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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예화 모음 40편

by 【고동엽】 201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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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깨끗한 공기로 강물을 정화시킨다.

스톡홀름 부근에 있는 한 강물이 대단히 오염되었었는데 압축 공기 기술로 정화되어 물이 본래의 질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방법을 산소가 거의 없는 호수의 깊은 물을 압축기로 빨아들여 압축기 속의 공기와 섞어 새로운 산소를 만들어 다시 호수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호수의 기온에 아무 변화 없이 할 수 있으며 수년간 오염되어 있던 호수바닥을 정화하여 신선하게 통풍되어 산소가 풍부한 맑은 호수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물고기와 수중식물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오염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한 것을 발견 하여 점진적으로 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컴퓨터선교회

 

 

2.내부(內部)의 문제

자신의 신변안전에 남달리 신경을 쓴 인물이 있다.과태말라 대통령 알폰소라는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중심으로 반경 2KM안에 있는 건물은 무조건 관저ㅉ곡으로 난 창문을폐쇄시켜 버린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니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극성이 오죽했겠는가? 그가 취한 몇 가지 조처를 살펴보자. 친위대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무기를 휴대한 채 자기 관저에 출입하는 것을 급했다. 주치의는 하루 세 번씩 그를 검진했고 어떤 물건이라도 친위대의 엄격한 사전 검사 없이는 절대로 관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음식물은 검사관이 시식한 다음이라야 그의 식탁에 오를 수 있었다. 대단한 극성이 아니겠는가? 이상과 같은 조처만가지고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당시 150만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하고 대통령 전용의 방탄차를 구입했다. 이 차는 기관포로 습격을 당해도 끄떡없도록 설계된 것인데 경호용으로  완벽한 것으로 알려진 차이다. 그런데 이 방탄차를 인수하고 한껏 기분이 좋았던 그 다우  날 평소에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친위대원의 총탄을 맞고 그렇게 가기 싫었던 지옥으로 급행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제 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 또한 자신의 신변 보호에 어지간히 신경 쓴 사람이다. 청와대 경호실 직속으로 3군 참모총장이 들어 있었다는 편제 하나만으로도 그간의 사정을 집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긴변 안전과 정권의 안전 보장을 위하여 세워 두었던 김재규에게 총탄을 맞고 최후를 고하고 말았다.
진시황을 생각해 보자.
그는 중국을 통일한 다음자기 나라를 영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하여 문자를 통일했고 쓸데없는 공론을 없앤다는 생각으로 분서갱유라는 야만적인 정책까지 실시한 사람이다. 그리고 국가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제이로 꼽히는 만리 장성을 쌓기가지 했다.
그러나 자신은 49세라는 한참의 나이에 과로로 쓰러져 죽었고그의 나라는 신임하던 환관 조고와 사랑하고 아꼈던 아들 2세 황제인 호해의 난정으로 그가 간 지 3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망치는 요인은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가 망한 것은 외적 때문이 아니고 그들의 사치와 방탕, 허영과 무절제, 음란과 호사,게으름과 무빌서한 생활습성 등 로마정신의 부패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상의 모든 사례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인간들의 근본 문제는 나라안에 있고, "나"라는 개체의 문제 또한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적에게 강토를 빼앗긴 덴마크의 선각자들이 밖에서 잃는 것을 안에서 찾자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고 오늘의 덴마크를 건설했다는 것은 형명하기 작이 없는 일이아니겠는가?
우리 기독교는 재물,권력 도는 사회적인 여건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기독교는 그다위 외적인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 즉 자신의 내면세계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 예수님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노예들에게 인권쟁취를 위한 항쟁을 권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향항여 회개하라고 외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3.남을 변화시키는 삶

나는 우리 교회에 다니는 어떤 사람의 남편으로부터 자기를 방문하거나 교회에 참석하라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목사가 자기를 방문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도 자기를 방문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요청을 존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일 년 후 그 사람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찬송을 마친 후 그는 앞으로 나와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교회 식구들과 교제를 나누는 삶으로 되돌아왔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그의 헌신된 그리스도인 아내의 거룩한 삶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떤 설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잔소리하거나 논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 기도했고 그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그 가정에서 소금이었고 그녀의 삶은 남편으로 하여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에는 충실하게 다니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일요일, 그는 복도를 내려와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의 설교나 찬양 혹은 교회 가족들의 심방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중 속에 있는 한 젊은 부부를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최근 무척 힘든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그들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이 어려운 때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았습니다. 그후 나도 그들이 소유한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부부가 그의 삶에 소금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의 축복을 갈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막습니다. 소금은 삶에 맛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소금은 사람들을 목마르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4.변화된 기도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때때로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 관계의 위기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와 집사 사이에도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전에 제 속을 조금 썩이시던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 마음이 참으로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위해서 30일 기도를 작정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나와서 새벽 기도를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제가 그 집사님을 위해서 30일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를 한번 혼내 주십시오”라는 그런 기도는 안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그 집사의 마음을 좀 바꾸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셔서 과연 저 집사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지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저는 주일마다 그 집사님의 모습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그 분의 얼굴은 험상궂은 얼굴 그대로입니다. 저를 향한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마다 여전히 제 가슴은 떨립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한 3주간쯤 지나서 갑자기 제 기도의 내용이 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는데 기도하다가 제 마음 속에 어느새 이런 기도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날 새벽 저는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후 주일에 그 분을 보니 그렇게 달라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5.은총받은 생활

문학가“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거에 은혜를 입혀준 몇 종류의 사람을 그 후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본 것이다.
처음 예수는 한 주정꾼을 만난다. 그는 거의 폐인과 같이 된 젊은이였다. 예수께서 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소 하고 물었더니 주정꾼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이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일으켜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이요, 그동안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만족한 직업 하나도 없었오.”
그 다음 예수는 한 여자가 창녀가 되어 남자들 사이에서 희롱받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는 여자에게 말한다.
“어째서 이런 생활로 되돌아 갔오.”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 새 사람을 만들어준 것 같았으나, 창녀에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이오. 나는 더욱 고독해서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창녀의 생활을 시작했오.”
그 후 예수는 한 불량자가 정신없이 이웃과 매질을 하고 있는 장면에 부딪힌다. 예수는 그에게 묻는다.
“여보 청년. 어째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오.”
불량자는 예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 준 소경이었소.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거요. 보이는 것이 모두 신경을 돋구고 귀찮고 화나는 세상이 아니오. 결국 나는 화풀이도 하고, 마구 치고 받고 하는 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하였소.”
이 단편은 은총을 은총으로 살려, 빛을 내지 못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참으로 거대한 것이다.
창녀에게서 구원되거나 소경이 눈을 뜨는 이상의 큰 은혜를 우리는 입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사를 모른다. 감사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보답이 되는 새로운 생활로 자기를 전환시킬 때 감사의 의미가 비로서 살아나는 것이다.

 

 

6.변화될 때까지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저분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잊었나”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단순한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7.

 

 

8.젊은 병사의 서원

미국 남북전쟁의 치열한 전투 중 하나가 아틀란타 근처 산악지대에서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밤에 연합군 소속인 스물 한 살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위생병들이 이 장교를 쳐다보고는. “죽었어, 숨을 쉬지 않는 걸.”하고 말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성격은 너무 과격해서 대학 시절에 항상 그는 종교적인 문제 밖에 있었으며 무신론자로 자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은 장교는 누운 채로 의식을 회복하고 양친들의 믿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에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봉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위생병이 돌아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청년이 살아있음을 확인하여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군목을 불러 그리스도인이 되려 했던 얘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무엇이 전장에서 부상당하고 쓰러진 젊은이를 위생병이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겠습니까? 위생병들도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손을 뻗치시고 다시 고쳐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사하기로 서약했던 그의 남은 삶에서 무슨 일이 나타났습니까?
그는 필라델피아의 템플 대학교와 세 개의 종합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침례교회도 그의 남은 생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는 20여권의 저서를 내었고 수천명의 영혼을 구원시켰습니다. 그 청년이 곧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부셔뜨리고 나서 그에게 봉사하는 적절한 그릇으로 다시 고쳐 만드셨습니다.

 

 

9.스펄젼의 회심의 경험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10.변화

크리스챤 센츄리 지의 편집장 마티 목사가 젊어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을때, 3학년 반을 맡았는데 그 반에 학습지진아인 스티븐이 있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아이들은 숙제를 가지고 왔다."새로운 생명을 상자 속에 하나씩 넣어가지고 오라"는 숙제였다.
아이들이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한 아이의 상자에는 꽃이 있었다. 다른 아이의 상자 속에서는 나비가 나왔다. 그 다음 아이는 파란 나뭇잎을 꺼냈다. 스티븐 차례가 되었다. 스티븐도 자기 상자를 열었다. 그러나 그 속은 비어 있었던 것이다. 마틴 선생님은 당황했다. 지능이 모자라는 스티븐에게 남들과 같은 숙제를 냄으로써 망신을 당하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스티븐의 빈 상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스티븐은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설명하였던 것이다.
"선생님,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하시지 않으셨읍니까? 이상자는 예수님의 무덤입니다.예수님은 이 상자에서 다시 살아나셨읍니다."
마틴씨는 스티븐을 껴안고"맞았다. 녜 숙제물이 가장 좋다"고 외쳤다. 마틴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정말 놀랬다.학습지진아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부활이 빈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크리스챤이 깨달아야 할 진리다"라고 종교지에 자기의 감격을 썼던 것이다.
새 옷을 입기 위하여는 먼저 낡은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죽어야 부활한다. 나의 허물과 죄와 못된 버릇과 욕심과 교만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 나의 옛 사람이 먼저 죽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1.해적 두목의 머리

예날 로마시대 어거스트 대제 때에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아주 포악한 해적의 두목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악한 일을 많이 한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놈을 잡을래야 잡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머리를 잘라오는 사람은 많은 상을 주고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잡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어거스트 대제가 촌으로 순시를 하는데 어떤 건장한 사람이 왕 앞에 나와서 절을 하면서 하는 말이
"제가 해적 두목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어떤 상을 주시겠읍니까?"
이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네 과연 그의 머리를 가져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이 놈이올시다"라고 하면서 왕 앞에 끓어 앞드려서
"이 몸이 많은 죄를 지었는데, 이 죄를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제 대왕의 충성된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해군 장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어떻게 충성을 다하는 지 그 다음에 로마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입니다. 이 은사를 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온전해 내 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

 

 

12.회개의 눈물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도록 했다. 맨 처음 천사는 금덩어리를 찾다가 "아니야, 이런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충분히 가지고 있어." 하고 외쳤다 그래서 한움큼 쥔 다이아몬드를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천사는 하나님께 바칠 귀중한 물건을 찾느라 세상을 두루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죄인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발끝을 들어올리고 살그머니 그가 꿇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 사람은 죄로부터 구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옳지, 이제야 찾았다!" 천사는 금으로 만든 상자에다 눈물방울을 담아 하늘로 가지고 왔다. 천사는 이 땅에서 제일 귀한 보석을 찾아 온 것이었다.

 

 

13.새로운 피조물 (말씀:롬12:2)

교회는 인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그러한 목표와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며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행위와 삶의 양식이 새롭게 되도록 교회는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요3:3,고후5:17). 시간은 인간에게 깊은 의미를 준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독교인은 자신의 육적, 영적 삶을 새롭게 결단하는 엄숙한 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인간은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가?
성경과 역사 속에는 변화된 삶의 주인공들이 많이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기독교의 박해자가 순교자로 변했으며, 어거스틴은 탕자에서 성자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김익두 목사는 깡패로 이름을 날리던 생애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주님의 종으로 그 생애를 바꾸었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어느 때나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산다.
2. 참된 변화의 원천은 어디인가?
인간의 학문과 지식, 사상 등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에 가서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인간을 새롭게 변화 시키는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후5:17).
3. 기독교인에게는 영적인 변화가 우선이어야 한다(요3:3).
인간의 근본적인 요소가 악의 뿌리인 인생은 그 육신의 모습을 바꾼다고해서 마음 자체도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변화가 있는 사람은 그 마음과 육체의 생각이 현저히 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한 후에 거듭났는가를 알아 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4. 기독교인의 삶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자는 이 세상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롭게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가, 온전하신 뜻은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살아야 한다(롬12:2).
5.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기독교인들은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고후4:16).
결론
니고데모를 만난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장 먼저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를 통한 생의 거듭남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의무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을 새롭게 하므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빛된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14.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말씀:암5:4-15)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이 가까워서 그 죄악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공법을 인진(쓴 풀)으로 만들며, 정의를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어는 것이 선하며 옳으냐를 생각하지 않고 어느 것이 유익하며 돈이 생기는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정의나 선에 대해서는 비웃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직히 말하는 자와 그들의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들의 정치와 사회의 풍토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귀중히 여기기 보다는 물질 위주, 경제 제일주의, 생산과 산업 제일주의로 기울어져 있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가능한 사회었고, 뇌물만 사용하면 불의를 정의로 바꿀 수 있고 무죄한 자를 유죄판결로 만들 수 있는 사회였다. 이러한 악에 대하여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하여 예언케 하셨다.
1. 여러가지 징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파멸이 눈 앞에 다다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
8절 말씀은 하늘의 여러가지 징조와 정치적인 변혁을 말하며 큰 홍수로 물난리가 있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바닷물을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고 했다. 이러한 징조가 보일 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노라고 하면서도 잘못 찾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벧엘로 향하고, 길갈로 향하고, 브엘세바로 향하고 있다. 여기서 벧엘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를 강요한 곳이다. 이 곳은 곧 축복을 빙자한 종교적 기복주의 신앙의 대명사이다.
길갈은 가나안 정복의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요, 요단강을 건넌 기념돌 열 두개로 기념제단을 세운 곳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지가 된 곳이다. 이곳은 인격적 신앙이 아니라 은사와 능력만을 추구하는 오순절적 비인격적 열광주의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으며, 브엘세바란 옛날 지나가버린 은혜에 집착하는 복고 주의 신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한때 체험한 은혜를 믿고 안일주의에 빠져서 "나는 구원받았다."는 자만심에 매달려 있는 신앙이 곧 브엘세바적 신앙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신앙 태도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타성에 빠져버린 신앙의 매너리즘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가 될 것이다.
3.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자만이 살게 될 것이다.
마음을 쏟아놓고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생활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추구하며 선한 일에 착념할 때 하나님을 만나고 살게 될 것이다.

 

 

15.회개하라(행3:17-21)

회개는 신앙의 첫단계요(마14:13), 구원 얻는데 관문이요, 절대 조건이다.(요10:1) 복을 받는데 유일한 방편이다.
1.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히브리 원어로 `나함'인데 이는 후회한다, 애통한다이며, 다른 말로는 `수브'로 돌아온다는 뜻이 있다. 신약에서는 `메타노이아'로 회개한다. 전환한다.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 있다. 한자의 뜻으로는 잘못을 고친다는 것.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 참조. (눅15:17) 탕자의 회개, (뉵18:13) 세리의 회개(뉵19:1) 삭개오의 회개, (눅23:43) 강도의 회개, (마26:75)베드로의 회개, (시51:1-17) 다윗의 회개.
2. 회개의 종류
(1) 국민적 회개,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 되어서 언제나 타락할 소지가 있다. *이스라엘 역사와 니느웨가 그랬음.
(2) 생명없는 일시적 감회로 하는 회개가 있다.
*구약에 사울왕과 가룟유다;양심에 도덕적으로 가책을 느끼는 것이며, 이것은 일시적 감동이지 생명있는 회개는 못된다.
(3)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
가. 지성적 회개로 자기 무능을 깨닫고 죄를 인식하는 것. (눅18:13, 눅15:17, 눅23:43, 시 51:1-17)
나. 감정적 회개의 요소(슬퍼하는 것). (행2;37, 눅18:13, 마26:75)
다. 결의적인 요소 - 사죄를 바라고 하나님께로 돌아 가는것(눅15:18). 이것은 생명있는 회개이 다.
3. 무엇으로 회개하는가?
(1) 성령의 사역으로. 즉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므로(딤후2:25), 성령의 원소를 주시므로(렘11:18, 딛3:5), 성령의 영을 주시므로(욥33:4).
(2) 말씀을 들으므로(마26:75, 히4:12, 느8:8-9)
(3) 기도하므로. 기도는 회개에 이르도록 한다.
4. 회개하는 자의 결과
(1) 죄없이 함을 받게 됨(행2:19, 요일1:9).
(2) 유쾌함을 받음(행3:19).
(3) 하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음(잠28:13).
(4) 회복을 주심(시51:10, 골3:10).

 

 

16.새사람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졸병이 있었읍니다. 형편없는 그의 생활로 말미암아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마구 아무렇게나 불리워졌읍니다. 이 소식을 안 알렉산더 대왕은 예고 없이 졸병의 막사를 방문하여 겁에 질려 경례를 하고있는 졸병 알렉산더에게 "네가 알렉산더라지?" "녜" "내가 두 가지를 명령한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17.계속적 결단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 햇빛이 대지를 녹일 때면 목동들은 양들을 끌고 나가 겨울 동안 길게 자란 양털을 깎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계화되어 아주 쉽고 빠르게 깎지만 옛날에는 하나 하나 사람의 손으로 깎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털을 깎고 있는 도중에 늦추위 몰아쳐와 눈보라가 날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당황한 목동은 양들을 다 깎은 양, 절반 정도 깎은 양, 못 깎은 양으로 구별하여 우리에 몰아 넣은 다음 눈보라가 지나가고 다시 따뜻한 햇빛이 대지를 비칠 때 우리를 열고 양들을 끌어 낸답니다. 그럴 때 이상한 것은 다 깎은 양은 앙상한 채로 살아 있는데 오히려 절반 정도 깎다 만 양은 예외없이 감기에 걸리고 그 중 다수가 죽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결단이 부족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뒤로 물러서든지 어느 쪽으로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며 시간만 허비하다가 일을 그릇치는 경우를 민족적인 차원에서나 개인적인 일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것도 한 마디로 말해서 계속적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전도하실 때 말씀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결단의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회개하라'란 말의 뜻은 결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죄만을 뉘우친다는 개인적인 후회의 감정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날 우리가 살아 온 모든 생활 특히 우리가 섬겨온 주권에 대하여 완전히 부정하고 이젠 새로운 주권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18.강도를 회개시킨 성경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가 들어왔다. “꼼짝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다 내놔라.” 위협한 강도는 그 방에 값나갈 것을 다 챙겨넣고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아저씨. 중요한 것은 다 가져 간다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가져가요.”라고 하며 한 낡은 책을 가리켰다. 도둑은 그 책도 집어 넣었다.
그 도둑은 훔친 물건들을 파는데 그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다. “도대체 아무도 안사는 이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하며 그 책을 읽어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 말이 계속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읽고 또 읽는 동안 그만 변화되고 말았다. 그는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열심히 믿다가 목사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부흥목사가 되어 한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자기가 옛날 예수 믿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자 앞에서 한 중년 부인이 마구 울어댔다. 분명히 자기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 우는줄 알고 간증을 요구했다. 그 여인은 나와서 기숙사에서 성경을 준 여학생이 바로 자기라고 하며 그 후 강도를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는 것이다.

 

 

19.손때 묻은 벽돌 한장

레이몬드 릴리라는 난폭하고 악한 흑인 청년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목사는 거치장스럽고 꼴보기 싫은 존재이기에 목사를 때려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고 벽돌을 한장 싸들고 교회에 들어갔다. 목사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릴리 청년의 마음을 다루시는 것이었다. 드디어 벽돌로 목사의 머리를 치겠다고 들어간 그는 그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치게 되었고 그 자리가 릴리 청년이 거듭나서 하나님을 발견한 놀라운 은혜의 자리가 되었다. 수년 후에 세계의 최대 자선병원인 시카고의 쿡크 카운티병원에는 가난한 가운데 질병에 시달리거나 죽어가는 수천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목사가 한명 있게 되었다. 이 흑인이야말로 '선한 사마리아의 흑인 릴리 목사'로 불리운 과거의 릴리 청년이었던 것이다. 릴리 목사가 하늘 나라에 간 장례식의 예배당에는 손때가 묻은 벽돌 한장이 전시되어 보는 사람마다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고 한다. 괴롭건 즐겁건 어느 때나 자기와 같은 살인자를 구원하시고 은혜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마워, 레이몬드 릴리가 밤마다 어루만지며 그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며 붙들고 기도하던 그 벽돌이었던 것이다.

 

 

20.변화의 차이

3.1절이면 기억해 줄만한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신 철이라는 한국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종로 경찰서 고등계 형사로 있던 그는 특히 수상한 조선인을 색출하는 데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사십이었다. 종로 경찰서에 10년간 근무해온 고참이기도 했다.
신철, 그가 일본 경찰의 고위 간부들에게 인정 받기까지는 수많은 동족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내놓은 민족 반역자였고 천황의 사냥개였다.
기미년 2월 26일께의 늦은 밤이었다.
지금의 안국동 자리에 있던 인쇄소 보성사에서는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안에서 가리고 무엇인가를 찍어 내고 있었다.
그때 보성사 부근을 지나고 있던 신철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인쇄소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인쇄 중이던 독립 선언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어 보고 놀란 표정의 인쇄소 사람들을 한번 둘러 본 후 말없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 소식은 즉각 거사를 준비중이던 핵심인사들에게 전해졌다.
33인의 민족 대표 중의 한 사람이던 최린이 신철의 소재를 수소문해서 은밀하게 신철과 마주 앉았다.
{당신은 이제까지 우리 동족들에게 참으로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소, 이제 마지막으로 한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큰 일을 해 주시오. 당신만 입을 다물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독립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면 역사는 신철이라는 이름을 명예롭게 기억할 것이오}
최린은 당시 돈으로 거금인 5천원을 신철 앞에 꺼내 놓았다.
{ 이 돈이면 만주에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민족 전체의 미래가 당신 ㅅ한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시오.}
최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신철은 한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
3월 3일로 독립선언은 서둘러 3월 1일에 앞당겨 행하여졌다.
3.1만세 운동이 일제의 잔인한 탄압에 눌려서 독립의 희망이 점차 사그라들던 두 달 후,신철은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만다.
고등계 형사 신철과 관련해서 분명한 것 하나는, 그가 독립 선언 계획을 사전에 탐지했지만 이를 일본 경찰에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최근 3.1운동 당시 33인 민족 대표로 불리는 이들 중 일부가 나중에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는 주장들이 대두 되고 있다.
청주시 3.1공원 안에 있는 청주 출신 33인 대표 한 사람의 동상이 시민 단체들에 의해서 강제 철거 될 위기에 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제 까지 우리 정부의 각료를 지낸 분들의 상당수가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몇일 전에 발표됐다.
그런 저런 믿기 싫은 이야기가 발표될 때마다 신철이라는 사나이가 생각이 난다.
그는 결코 훌륭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롭게 살다가 후에 변절한 사람들과, 개처럼 살다가 후에의롭게 죽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 1995.3.1, 동아일보"어느 고등계 형사의 자살" -

 

 

21.노벨 평화상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의 노벨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벌지만 이것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지 알지 못하는, 철저하게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지막 도전은 얼마나 결정적입니까?

 

 

22.회개하지 아니하면

미국의 유명한 학자요, 또 목회자였던 에드워즈목사의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구 내에 주정뱅이고, 도박꾼이고, 교회에는 나오지 않는 타락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이른 아침에 파랗게 질려 에드워즈 목사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너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년 오늘에 너를 불러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 날부터 그는 술을 끊고, 도박도 끊고, 교회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몇개월 지나가더니 그의 발걸음은 교회에서 뜸해지고 점점 열심이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도 다시 조금씩 마시고 도박도 조금씩 손에 대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그를 권하고 그가 본 꿈의 환상을 회상시켜 주었으나 그는 “글쎄요 글쎄요”하면서 더욱 교회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드디어는 완전히 이전 상태에 돌아가고 이제는 목사님께는 반항적으로 나오면서 “무얼요. 개 꿈을 가지고 그걸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하더랍니다.
어느날 밤 그는 어떤 빠에서 술에 만취가 되어 계단을 내려오다가 실족하여 떨어져 목이 꺾이어 급사를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에드워즈 목사가 일기책을 찾아보니 그날이 바로 1년 전 그가 자기를 찾아온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주의 환상을 순종하지 않는 자를 모두 이런 식으로 징벌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회개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명백한 경고일 것입니다.

 

 

23.한 장의 그림

한 장의 그림이 기독교사에 놀라운 영향을 주었다. 스텐버그의 명화 “십자가”이다. 스텐버그는 성 제롬 대성전의 유우고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중단하고 시간을 끌었다. 이유는 화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흥정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는 중간에 집시 여자인 페피타를 모델로 다른 그림을 착수하였다. 어느날 모델로 화실에 와있던 페피타가 초만 잡혀 있는 예수상을 보고 십자가의 내용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 댔으며 너무나 흔한 성경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였지만 소녀의 간청에 못이겨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대강 들려준 예수의 이야기에 페피타는 몹시 감동했던 것이다. 소녀는 화가에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었다는 이 훌륭한 사람을 선생님은 무척 사랑하고 계시겠지요.”
라고 불쑥 말했다. 스텐버그의 양심은 몹시 찔렸으며 며칠을 생각하고 뉘우치고 기도한 끝에 전력을 다하여 예수상을 착수했고 주는 화료도 거절했다고 한다. 젊은 공작 진젠돌프가 제롬 대성전에서 이 그림을 보다가 감화를 받고 자기의 전 재산을 바쳐 선교회를 창립한 것이 모라비안교파가 되었고 감리교의 창설자 웨슬레는 그들의 뜨거운 신앙과 전도열에 자극되어 새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24.기도의 능력54

지적 재능이 매우 뛰어난 어떤 이교도의 판사 부인이 무디 선생에게 와서 자기 남편을 예수 믿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무디 선생은 이런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 좀 주저했으나 매우 솔직하게 그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무디는 한 마디 덧붙이기를. “그러나 만일 귀하께서 개종하신다면 나에게 알려
주기로 약속하시겠읍니까.”라고 했다. 그 판사는 냉소하면서
“오. 그러죠. 만일 내가 개종한다면 신속히 알려 드리도록 하겠소”
라고 말했다. 무디 선생은 믿고 기도를 착수했다. 그 판사는 개종했다. 그것도 일 년이 못
가서였다. 그는 약속을 지켜 무디 선생에게 경위를 진술했다.
“어느 날 밤 나의 아내가 기도회에 나갔을 때 나는 매우 불안하고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 갔죠. 그 날 밤새도록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 날 아침 일찌기 일어나 아침을 먹을 수가 없다고 아내에게 말하고는 나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직원들에게 휴무해도 좋다고 알리고는 나의 개인 방으로 돌아와 외부와 차단하고 들어 앉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점점 더 비참해짐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나는 즉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25.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복음인가?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체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기독교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이 실패했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듣는가? 아마 우리 자신도 어느땐 그렇게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대인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독교는 거의 2천년동안 세상에서 존재했지만 세상의 상태를 보라 만일 당신네들의 복음이 참되다면 세상은 오늘날 같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의 복음은 실패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이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를 안다면 당장 그런 입장을 버리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실패했다고 했는데 그럼 여러분들은 복음이 무엇을 약속했다고 보는가?"
그것은 분명히 묻고 지나가야 할 질문이다.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의 말대로 실패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복음에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기 대문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복음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궁핍과 고통을 몰아내고 세상을 바로 잡고, 불공평을 추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 않은가? 복음이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음은 이 세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타락한 현 세대가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그 말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결코 그런 것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결코 없다. 복음이 전쟁을 종식시켜 주겟다고 약속한 털끝만큼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면서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노아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던 일과 같이 인자가 나타날 때에도 그런 일이 있으리라] 주님은 전쟁을 불식시키겠다든지 세상을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한 증거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복음을 세상을 개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이해 한것은 사람들이다. 결코 복음이 약속한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주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다.자기들이 생각하는대로 기독교가 해 주겟다고 한 일을 하지 않았기 대문에 자기들은 기독교를 기각시키고 그 은택들을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거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6.진정한 변화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1950년대 세계 선교의 영웅 짐 엘리어트가 정글에서 피를 흘린 후 발견된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일, 그것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을 버리는 사람,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이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게 쓰임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청춘과, 부와 명예와 권력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다만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이 불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27.말씀의 능력 <히4:12>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두 장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잉거솔(Ingersoll)이라고 하는 대령과 또 한 사람은 루 월래스(Lew Wallace)라고 하는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예수님에 관한 모독적인 이야기였다. 잉거솔 대령이 말했다.
"그 예수라고 하는 친구말입니다. 예수쟁이들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이니 하고 허튼 소리를 하는데 이 예수라는 친구를 멋진 연애장이로 만들어 에로틱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요? 그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요?"
"아 그것 참 좋겠는걸. 참 재미있는 소설이 되겠지."
그후 그들이 전역을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찾아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것이 없었다. 장군으로 전역을 했으니 아무 일이나 손댈 수는 없고...그래서 월래스는 생각다 못해 전에 기차 안에서 잉거솔대령이 한 말대로 예수를 주인공으로 한 에로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만 했다. 직접 이스라엘까지 가서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성경을 읽고 자료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의 마음은 변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역사적으로 실존인물임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가 목적한 소설의 원고가 끝났다.그런데 처음 계획한 것과는 전혀 딴판의 글이 나오고 말았다. 탈고를 한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내려와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진실로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 소설의 이름이 바로 영화로도 잘 알려진 [벤허 Ben Hur]이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입증해 주는 산 증거이다

 

 

28.그리스도인의 변화

바닷물은 대단히 짜다.그런데 그 바닷물에 들어있는 소금 함량은 고작 3.4%에 불과하다.소금이 3.4%만 있어도 바닷물은 석지 않는다.그런데 기독교라는 소금이 25%가 되는데도 학국 사회는 왜 썩어만 가고 있는가?
켐퍼스를 뒤흔들고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학생운동은 실질적으로 1%미만의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는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을 때 그리스도인은 9%밖에 되지 않았다.9%의 로마인들이 얼마나 멋지게 살았던지 황제까지도 자기를 신이라 하지 말고 저들이 믿는 신을 믿게 하자고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25%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우리 사회는 왜 이런 변화가 없는지.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에서 밟힐 뿐이다.한국의 기독교는 세상의 길에서 밟히고나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29.구원의 참된 모습

자신을 느끼고 있는 자아상이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실만큼 귀한 존재인데도 노상 "나는 왜 항상 이모양인가?"라고 한탄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굉장한 인생의 계획을 가지고 계실 만큼 중요한 사람인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할 때가 있다. 예수 믿는다면서도 얼굴이 우거지 상인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봐서는 비참한 인생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멋있게 사는 인생이 돼야 한다.
그것이 구원의 참된 모습니다.
헬렌 켈러는 벙어리였고 장님이었고,귀머거리였다. 사실 그 중에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런데 그 분은 그렇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야 더군다나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더 신나는 경험이야]
이것은 신앙의 진수를 아주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삶이 신나는 경험이었던 것은 바로 구원 받은 사실 때문이었다.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비참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안에 게시기 때문에 자신을 멋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와 화평한 사람인 것이다.

 

 

30.거듭남이란

예를 들어 한 가정이 있다고 가정하자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고 부인은 중간에 예수를 믿게 되어 남편의 허락을 얻어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부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1년정도 지켜보던 남편은 부인이 과거와는 달리 순결한 양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부인은 예수를 아주 잘 믿은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 아무리 오래 나가도 볼 때마다 그 전과 다르게 자꾸만 여우 생각이 나고 살쾡이 생각이 나면 그 부인은 예수를 믿어도 헛것으로 믿은 것이다.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육체적인 완벽함이나 학벌 외모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교회에 나가면서 양처럼 순결한 아내로 변화된 여성은 삶 속에서 하나님앞에 산 제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향기이며 성전이라는 인상을 자꾸 풍기면 그것이 바로 산 제물인 것이다.

 

 

31.기도의 능력

의학공부를 하는 한 미국의 여대생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우연히 마약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곤할 때 마다 마약을 복용하곤 했는데 나중엔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의사로 일하몀서도 매일 마약을 복용했다. 그것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약을 살 수 없는 가난뱅이가 되어버리자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어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비오는 날 저녁에 자살을 결심하고 비를 잔뜩 맞으면서 뚝 옆의 저수지로 나아갔다. 뚝 위에 올라서서 여태껏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오! 하나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아주 간절하게 뜨겁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위가 뜨거워지면서 전신에 그 뜨거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누군가가 양 손으로 거두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그녀는 날듯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살할려는 마음을 돌이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그 후로 깨끗이 마약을 끊어버렸고 지금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옛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는 일은 내 의지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하다. 그 도우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2.새로운 존재(存在)

워싱턴시에 있는 링컨의 기념관은 국회 의사당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그 기념과 안에 링컨의 좌상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조각가 죤 보그룸의 작품이다.
그가 링컨의 좌상을 만들 때의 일화가 있다.
조각가 보그룸이 매일같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링컨의 석상을 만드는데 한 흑인 여성이 고용되어 조각하는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매일같이 보그룸이 땀을 흘리면서 큰 바위를 두둘긴다.
여러날 후에 한 덩어리의 바위속에서 훌륭한 링컨의 형상이 나왔을 때 이 흑인 여성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이 돌에서 링컨의 형상이 나왔는가?"
하고 묻게 되었다. 그때 조각가 보그룸은 대답하기를
" 이돌로 링컨의 형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이 돌가운데서 링컨의 형상이 아 닌 부분을 다 없애 버렸더니 이렇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았다. 범죄,타락으로 그 형상이 파괴되고 만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성령의 역사로 힘입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파괴되었던 본래의 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하나 하나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 회개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골로세서 3:7-10)

 

 

33.자기의 변화

유명한 안소니 멜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70세가 된 오늘은 나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정치 문제에 너무 관심이 많다. 세계 문제에 너무 민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라.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활방식과 생각, 마음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게 된다. 변화되지 않는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 본래의 목적인 빛의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변화, 인류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가 당시 러시아 기독교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가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이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변함없는 인생은 고인 물과 같다. 그곳에는 악취가 풍긴다. 기도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묘약이다. 나부터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34.삶을 변화시키는 인생관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은 같은 평수의 방이라도 전망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히 납니다. 똑같은 설계에 똑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인테리어를 해도 어느 쪽에 방을 만드느냐, 객실에서 창 밖을 내다볼 때 바다가 잘 보이느냐
산이 잘 보이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오웰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으나 부정적인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창을 열면 어떤 곳이 보이나요?

 

 

35.탐 스키너의 변화

지금 미국 교계에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탐 스키너라는부흥사가 있습니다. 그는 뉴욕 할렘가의 불량 청소년 갱단 두목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영혼과 삶이 뒤바뀌었으나 그가 변화되었다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옛날의 동료 하나가 탐 스키너를 시험했습니다. 지나가는 탐 스키너의 뺨을 한 대 후려쳤습니다. 탐 키너가 일어나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친구여 나는 너를 용서하노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자신을 죽음의 자리에 둔 사람만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본능은 "복수하라"고 말합니다. 본능은 나에게 보복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본능은 편리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죄에 대해 자신을 죽은 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만이, 겸허하게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의 원리에 의해서가 아닌 죽음의 원리에 의해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36.존번연의 변화

레이 리치몬드(Leight Richmond)라는 사람이 길에 종교 관계의 소책자 를 떨어뜨리고, 어떤 좋지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가기를 바랬다. 과연 어떤 한 좋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집어갔으며 그가 감옥에 들어갈 때그 책을 갖고 들어가, 감옥 안에서 그것을 읽고 개종하게 되었다. 바로 그가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존 번연(John Bunyan)이다.

 

 

37..뉴톤의 변화

죤 뉴톤은 그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동안에는 신앙 훈련을 받아 경건하게 살았으나 어머니가 별세한 후로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뉴톤은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습니다. 뱃사람이 된 후로 그는 세상의 못된 짓만 배우고 악행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뉴톤이 방탕하고 못된 짓만 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를 내어 쫓았습니다. 그 후 뉴톤의 성격은 고쳐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고 목사가 되어 일생을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82세가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할아버지 목사로 교회 일을 보았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너무 험악하게 살았기 때문에 기억력이 희미해져서 설교를 할 때 했던 말을 반복하며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뉴톤 목사님은 천국에 가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내가 생각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다음은 분명히 천국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육체로 살다가 회개하고, 영으로 살다가 일생을 마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38.옛사람과 새사람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인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에는 방탕한 시간들을 보냈으며,결혼도 하지 않고 한 여자와 동거하여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거스틴이 32세에 밀라노에서 유명한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다가 회심하게 됐습니다. 회심한 후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길가에서 옛날에 드나들던 술집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거스틴에게 “왜 요즘은 저희 집에 들르지 않나요”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옛날의 어거스틴은 죽었고 나는 새 사람이 됐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된 존재들입니다(고후 5:17).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는 옛 성품이 우리 안에 남아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새 사람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고달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죄에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날마다 변화의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피영민 목사 (강남중앙침례교회)

 

 

39.새 삶을 얻은 주정뱅이

한 주정뱅이가 있었다. 노름으로 재산을 날리고 부인과 자식들에게 폭행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런 사람이 교회를 다녀 봤자 달라질 게 있겠어?” 하며 회의적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어라 가르치시던가?” “착하게 살라고 하기도 하고 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친구가 또 물었다. “그럼 성경은 누가 썼다던가?” 그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친구가 다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의 대답은 모두 신통치가 않았다. 그러자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교회에 다닌다면서 자네가 배운 것이 뭔가?” 그러자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네. 전에는 술이 없으면 못 살았는데 요즘은 술 생각이 별로 나질 않아. 그리고 전에는 퇴근만 하면 노름방으로 달려갔는데 지금은 집에 빨리 가고 싶고, 전에는 애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했는데 지금은 나랑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기다린다네. 그리고 아내도 전에는 내가 퇴근해서 집에 가면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내가 퇴근할 무렵이면 대문 앞까지 나와 나를 기다린다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 그 경험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은 행동과 생활과 대인관계가 달라진다. 이러한 경험적 만남이 없는 사람은 지적 만족으로 공백을 채우려 하지만 그분과 진실한 만남을 경험한 자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 「30년만의 휴식」/ 이무석

 

 

40.경찰과 죄수

비오는 날 재판소에서 두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한 사람은 경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죄수였다. 경찰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죄수에게 입혔다. 그 광경을 본 경찰부장이 다음날 아침 그 경찰을 호출했다. 그는 경찰 제복을 죄수에게 입혔다고 혼이 나는 줄 알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찰 부장에게 갔다. 그러나 경찰부장은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왜 자네의 외투를 벗어 죄수에게 입혔는가?" "저야 옷이 젖어도 집에 가면 갈아 입을 옷이 있지만 그 죄수에게는 갈아 입을 옷이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경찰부장은 그를 크게 칭찬하며 금일봉까지 내렸다. 그의 외투를 입었던 죄수는 복역을 마친후 그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한 경찰의 따뜻한 마음이 전과 10범의 사람을 진실되게 변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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