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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죄와 의지의 자유

by 【고동엽】 2010.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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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의지의 자유

 


존 칼빈

 

1. 죄의 노예가 된 의지


선한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으며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가장 비참한 필연성에 포위당하여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배워온 인간은 자기에게 결핍한 선과 잃어버린 자유를 갈망하도록 훈육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에 합당치 않은, 일상적이고 외부적인 것을 그들은 대체로 인간의 자유 결정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 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영적 중생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학자들이 자유의지를 취급할 때 그들의 첫째 관심은 자유의지가 사회활동과 외부적 행동해 대해서 가지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는 능력에 있었다. 후자가 주요 문제라고 나는 인정하나 전자를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
사람이 은총의 도움과,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중생할 때 받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의 도움 없이는 선행을 위한 자유의지를 소유하지 못한다. 사람이 자기의 뜻대로 선이나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강요 당함없이 자진해서 악을 행한다는 의미에서 사람은 자유의지를 소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의지를 노예의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어거스틴은 분명히 말하기를 인간의 의지는 성령 없이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자유의지가 은총의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고서 그는 자유의지를 은총 없이 자기 자신에게 참칭(僭稱)하는 자들을 날카롭게 비난했다.

인간속에 있는 자연적 재능은 죄로 인하여 부패되었고 초자연적 재능은 전적으로 박탈되었다는 어거스틴에서 차용한 공통된 관찰을 나는 옳다고 승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악을 구별하거나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자연적 재능은 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 성이 전적으로 파손 될 수는 없다. 단지 그 일부분이 약하게 되고 부패해서 결함과 페허를 보여 주는 것 뿐이다. 가령 부패되고 퇴화(退化)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본질 속에는 섬광이 계속해서 반짝거린다. 이것은 사람이 이성적 피조물이라는 것을 증거하며, 그것이 바로 야수와는 다른 점이다. 사람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빛은 많은 무지로써 덮여 있으므로 그것은 아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의지는 인간의 본질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패되고 무질서한 욕망에 속박되어 있다. 그 결과 어떤 종류의 선이라도 동경할 수 없게 되었다.
2. 인간의 전적 타락

인간은 매우 불쌍한 피조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그것을 증명하기도 쉽다. 주님의 논점은 사람은 육이므로 중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안에 있는 것 가운데 영적인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이 논법에 의하면 정욕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중생 이외에는 영적인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우리가 본성에서 얻은 것은 정욕적이다.

그와 동시에 마음은 "모든 것보다 더 사기적이며 극도로 사악한 것이다(행17:9절)라고 할 때 그 마음에 대한 저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인류의 교만을 분쇄하려고 할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고백으로써 했다. 그는 어느 한 시대의 타락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의 영구적 부패성을 비난한다. 상기한 구절에 나타나는 바울의 의도는 인간히 회개하도록 단순히 비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불가피한 참화에 압도당하고 있다는것과 하나님의 자비로써 그 상태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로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본성의 부패 속에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위한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본성을 순결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그의 활동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섭리로써 인간의 본성이 내부를 깨끗케 하지 않고 외부만 깨끗케 하려는 좋지 않은 성격을 제어하신다. 그러므로 의지가 극도로 죄의 노예가 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힘으로는 분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바칠 수도 없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별이다. 즉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패되었으므로 억지로 원치 않으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범죄한다. 폭력적인 강요나 외부적인 힘으로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열의 운동으로써 죄를 범하게 된다. 그의 본질의 타락성이 이와같으므로 악을 향하는 길 이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다.


3. 인간 안에 있는 선은 하나님의 은총에 속한다.


만약 하나님이 바른 것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면 이 변화는 돌이 육으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의지에 속한 것은 다 없어지고 그것을 대신하는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또한 어거스틴이 가르친것과 같이 은총이 모든 선행(善行)에 앞서며, 의지가 은총을 선도(先導)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추종하며, 그의 인도가 아니라 그것에 반려(伴侶)가 된다고 할 것이다. 은총이 그것을 선행하므로 그것을 수행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까지 나는 용인한다. 그러나 개혁은 주의 활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은총의 인도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인간의 일로 돌려서는 안된다.

모든 선의 기원은 다른 존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만 나온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의지가 선에 향하는 경향은 선택받은 사람에게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선택의 원인을 인간 안에서 찾아서느 안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 안에 선한 의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한 동일한 섭리에서 나온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4.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죄에게 너무나 심하게 속박되어 있으므로 자기 자신의 본성으로써는 선에 향하는 노력을 할 수 없으며 영감을 받을 수도 없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의지를 기수(騎手)의 지시에 복종하는 말에 비교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악마를 기수에 비교하였다.
성령의 통치에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주(主)는 자기의 의로운 판단으로 사탄의 지배하에 내어 주신다. 사악한 자의 맹목성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모든 극악성은 사탄의 일이라 한다. 이 일의 원인은 인간의 의지 안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 이 인간의 의지에서 모든 악의 뿌리가 나오며 그 안에 사탄의 왕국의 기초가 있다. 그것이 즉 죄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자들을 향하여 두가지 면으로 역사하신다. 내적으로는 성령을, 외적으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자기의 영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비추시고 사랑과 의를 지향하게 하시고,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든다.

 

그의 말씀으로는 다 같은 혁신을 원하고 추구하고 획득하도록 그들을 자극한다. 이 두 방면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능력을 효과있게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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