기 길선주 이용도 목사가 이끌던 순수한 사경회적 부흥운동, 부흥사의 청렴한 청빈 예수정신, 교회에 남연한 온갖 바리세적 형식주의와 동맥 경화성의 교권주의를 치료 할 수 있는 신학운동으로 전환해야 하겠다. 성령을 빙자한 또다른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외형적 결과주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다섯째 흐름, 유영모, 함석헌, 최태용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개신교의 토착적 생명신학은 제도적 신학자들의 냉대와 기구적 조직교회의 박해를 받아왔지만, 분명히 그 해저 해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도도이 흐르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한 물줄기이다. 이들 한국적 토종신학이라고 할 만한 토착적 생명신학의 중심 화두는 고난, 생명, 민초, 주체적 초월등이다. 그들은 값싼 교리적 구원론을 거절한다. 숙성되지 않은체 받아드리는 수입신학의 무생명성을 비판한다. 성직자중심, 전문신학자 중심의 귀족적 특권의식을 비판한다. 이들의 토착적 생명신학이 그대로 곧바로 한국 교회의 주류신학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점점 더 미래신학이 창조적 광맥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체 닥아 올 것이다. 최근 박재순, 이정배, 최인식등 소장학자들이 연구가 돋보인다.
이상 5가지 한국 개신교 120년동안 형성된 신학적 해류는 서로 만나고 합류하면서 다양한 21세기 한국 신학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4. 현대 한국 신학계의 흐름과 과제


첫째, 한국의 ‘교회성장부흥신학 운동’은 한국 개신교의 주류적 교회신학 운동이라고 보여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흔히 ‘복음주의 신학’이라고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1960-80년대 한국사회의 공업화 도시화 산업화 과정 속에서 개신교의 양적 성장을 주도해온 일군의 신학자들과 교역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신학적 맥락에서 엄밀하게 분류해 볼 때, ‘교회성장 부흥신학운동’의 신학적 정체성은 사실 자가당착적으로 매우 ‘혼성적,잡종적’(hybrid)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왜냐하면
한국개신교 안에서 ‘교회성장 부흥신학운동’은 성경의 절대권위를 강조하고, 정통교의를 준수하면서도 ‘자유하게하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혼성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 ‘교회성장 부흥신학의 운동’은 성령의 역사하시는 영역을 기독교회와 경전, 기독교 집회현장, 교인들이 심령 속에 제한하고 문화영역, 생명 생태영역, 정치사회영역에서의 성령의 해방케하시는 사역을 간과해 왔다. 성경의 문자적 영감설에 붙잡혀있기 때문에, 한국 전통문화나 전통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마디로 줄여말하자면, ‘교회성장 부흥신학 운동’은 지난 1960-80년대 한국의 무한경쟁적이고 성장위주적 정책을 폈던 한국사회 상황에서 알맞는 토양을 발견하여 그 실용성과 효능성을 극대화 할 수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21세기에는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에, 자기의 신학적 토대로 삼고있는 근거와 그 지평을 유연하게 넓혀가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 교회의 신정통주의 신학운동은 지동식, 전경연, 박봉랑, 박순경, 이종성씨등의 선구적 학자들에 의하여 칼 바르트 신학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된후 주로 장신 , 한신등 장로교의 주류적 조직신학 이론으로 자리잡아 온 신학운동이다. 칼 바르트의 대저 <교회교의학>의 완전한 한국어 번역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교회강단이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적 복음해석으로 얼마나 영향을 받고있는지는 의문이다. 서구에서 바르트신학에 대한 신학적 담론은 바르트의 정지신학을 중심으로하는 보다 개혁적이고 문화 개방적인 좌파신학과 교회교의학을 중심으로하는 반문화 반종교신학적 경향성을 지닌 바르트 우파신학등 다양한 색깔이 있는줄 아는데, 한국신학계는 주로 바르트 우파적 정통신학만 소개된 것도 아쉽다.
셋째, 민중신학과 통일신학으로 대변되는 한국 개신교 정치신학 운동은 국내 신학계에서 정당한 평가를 아직 받지못하고 있다. 그 신학운동은 이미 과거사가 된 것이 아니라, 도리혀 미래 한국 통일과업을 위한 기본적 신학적 밑그림을 그려내는 일을 앞두고 그 중요성이 더 인지되어야 한다. 특히 민중신학의 중심 주제는 오늘날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어디에 계시느냐?“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하여 언제나 타성과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신학적, 목회적 실존을 흔들어 깨운다. 오늘의 하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전의 예배가운데, 성경말씀과 설교가운데, 자연생태계 위기 가운데, 기도원의 신비체험 가운데 현존하실 수 있지만, 그 다른 어디보다도 ’고난당하는 작은 형제들‘ 사람 생명 가운데서 우리를 만나시려고 부르고 있다는 멧시지를 아프게 계속 전달하고 있다.
넷째, 성의신학, 풍류신학, 문화신학 운동은 한국과 같은 전형적인 종교다원문화 사회속에서, 신학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일군 학자들이 지적인 성실성에서부터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개신교의 ‘종교문화신학’(Religio-cultural Theology)의 과제는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문명사적 관제이다. 이 분야의 신학적 과제는 이 분야에 관심있는 몇몇 사람의 신학적 관심 주제가 아니라, 21세기 지구촌 시대에서 어떻게 계속 복음선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교역자들과 신학자들의 공동관심 이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와 선교신학을 혁명적으로 쇄신한 카토릭교회에 비교할 때, 한국 개신교의 종교문화신학은 약 30년간 뒤 떨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섯째, 여성신학, 생태신학, 과학신학등은 20세기 후반에 나타나서 21세기에 주도적 신학흐름으로 등장할 새로운 운동이다. 그것은 단순한 여성 권익운동이거나, 생태환경보호운동이거나, 유전자 복제를 반대하는 윤리운동 이라기보다 훨씬 그 문명사적 깊은 의미를 내포하면서 근본문제를 신학적으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실재관, 가치관, 세계관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운동이 한국 이라는 구체적 토양 속에서 전개될 때, 바람직하기는 서양의 여성신학 담론을 충분히 연구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적 토종신학 예들면 씨알신학, 한국적 생명신학, 기독교 교육분야의 평화교욱 담론등과의 심층적 만남과 대화가 요망된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 신학계의 동향으로서 실천신학계 동향들, 상담심리 치유목회신학 운동이 있다. 예배의 갱신을 통한 영성의 정화와 심화 성숙, 현대생활의 각종 불안과 자기정체성 살에서 오는 고통을 치유하는 치유목회신학과 상담신학회의 활동이 돋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치유목회학 이론은 몇군데 예외를 제외하면, 정신 의학계와의 보다 긴밀한 상호관계성 확립이 충분하지 않다.


필자는 이 짧은 글에서 한국 개신교 120년 동안에 형성되었고, 형성되어가고 있는 다양한 신학적 흐름과 그 상호 관계망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다음 각각 전문 분야의 세밀한 내용은 뒤 따라오는 글들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신학적 노력등이 허공을 치는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의 정체성을 바르게 밝히고 생명적인 복음선교가 이뤄지도록 하는데 공헌하는 신학운동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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