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기는 자의 비결
본문 / 고린도전서9장 24절-27절
잠언 16장31절-33절
요즈음 현대인들의 병중에 70~80%가 신경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병자 중에 75%가 정신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신분석학이나 각종 심리학이 발달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현대인들이 저지르는 각종 범죄 사건의 요인 역시 정신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같은 경우 운전기사의 사고 요인 중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것이 90%로 나타났고, 교통 사고요인의 40%는 음주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정신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거의가 한 여기에 말을 합니다. 그러니 모든 이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산다는 겁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 죽습니다. 그런데 거 안받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보면 자기의 문제입니다. 목사님 나 누구 때문에 교회에 그만 나올래요. 그래도 그것은 나요 목사님 당신 때문에 안나온다고 하면 참으로 속이 끓어요. 나도 너 때문에 다른 교회에 담임을 하련다. 그래서 목사들이 그런 스트레스에 죽을 맛이랍니다. 다른 교회에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안하고 싶었습니다. 요즘에 군대에 자녀를 보내고 얼마나 부모님들의 마음이 찡합니까?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사실은 많은 군인들이 거 좁디좁은 병사 안에서 산다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일이 왜 생기는가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집에 가보면 자식들이 워낙이 많으니까 좁은 방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많아야 둘이고 셋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다 귀하지요. 다들 그런 말들을 합니다. 그 어린 병사들이 거의 독자든가 형제가 많아야 둘이라고 그럽디다. 그러니 남하고 어울리는 그런 생활이 조금 힘이 듭니다.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공동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겁니다. 나만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보는 겁니다. 저를 위한 배려가 있습니다. 그게 공동체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인간에 대한 배려로 오신 겁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힘들고 어려운 사건에 부딪혔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처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저 사람만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면....
이처럼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환경을 탓하며..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다가 보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역경과 여건이 변화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자신이 먼저 변화가 되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혹은 환경이 아니고 그것이 변화가 되는 것을 우선하지를 아니합니다. 내가 변화를 시작을 해야 그래야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1990년 휴스톤의 아스트로스란 프로 야구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팀에는 전설적인 투수로 활약을 하고 있는 호세리마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항시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전성기를 구사하는 투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가 투수마운드에 서더니 젠장 어떻게 이런 곳에서 볼을 던지란 말야. 일은 이런 겁니다. 아스트로스구장에 새로운 경기장을 건설을 하면서 좌측펜스가 다른 구장에 비해서 짧은 게 흠입니다. 홈런성은 좌측투수에게는 참으로 불리합니다. 왜 모든 선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선수들이 오른쪽 선수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합니다. 그 후에 이런 일이 생기기 시작을 합니다. 그는 20승 투수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16패 투수로 전락을 합니다. 아스트로스 역사상 처음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부정적인 생각이 운명과 미래를 결정을 합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세상도 아닙니다. 내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미국 [노테데임 대학교]의 철학과 교수인 톰 모리스(Tom Morris)는 성공에는 5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1) 목표를 분명히 하라. (2) 당신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을 찾아라. (3) 집요한 끈기로 자신의 포부를 실천에 옮겨라. (4) 전심전력을 다하라. (5)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새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놀만 빈센 필] 박사는 "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공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과 신앙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톰 모리스 교수나 빈센 필 박사의 얘기들은 결국 자신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16:32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탈무드를 보면 "가장 힘센 자가 누구냐, 자기를 이기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는 먼저 무엇을 이기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1.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절제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잠실에 시무를 하면서 사택에서 바라보면 조금은 잘 꾸며진 집이 있었습니다. 넓은 정원에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고, 여기저기 신경을 써가며 훌륭하게 손질을 해 놓은 나무와 돌등이 보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그 집 담은 철장과 가시 철망으로 씌어져 있었고, 말만한 개가 집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빈틈없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집을 전부 부수는 것 같은 요란한 부부 싸움 소리였습니다. 어찌나 요란한지 집을 전부 두드려 부수는 줄 알았습니다. 비록 집은 철조망에다 사나운 개까지 동원하여 철저하게 지켰지마는 정작 잘 지켜야 될 마음을 지키지 못해 한밤중에 소란을 피워 잠자는 이웃 사람들을 깨워 놓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많지 않은 국제 변호사에 거 괜찮은 벌이를 하는 그런 분이 주인입니다. 그 사람 어느 날은 등산용 칼을 차고서는 부부싸움을 합니다. 낮에 만나면 얼마나 인텔리에 젠틀맨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마음을 지키지를 못해요. 끝에는 헤어집디다.
잠언16장32절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있고, 전파에 주파가 있는 것처럼 감정에도 기복이 있습니다. 마치 날씨처럼 흐렸다. 갰다를 반복합니다.
클라이드 네레모어(Clyde M Narramore) 박사는 "인간의 신체적조건(Physical)과 정서적 조건(Emotional),그리고 영적조건(Spiritual)은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는 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기도하기도 힘들어갑니다. 그 영혼이 탈진상태에 빠지면 정신도, 육체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체, 정서, 영혼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을 내는 것 역시 그 원인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성내기를 잘하는 원인으로서는, (1) 습관성 원인, (2) 정서불안의 원인, (3) 외적 충동에 의한 원인, (4) 물리적 자극에 의한 원인 등이 있습니다. 화를 자꾸 내는 버릇에 익숙해지면 반복해서 화를 내게 됩니다. 심지어 좋은 일도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투나 행동 표현이 화를 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게 됩니다.
성내는 것은 그 원인보다 결과가 더 무섭습니다. 라틴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라틴어로 학술토론하는 학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라틴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가?" 그러자 그는 "알아듣지 못하네. 그렇지만 누가 토론에서 밀리고 있는가 하는 것은 잘 알고 있네"
"어떻게 그것을 안단 말인가?"라고 묻자 그는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밀리는 사람 아니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자가 먼저 화를 내는 법은 없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벌컥벌컥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순간 모든 피가 역류합니다. 그래서 혈압이 상승작용을 하게 됩니다. 화낼 때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는 것은 혈압의 상승작용 때문입니다. 화를 내면 모든 신경조직에 비상이 걸립니다. 위벽이 긴장을 하고, 위액분비가 중단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적 헛점이 생기게 됩니다. 영적 허점은 마귀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밀턴은 "자신을 통제하며 자기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공포를 다스리는 사람은 한 나라의 왕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상담학자인 로렌스 크랩(Lawrence J.Crab)이라는 분은 나쁜 감정을 유발하는 네 가지 원인을 밝혔습니다. 첫째, 나쁜 행동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바르게 행동하라. 둘째, 나쁜 목표가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의 방향을 수정하라. 셋째, 나쁜 생각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생각하라. 넷째, 나쁜 신앙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신령한 생활을 힘쓰라고 했습니다. 내가 올바로 나 자신을 관리하려면 나 자신의 감정을 바로 관리해야 합니다. 로렌스 크랩 박사의 말처럼 나쁜 감정을 올바른 행동과 목표와 생각과 신앙을 가질 때 통제되고 조절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의 고백입니다만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건 화를 내고 난 다음 시간이 지나면 저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일생동안 저 자신이 자신의 감정통제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그 순간을 참고 넘깁니다. 둘째, 감정유발의 책임을 나한테서 찾아냅니다. 셋째, 빨리 그 사건을 잊어버립니다. 넷째, 기도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리는 용사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2.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50대 중년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설사를 하게 되었습니다.병원에 갔더니 검사를 해보자며 위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위에 암세포가 있는 것 같다면 3일후 종합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부터 위가쓰리고, 열이 오르고, 사지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죽도 소화가 안 됩니다. 몇 달 안에 암이 퍼져 죽을 것 같습니다. 지옥 같은 3일이 지난 후 초췌한 모습으로 병원에 찾아가 종합검사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부터 위도 안 쑤시고, 열도 오르지 않고, 기분이 날아갈 듯 하더랍니다. 그것은 마음 곧 정신작용의 결과였습니다. 마음은 그만큼 그 사람의 정서와 감정과 행동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규태씨의 한국인의 건강관리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한국인은 심인설을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원인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는 다섯 가지 요인을 양생오난이라고 하는데 一難은 명성이나 재물을 구하는 마음을 멸할 수 없는 것. 二難은 기쁘고 노여움을 제할 수 없는 것. 三難은 노래와 여색을 거절할 수 없는 것. 四難은 맛있고 살찐 음식을 거절 못하는 것. 五難은 근심걱정을 없앨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양생법(건강법)은 마음을 곱고 편하게 갖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관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개구쟁이 어린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놈, 떼를 쓰는 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놈에다 버스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피우는 놈 해서 버스 안이 이 어린아이들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뚱뚱한 아주머니는 이런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저주하고 팔짝팔짝 뜁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그 부흥사는 도무지 참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금방이라도 짜증을 부릴 지경입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속에 감동이 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그래, 감사해야지. 하나님이시여, 저 여자가 내 아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그는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할 줄 아는 자기 나름의 비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어디서든 우리는 감사의 조건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늘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오늘이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첫 수확의 감사를 드리는 그런 순간입니다.
3.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잠언16장33절을 보면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9:26을 보면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27:1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제아무리 높은 빌딩이라도 그리고 제아무리 최고의 실내장식으로 꾸민 건물이라도 기초가 흔들려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몸이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벌고 정신적으로 튼튼하다고 해도 영혼이 흔들리면 그 인생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유는 영혼이 인간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과로사로 생명을 잃는 사람이 30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주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고도반응의 사람들 - 민감한 반응의 사람들이며, 고독한 사람들이며, 까다로운 성미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느냐인데 그것은 느긋한 마음으로 운동을 즐기고 생활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느긋한 마음은 신앙으로만 가능합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인 케네스 펠레티어박사는 크게 성공한 남녀51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일 많은 것이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고, 다음이 정신이나 신체활동을 제어하는 생체자기제어(Biofeedback)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형상을 마음에 떠올리는 심상화(Visualization)등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사는 방법 역시 기도가 제일이라는 과학적 증명은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포천을 가던 중에 기름이 떨어져서 차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약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주유소를 가려다가 보험사에서 5리터를 준다기에 전화를 걸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다가와서는 왜 그러느냐고 그러기에 사실을 말하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경찰관이 '차가 멎게 되도록 몰랐느냐'고 짓궂게 물어 봅니다. 제가 할말이 없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 같이 이런 일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가끔은 있답니다. 일찍들 기름을 넣어서 가면 좋은데 꼭 저기를 돌면 있을 걸 그러다가 서버리고 만답니다. 그러면서 차가 사람은 아니거든요 꼭 기름을 넣고서야 간다나요. 그러면서 너무 자신을 감각을 믿지를 마시라 그러면서 갑디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감각을 믿음으로 낭패를 보는 순간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떤 때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과거의 실수를 돌이켜 기억해내고는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때로는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아 얼마나 고심했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일 것입니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마음먹고 싶은 대로 마음먹고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계적인 영웅 나폴레옹은 전쟁에 패하여 세인트 헬레네 섬에 정배 가서 여생을 보내다가 임종이 가까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생에 행복한 날들을 손꼽아 헤어보니 겨우 엿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장님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였던 헬렌 켈러 여사는 세상을 떠날 때 "나의 일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을 비교하여 보십시다. 한 사람은 돈, 권력, 명성과 지위도 뛰어난 경륜을 가지고 있던 세기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용기 있고 위대했던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불과 엿새도 행복하지 못했습니까? 그와는 반대로 가진 것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또 말할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 생을 마치는 순간 "내 생애는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이유는 모두 그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목표는 이 땅이 아닙니다. 저 하늘입니다.
신앙은 생명체와 같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하면 살고 활성화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시들고 죽게 됩니다. 내 신앙이 죽지 않고 산 믿음이 되려면 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거나 떠나면 죽습니다. 언제든지 때를 따라 말씀으로 영양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영적 건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만이 건강한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아를 관리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감정과 마음과 신앙을 철저히 관리합시다. 아멘.
교만한 잭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제일로 멍청한 어빙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잭은 언제나 어빙이라는 소년을 골탕을 먹이는 재미를 가지고 사는 아이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그를 놀리는 일이 잘 되어질까를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서 잘난 척 하면서 삽니다. 어느 날 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놀다가는 교만한 잭이 너희들 세상에 바보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려줄까? 그러면서 어빙을 불러서 시험을 합니다. 자 어빙 지금 네 앞에서 보여 지는 일들을 봐라 네가 집는 것은 네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의 십전짜리 다임과 5전짜리 니켈이 있다. 지금 네가 집는 것은 네 것이다. 자 골라라. 한참을 고민을 하던 어빙이란 소년은 니켈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서는 어빙 그것은 네 것이다. 이제가라. 그것을 한참을 지켜보던 어른이 이런 말을 어빙에게 합니다. 어빙 왜 다임을 집어야지 니켈을 집은 거냐? 다임이 더 큰 것을 모르니? 아니요. 다임이 더 큽니다. 그런데. 만약에 제가 다임을 집으면 잭은 다시 그런 놀이를 하지를 않을 겁니다. 그렇게 모은 돈이 일불이 넘었어요. 마음껏 즐기라고 그러세요. 누가 멍청하고 바보인지를 그들은 몰라요. 이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영어 성경 번역에 보면 자비라는 말을 (Gentleness 혹은 Kindness란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善자를 썼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념적이 아니고 실천적인 의미에서 남을 대할 때 부드럽게 대하고, 인자하게 대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에도 "긍휼히 여기 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은 자기를 희생시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받고 남에게는 주는 것이 기독교 윤리에 대원칙이고 받고 주는 일이 잘되면 잘 될수록 우리의 생활은 더욱 더 건전한 생활을 될 것입니다.
저는 영국에 빅토리아 여왕이 나이팅게일 여사에게 주는 기념 훈장 속에 헬라 에 유명한 웨시야스이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긍휼을 행하는 일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서만 아니라 말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돈으로도 말로도 할 수 없을 때는 눈물로 할 수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복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비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특별하게 불쌍한 환경에 있는 이들을 대해서 하는 태도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인과 동시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자비를 강조해서 말한 건 우리 기독교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자비를 강조했습니다. 유교에서도 자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양해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성령들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자비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진리는 하나의 자연계시에 의한 것으로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진 것입니다.
미국 캔터키감리교회 담임목사였던 데이빗 씨맨즈(David Seamands)박사는 상처받은 자신의 감정을 치료받기 위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1)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2) 고침받기를 원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3) 어떤 문제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4) 문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5)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6)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 바를 성령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씨맨즈 박사 역시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자신이며 기도가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참회의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이 다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죄인임을 알면서도 나왔고 정결함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유함이 주께 있고 주의 사랑이 무한함을 알고 나왔습니다. 구제불능의 사람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도저히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그런 사람임을 알면서도 주께서 부르셨고, 이렇게 사랑해주신 줄 믿기에 감히 주님 앞에 나와 오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습니다. 은혜의 보답도 없었고 감사도 없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주의 은혜를 감사하며 감격을 하지마는 세상에 나가서 살면서 은혜를 잊어버리고 전혀 모르는 자인 것처럼 원망과 불평에 살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했습니다. 목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때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선한 목적을 이룬다고 하면서도 불의한 방법을 사용을 함으로 하나님 앞에 욕을 돌리며 산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목적도 방법도 잘못되고 결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바랐던 어리석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인 것처럼 원망과 불평에 살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생각지도 않았고, 사회를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라와 민족을 생각을 한 것도 아닙니다. 나만을 생각을 했습니다. 내 가정만을 가족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을 주께 고백을 드리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잘못의 원인이 나 에게 있건만 이 원인을 남에게 돌리면서 사회를 원망을 하면서 이웃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려고 산 우리의 위선을 교만함을 주님 자복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죄를 생각하며 묵묵히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뇨?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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