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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이해 〓/원문(히브리어) 바른번역

(시77편11절) '잘못'을 '연약함,슬픔' 으로..

by 【고동엽】 2009. 6. 5.
 

 [시편77편11절]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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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번역]은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슬픔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וָאֹמַר חַלֹּותִי הִיא שְׁנֹות יְמִין עֶלְיֹון׃ 성경 전체 버전으로 비교합니다.

                     '(연약함), '(슬픔)' 을  '(잘못으로)' 번역은 잘못     

 

히브리어 원어 '할아(חלח)는 '약하다.병들다.쇠약하다'는 뜻이다.따라서 위 본문의 잘못이라는 번역은 잘못이다.그래서 연약함(sickness)이 바르다.


지금까지 시인이 절망한 것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약화된 상태에 있어서 자신에게 있었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여기서 연약함 '할로티'는 (חלותי) '죽이다'라는 뜻의 할아(חלח)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본절은 결국 고난으로 인해 시인의 신앙이 죽은것과 같이 매우 미약해 졌음을 고백하는 말이다.

 

 본절은 본 시에서 상황의 전환점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와는 달리 본절을 9절의 연장으로 해석하는데 약간 무리인 듯하다. 왜냐하면  고대  전승에서나, NIV, RSV 등도 9절과 본절을 '셀라'(*     )로 구분하고 있고 또한 시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 전개를 볼 때 마땅히 전환절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연약함이라 - '연약함이라'(* חלותי -할로티)는 '쇠약하다', '병들다'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본 구절에서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어 난해 구절에 속한다.

 

그 가운데 세 견해를 들어보면

 

(1) 믿음과 연관시켜 7-9절의 고뇌가 저자의 연약한  믿음에서 나온 것임을 고백하는 말이라고 보는 견해,

 

(2) 실제 육체적인 질병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심령까지 쇠약하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Walford), (3) 현재의 환난이 하나님의 침묵 때문이고 이것이 저자의 '슬픔'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고통이나 슬픔'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1-9절까지의 시적 분위기나 시인의 심적 상태를 고려해 본다면 (2)와 (3)의 견해가 복합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고 11절 이하를 생각해 본다면 (1)의 견해가 적절하다.
 
   지존자 - 원어로는 '엘룐'(* עֶלְיֹון -가장 높은)이며 이 말이 사용된 것은  족장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 14:22). 원래 이 호칭은 '엘'(*אֵל)의  형용사형으로서 가나안인들의 신(神)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야웨'(* יְהוָה -예화)라는 호칭과 거의 동일시하였다. 특별히 이 명칭은 주로  시에서  나타나는 용어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지칭한다(18:13).
  
   오른손의 해 -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을 나타낼 때(사 48:13), 혹은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89:13;신 33:2)으로 쓰였다.

 

그런데 학자들은 본문에서의 의미를 '기도 응답의 손' 혹은 '하나님의 개입을 나타내는 손'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Tyndale), 두 해석  모두 적절하다. 또한 '해'에 대해서도 해석을 달리한다.

 

어떤 주석가들은 '해'(* שנות -쉬노트)라는 말이 '솨나'(* שָׁנָ֔ה )에서 유래했고 그 어원적인 뜻 가운데는 '변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에 본절을 '오른 손이 나의 고통을 변화시켰다'로  해석한다(Maurer, Hupfeld, Hitzig).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해'(year)로 보는데 그  이유는 히브리인들이 '해'를 묘사할 때 쓰는 '쉬노트'라는 단어가 계절의 변화 등을  일컫는 순환적인 성격을 내포하며(Calvin) 또한 5절에서 같은 어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절에 대한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다면 문장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1) 본절에 '에즈코르'(*אֶזְכֹּר - 나는 기억할 것이다)가 생략되었다고 보는 견해(NIV, R.V., Cheyne), (2)  11절에 '에즈코르'와 동의어인 용어들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본절과 11절을 한 구절로 설명하는 견해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견해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많은 번역본들이 '에즈코르'를 삽입했으며 특히 본 시의 5절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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