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비판하지 않는 눈
우리 인생은 염려가 아니면 비판입니다. 약한 자는 염려하고, 강한 자는 비판합니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구체적인 적용이 우리가 공동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에 들어가면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사람마다 믿음의 종류가 다르고 분량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없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문제가 있는데 교회 안에, 목장 안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찰스 스윈돌은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일곱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
둘째, 우리는 그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셋째, 우리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넷째, 그 상황에 있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섯째,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여섯째, 우리에게 편견이 있고,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일곱째, 우리는 불완전하고 일관성이 없다.
/ 김양재
2.자신의 들보를 보라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하루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큰 소리가 들리기에 톨스토이가 나가서 보니까. 종 둘이서 서로에게 별명을 붙인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하였던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좀 훌쪽하게 생긴 종이 뚱뚱하게 생긴 종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곧 뚱뚱하게 생긴 종이 홀쪽하게 생긴 종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곰, 원숭이하면서 서로 티격티격 언쟁을 합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서로의 불화를 중재시켜 갔습니다. 그 홀쪽하게생 긴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가 저 사람들 곰이라 불렀지, 너는 저 사람이 곰이기 때문에 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다. 네 마음 속에 곰과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을 곰이라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곰이란 별명을 가진 뚱뚱한 종에게는 "너가 저 사람을 원숭이라고 불렀지, 저 사람이 원숭이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네겐 원숭이처럼 보여진 게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무엇인가 던져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세계로 더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사람을 보느냐에 따라서 헐뜯을수도 있고 그를 격려할 수도 있고, 그를 일깨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칠면조의 세대
사랑은 인간 관계에서 발견된 상대방의 약점이나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인내하는 교제를 뜻한다. 사랑은 모든 성가심과 고통을 묵묵히 참으며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에게 보복하거나 타인의 잘못을 폭로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은 자신에게 해를 입히거나 죄지은 자를 도리어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어떤 설교가는 우리의 세대를 “칠면조의 세대”라고 고발하였다. 칠면조는 그들 중 하나가 등에 상처를 입으면 한 우리에 있는 다른 모든 칠면조들이 덤벼들어 그 상처에서 피가 나 그가 쓰러질 때까지 쪼아댄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남의 허물을 대해서 수군수군하거나 남의 허물에 대해서 수군수군하거나 남의 허물에 더욱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가정생활에서 모든 식구들이 서로 허물을 덮어 주고,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끼리도 깊은 이해 가운데 서로 허물을 덮어 주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4.욕
욕은 동물들을 죽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먹이를 주면서 쓰다듬어주고 예뻐한 쥐는 아주 튼튼하게 자라지만 먹이를 주면서 욕하고 때려준 쥐는 털이 거칠어지고 빨리 죽었다고 합니다.
나무도 욕을 먹으면 빨리 죽는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공원에 나무 12그루를 심었습니다.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주려고 의견을 모았는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붙이자고 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나무는 잘 자랐는데 유독 가룟 유다 나무만은 시들어져 빨리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나무 앞에만 오면 발길질을 하고 못 생겼다고 욕을 해댔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어느 과학자가 쓴 ‘물로부터의 전언’이란 책의 내용도 흥미롭습니다. 두 컵의 물을 떠서 한 컵엔 ‘천사’라고 썼고 다른 한 컵엔 ‘악마’라고 썼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악마라고 써붙인 컵의 물은 시커멓게 썩고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욕은 이렇게 모든 것을 망치게 합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5.가방을 바로 메시오
한 마을에 남의 장점은 보지 못하면서 자기의 장점은 떠벌리고, 자기의 단점은 감추고 남의 단점만 드러내며 나무라고 흉보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점점 따돌림을 받다가 나중에는 외톨이가 됐습니다. 그는 홀로 있는 시간이 무료해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과 대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보니 자신의 어깨에 앞뒤로 2개의 가방이 메어져 있었습니다. 가방을 열어보니 앞의 가방에는 자신의 장점과 남의 단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의 가방에는 자신의 단점과 남의 장점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장점과 남의 단점은 앞에 두고서 자기를 내세우며 남을 비판하고, 자신의 큰 단점은 남의 장점과 함께 뒤에다 둔 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지적입니다. 형제여! 행복한 이웃으로 살아가려거든 자신의 단점과 남의 장점을 담는 가방을 앞에 메십시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6. 험담은 살인이다
한 수도사가 젊은 과부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수도사를 비난했다. 얼마 후, 그 과부가 세상을 떠났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수도사가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수도사를 찾아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수도사는 그들에게 닭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닭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다시 그 닭털을 주워오라고 하였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닭털을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다. 수도사는 여인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잘못을 용서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험담하는 것은 살인보다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친다. 험담을 하는 자신과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과 험담의 대상이다.
/김학중 목사(새안산교회)
7.사모님의 상처
어느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심방을 가서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고 했습니다. 사모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중에 어떤 집에 갔는데 참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어쩜 그렇게 수를 잘 놓느냐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와전됐습니다. 사모님이 욕심이 많아 그렇게 어려운 집에 가서도 식탁보를 탐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말은 아픈 가슴을 싸맬 수도 있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8.비판과 토론의 차이
오래 전 뛰어난 젊은이들이 미국 중서부의 어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들은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문학 비판 클럽을 조직하고 서로의 작품을 읽고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모임의 명칭처럼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을 가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가혹한 비판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학적 재능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임은 전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다니던 그 학교에는 또 다른 성격의 문학 모임이 있었습니다. 역시 서로의 작품을 주제로 모임을 가졌지만 진행방식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읽되 긍정하며 격려했습니다. 따라서 모임의 분위기는 언제나 따뜻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문학 토론 클럽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대학의 교무 당국이 졸업생들의 경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문학적 재능이 누구보다 탁월한 학생들로 구성되었던 모임의 출신 가운데는 변변한 작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했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인정하던 토론 클럽 출신 가운데는 여섯 명의 뛰어난 작가들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문학적으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 유재덕
9.그의 위치에 나를 놓고
성서 주석가 벵겔은 “명확한 지식과 사랑과 필요가 없이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명확한 지식이 없이 사실의 겉만 슬쩍 보고 또는 그 사람의 겉만 보고 비판했다가는 그것이 옳은 비판이 되지를 못합니다. 힐렐은 “네가 그 사람의 입장에 처하기까지 그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내촌 선생은 “사람 하나를 알려면 인류 전체의 역사를 다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처럼 함부로 심판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판단을 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대학에서 교수 한 분이 강의 시간에 어떤 일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거수는 보통 오른손을 드는 것이 규칙으로 되어 있는데, 한 학생이 반대로 왼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는 이것이 자기에 대한 야유라고 추측하고는 그 학생을 향해서 오른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왼손을 들고 있어서 화가 나서 그 곁으로 걸어갔는데, 가서 보니 그 학생은 오른손이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말할 수 없이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전쟁 중에 적탄을 맞아 없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교수는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서 명확한 지식 없이 함부로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른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남의 위치에 나를 놓고 해야 합니다. 내 위치에서 남을 비판하면 잘못 비판하기 쉬운 것입니다.
/ 김기현
10.먼저 들보를 빼어라
성경: 마7:5
"외식(外飾)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미국 어떤 마을의 제빵업자가 가까운 농장에서 버터를 사오곤 했는데 버터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온 버터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농장의 버터 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화가 치민 제빵업자는 고발하였습니다. 그 버터공장 주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집에서 어떤 저울을 사용하고 있소?" 라고 하자
"우리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터의 무게를 안다는 거요?"
"네, 그것은 간단하지요. 1파운드 짜리 빵의 무게와 같게 만듭니다."
"그럼 그 1파운드 짜리 빵은 어디에서 사오는거요?"
라고 하자 그 낙농공장 주인은 고소인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저 제빵업자 한테서 사다 먹습니다."
결국 버터의 양이 줄어든 이유는 제빵업자의 빵이 줄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세상이 잘못됨이 나 때문임이 아닌지? 교회에 말썽이 생기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가? 교회의 어떤 부서가 잘 안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는지? 가정에 화평이 없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나부터 바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 자신을 먼저 점검한 후에 밝히 보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억울한 비방에도
본문: 시편 57 장 3 절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57:3)
어느 목사가 자신을 매장시키고자 유언비어를 만들어 유포하며 모함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하루는 기도원에 들어가 울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억울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없는 말을 만들어 저를 비난할 수가 있습니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음 속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 목사님은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난 뒤에 ‘그렇지. 세상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율법적으로 생각하며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면 마음 속에 평안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는 비난을 받는 것처럼 당황스럽고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비방을 막아 주시고 그 상황에서 나를 건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상황에서조차도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수가 아니라 평화를 통해 승리를 얻기 때문입니다.
* 기도: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12.비난의 힘
모간 블레이즈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다. 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국가, 그리고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더럽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비난이다.”
현대 사회의 비난은 말 또는 글을 넘어서 인터넷으로, 방송으로 퍼져 나갑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비난을 사용하고, 자신이 내뱉은 비난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잊지 말아야 할 책임이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무책임하게 내뱉은 비난의 한마디, 그것은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 | 남서울은혜교회
13.칭찬과 비난
사람들은 관심이 있다는 표시를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합니다. 칭찬도 비난도 없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칭찬보다는 비난하는 방법으로 관심을 표시하는데 익숙합니다.
미국의 대통령과 그 가족들, 영국 황실의 자손들, 유명 연예인들 스포츠 스타들... 심심하면 발가벗겨지고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유교적인 전통이 강한 동양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잘 안되지요. 그러나 어느 틈에 우리도 국경이 없는 인터넷 덕분에 서구의 비난으로 관심을 표현하는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자 왈 "어리석은 자가 도(道)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그가 웃지 않으면 도라 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비난받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을 따져보면 보통 사람들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하며 포기하고 있을 때 그 나무를 오른 특이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아프간 사건으로 지금은 욕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침체되었던 기독교가 다시 서서히 살아날 것입니다.
ⓒ최용우
14.고약한 친구
어떤 철학자에게 성품이 고약한 친구가 있었는데 철학자를 만나자 마자 다짜고짜 한참 비난과 욕설을 퍼부어댔다죠.
사람들은 철학자가 무지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맙네 친구!
자네 같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면 아마 나는 수치스러워 죽었을 것이네. 자네가 이렇게 욕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사람들은 칭찬보다는 비난하고 흉보는데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죄 보다는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데 익숙하신 분이십니다. 누구의 말을 먼저 듣는 것이 나에게 유리 한가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두말하면 입만 아프겠지요?
/최용우
15.비판 받을 때
한 목사는 자기가 담임하게 된 교회를 대대적으로 변화시켰고, 이로 인해 그 교회는 90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배도 2부로 드리게 되었고, 더 많은 교실과 예배공간 확충을 위해 교회를 신축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많은 비판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목사에 대한 비판은 대개 "사람들이 그러는데…"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이 목사는 의기소침하게 되었고, 사임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자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관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비판이 너무 혹독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교인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느꼈다.
그는 고민에 사로잡힌 채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마음의 평안과 주님의 인도를 구했다. 후에 그는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해주었다. "기도하면서 나는 나를 비난하는 가정이 겨우 네 가정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담임하기 전 교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변화를 원치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나에 대해서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비판으로 인해 낙심하기 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
0 그 비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0 과연 모두가 내게 적대적인가?
0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단지 몇 명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 0 그 비판에는 조금이라도 진실이 담겨 있는가? ·
0 비판으로부터 배울 만한 것이 과연 있는가?
/ 마이클 유셉
16.세 명의 자매
옛날에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제각기 한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큰딸은 게으름뱅이이고, 둘째딸은 훔치는 버릇이 있고, 셋째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편, 아들 삼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결혼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자기 딸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것을 고쳐가겠다고 장담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느날 친정 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다. 큰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고, 둘째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셋째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남녀 관계를 꼬치꼬치 묻기 때문에 귀찮다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는 자기 셋째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셋째딸은 시아버지까지도 헐뜯고 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http://www.je333.com)
17.비판하지 말라
어떤 장님이 밤길을 나서기 전에 등불을 마련하여 길을 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길은 보지 못해도 다른 사람이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걸어가다 어떤 사람과 정면을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여보시오, 눈좀 똑바로 뜨고 다니시오!" 장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길에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데 왜 당신은 눈을 뜨고 다니지 못하시오!" 화가난 나그네도 소리쳤습니다.
"나 소경이지만 이 등불이 보이지 않소?" 장님은 화가 치솟듯 다그쳤습니다.
"당신 등불은 꺼졌구료!" 자기 등불이 꺼진 것을 모르고 상대방을 탓한 것입니다. 장님이니 자기 등불이 도중에 꺼진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준하게 되어 고집으로만 밀고 나가는 경우가 있고 비록 그리스도인이라도 그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서 있지 못하고 속이 비어있을 때에는 권위와 고집 그리고 말로 자기 생각만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혹시 내 등불이 꺼져있다면 속히 확인하고 다시 불을 붙여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오늘도 자신을 먼저 볼 줄 아는 지혜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8.비판하지 말라
미국 영화감독 존 휴스턴의 일화이다. 휴스턴은 자녀들에게 친구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을 당부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에 딸 안젤리카가 식탁에서 “난 반 고흐의 그림은 질색이에요,아빠!”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휴스턴이 말했다.
“고흐의 그림이 싫다고? 그럼 네가 알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몇 점이나 가지고 있고 왜 싫은지 이유를 말해보거라” 딸이 우물쭈물할 때 휴스턴은 “상대방을 자세히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 주님도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탈무드는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그리고 화제가 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내가 남을 비판하면 나에게는 열배, 스무배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장자옥 목사(간석제일성결교회)
19.비판하지 말라
성경: 마 7: 1- 5
스페인에 알폰소 12세라 불리워지는 선한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궁전의 시동들이 하나님께 식사 기도를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왕은 시동 모두를 향연에 초대하였습니다. 식탁은 모든 산해진미로 가득 차 있었으며 소년들은 매우 맛있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어느 누구도 식사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향연 중에 더럽고 누추한 옷을 입은 거지 하나가 들어 왔습니다. 그는 왕의 식탁에 앉아 맘껏 음식을 먹고 마셨습니다. 처음에 시동들은 경악했으며 왕이 곧 그를 명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알폰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끝낸 거지는 감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갔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은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야비하고 천한 사람인가" 그들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을 조용히 하도록 명하며, 뚜렷하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소년들이여, 너희들은 거지보다 더 뻔뻔스럽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매일 너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그에게 은총을 바라거나 감사를 표현하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아리는 것은 도로 나도 헤아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감사 생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고 나 자신이 감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다른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지 말고 자신을 점검해 보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비판하지 말라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습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는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 총장에게 악수도 받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축하객은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다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족을 하고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보이는 대로 비난했던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을 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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