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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로이드 존스
사도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대적자는 더욱 기습을 가하여 쳐들어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 분명히해봅시다. 우리는 매우 열정적으로 은사를 구하고 사모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은사를 구하는데 잘못된 의도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것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은사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우리... 가 이것을 교회의 덕을 세우기보다는 이기적인 동기나 단순히 우리 자신을 놓이려는 욕망으로 구한다면 우리는 이미 잘못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 첫 번째 질문을 함으로써 시작해야만 합니다. “나는 왜 이 은사를 사모하는가? 나의 동기와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면 여러분은 이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흥분되는 체험이나 스릴을 맛보기 위하여 구합니까? 여러분은 이미 잘못되었습니다.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동기는 주를 더욱 알아가는 것과 그에게 영광과 찬양을 돌리도록 사역하기 위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동기를 담사했으므로 저는, 최근에 제가 읽은 어떤 가르침을 들고자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는 가장 빠른 방식은 방언을 받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그들은 “만일 여러분이 성령세례를 원한다면 방언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여러분을 성령세례로 인도할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방언의 은사도 성령의 나타남의 하나이라는 신약성경의 전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방언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을 여러분이 소유했다면 방언의 은사는 그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물론, 지나친 열심이며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끌어드리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습니까? 사도와 120여 성도는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했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 후에 방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의 다른 예들도 모두 동일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가르침은 방언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며 방언은 가장쉽고 간단한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방언을 통하여 여러분이 성령의 세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요, 육신이 개입하여 우리가 성령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일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제시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 성령의 은사를 산출하거나 유발시키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잘못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은 현재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성령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성령으로 세례를주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이도 아닌 주님 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주님은 어떤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성령 또한 우리의 어떠한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도우려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어려움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는 방식에 관하여,현재에 잘 알려진 가르침을 취해보십시오. 여기 우리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증거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만 하는 최상의 것과 성령세례를 받기를 열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집회 후에 남아 있으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는 한 긴장을 풀고 여러분의 몸을 편안하게 합니다. 그 후에 우리는우리 주님이 다락방에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제자들에게불어 넣으셨다는 것과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들 듣습니다. 이제 이 가르침의 다음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주님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불어 넣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자 이것이 여러분이 해야하는 모든 것입니다. - 이렇게 이완된 상태에서, 깊게 호흡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동안여러분은 성령의 세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쉬고, 깊게 들이 마시고 ... 계속해서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하는 동안 여러분은 성령을 여러분 속에 호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가르쳐졌습니다! 신약성경의 어디에서 이것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은 단순한 심리학적 가르침이며 암시작용일뿐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심리학적인 방식이며, 여러분도 심리학자들이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텔레비전에서인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조롱하는 가운데, 비난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공격을 할 수 있는근거는 바로 이러한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서 이 가르침이 단순히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순전히 육신적인 것임을 밝히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긴장을 풀고 깊게 호흡하라거나 어떤 것을 행하라는 것을 들었던 사람을 신약성경 어디에서 발견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발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갑자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집안 사람들이 앉아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심리학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따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라는 분별없이 추측합니다.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최면에 걸리거나 자신들을 최면을 시키고 있고 혹은, 정신착란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일렀듯이 강신술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심리
학적 조건은 이런 현상들을 산출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돕기 위하여 어떤 것을 행하기 시작하는 순간,여러분은 이미 기독교인의 삶에서 열 수 있는 어떤 것보다가장 위험한 문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또다른 동일한 예증을 들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찾아와 그가 기도하는 동안 성령이 갑자기 임해서 그가 자신 밖으로 들어 올려져서 자신이 이상한 방언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그의 삶에서 특별한 경험에 관하여 말했을 때, 만일 그가 이것은 그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이것은 매우 희귀하게만 일어났다고 말한다면, 저는 기꺼이 그를 믿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저는 그것을 진실한 체험으로써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와 같은 어떤 것에 대해 읽을 때(저는 가끔 여러 저널들에서 그러한 것을 읽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입니다. 방언을 말하고자 합니까? “좋아요.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턱과 혀를 맡기고 움직여 보십시오.” 형제들이여, 이것은 웃기는 문제가 아니라 매우 진지한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러면 소리를 내기 시작하십시오.
어떤 종류의 소리든지 지각이나 의미가 그 안에 있듣지 없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서 그 자체로 주어진 어떠한 소리든지 내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계속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계속해서 하신다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방언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단순한 답변은 여러분은 아마 그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과 결코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이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어떤 암시라도 신약성경에 있습니까? 신약성경에서 일어난 것은 사람이 성령세례를 받고서, 자신이 방언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분명히 성령의 은사이며, 성령은 능력이 충만한 분입니다.
그는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필요로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최면에 걸리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포기하고 내던지며, 자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여러분이 하라고 들은 것처럼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이 사람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동기에 관해서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은 정직하고 그들의 동기는 선하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은 단순히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아마도 그들 자신을 심리학자들의 손 외에도 심지어 악령들의 손에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어떤 것도행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이 은사들을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사도는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려 한다면, 저는 그에게 어떤 도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 마치 성령은 결정할 수도 본질적으로 그리고, 그 스스로 행할 수도 없다는 듯이-사람들이 행하도록 가르침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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