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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가? / 마 6:19-24

by 【고동엽】 2023. 11. 28.

누가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는가?/마태복음 6:19-24

 

 

우리모두가 한 생을 보내면서 돈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오욕칠정이 대부분 돈으로 인해서 발생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늘도 돈 때문에 울고 있는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으로 인해 웃고 있는지요. 쟈끄 엘룰(Jascque Ellul)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돈은 아무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돈에 대해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고 인생을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돈은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누구든 자기의 삶이 어떠하며 자기의 신앙이 어떠한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돈 앞에 서야 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돈 앞에 설 때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납니다. 돈 앞에 섰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돈이라는 것은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 놓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유물론과 공산주의 유물론으로 대표되는 물질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존 화이트(John White)라고 하는 사람의 견해를 그대로 빌린다면, 공산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돈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돈만이 중요하다고 하는 자본주의가 말의 표현상 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밑바닥에 유물론을 깔고 있고 물질주의를 깔고 있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손에 넣고자 끝없는 탐욕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돈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확실한 수단으로 생각을 합니다.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높을 깃발로 생각을 합니다. 또 안전을 지켜주는 확실한 방패막이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의 생명도 나의 건강까지도 보장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돈을 높이니 자연히 돈의 횡포가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폭군으로 변했습니다. 얼마나 그 세력이 무서운지요. 돈의 힘 앞에 국가도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돈의 위세 앞에서는 법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보고 삽니다. 심지어 돈 앞에서 교회마저 무릎을 꿇는 비참한 현실을 우리가 지켜보고 삽니다. 돈이라고 말할 땐 단지 경제적인 가치나 화폐의 가치로만 이야기를 하면 안됩니다. 돈은 이미 화폐라고 하는 가치를, 그 영역을 뛰어넘은 지가 오랩니다. 이미 월권행사를 한지가 오랩니다. 돈은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를 합니다. 심지어 우리의 가치관까지 마음대로 뒤집어 놓습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파괴하고도 남을 수 있고 이 세계의 도덕성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으로 지금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돈이 갖는 이런 위력에 대해서 칼 막스는 아주 묘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인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돈이면 못생긴 사람도 잘 생긴 사람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돈은 최고의 선이다.' 아마 이런 사상 때문에 공산주의가 그 머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동경하는 모든 것을 돈을 통해서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끝도 없고 한도 없다고 그는 말하면서 재미있는 말을 한마디 더 했습니다. '흐르는 돈은 인간 내면의 저수지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다.' 잘 새겨서 들어 보십시오. 아무리 끌어 모아도 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돈에 대한 탐욕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 이것이 유물사상의 뿌리 아닙니까? '하나님이 무엇인가? 돈이 하나님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유물사상 아닙니까? 이와 같은 사상에 한동안 전 세계 인구의 1/2 이상이 놀아났다고 생각하면 돈의 힘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과 돈의 밀접한 관계를 꿰뚫어 보신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돈이 무엇인가? 보물이다.' 그래서 주님이 '네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고 하시면서 돈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보물이라고 그러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보물이라고 하시다가 24절에 가면 돈으로 바뀝니다. 맘몬이라고 하는 돈 신으로 바뀝니다. 결국 예수님이 보물이라고 하실 때는 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돈을 벌 때마다 갖고 싶고, 쌓고 싶고, 기대고 싶은 심정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땅에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돈을 모으지 말라고 하시지 않고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쌓고 싶은 아주 강한 욕망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들여다 보시는 것입니다.

 

또한 돈과 사람의 마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주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너무 연약해서 잘못하면 돈을 하나님처럼 숭상할 수 있고 경배할 수 있다는 것도 주님이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24절은 '사람이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던지 돈을 섬기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주님이 돈과 인간, 인간과 돈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이렇게 환히 들여다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주님이 무엇이라고 교훈하십니까?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한 보물이라면 안전한데다가 쌓아둬야지 허술한데다가 쌓으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땅에다가 쌓지 말라. 거기는 허술하다. 하늘에 쌓아라.' 주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땅에다 쌓아두면 금방 축이 나고 없어지고 나중에는 손에 남는 것이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다 쌓으면 안전해서 영원히 보관할 수가 있고 영원히 그 보물을 가지고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옛날에는 돈이라고 하면, 흔히 재산이라고 하면 값진 의복들, 혹은 곡간에 쌓아 둔 곡식, 목장에 있는 가축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곡식을 아무리 곡간에 쌓아 놔도 동록이 와서 먹고 쥐가 와서 먹고 나중에는 썩고 어떨 때는 도둑맞고 하면 아무리 쌓아 놔도 자꾸 없어진다. 자꾸 없어진다. 결국은 떠난다. 아무리 고급 옷을 소유하고 살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좀이 먹어서 구멍이 뻥뻥 나면 나중에 다 못쓴다.' 다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 놓는 보물은 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옛날에만 통하는 이야기 입니까?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돈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도 많지만 돈을 갖고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해서, 어디에 갖다 맡겨야 안전한지를 몰라서 밤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 세상에는 안전하게 내 돈을 맡길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동록이 슬고 좀이 먹고 도둑 맞고 얼마든지 없어질 수 있는 곳만 가득하니 돈 맡기는 안전한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리가 떨어지면 그만큼 내 돈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주가가 폭락해 하루아침에 내 돈 가치가 반으로, 1/3로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내 돈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환율이 뛰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나는 몇 억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하루아침에 1/2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벤처에 묻지마 투자를 했더니 전부 날라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창고는 다 좀이 먹고 동록이 슬고 도둑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정권을 쥔 사람에게 찍히니까 가진 것이 하루 아침에 다 없어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세상은 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이 여행하다가 사고가 나자 쌓아놓은 돈을 가져갈 사람이 없어 국고에 환수되는 것도 봅니다. 이 세상에 안전한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편 96편 6절에 다윗이 고백한 말이 맞습니다. 각 사람은 재물을 자꾸 쌓기만 하는데 땅에다 쌓다 보니 나중에는 그것을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피땀 흘려 벌어서 쌓아 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남 좋은 일 시킨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땅에다가 쌓는 것이 그처럼 바보스러운 일인지 모르고 계속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보가 하는 소리처럼 듣습니다. '하늘에 쌓는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여기 앉아 있는 분들 가운데서도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그냥 귓전으로 듣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돈이 너희들에게 그만큼 보물처럼 소중하냐? 그렇다면 하늘에다 쌓아라. 거기가 안전하다."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늘 곡간은 안전해서 좋고, 내 마음이 하늘에 가 있을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 돈에 욕심 나셔서 하늘 곡간 자기 은행에다 넣으라고 하시나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다 쌓는 것입니까? 돈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땀 흘리고 눈물 흘려 번 것이 돈 아닙니까? 직장을 구하려고 10곳, 20곳, 100곳에다 이력서를 넣어서 겨우 얻은 직장이기에 거기에 충성하느라고 얼마나 정성을 쏟습니까? 그래서 번 돈입니다. 보물 아닙니까? 보물입니다. 이 소중한 것을 아무데나 맡기면 안 되겠죠? 안전한 곳에다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고는 왜 갑자기 22절에 눈 이야기를 하십니까?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선하면 온몸이 바를 것이요, 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왜 갑자기 동문서답 하듯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러분, 돈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십니까? 주님이 이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길 원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눈이 흐려지거나 어두워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눈이 흐려지면, 우리의 영혼의 눈이 어두워 지면 하나님과 돈을 혼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아야 되지 않습니까? 돈은 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눈이 흐려지면 하나님을 돈처럼 보고, 돈을 하나님처럼 보는 난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24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돈으로 보고 돈을 하나님으로 보면 나중에는 돈을 하나님처럼 경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도 모르게 돈에 노예가 돼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충성해야지 두 사람에게 똑같이 충성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하나님을 경배해야지 하나님 둘을 놓고 경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그러시지 않습니까? 안 된다고 그러는데 사람들은 된다고 그럽니다.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겠다고.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고, 돈도 내 하나님이고.' 그래서 둘을 동시에 움켜 쥐려고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데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된다고 우깁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비극이 무엇입니까? 돈이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돈이 하나님으로 보이면 영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집니다. 여러분, 돈은 사이비 하나님 노릇을 합니다. 꼭 기억하세요. 이점에 대해서는 칼 막스 만큼 혜안을 가지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이 역사에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은 하나님입니다. 돈은 전능한 하나님처럼 행세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입에서 이런 똑 같은 말 하지 않는 것 보셨습니까? '돈이면 다 된다.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있는가? 돈 가지고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는가? 돈이면 다 통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그런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말은 돈이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돈은 우리를 그런 식으로 만듭니다. 돈은 거룩한 하나님처럼 행세합니다. 거룩한 것처럼 행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끔 보지 않습니까? 돈 소리는 아무데서나 함부로 못합니다. 그리고 돈 문제를 가지고 장난처럼 말을 못합니다. 돈은 거룩하니까. 어느 좌석에서든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돈 소리만 갑자기 나오면 아주 숙연해집니다. 거룩하니까. 그래서 오늘 제가 돈 설교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여러분 얼굴이 얼마나 거룩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아주 긴장하고 굳은 얼굴로 듣고 계십니다. 돈이 거룩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녀들을 앉혀 놓고 부모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다 하다가도 돈 이야기를 해야 될 때에는 부부가 조용히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가서 문 걸어 잠그고 둘이서 속닥속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은 함부로 말을 하면 안되니까 그렇습니다. 돈은 자기가 거룩한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전능한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인 것처럼 사람들 앞에 사이비 하나님 노릇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받으셔야 될 모든 경배와 영광을 전부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 앞에 눈이 어두워서 돈이 하나님인 것처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현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던지 돈을 섬기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돈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반반도 없습니다. 적당히도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 선택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하고 찬양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을 잘 살피십시오. 도대체 내 하나님은 누구인가? 정확하게 양심적으로 대답하십시오. 둘 다 섬기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는데 내가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보물을 안전한 하늘에 쌓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의 눈이 어두워 지지 않도록 먼저 주의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내 눈의 안경을 닦아야 되고 기도의 눈물을 가지고 내 눈을 항상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돈이 하나님으로 안 보입니다. 이래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다가 보물을 쌓으려면 뭐니뭐니 해도 헌금생활을 바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보물, 이 재물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재물 가운데서 소중하게 얼마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재단 위에 올려 놓는 것이 헌금입니다. 주신이가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을 다 다시 드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먹고 살아야 하고 자녀를 키워야 하고 이 세상에서 살면서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이 필요한 줄 알고 우리에게 주셨으니까 받은 것 만큼 쓰면서 분복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두를 나를 위해서 쓴다는 것은 너무나 송구하니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얼마를 떼어, 거룩하게 구별해서 하나님의 재단에 올려 놓아 그 분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하나님 나의 보물을 일부 드립니다. 이 보물을 하나님이 거룩하고 향기로운 재물로 받으시고 하나님이 먼저 받으신 다음에 복음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교회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이렇게 빌면서 드리는 것이 헌금입니다.

 

따라서 헌금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헌금만큼 우리의 인격과 신앙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가만히 하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 신앙이 좋은 것 같이 들립니다. 그런데 그 말을 얼마나 믿어야 됩니까? 그리고 열심을 내서 교회 일에 봉사하고 남 보기에 기도 많이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겉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얼마만큼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확실한 평가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평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헌금 앞에 서는 것입니다. 돈 앞에 서는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 놓습니다. 헌금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이 어느 정도의 신앙이라는 것을 금방 압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말처럼 헌금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인가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 준다고 했습니다.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 준다고 했습니다. 돈 앞에는 못 속입니다.

 

헌금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수준과 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만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최근에 어느 서울에 있는 교회에 가서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목사님에게 교인이 얼마나 모이느냐고 물었더니 어른만 한 1500명 모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참 참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또 떠 봤습니다. 1년 예산이 어느 정도입니까? 왜 헌금이야기를 제가 물어봅니까? 그 교회 헌금을 보면 그 교회가 질적으로 어느 정도 높은 교회요, 영적으로 파워를 가진 교회인지 평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1500명 정도 모이면 평균 잡아서 한 15억 정도 예산 세웠다고 하면 그런대로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40억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와 이 교회가 겉으로 보기하고 틀린다.' 하늘나라 곡간에 쌓기를 바라는 거룩한 성도들이 열정을 다해 섬기는 교회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헌금을 가지고 이야기 하십시오. 돈이 우상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돈 앞에서 못 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돈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보물과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돈 문제하고 그 사람의 인격, 돈 문제 헌금 그 사람의 신앙을 결부 시키면 거의 분명하게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만큼 헌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참 하나님 앞에서 은혜 받은 대로 헌금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도 제가 많이 봅니다. 남처럼 떼돈을 버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헌금하면서 자신의 보물을 주의 재단에 올려 놓는 일을 참 성실하게 하니까 쓸데없이 낭비되는 것을 하나님이 다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떼돈 벌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고 떼돈 벌지 않아도 남보다 부럽지 않게 삽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이 참 안 됩니다. 믿음은 좋은 것 같은데, 헌금하는 것을 보면 정말 밥 맛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분은 거듭나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돈이 하나님이 되어 있습니다. 절대 그 사람, 그 믿음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와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청년은 분명히 구원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 청년의 우상은, 그 청년의 하나님은 돈이었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재산입니다. 그 재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으니까 주님은 양자택일을 요청했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완전히 포기하라. 그리고 와서 나의 제자가 되라. 그러면 너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청년은 구원과 돈을 놓고 결국은 돈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돈이 그에게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산을 포기할 수 없어서 슬픈 얼굴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는데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주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얘들아, 부자가 구원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 가는 것 보다 어렵다." 아시겠습니까?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많이 쌓아 놓고 사는데 헌금에는 너무너무 인색하신 분이 계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양자택일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재산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택하시겠습니까? 양심을 가지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적당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보장을 아무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있으면서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이 천국가면 편안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불편해서 살겠습니까? 절대 못 삽니다. 그런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헌금을 잘 살펴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빈말이 아닙니다.

 

헌금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십일조 입니다. 사실 십일조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것이지만 믿음이 어느 정도 자라지 아니하면 참 어렵습니다. 10만원 중에 만원을 떼는 것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 만원에서 백 만원을 떼서 십일조로 하나님 앞에 기꺼이 드리는 것은 그만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부자가 십일조 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사랑의교회에서 십일조 제일 많이 낸 분 몇 분을 제가 알고 있는데 1억을 내는 것을 제가 몇 번 보았습니다. 부동산을 팔았는지 모르지만 한 10억 중에 일억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곡간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상당한 수준의 믿음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이 그 사람의 신앙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보면 재산이 꽤 있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내면서 기쁘게 신앙생활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은혜를 주실 것이 뻔한데도 십일조 내기가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액수가 좀 많다 보니 못 내는 것입니다. 움켜쥐고 앉아서 그 중에서 조금 떼 가지고 헌금하고, 헌금하고 하다가 나중에 어딘가 투자를 해서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조를 완전히 날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 놓고도 아직도 십일조 안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내가 아는 얼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움켜쥐고 있어도 내 것이 아닌데,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도둑맞고 하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있습니까? 못 막습니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군인들 중에서 낙하산을 타는 특전 대원이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 내리는 사람들이기에 보기에는 굉장히 낭만적입니다. 나도 한번 저렇게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아버지와 딸이 특전대에 같이 들어가서 낙하산을 타 가지고 신문에서 화제가 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훌렁 몸을 던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상에서 피 눈물 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제일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미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특전대원들을 훈련시키는 곳에는 10미터 높이의 점프대가 있습니다. 10미터 짜리 점프대 위에 딱 서면 눈 높이가 11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내려다 보면 아찔하죠? 거기서 계속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무섭지 아니할 때까지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10미터 점프대가 두렵지 않고 맘대로 뛰어 내릴 수 있으면 그 다음에는 비행기에서도 뛰어 내립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 아무리 높아도 무섭기는 똑같으니까요. 어디든지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고 어느 목사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십일조가 무엇이냐면 교인들이 돈에 대하여 가장 공포를 느끼는 10미터 점프대라고. 그러니까 십일조에서 겁 없이 뛰어 내릴 수만 있다면 그 다음에 헌금에 대해서는 자유 합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쌓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한번 물어 보십시오. 헌금 앞에, 돈 앞에 여러분을 세우고 하나님에게 내가 누군가를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하늘에 쌓는 것은 꼭 헌금만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선교사를 위하여 쓰고 싶으면 쓰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구제하고 싶으면 구제하고 정말 다음 세대에 하나님 영광 받으실 수 있는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쓰는 것도 다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집안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참 집안 살림을 제대로 꾸리느라고 돈 쓰는 것도 다 하늘 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장애인 주일이니까 한마디 합시다. 여러분 얼마 전에 프로야구 서울 개막전에 와서 시구를 한 9살짜리 애덤 킹이라고 하는 소년을 여러분이 보았을 것입니다. 티타늄 인조 다리를 끌고 기우뚱기우뚱 하면서 시구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셨죠? 얼마나 맑고 티 없고 명랑한지요. 자기 부모 밑에서 자라도 저렇게 못 자랄 텐데 입양 된 아이로써 어떻게 저렇게 자랄 수 있을까? 결국은 그를 입양해서 키운 그의 아버지 애덤 킹과 그의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9명이나 되는 장애아, 또는 자폐아를 입양해서 자기 자식하고 같이 어떻게 저렇게 키울 수가 있었나? 그 사람은 컴퓨터 기능사라 일년에 8,9만불 수입을 올린다고 합니다. 고소득입니다. 자기 혼자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갑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버림 받은 그 장애 아이들, 고아들을 데려다가 입양해서 사람답게 신앙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하늘에다가 가장 귀중한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이정재 장로님이라고 하는 분은 주식회사 영성의 회장인데 최근에 자기가 갖고 있는 현금과 부동산을 통틀어서 8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몽땅 결핵 환자들을 위해서 내 놓았습니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7만 명이 넘는 결핵 환자들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을 마무리 하고 정리 할 때가 되는 나이에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좀 더 하나님 나라에다가 쌓아 놓기 위해서 다 내 놓았습니다. 다 출자해 가지고 사랑의 복음자리라고 하는 복지재단에 기증을 해 버렸습니다. 이런 것이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의 사람은 자기가 하늘에 쌓고 사는 사람인지 땅에 쌓고 사는 사람인지 얼마든지 스스로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헌금은 남 부끄럽게 하면서 세상 즐기느라고 정신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하늘에 쌓는다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십일조 내지 않고 자기 욕심에 끌려서 그저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 하늘에 쌓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 몰라라 하고는 자기 자식 잘 먹이고, 잘 입히고, 그저 편안하고 기쁘게 살도록 하는 데다가 돈을 집어 넣는 일에만 정신 없는 사람은 아무리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 많이 한다고 해도 그는 하늘에다가 자기 보물을 쌓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돈 앞에 서서 신앙 양심을 가지고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두를 포기하라고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 포기하고 수도승이 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받은 것 만큼 돈을 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받은 것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부름 받은 소명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재물도 거룩합니다. 우리의 영성은 심령만 거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영성은 내가 가진 돈도 거룩해야 합니다. 내 몸이 하나님 앞에 드려졌다면 내가 갖고 있는 보물도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영적으로 신령합니까? 그렇다면 내가 갖고 있는 재산도 영적으로 신령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시간 바치는 것도 거룩하지요? 동시에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보물도 거룩해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따로 구별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 거룩하고 영적인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이 마당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들고 섬기도록 특권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자기의 교회를 이루어서 영원토록 그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세상 사람 앞에 진정한 보물은 하늘에 쌓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삶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주시는 것 만큼 하나님이 주시면 주시는 것 만큼 우리의 중요한 보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쌓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요, 영원히 남는 삶입니다.

 

꼭 알아두십시오. 돈을 사랑해 보십시오. 나중에는 비참해 집니다. 돈을 하나님으로 섬겨 보십시오. 남는 것은 내 마음의 공허함 밖에 없습니다. 역사를 읽어 보던지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부자들을 보던지 이 세상에서 물질을 가지고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얼마나 비참해지는가. 그들이 돈 때문에 향락을 누리면 누릴수록 얼마나 비극적인 인간이 되는가를 우리는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보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섬기면 섬길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집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하늘의 축복들을 우리 가슴에, 우기 가정에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이 사실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부르고 싶은 찬양이 하나 있습니다.

 

/주 내 맘에 모신 후에 날 주장하시네 예수님 우리 마음에 모시고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우리 예수님 섬기면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이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에게 우리의 보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분만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고 섬기지 마십시오. 찬양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귀한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주 내 맘에 모신 후에 날 주장하시네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사랑할수록 주 사랑해 매일 맘 속에 기쁨 넘치네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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