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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장8절) '예수 아는 지식'아니고 '예수의 지식'이 바르다

by 【고동엽】 2009. 7. 7.
 

 

(빌3장7절~8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장7절~8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8 αλλα μενουνγε και ηγουμαι παντα ζημιαν
ειναι δια το υπερεχον της γνωσεως χριστου
ιησου του κυριου μου δι ον τα παντα
εζημιωθην και ηγουμαι σκυβαλα ειναι
ινα χριστον κερδησω 성경 전체 버전으로 비교합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상함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이 고상함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내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 이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 전부 다 해로 여겼다는 것이다.  '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잘못된 번역이다.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이다. 지식 조금 있는자 치고 자랑하느라 야단 법석 난리를 친다. 그래서 지식있다 자랑하려고 가짜 박사라도 거머쥐려고 야단이다. 그들은 지성(知性) 이란 고상한 깃발 아래 어김없이 광기(狂氣) 에 편승해 오면서 장이 서게 하고 좌판을 깔고 판돈을 챙긴다.

 
위의 원어에서 보듯이 "내가 예수를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예수의 지식"이 고상하다는 것이다.  원어가 그렇게 속격으로 돼 있다. 예수님의 지식이 측량할수 없는 깊고, 높고, 넒어야지 인간의 지식이야 많아져 봤자 다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나 다름없다.

내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고 하면 내 지식이 고상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예수의 지식이 가장 고상함은 내지식이 아니고 예수님의 지식인 것이다. "예수의 지식이"  너무 측량할 수 없음을  발견하니 자기는 그 앞에서 버러지요, 티끌많큼도 값어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평생 죽도록 찬양만 해도 부족하다. 일생동안 주님의 지식을 찬양하기도 부족할 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길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여기서 잃어 버렸다는 말은 피동적으로 그냥 새어 나가는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의 너무나 고상한 지식을 보니 아무 쓰잘데가 없어서 주머니에서 털털 털어 내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ηγουμαι   -'해로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

 

'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υπερεχον -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σκυβαλα  )는 개에게  던지는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무엇을 버렸는가? 오희려 바울이 완전히 내어 버렸던 그것들을 찾으려고 애쓰고 심지어 기도까지 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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