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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예화 모음 19편

by 【고동엽】 2017.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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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사 빛

행성 중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은 태양뿐입니다.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도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하는 빛입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찬란한 별빛도 반사 빛일 뿐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빛을 따라 찾아온 곳이 바로 예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굿간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빛을 발하십니다. 은혜의 빛입니다. 인간은 은혜의 빛을 복으로 받고, 받은 복을 이웃들에게 전합니다. 반사 빛입니다. 반사체가 아닌 행성이 무의미한 존재인 것과 같습니다. 이웃 사랑과 봉사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에 감사하여 반사하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어야 그 분의 빛을 반사합니다. 어둠에 묻혀버린 빛은 더 이상 빛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어둠의 때에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하나님이 믿어주는 사람에게만 복의 빛을 주십니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2.빛을 전하는 신문

앞서가며 사는 사람, 따라가며 사는 사람이 있다. 비록 같은 시대, 같은 환경 속에 산다 해도 이들의 삶이 같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삶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가며 사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다. 반면에 따라가며 사는 사람은 소극적이요 미온적이다. 그러므로 같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과 행동이 남보다 앞선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런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배척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이들로 인해 역사는 발전하고 시대는 새롭게 변모한다. 선각자는 그래서 위대하다. 말과 영광 받는 일에는 앞서면서도 희생과 봉사에는 뒷걸음 치는 자들이 있다. 약은 꾀는 자신을 망칠 뿐이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요셉처럼 살아야한다. 19년전 이단과 불신앙의 시대상황으로부터 한국교회를 지키려고 창간된 국민일보의 선각자적 행동은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3.영혼을 비추는 햇빛

사람들은 대부분 화창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지고 하늘이 흐려지면 우울해집니다. 관광업계에서는 이 사실을 이용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날씨가 좋은 곳으로 끌어들여 사업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즐기고 그 많은 혜택을 즐기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기후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들 내면의 세계는 날씨처럼 변덕스럽게 될 것입니다.
나는 십대에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나는 그 날 날씨를 점검하곤 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행복했고, 날씨가 음침하면 나도 우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나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나의 삶 속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나는 다음날 아침 그 날의 날씨를 점검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날씨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해”가 나의 마음에 떠올라(말4:2) 나의 변덕스럽기만 하던 행복의 원천을 예수님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개인적으로 어두운 시간도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나에게 변함 없는 “해와 방패”가 되셨습니다(시84:11). 나는 지금도 화창한 날을 좋아하지만 더 이상 “해를 경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제는 밖의 날씨가 어떻든 내 안에서 밝게 비추이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경배하는 사람입니까?

 

 

4.빛 가운데 있는 이유

아프리카에서 충성스럽게 헌신하던 한 선교사가 선교의 사명을 마치고 죽었다. 이 선교사의 무덤에 그의 전도를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비문을 썼다.
“당신이 올 때는 어두웠으나 당신이 떠나간 지금 우리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 빛이 되기 위해선 자신을 스스로 태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5.모기의 생리

모기는 어둠을 좋아해 낮에는 숨어 지내다 주로 밤에 활동합니다. 불을 켜면 사라지고 불을 끄면 공격을 개시하는 것이 모기의 생리입니다. 사람도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밝은 곳을 피해 어둡고 침침한 곳을 찾아드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카페같은 곳을 찾으면 침침하게 꾸며 놓은 곳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정국 현안인 정치자금 문제도 모두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납치 도박 불법 탈선 사기 등의 범죄도 대부분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문제들은 낮보다 밤에 이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모두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낮에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밝음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낮에와 같이 단정하라”(롬 13:13)고 했습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6.생명의 빛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역임하고 현재 세계 교도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는 찰스 콜슨이 잠비아의 어떤 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바짝 마른 죄수들이 허리만 감춘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잠을 잘 공간이 없어서 교대로 잔다고 했다. 그들은 밤에 한 양동이의 물을 주면 그것을 마신 후 그 양동이에 배설한다고 했다.
콜슨은 잠비아 교도선교회 회장 라잔의 안내로 교도소 본부 건물 안의 가장 감시가 심한 구역에 들어갔다. 라잔이 “들어보세요”하고 귓속말을 했다. “저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간수들이 육중한 대문들을 열어주어서 들어가보니 작은 감방들로 둘러싸인 먼지 나는 운동장에서 60∼70명이 죄수들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뒤의 흰색 벽에는 숯으로 그려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상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에서 생명의 빛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시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작은 빛들이 된다. 빛은 어둠 속에서 그 존재 가치를 발견한다. 빛의 본질은 어두움을 탓하지 않고 어두움을 밝히는 데 있다.
어떤 직장 여성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동료들 사이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너무 괴로워서 신앙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으로 목사님에게 찾아갔다. 상담하는 중에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우리는 어디에 등불을 둡니까?” 그녀가 답변을 하지 못해서 우물거리고 있는데 목사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는 어두운 곳에 등불을 둡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성을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직장에 배치하신 것은 그렇게 어두운 곳에 생명의 빛을 비추라고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몇주후 다른 여성들과 함께 목사님을 찾았다. “목사님, 이 분은 오늘 밤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분은 우리 직장에서 13번째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신 분입니다.” 그녀가 어두운 세상을 탓하는 않고 생명의 빛을 발하는 동안 그 직장은 그만큼 밝아진 것이다. 우리도 그녀처럼 될 수는 없을까?
/권성수 <대구 동싱교회>

 

 

7.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1946년 성탄절 전야에 낡은 2톤 트럭이 웨스 버지니아의 산간지방을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는 탄광에서 석탄을 나르는 이였다. 이제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 쪽으로 난 길로 들어섰을 때 그의 늙은 아버지가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10Km쯤 떨어진 산 속에 사는 한 부인 이야기를 하였다. 몇 달 전에 남편이 죽었는데 사는 게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돕고 사는 전통으로 광부들을 상자 몇 개에 먹을 것과 선물들을 넣었다. 그리고 석탄을 몇 부대 만들었다. 이것을 그 집에 전해주고 오라는 것이다. 그는 짜증이 났다. 몸은 피로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것도 성탄절 전야에 이미 늦었는데 기다리는 집안 식구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이 성탄이 아닌가!"
그는 짐들을 실었다. 그 집을 찾아 산 속을 헤맸다. 한참 가니 비포장 도로가 꼬불꼬불 언덕으로 이어졌다. 더 올라갈 수 없어 그는 차에서 내려 2킬로쯤 눈보라 속을 걸어 올라가 오두막집에 도착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부인과 어린이들 외엔 차도 수레도 없었다. 그는 다시 차로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후진으로 그 언덕을 밀어 올라갔다. 그는 물었다. "하나님 내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 겁니까?" 그런데 트럭에 눈이 달린 듯 했다. 낡은 트럭이 그 좁고 꼬불거리는 길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그 오두막까지 올라간 것이다. 현관에는 그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4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는 상자들을 내려놓고 석탄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가냘픈 몸으로 상자를 나르고 운전수를 오두막 안으로 맞이하였다. 모두들 행복했다. 어두운 길을 다시 내려가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트럭을 몰고 저 산 위를 후진으로 올라가다니! 이 눈 속에, 어디서 도움이 왔던가!"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이 험한 세상에 오셔서 자신에게 성탄의 선물을 주신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그 하나님의 헌신이 되어서 그 어두운 길을 올라갔던 것을 알게 되었다. 

 

 

8.빛의 열매

성경: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가톨릭 신부가 유교인을 개종시켰습니다. 신부는 "당신이 해야 할 모든 것은`나는 유대교인이었으나 지금은 가톨릭교인이다'라고 세 번 말하는 일입니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실행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의 신앙을 체크해 보기 위해서 일부러 금요일을 택하여 심방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닭고기를 튀기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금요일에는 닭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텐데요."
"알구 말구요. 신부님. 저는 프라이 팬에 닭고기를 넣고 물을 붓고는 `이전에 나는 닭고기였으나 지금은 생선이다'라고 말했는걸요." 그럴듯한 변명이지만 거짓된 것입니다. 오늘도 진실되게 빛을 비추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9.빛의 자녀들

성경: 엡5:8~14

하나님의 자녀는 '빛의 자녀들’이다.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이나 진실함’에 있다. '착함’이란 관대한 정신을 말한다. 즉 개인 윤리적인 차원에서 평가되는 선행,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자선행동을 말한다. '의로움’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 정의 차원, 즉 공적인 관계에서 정의로운 생활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진실함’이란 거짓과 위선에 반대되는 즉 진심과 진정을 뜻한다. 나는 과연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 기도 :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저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을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만큼 성장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명절을 맞아 빛의 자녀다운 모습을 가족과 이웃에게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0.빛을 나누라

성경: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12:5)

힘은 하나될 때에 강하게 역사합니다. 힘의 세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됨(Unity), 둘째, 조화(Harmony), 셋째, 협력(Cooperation)입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약 2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2만 개가 모여서 하나의 자동차가 됩니다. 자동차 한 대가 제대로 되려면 그 부속품 하나하나가 전부 제구실을 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말썽을 부리면 안 됩니다. 어느 것 하나도 빼 놓고 달릴 수 없습니다. 2만 개의 부속이 똑같이 힘을 협력해야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작은 빛도 하나되고, 모아지면 큰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도, 당신의 빛도 함께 나눕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누구나 자기 안에 빛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우리가 서로 팀을 이뤄 협력한다면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은 더욱 더 빛날 것입니다. 그분의 반짝임에 나의 반짝임과 당신의 반짝임이 합쳐진다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강한 빛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생명의 빛을 가지고 있지만 이 빛은 홀로일 때 약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연합하고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사랑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의 빛이 하나 둘 모여 강한 빛을 이룰 때 어둠은 불식간에 사라지고 우리는 빛의 자녀라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빛을 발하고 더욱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한태완 목사 칼럼 중에서

 

 

11.작은 성냥불

'켈러'신부가 로스엔젤레스 집회에서 사회 볼 때의 일이다. 미리 약속한 대로 신호를 보내자 갑자기 전기 스위치를 내려서 스타디움이 깜깜해졌다. 이때 '켈러'신부는 한 개의 성냥을 켜 들고 십만 명이나 되는 회중에게 모두 성냥을 켜서들어 보도록 하였다. 모두들 그렇게 하자 원형의 스타디움을 깜박이는 작은 성냥불러 가득 차 대낮처럼 환히 밝아졌다. 이처럼 우리 각자의 불빛은 작을지라도 모든 신자들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할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14∼15)

 

 

12.어둠에서 빛으로

캐나다의 케이프 브레톤 섬에는 엄청나게 큰 탄광이 하나 있습니다. 이 탄광에서는 작업을 위해서 여러 마리의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들을 한 번 깊고 어두운 탄광 속으로 들여보내면 다시는 탄광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미 오랜 어두움에 적응되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말들은 바로 실명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탄광 속으로 들어간 말은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계속 어두운 땅속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탄광 속에 빠져 어둠에 적응하는 순간, 우리의 생명도 끝난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빛이 되시는 그 분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정삼지 목사 / 목동 제자교회 >

 

 

13.등불켜고 준비하는 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나 떨어진 먼 시골로 중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다.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다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도록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환자의 집에 이르는 동안 모든 길목의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고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도와주는 길목의 등불이어야 합니다. 

 

 

14.등불

헬라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빛을 보고 부딛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고 한참을 가는데 어떤 사람과 그만 "탁!"하고 부딛치고 말았다. 맹인은 화를 내었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그러나 부딛친 사람이 손으로 맹인이 손에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자네가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졌네."
등불을 들고는 있지만 이미 꺼진 줄 모르고 들고 다닌다. 꺼진 것을 모르고사니까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막 4:21)

 

 

15.밝은 등불

서울서 안양을 지나 수원 가는 길에 의왕시가 있다. 수도권은 포도송이처럼 연결되어 야간에는 행정구역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의왕시는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건널목이 다른 도시보다 환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건널목 교통사고는 비 오는 날 밤이 높다는 통계다. 우산을 들고 건너는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한 주의가 소홀해지기 쉬우며 운전자는 가시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의왕시는 건널목 사고를 줄이기 위해 밝은 조명을 달아 운전자와 건널목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자상한 배려가 시민을 위한 행정이다.행정은 시민들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욕구(Needs)를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이 바로 시민을 위한 행정이다.지역사회는 주민이 서로 엮어져서 사는 공간이라 요구도 다양하다.주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실감 있는 감동의 행정이 필요하다. 현실감 있는 행정이 생명을 지키는 사랑의 등불로 태어났다.
성경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하셨듯이 현란한 불빛으로 장식하는 것보다 시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등불이 더 값있는 것이 아닐까.
/정종기 교수

 

 

16.노인의 등불

어느 날, 테레사 수녀는 한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곳은 집이라기보다 움막이라고 해야 좋을 그런 형편없는 곳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톤 먼지투성이에다 이불이나 옷가지들은 몇 년 전에 빨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런 헛간 같은 방에서 노인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가 노인에게 말했다.
"제가 방을 치워 드리죠."
노인은 대답도 하지 않은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바닥을 쓸어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옷가지는 빨아 널고, 더러운 곳은 모두 소독했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 테레사는 구석에서 조그만 등을 하나 발견했다. 먼지에 뒤덮인 낡은 것이었다.
"이 등은 뭐죠?"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오."
테레사는 등을 닦으면서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별로 켤 일이 없는 모양이죠?"
"몇 년 동안 한 번도 켜지 않았소. 누가 죽어 가는 늙은이를 만나러 오겠소."
노인은 가족도 없이, 또 찾아오는 사람도 하나없이 그렇게 쓸쓸히 살아왔던 것이다. 노인은 먹을것 보다 사람이 더 그리운듯 했다. 이윽고 테레사가 말했다.
'제가 자주 오겠어요. 그러면 저를 위해 등불을 켜주시겠죠?"
"물론 켜고말고. 오기만 한다면....."
그 이후, 테레사는 자주 그 노인의 집에 가 봉사활동을 했다. 자신이 가지 못할때는 동료 수녀를 대신 보냈다. 이제 노인의 방엔 거의 매일 등불이 켜져 있었다. 노인은 더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늘 찾아와 집안일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테레사 수녀와 동료 수녀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로부터 2년 후 노인은 편안히 죽었다. 노인은 죽으면서, 마침곁에 있던 어떤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테레사 수녀에게 전해주구려. 테레사 수녀는 내 인생에 등불을 켜준 사람이라고....."
누군가의 등불이 되어준다는건 참으로 의미있는 일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인생이지만, 보다 더 값지고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길에 설수 있다면.. 나로하여금 작은 초처럼만이라도 주위가 환해질수 있다면.. 하나님 때문에 우리네 인생길은 밝을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어느곳, 어떤자리에서든지 등불과 같은 인생길이 되실길 바라네요.

 

 

17.빛으로 살게 하소서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가 사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을 두니까 밤에 지나가는 사람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었습니다. 만약 길거리에 가로등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캄캄하고 어둡겠습니까? 세계적으로 가로등이 생기게 된 것은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집 밖에 등불을 둠으로써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 것입니다. 

 

 

18.세상의 빛

40년 전 링글린 브러더즈 서커스단이 뉴욕 공연을 할 때였습니다. 공연중 갑자기 정전이 됐습니다. 1분 간이었지만 관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무대에서는 조련사가 호랑이 네 마리의 재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철창 속이니까 관중에게는 위험이 없었으나 캄캄한 데서 조련사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하고 캄캄한데 무대에서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와 호랑이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불빛이 다시 켜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뒤에 기자회견이 열리자 조련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들은 나를 잘 봅니다. 내가 호랑이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조련사가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를 여전히 제압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원수 마귀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려면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랑의 빛, 진리의 빛, 평화의 빛, 생명의 빛을 나타날 때 자랑스런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 본향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5:8-11)하였고,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 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5-7)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한태완 목사 칼럼 중에서

 

 

19.세상의 빛

본문: 시편 82 장 3 절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공평한 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고아를 웃기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함께 웃을 것이다’라는 잠언을 마음에 되뇌이곤 합니다. 가장 힘 없고 불행한 사람인 고아가 웃는다면 하늘과 땅, 온 세상이 웃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힘 없고 불행한 사람까지도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에는 어느덧 행복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 아무리 밝게 만들려 하여도 밝아질 수 없습니다. 어두움은 모이면 모일수록 더 어두워질 뿐입니다.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빛입니다. 세상에는 빛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빛이 비추어질 때 사회의 어두운 부분인 불의, 불공평, 잔인함, 착취 등이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 기도: 가난한 자와 고아들의 얼굴에 웃음꽃 피도록,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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