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2,922편)〓/소망 설교

레3:1-17 신앙의 도리

by 【고동엽】 2021. 9. 30.
목록가기
 
 

레3:1-17 신앙의 도리

 

레3:1-17까지의 말씀으로 신앙의 도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 교회 뒤에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습니다.

아침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등학교를 보니까 용의검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한테 인사를 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요.

선생님이 쉰이 훨씬 넘어 보이던데 아침마다 서 계시더라구요.

옷을 잘못 입은 학생들은 한쪽으로 세우더라구요.

또 한천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서있어요.

‘담배를 태우면 생명을 태운다’고 써 있더라구요.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니까 그러는 겁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는 담배 피우는 것은 깡패가 하거나 무기정학감이라 상상도 못했어요.

또 여기서보면 노래방, 우리교회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제가 가도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여학생도들도 피워요. 사모님이 숨막히겠다고 하니까 사모님 앞에 와서 더 피우더래요.

그러면서 자식들을 잘 키운다고 하는데 저것은 자식농사 버린 것입니다.

또 피켓에 ‘선생님이 부르면 도망가지 말자’고 써 있어요. 아마 도망가나봐요.

중학교앞에 이런 피켓을 들고 서 있더라구요. 우리 때는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꼼짝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학생은 선생님이 부르면 도망가 버리나 봐요.

그걸 보면서 도리를 못하고 있다. 학생의 도리를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부모님들이 어떻게 키우는가는 몰라도 부모님들도 도리를 못하고 있어요.

우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그래요.

이 세상이 공부만 잘하면 되면 무엇인가 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에 그렇지만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잘살아도 그것이 다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조금은 못살아도, 공부는 조금 못해도, 도리를 하는 사람이 진짜 사람입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하고 유명한 사람이 됐어도

나중에 나이가 먹어 보면 후회막급한 사람이 엄청 많습니다.

왜냐하면 앞만 보고 뛰어 왔다는 겁니다.

앞만 보고 뛰어온 결과가 자식들은 하나도 자기 품에 들어오지 않고

아내와의 관계도 의무적으로 사는 겁니다.

자식도 의무요 부부지간도 의무적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고,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도리가 있고

자식은 자식으로의 도리가 있고 학생은 학생으로 도리가 있고,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도리가 있을 텐데 선생님도 같이 출근하시고 학생들도 같이 가는데도 인사도 안 해요.

도리를 못해서 ‘하나님 저 사람들 보게 하신 것은 나보고 신앙도리를 잘 하고 살라고 보여 주시는군요. 하나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하라구 하시는 군요’ 하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도 믿는 사람으로서 도리를 잘하고 살아야 합니다. 각자의 도리가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만 도리를 하면 안되고 집에서도 평소 아무도 없어도

나하고 하나님하고 있을때의 도리가 더 중요합니다.

신앙의 도리를 우리가 잘하고 살아야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화목제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계에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이 되냐면 먼저 소로 드리는 것이 있고,

양으로 드리는 것이 있고, 염소를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물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어서 큰 것을 드리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없으니까 못 드리는 것인데 우리로 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드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릴 때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리라고 합니다.

‘흠 없는 것으로 드리되 예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회막문에서 잡아라’ 하십니다.

그것은 전부 제주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론 자손들에게 피를 주면 피를 단에 뿌리고 아론 자손들은 그 간에 덮인,

또 내장에 붙은 또 콩팥에 있는 기름을 취해서 단에 있는 나무 위에 있는 번제물 위에 살라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므로 하나님이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신다.

그래야 화목이 화목제의 제사가 된다.

그런데 화목제사 중에서는 기름과 피는 먹지 말라.

피는 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은 번제단에 태워라 이것이 화목제의 규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화목이 되려고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가 화목이 되려고 하면 우리의 삶에서 믿음수준에 따라서 형편을 따라서 드리되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귀하고 좋은 것을 하나님이 흠향하시게 드려돼

하나님이 인정하실만하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도리를 다 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안되면 다른 무엇이 잘 되어도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하고 아무리 다른 사람하고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과 화목이 안되면 진짜 것이 빠진 것입니다. 안고 없는 찐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갖는 신앙의 도리를 다 해야 되는데

 

어떻게 우리가 신앙의 도리를 해야 할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보면

 

레3:1

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우리가 신앙의 도리를 다해야 되는데 첫 번째는

첫 번째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는 신앙의 도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법 중에서 3번째 제사가 화목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주님에게 해 주신 것은 순서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순서로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거꾸로 갑니다. ‘속건제’가 먼제 되어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먼저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죄가 해결되어야 ‘화목’이 됩니다.

화목이 되어야 삶에서 제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소제’입니다.

삶에서 살므로 온전히 헌신살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나에게 해 주셨다고 하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순서를 이해를 하고 삶에서 만나야 거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지 못하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흐트러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처세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의 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와 화목한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하고의 화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짜는 하나님과의 화목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는 부부지간이 화목이 되어야 하고, 부모자식간에 화목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자식은 자식대로 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 학교를 보니까 우리나라 교권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대접을 못 받고 월급쟁이로 전락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학교에서는 얼마나 담배를 피우면 그러겠습니까? 선생님이 부르면 도망가지 말자는 말이 뭡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나 부르면 싫다고 도망가는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치 못한 것은 우리가 올바른 도리를 못한 것입니다.

왜냐면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안에 오시려고 죽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부른다면 우리는 하는 일을 멈추고 내 안에 들어오시려고

죽으신 그분이 말씀하시면 뭐 하실려고 하는가를 들어봐야 하잖아요.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는 것은 신앙의 도리에 첫 번째입니다.

화목은 생각이 똑같은 것입니다. 방향이 같은 것입니다.

계획, 목표, 하고자 하는 바가 똑같아야 화목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우리가 따라가는 입장인데 그 화목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 속에 내가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고후5:18-19 을 보시기 바랍니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으니라.

 

(생명의 말씀, 십자가 죽으신 그 말씀 그 하나님의 애쓰신 말씀을 부탁했다 말하면서

20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거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의 계획을 거부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려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것을 따라가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라.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드려야 화목이 됩니다.

 

부부지간에도 서로 마음이 같아지려고 내가 애써야 화목하게 되잖아요.

내 주장만 계속하면 상대방과 화목이 될 수 없습니다.

화목은 나를 내리고 그 분이 나에게 해 주신 것이 고마워 질 때 화목이 됩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 화목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사람과의 관계도 받은 것이 좋아지고 고맙게 느껴질 때 화목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때 이렇게 해 주셨고, 이때 이렇게 해 주셨다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때

화목이 됩니다. 그런데 그냥 화목하라 한다고 해서 화목이 되는 건 아닙니다.

주님이 나에게 해 주신 것이 많이 느껴질 때 화목이 깊게 될 줄 믿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막에서 커서 엘리대신 사사로서 일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엘이 하나님과 함께 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사무엘 말을 잘 들었습니다.

자기를 많이 내려놨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이 됐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생각을 꺾고, 내 계획을 꺾고, 하나님 의도를 따라가면 따라 갈수록 화목은 더 깊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신앙의 도리의 첫 번째는 사무엘 같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는

신앙의 도리를 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레3:6

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두 번째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신앙의 도리를 다해야 됩니다.

수컷이나 암컷이나 화목제 희생은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흠 없다’는 말은 가장 좋은 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리 하나가 없다든지, 피부병에 걸렸다든지 하면 그것은 온전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어쩔때는 좋고, 어쩔때는 나쁘면 그것은 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좋을 때는 ‘아멘’하고 나에게 조금 나쁠때는 ‘노멘’ 그런 다면 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신앙이 그렇다면 흠 없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이 좋을때나 나쁠때나 ‘하나님이 나에게 여기까지 원하시는구나’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 자신이 제일 좋으면 나를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되겠죠.

물질이 가장 좋으면 물질을 드리면 가장 흠 없는 좋은 것이 되겠죠.

우리 신앙이 피부병이 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드럽지 못하다는 겁니다.

환경이 조금 나쁘면 더 거끌거끌해 집니다. 그것은 신앙의 도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흠 없는 것은 하나님이 시간을 원하시면 시간도 드려야 되고,

나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이 바라시니까요.

나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 물질,조건,능력,시간,나자신을 드리라고 하면

내가 그것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원하시니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신앙의 도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지원이 한테 제가 마이쭈하나 ‘아’하고 달라고 할 때 마이쮸 하나 할아버지 입속에 넣어주면 더 많이 생길텐데 그건 모르고 지금 있는 것 없어지는 것만 생각하니까 못줍니다.

우리도 뺏기는 것 같으니까 좋은 것을 못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원하신다고 하면 그것을 드리면 더 많이 주실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모른다는 겁니다.

 

시62: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 도다.

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요 구원이요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한다’ 고 했습니다.

‘온전히 내가 하나님만 바란다.

구원은 그에게서만 난다’ 는 고백은 완전히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고백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일을 내가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고백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을 황소를 드림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 입술에서 드리는 찬양, 오직 주만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반석이시오 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렇게 고백하며 신앙의 도리를 다하는 우리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동방박사는 마태복음에 2장 11절에 보면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했습니다.)

동방박사가 아기예수 탄생에 대해서 축하하며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습니다.

황금은 눈에 보이는 것 중 최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향은 코에 들어가는 것 중에 최고를 말하는 것입니다.

몰약은 입에 들어가는 것 중에 최고의 것을 얘기합니다.

모든 것 중에 최고의 것을 동방박사가 와서 예물로 드리고 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누리고 있고, 이해하고, 만나고 깨달은 것을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고 삶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서 신앙의 도리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레3:17

17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세 번째 하나님께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신앙의 도리를 다해야 된 다는 것입니다.

화목제 규례중에서 기름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3절에 보면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기름을 말합니다)을 콩팥과 함께 취하라’ 고 했습니다.

콩팥, 기름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 번제물 위에다 살라라 그랬습니다.

피는 단 사면에 뿌리라고 했습니다. 기름이나 피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름은 ‘힘의 원천’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안에 있는 기름이 태워져서 에너지가 만들어져서 힘으로 사용됩니다.

그 다음에 피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기름이나 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 하나님에게 드려라.

하나는 단에 태워 드리고, 하나는 단 사면에 뿌려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내가 가지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드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요?

나 자신 하나님 것입니다. 십일조도 하나님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달의 첫날, 한 주의 첫날인 주일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고마워요’ 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열납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대상29:14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을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지금 다윗이 성전건축 준비를 다 해놨어요.

그런데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드렸냐면 4절에 보면 ‘오빌의 금’ 3,000달란트입니다.

 

1달란트가 34kg입니다. 지금 금값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천은’ 최고의 은을 7,000달란트를 드리고도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것을

하나님에게 드렸을 뿐입니다. 그랬습니다.

많이 드린 것 갖고 믿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릴 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다윗은 성전을 자기가 못 짓는다고 하나님이 말씀하니까

성전건축 하도록 모두 내놓고 하는 말이 ‘모든 것은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신앙의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것이 나에게 있다고 하면 그것을 드려서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시는 신앙의 도리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학생들이 ‘선생님이 부르면 도망가지 말자’고 써놓거나

‘담배를 태우면 생명을 태운다’ 라든가 선생님이 계셔도 한 명도 인사를 안하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가지고 공부만 잘하면 무얼합니까. 도리를 잘 해야죠.

우리도 신앙의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첫 번째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는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과 더욱 화목해 지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하나님 가슴을 감동시키는 자가 되십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