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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목사 장로 집사가 아니어서 넘 좋다

by 【고동엽】 2009. 7. 9.
 

                              목사 장로 집사가 아니어도 좋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향기가 아닌 고급관료적 냄새가 물씬 풍기고 다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곧 목사이다. 목사는 어디를 가나 목사 명함 내밀기를 좋아하고 성석에 앉기를 좋아하고 있다. 목사도 등급이 있어서 교회크기에 따라 목사브랜드가 차등되어 있고 신학교 졸업연도와 목사안수시기에 따라 선후배가 구분되어 서열이  있기도 하고 교회건물크기, 성도, 헌금매출, 박사학위 유무도 영향을 미친다.

기도원이나 서점이나 교인들이 모인 곳, 어디든 가면 나에게 먼저 묻는 말이 있다. 목사님이십니까? 목사유무의 대답에 따라 자리매김과 예우가 달라지게 된다. 아니라고 하면 그다음에는 장로님이십니까? 내나이 연배가 되면 벌써 장로가 되어도 남을 나이이다. 장로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면 벌써 눈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예로부터 신분사회의 사회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과거 급제와 사시. 행시에 집착하고, 어떤 높은 직위에 연연하고 있다. 대학도 유명세 대학 순으로 신분이 매겨지고 있다. 지금은 구멍가게 주인도 모두가 사장으로 부르고 있어서 서울시내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10명중 8명 정도는 다 뒤를 되돌아 본다.  지금은 모든게 풍요속의 빈곤의 공식이 부합되는 형편이다. 교회 역시 너무 많으면 목사도 너무 많고 장로 역시 많다.  허지만 인플레의 법칙에 따라 교회와 목사들의 생산과잉이 이어지면 그의 권위는 권위가 땅에 추락한다. 비리의 사건속에는 반드시 장로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는 목사가 최고의 계급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그다음 장로가 이사의 직위로 인식되고 있다.  집사는 목사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듯하다. 군대조직에서 보병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어떤 목사는 교회는 독재로 목회하는게 성경적이다 라고 말한다.

이런 권력의 조직과 행태를 볼 때 우리는 복음과는 한참 멀어져 있다는 느낌이든다. 교회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며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속에 이뤄져야 마땅함에도 교회가 죄악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진리가 서서히 침식되어 그 자리에 인간의 공로와  이권이 자리잡아 자신의 종교권력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는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모여든 구원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는 어느새 하나님과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는 종교가 되었고 상술 마케팅의 파워가 교단의 숨은 지침이 되고 찬송가 공회와 성경공회는 막강한 이권의 집합소로 변질되어 임자 없는 돈을 누가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암암리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 모두가 정치목사와 정치장로들로서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돌아가고 있다. 한편 작은교회, 산골의 시골교회에는 그야말로 아골 골짜기와 같은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생보자 수준의 생활로서 즐겁게 목회하고있는  목사들도 있는 반면  부자교회 부자 아버지를 잘 만난 탓에, 앞길이 평탄하고 상술 감각과 성공마인드와 마케팅 기법을 목회현장에 절묘하게 접목시켜서 세상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목사들도 많다. 열정의 열매로 복음과는 상관없는 대기업의 사옥과 같은 교회건물을 짓고 그 속에서 세속적인 정치권력의 메카니즘으로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총회장이 되기 위하여 지연과 학연, 혈연들의 총동원과 또 줄서기 위한  파벌을과 선거 비용은 국회의원 선거만큼이나 혼탁한 것은 1억대 이상의 엄청난 금품이 뿌려지는 것으로 보아 익히 알고 있는 실정이다. 명예뿐만 아니라  개인돈도 아닌 교회헌금의 유용으로 일개 인간의 욕망을 위해 동원된다는 것은 교회의 타락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일단 총회장으로 권력을 접수하면 총회의 각종 이권에 따르는 지명권, 임명권을  측근 사람들로 조직하고 그외 신학대학과 교단의 중요한 요직을 다 접수한다고 한다.

일단 정치목사와 정치장로가 되면 담임한 교회는 내몰라 팽개치고 각종 대회에 명함이나 내밀고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하는데 몰두하는데 서두른다. 찬송가 공회나 교단직영 신학대학총장선임을 비롯하여 부활절 등의 연합행사 뒷면에 내재된 사안들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부패한 모습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사회범죄의 유형이 일반화되어 숨어 작동하고 있는 구조는 한국교회의 대다수의 신실한 성도들은 알 리가 없다.

일단 세상이건 교회이건 정치에 맛들이면 사람 부패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국회의원도 그렇지만 교회정치에 맛을 들이고 교권을 잡으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하나님 법은 고사하고 인간사회가 요구하는 윤리, 도덕의식은 실종되고 장사치들의 거래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신앙의 허울은 있어 반드시 예배는 드리고 난후 추잡한 싸움질을 시작 한다.

목사와 장로, 권사가 종의 직분이 아니라 이미 명예로 인식된지 오래이다. 임직식에는 화환, 축하 현수막, 교회 잔치로 온 동네가 떠들썩 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사와 장로, 권사직분은 가장 먼저 섬기는 직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범을 보여야 할 청지기이다. 그런데 청지기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껍데기인 잿밥에만 마음이 가 있는게 문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공생애를 체득, 실천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세상의 실정법과 자연법인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신앙의 정체성이 아닌가? 교회가 달라지면 세상이 변한다고 한다. 즉 이 말은 목사가 변하면 교회가 달라지고, 장로 권사가 달라지면 세상이 변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는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고 했다.

교회는 말 그대로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며 컴퓨터의 CPU(중앙정보처리장치)가 되어야 한다. 빛과 소금이 되는 창조적 집단이 되어야 사회의 등대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종교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인데 지금 우리 사회의 형편을 여기에 대입하여 보면 사회를 탓하기 전에 먼저 교회를 탓하여야 순서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성서에 이어져 오고 있는 종교지도자의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말씀은 아주 희소해 버렸고 반면 부정적이고 책망하고 부도덕적이라는 말은 인터넷으로 너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목사라는 용어 대신 먹사라 하고 평신도를 병신도라고 한다.

어느 목사와 대화를 하다가 < 지금 기독교계를 보면 개혁의 마인드가 천주교가 더 강하여서 천주교가 개신교화 되어가고, 개신교는 거꾸로 천주교화로 되어가고 있다> 는 말에 아주 공감이 간다. 그리고 어느 신부와 대화를 하다가 <기독교의 변천이 유대교에서 천주교로,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등장했는데 이제 개신교에서 또 다른 Re-reformed 교회가 등장할 시기인 것 같다>는 말씀에 무릎을 치며 탄복을 했다. 그렇다. 제3의 개신교가 등장해야 할 종교부패와 죄악의 어둠이 짙은 캄캄한 밤을 지나 새로운 날을 여는 여명의 시기인 것 같다.

내 연배의  친구들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브랜드 목사로, 스타목사로 대기업과 같은 CEO 위치와, 대기업과 같은 매출(헌금수입), 직원(성도수), 해외지사( 브렌치교회, 해외선교) 로 어깨에 힘을 주고 목을 곧게 세우고 다닌다.나는  개인적으로는 목사 장로 집사가 아닌게 퍽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복음의 생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이고 순기능적인 부분도 일부는 있다고 생각한다. 허지만 부정적이고 역기능적인 측면이 더 많이 차지하기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장로가 되려면 천만원 이상의 <장로 권리금>이 있어야 하는데 권사 안수집사도 권리금을 내야 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다. 교회건축을 할때는 필히 직분 바겐세일을 하는 이벤트를 하는 광경을 관찰된다. 장로 얼마 권사 얼마 식으로 일종의 매관매직이 교회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은 새삼스럽지 않는 관례가 되었다.

내가 만약 목사였다면, 장로였다면 이렇게 강도 높게, 폐부 깊숙이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가제는 게편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인 좋은 게 좋다 라는 두리뭉실한 관습상 이렇게 교회개혁에 대한 글을 감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목사였다고 하더라도 이런 저런 루트로 회유, 공갈, 협박을 많이 하였을 터지만 아무런 학연이나 교회적인 연루가 되는 끄나풀이 전혀 없는 무명인 나는 이러한 교회의 부패적인 내용을 들춰내는데 가능하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고 생각되며 교회개혁의 모퉁이 돌을 놓는데 유익한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목사가 아닌게 장로가 아닌게 지금도 후회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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