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의 복/ 시편 1:1~6
오늘은 세계의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신 것을 특별히 감사하고, 지금도 이 세계에 성경을 반포할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주신데 대해 감사하고, 또 아직 성경을 손에 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성경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하는 성서주일입니다. 이런 주일을 맞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금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대한성서공회에서 보급한 성경 수는 95만부를 약간 웃돕니다. 거의 1년에 1백만 부가 보급된다는 말입니다. 작년에 비해 40%이상이 증가한 숫자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구입해서 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성서공회가 금년 한해 동안 보급한 총 성경 부수는 2,500만 권을 넘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2,500만 권의 성경이 팔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그만큼 전해졌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성경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것은 성경이야말로 영원한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셨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는 말씀이 절대로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치문제도 중요합니다. 경제문제도 중요합니다. 교육이나 사회 전반의 문제가 큰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는 데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빈자리를 정치, 경제, 철학이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인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9월 달 미국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갑자기 사람들이 성경을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내 작년 대비 42%이상의 성경이 판매되었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말씀 앞으로 나올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 말씀을 멀리 떼어 놓으면 영혼이 굶어서 결국은 우리의 신앙마저도 뿌리 뽑히고 맙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이 지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긴밀하고 ᄌ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은 절대로 낙오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어떤 탈이 생기면 신앙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미 경험하신 분도 있겠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텐데, 누구나 예수를 처음 믿고 얼마 지나면 성경과 첫사랑에 빠집니다. 밤낮으로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안 읽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삼매경에 빠져버립니다. 다른 책을 보기도 싫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내 속에 가득한 성경 이야기만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이 나의 진실한 애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도 한 5~6년 동안 그런 상황에 있었는데 참 황홀했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기쁨이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첫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첫사랑도 식어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첫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 때나 한평생 동거하면서 꾸준히 살아가는 느긋한 사랑이 있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사랑보다 은근한 사랑,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우리와 성경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성경을 정신 없이 읽고 좋아서 들고 다녔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근히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이 식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은근히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자는 어떤 자일까요? 시편 1편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성경말씀을 은근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늘 유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구약시대나 초대교회시대는 우리와 형편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 당시엔 책이 없었으므로 성경을 책으로 들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로 성전이나 회당에 가서 예배드릴 때 제사장이 들려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는 그 중 기억되는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묵상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시대 성도들의 태도였습니다.
신약시대 역시 초대교회에 성경이 없어 주로 모여서 예배드릴 때 설교자가 들려주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을 잘 간직한 다음, 집에 돌아가서 기억나는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고 묵상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들고 다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음에 담고 다니는 말씀에 익숙했지만 우리는 손에 들고 다니는 성경에 익숙합니다. 어느 것이 마음으로 성경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은혜가 더 많겠습니까? 저는 초대교회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들고 다닌다는 그것 때문에 성경을 마음에 담는 일에 너무나 많이 등한히 하곤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펴서 읽으면 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 넣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약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고, 마음에 기억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한 걸음 더 앞서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은 마음에 담고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 그 묵상 자체가 하나님과의 대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랜 철학적, 신학적,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 철학자 플라톤, 그는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 자체는 영혼이 보유하고 있는 내면의 대화이다." 생각하는 것, 묵상하는 것은 일종의 언어행위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묵상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철학적인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던 위대한 교구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거기에 기독교적인 사상을 첨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담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대화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 묵상 자체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요,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와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되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뜻과 생각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즐거워하면서 깊이 묵상하는 순간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묵상한 말씀 가운데 내 마음과 영혼에 깊이 파고들어 오는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 드리면 저는 지금 계속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8장 6절 말씀이 제 마음속에 들어와서 떠나질 않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이 말씀이 제겐 이렇게 들렸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옥한흠, 네가 하나님의 손에 있느니라." 따라서 자연히 자주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서 내 마음에 뭔가 계속 전달되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적용하는 데만 신경 쓸 위험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배운 다음 사생활에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성경을 내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도 우리가 소중히 다루어야 될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다니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히 멀리 두고 살고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 중 약 52% 이상이 다음 예배 시간에 나올 때까지 성경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배 시간에만 성경을 펴보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 시간에 안 나오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만, 한 주간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민하면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실천하면 복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자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두고 '형통하다'고 말할까요? 저는 119편과 연결해서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누리는 형통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들을 수 백절에 걸쳐 나열해 놓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여기에서 발견한 내용 중 세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거룩함에 형통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라고 시편 1장 1절은 말씀합니다. 죄인과 가까이 사귀지 아니하며, 죄를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지키는 것을 일컬어 거룩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거룩함에 실패해버리면 아무리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이미 물이 새는 신앙생활입니다. 은혜를 간직할 수 없게 됩니다. 죄와 가까이 하고, 죄를 짓고, 잘못된 생활에 빠지면 한동안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일은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거룩을 지키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시편 119편 11절에 나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을 조금 바꾸면 '혹시 내가 하나님께 죄 지을까 두려워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나이다.' 내가 죄짓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그 결과 이 시편 기자는 죄를 짓는 생활에서 자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거룩함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할 때 옵니다.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떤 도둑이 여자 성경학교를 털기 위해서 밤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무슨 돈이며 값나가는 것을 갖고 있겠습니까? 막상 들어가보니 들고 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벗어놓은 옷들을 주섬주섬 들고 그냥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옷을 하나 하나 털어봤습니다. 행여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돈은 안 나오고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궁금해서 펴 봤더니,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방 얻어 맞은 듯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라는 것이구나.' 그런데 그 다음부터 도둑질을 할 때마다 항상 그 말씀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 것이오.' 그리고는 결국 그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 뒤 성경책을 계속 읽다가 10년 후에 그 사람도 성경학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성경 말씀을 일단 받아들이고 마음에 한번 담으면 그것이 방패막이가 되어 나쁜 짓을 못하도록 계속 작용하는 것을 봅니다.
하물며 성경으로 중생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그 말씀은 모든 더러운 죄악의 폐수를 막는 방수 벽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못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리라.'(마6:24) 말씀을 담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엉뚱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는 말씀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젊은이가 어떻게 함부로 좋지 못한 것에 자꾸 관심을 갖고 빠져 들어가겠습니까?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아니하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는 말씀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우리는 거룩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에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는 이유도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십시오.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이 나로 하여금 죄를 거부하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고, 죄로부터 오는 모든 해악된 것들을 다 멀리 하게 만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위로를 받는 형통입니다. 시편 119편 5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0절,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인생을 살면서 곤란한 일들을 만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듯한 절망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구나 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위로합니다. 나에게 능력을 줍니다. 나로 하여금 긍지를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면 위로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위로가 풍성하게 됩니다.
어제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를 하나 소개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무역의 날에 500만 달러 수출 탑, 100만 달러 수출 탑을 휩쓴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대명무역상사를 경영하는 김용순 사장이라는 분인데, 참 믿음이 좋은 집사님입니다. 섬유 원단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섬유 제조업은 사양길에 있는 사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업을 잘했는지 수출 탑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사업을 성공시킨 비결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너무나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씁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서 샘솟는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사업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40대 나이에 지난 7년 동안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4시간 동안 성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써 8권이나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쓰는 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교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성경을 쓰다 보면 천지가 내 것 같아 집니다. 필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고,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시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겁나지 않고, 사업하면서 자금난이 나빠져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엔 일이 쉽게 잘 풀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의 형통입니다. 힘을 잃어버리고 앉아 있으면 말씀을 통해서 그를 붙들어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고 사람이 두려우면 누구든지 담대하게 대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고 사람을 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경을 필사하는 분이 10만 명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쓰든, 읽든, 외우든 좋습니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마음에 담고 주야로 묵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에게 힘을 주시고 치유하시고 나로 하여금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아무도 흔들지 못하도록 강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이런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직접적인 도움도 안 되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읽으십시오. 내가 이해하든지 이해하지 못하든지, 내 마음에 들어오든지 들어오지 않든지 간에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어 내려가면, 그 가운데 어떤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눈을 떠도 안 잊어버리고 눈을 감아도 안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주야로 묵상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지혜를 얻는 형통입니다. 시편 119편 97절, 9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주의 복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세상을 살면서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가 없어 안타까워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길이 옳은지, 어느 길이 틀린 지를 내 지혜로 판단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얼마나 절실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스스로 지혜를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어려운 기로에서 지혜를 얻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잠언 3장 18절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24장 3절은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라고 말씀합니다. 돈으로 집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집안을 세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지혜가 중요합니다. 지혜는 경험이나 세상의 모든 학문, 또는 우리가 존경하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지혜, 보배처럼 값진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습니다.
한 예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써서 아주 유명해진 작가 조창인의 실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이제는 소설만 써야 되겠다.'고 결단하고는 96년도에 전업한 작가입니다. 처음에 한두 권 소설을 썼을 때는 그런대로 잘 팔려서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세네 권 정도 책을 썼을 때 이상하게 책이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점점 부수가 떨어지고 나중에는 제로상태까지 미끄러졌습니다. 작가로서의 길을 걸게 되었는데 자기가 쓴 책이 안 팔리자 한동안 좌절과 번민을 거듭하면서 복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치의 병을 안고 있는 아들과 씨름하면서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그 친구의 형편을 옆에서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을 소설로 한번 그려보자.' 이렇게 해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아버지가 급기야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데까지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무리해야 될 지 도무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도도 하고 부르짖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생각은 허공을 헤매고 있는데, 출판사와 약속한 날짜는 자꾸 다가와 피를 말리는 진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날 읽은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수난의 장면이 담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고 말없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하는 모습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번쩍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영감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것처럼 소설 마무리를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완전히 죽어서 희생하는 것으로 끝맺어라'는 착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설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가면서 '한 만 권만 팔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진 어려운 때에 생각 이상으로 140만 권이나 팔리게 된 것입니다. IMF 이후에 실직을 당한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마음을 태우고 고생을 하는 사회적 상황과 맞아 떨어져 많은 아버지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이라도 당장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형편을 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놓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지혜를 주십니다. 성경은 지혜의 보고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이 솔로몬에 대해서 좀더 깊이 읽고 묵상을 했더라면 저렇게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는 않을 텐데.' '저 사람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연구하고 배웠더라면 저렇게 어리석은 인생 결말을 맺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배운 지혜를 마음에 담고 그 지혜를 활용하면 절대로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게 않습니다.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할 수 있을까요? 각자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을 찾으십시오. 열심히 읽는 것입니까? 열심히 테잎을 듣는 것입니까? 열심히 QT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처럼 열심히 성경을 쓰는 것입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자기에게 좋은 방법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씀이 주야로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보니 지금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구나!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지. 이 말씀, 이 음성을 들으면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을 꺼야. 거룩함의 형통, 위로의 형통, 또 지혜의 형통을 누릴 수 있어.' 얼마나 우리 모두가 복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의 음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죄만 짓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위로와 힘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는지, 눈 앞에 캄캄하고 암담할 때 지혜로운 아이디어나 충고를 얻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십시오. 바로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어 있는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날마다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십시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성공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를 살리게 하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담고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면에 형통한 거룩한 주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주님의 말씀을 너무 멀리 두고 살았다고 자책 받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면, 오늘부터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이 말씀을 사랑하는 귀한 주의 자녀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형통함에 복 받은 주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다른 사람까지 기쁜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세계의 교회가 함께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신 것을 특별히 감사하고, 지금도 이 세계에 성경을 반포할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주신데 대해 감사하고, 또 아직 성경을 손에 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성경을 전해줄 수 있을까 하고 기도하는 성서주일입니다. 이런 주일을 맞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금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대한성서공회에서 보급한 성경 수는 95만부를 약간 웃돕니다. 거의 1년에 1백만 부가 보급된다는 말입니다. 작년에 비해 40%이상이 증가한 숫자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구입해서 보고, 또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성서공회가 금년 한해 동안 보급한 총 성경 부수는 2,500만 권을 넘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2,500만 권의 성경이 팔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그만큼 전해졌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성경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것은 성경이야말로 영원한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셨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는 말씀이 절대로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치문제도 중요합니다. 경제문제도 중요합니다. 교육이나 사회 전반의 문제가 큰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는 데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빈자리를 정치, 경제, 철학이 채워 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인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9월 달 미국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갑자기 사람들이 성경을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내 작년 대비 42%이상의 성경이 판매되었습니다.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자 말씀 앞으로 나올 수 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자라야 합니다. 이 말씀을 멀리 떼어 놓으면 영혼이 굶어서 결국은 우리의 신앙마저도 뿌리 뽑히고 맙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이 지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긴밀하고 ᄌ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신앙은 절대로 낙오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어떤 탈이 생기면 신앙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미 경험하신 분도 있겠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텐데, 누구나 예수를 처음 믿고 얼마 지나면 성경과 첫사랑에 빠집니다. 밤낮으로 성경을 들고 있습니다. 안 읽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삼매경에 빠져버립니다. 다른 책을 보기도 싫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내 속에 가득한 성경 이야기만 먼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이 나의 진실한 애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저도 한 5~6년 동안 그런 상황에 있었는데 참 황홀했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기쁨이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첫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첫사랑도 식어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첫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결혼하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병들 때나 한평생 동거하면서 꾸준히 살아가는 느긋한 사랑이 있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사랑보다 은근한 사랑,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부부생활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우리와 성경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성경을 정신 없이 읽고 좋아서 들고 다녔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근히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이 식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은근히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자는 어떤 자일까요? 시편 1편에서 잘 표현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성경말씀을 은근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늘 유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구약시대나 초대교회시대는 우리와 형편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 당시엔 책이 없었으므로 성경을 책으로 들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로 성전이나 회당에 가서 예배드릴 때 제사장이 들려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는 그 중 기억되는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묵상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시대 성도들의 태도였습니다.
신약시대 역시 초대교회에 성경이 없어 주로 모여서 예배드릴 때 설교자가 들려주는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을 잘 간직한 다음, 집에 돌아가서 기억나는 말씀을 마음에 되새기고 묵상하면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들고 다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음에 담고 다니는 말씀에 익숙했지만 우리는 손에 들고 다니는 성경에 익숙합니다. 어느 것이 마음으로 성경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은혜가 더 많겠습니까? 저는 초대교회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들고 다닌다는 그것 때문에 성경을 마음에 담는 일에 너무나 많이 등한히 하곤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펴서 읽으면 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 위해서 마음 속에 넣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약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고, 마음에 기억한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한 걸음 더 앞서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은 마음에 담고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 그 묵상 자체가 하나님과의 대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랜 철학적, 신학적,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 철학자 플라톤, 그는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 자체는 영혼이 보유하고 있는 내면의 대화이다." 생각하는 것, 묵상하는 것은 일종의 언어행위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묵상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철학적인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던 위대한 교구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거기에 기독교적인 사상을 첨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담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대화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 묵상 자체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요,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와 끊임없이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끊어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되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있는 뜻과 생각과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즐거워하면서 깊이 묵상하는 순간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묵상한 말씀 가운데 내 마음과 영혼에 깊이 파고들어 오는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 드리면 저는 지금 계속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8장 6절 말씀이 제 마음속에 들어와서 떠나질 않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이 말씀이 제겐 이렇게 들렸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옥한흠, 네가 하나님의 손에 있느니라." 따라서 자연히 자주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서 내 마음에 뭔가 계속 전달되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적용하는 데만 신경 쓸 위험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배운 다음 사생활에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성경을 내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도 우리가 소중히 다루어야 될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다니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히 멀리 두고 살고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 중 약 52% 이상이 다음 예배 시간에 나올 때까지 성경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배 시간에만 성경을 펴보는 것입니다. 물론 예배 시간에 안 나오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만, 한 주간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고민하면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실천하면 복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자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두고 '형통하다'고 말할까요? 저는 119편과 연결해서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누리는 형통에 대해 알아 봤습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들을 수 백절에 걸쳐 나열해 놓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여기에서 발견한 내용 중 세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거룩함에 형통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라고 시편 1장 1절은 말씀합니다. 죄인과 가까이 사귀지 아니하며, 죄를 용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지키는 것을 일컬어 거룩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거룩함에 실패해버리면 아무리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이미 물이 새는 신앙생활입니다. 은혜를 간직할 수 없게 됩니다. 죄와 가까이 하고, 죄를 짓고, 잘못된 생활에 빠지면 한동안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일은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거룩을 지키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시편 119편 11절에 나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을 조금 바꾸면 '혹시 내가 하나님께 죄 지을까 두려워서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나이다.' 내가 죄짓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그 결과 이 시편 기자는 죄를 짓는 생활에서 자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거룩함의 형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할 때 옵니다.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떤 도둑이 여자 성경학교를 털기 위해서 밤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무슨 돈이며 값나가는 것을 갖고 있겠습니까? 막상 들어가보니 들고 갈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벗어놓은 옷들을 주섬주섬 들고 그냥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옷을 하나 하나 털어봤습니다. 행여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돈은 안 나오고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궁금해서 펴 봤더니,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방 얻어 맞은 듯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라는 것이구나.' 그런데 그 다음부터 도둑질을 할 때마다 항상 그 말씀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 것이오.' 그리고는 결국 그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 뒤 성경책을 계속 읽다가 10년 후에 그 사람도 성경학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성경 말씀을 일단 받아들이고 마음에 한번 담으면 그것이 방패막이가 되어 나쁜 짓을 못하도록 계속 작용하는 것을 봅니다.
하물며 성경으로 중생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그 말씀은 모든 더러운 죄악의 폐수를 막는 방수 벽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못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리라.'(마6:24) 말씀을 담고 사는 사람이 어떻게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엉뚱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는 말씀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젊은이가 어떻게 함부로 좋지 못한 것에 자꾸 관심을 갖고 빠져 들어가겠습니까?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아니하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는 말씀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우리는 거룩에 승리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에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는 이유도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채우십시오.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이 말씀이 나로 하여금 죄를 거부하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고, 죄로부터 오는 모든 해악된 것들을 다 멀리 하게 만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위로를 받는 형통입니다. 시편 119편 5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0절,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인생을 살면서 곤란한 일들을 만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듯한 절망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도무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구나 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위로합니다. 나에게 능력을 줍니다. 나로 하여금 긍지를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자로 만듭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묵상하면 위로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위로가 풍성하게 됩니다.
어제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를 하나 소개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무역의 날에 500만 달러 수출 탑, 100만 달러 수출 탑을 휩쓴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대명무역상사를 경영하는 김용순 사장이라는 분인데, 참 믿음이 좋은 집사님입니다. 섬유 원단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섬유 제조업은 사양길에 있는 사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업을 잘했는지 수출 탑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사업을 성공시킨 비결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너무나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씁니다. 성경 필사를 하면서 샘솟는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사업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40대 나이에 지난 7년 동안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4시간 동안 성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써 8권이나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을 쓰는 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았던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교만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성경을 쓰다 보면 천지가 내 것 같아 집니다. 필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고,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시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겁나지 않고, 사업하면서 자금난이 나빠져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엔 일이 쉽게 잘 풀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의 형통입니다. 힘을 잃어버리고 앉아 있으면 말씀을 통해서 그를 붙들어 일으켜주시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고 사람이 두려우면 누구든지 담대하게 대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고 사람을 대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경을 필사하는 분이 10만 명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쓰든, 읽든, 외우든 좋습니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처럼 마음에 담고 주야로 묵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면,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에게 힘을 주시고 치유하시고 나로 하여금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아무도 흔들지 못하도록 강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이런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직접적인 도움도 안 되는 사람들만 상대하려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읽으십시오. 내가 이해하든지 이해하지 못하든지, 내 마음에 들어오든지 들어오지 않든지 간에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어 내려가면, 그 가운데 어떤 말씀이 내 마음에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눈을 떠도 안 잊어버리고 눈을 감아도 안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주야로 묵상하는 말씀이 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지혜를 얻는 형통입니다. 시편 119편 97절, 9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주의 복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세상을 살면서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가 없어 안타까워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길이 옳은지, 어느 길이 틀린 지를 내 지혜로 판단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얼마나 절실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스스로 지혜를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어려운 기로에서 지혜를 얻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잠언 3장 18절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잠언 24장 3절은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라고 말씀합니다. 돈으로 집안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집안을 세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지혜가 중요합니다. 지혜는 경험이나 세상의 모든 학문, 또는 우리가 존경하는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지혜, 보배처럼 값진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습니다.
한 예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써서 아주 유명해진 작가 조창인의 실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이제는 소설만 써야 되겠다.'고 결단하고는 96년도에 전업한 작가입니다. 처음에 한두 권 소설을 썼을 때는 그런대로 잘 팔려서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세네 권 정도 책을 썼을 때 이상하게 책이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점점 부수가 떨어지고 나중에는 제로상태까지 미끄러졌습니다. 작가로서의 길을 걸게 되었는데 자기가 쓴 책이 안 팔리자 한동안 좌절과 번민을 거듭하면서 복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치의 병을 안고 있는 아들과 씨름하면서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그 친구의 형편을 옆에서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병든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을 소설로 한번 그려보자.' 이렇게 해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아버지가 급기야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각막을 기증하겠다는 데까지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어떻게 이 소설을 마무리해야 될 지 도무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도도 하고 부르짖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생각은 허공을 헤매고 있는데, 출판사와 약속한 날짜는 자꾸 다가와 피를 말리는 진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날 읽은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수난의 장면이 담긴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짊어지고 말없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희생하는 모습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번쩍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영감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것처럼 소설 마무리를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완전히 죽어서 희생하는 것으로 끝맺어라'는 착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설을 마무리를 했습니다. 다 쓴 원고를 출판사에 들고 가면서 '한 만 권만 팔렸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진 어려운 때에 생각 이상으로 140만 권이나 팔리게 된 것입니다. IMF 이후에 실직을 당한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마음을 태우고 고생을 하는 사회적 상황과 맞아 떨어져 많은 아버지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 소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면 밑바닥에 떨어진 사람이라도 당장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형편을 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놓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지혜를 주십니다. 성경은 지혜의 보고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이 솔로몬에 대해서 좀더 깊이 읽고 묵상을 했더라면 저렇게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는 않을 텐데.' '저 사람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연구하고 배웠더라면 저렇게 어리석은 인생 결말을 맺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배운 지혜를 마음에 담고 그 지혜를 활용하면 절대로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게 않습니다. 실패자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할 수 있을까요? 각자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을 찾으십시오. 열심히 읽는 것입니까? 열심히 테잎을 듣는 것입니까? 열심히 QT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처럼 열심히 성경을 쓰는 것입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자기에게 좋은 방법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씀이 주야로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보니 지금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구나!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지. 이 말씀, 이 음성을 들으면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을 꺼야. 거룩함의 형통, 위로의 형통, 또 지혜의 형통을 누릴 수 있어.' 얼마나 우리 모두가 복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의 음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죄만 짓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위로와 힘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는지, 눈 앞에 캄캄하고 암담할 때 지혜로운 아이디어나 충고를 얻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십시오. 바로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어 있는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날마다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십시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성공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를 살리게 하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담고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우리가 모든 면에 형통한 거룩한 주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주님의 말씀을 너무 멀리 두고 살았다고 자책 받는 형제 자매들이 있다면, 오늘부터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이 말씀을 사랑하는 귀한 주의 자녀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형통함에 복 받은 주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다른 사람까지 기쁜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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