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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예화 모음 19편

by 【고동엽】 201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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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겨주시는 은혜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신다. 그중에서 어떤 경우에는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를 보호하신다. 남침례회신학교 총장이었던 W. H. 윗씨트 박사는 바른 주장을 하다가 교단 정치에 밀려 신학교 총장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억울하다는 말 대신에 그는 설교를 이렇게 끝냈다. “나는 남북전쟁 때에 남부군대의 기마병으로 복무했습니다. 밤중에 적진의 정보를 수집해가지고 오다가 적군의 기마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숲속으로 재빨리 숨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칠흑 같은 어두움이 나를 숨겨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랑스럽게 피신시키기도 하시고,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피신시키기도 하실 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피신시키기도 하신다.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던 위더스픈 박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제대로 감사할 수가 있을까요? 오늘 제가 마차를 타고 오는데, 말은 도망가고 마차는 바위에 부딪혀 깨졌는데 이것 좀 보세요. 저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거든요.” 위더스픈 박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마차를 타고 수백 번 그 바윗길을 왕래했지만 한 번도 말이 도망치거나 마차가 깨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보다 몇천 배는 더 감사해야겠군요.”
/조효훈

2. 마지노선

2차 세계대전에 앞서 프랑스는 독일의 공격에 대비한 항구적인 방어진지를 구축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육군장관이던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서 마지노선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는 이 요새를 만들기 위해 1927년부터 10년간 공을 들였고 1차 세계대전 때의 경험을 살려 지세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전차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이중철골벽, 보병을 막기 위한 철조망 지대, 직경 6m의 콘크리트벽 등을 설치했습니다. 발전실 탄약고 작전실 통신선 등도 지하 깊숙이 설치,당시로선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2차대전이 터졌을 때 마지노선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1940년 5월 독일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우회해서 침공, 마지노선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한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견고한 망대가 되십니다.
/이영무 목사(영신교회)

3. 도피성의 의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오살한 자가 죽은 자의 가족에게 보복 사형을 당하는 것을 보호하여 정당한 회중 재판을 받을 때까지 보호하기 위해 여섯 개의 도피성을 만들게 했다(수20장) 그 성들은 장차 '죄 값은 사망'이라는 철칙으로 사형수가 된 우리의 피난처가 될 것에 대한 예표요, 그림자인 것이다. 그 도성들의 이름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① 게데스-성소라는 뜻. 예수는 우리의 정죄 성소. ② 세겜-어깨라는 뜻으로 예수는 잃어버린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선한 목자다. ③ 헤브론-친교라는 뜻으로 예수는 단절된 하나님과 나와의 관례를 이어 사랑의 부자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길이다. ④ 베셀-요새라는 뜻으로 노아의 홍수 때 유일한 구원의 요새는 방주 안 뿐이었는데 그 방주는 예수의 예표였다. ⑤ 라못-높임이란 뜻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높임을 받고 있다. ⑥ 골란-성별이란 뜻으로 예수는 우리를 세상과 정욕과 사단의 오염에서 성별해 주신다.
-예수칼럼 : 김준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4. 도피성이 잘 닦여진 이유

도피성은 사회에 속한 자들 중에서 약자나 곤경에 처한 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법적 장치였다. 공동체 구성원 간에 보복심에 불타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지 않게 하려는 제도이기도 했다(민 35:6-12).
여섯 개의 도피성은 각 지파가 사는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죄인들이 어디서나 가까운 곳으로 빨리 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역시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산지에 있었던 도피성까지의 길은 잘 닦여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알 수 있어야 하고 피하기에 좋은 길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신 19:3).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넓이가 14m나 되었으며 길에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도피성을 통해 실수로 살인한 죄인을 그 죄대로 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 도피성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 피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잘 닦여진 길이고 안내표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완성해놓은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기도: 저의 도피성이신 하나님, 제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엉망이 됩니다. 저를 구원해주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5.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

폭풍이 심할 때는 배를 어느 한 곳에 단단히 붙들어 매두어야 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묶여 있는 한 그 어떤 폭풍도 당신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피난처시요,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당신은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당신의 마음을 주님께 집중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기도: "저희의 피난처시요, 요새이신 주님, 저희가 인생의 폭풍 가운데서 온전히 주님께만 묶여 있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계십니까 ?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 속에 있고, 우리의 두려움은 인간의 이름 속에 있다.

6. 가장 안전한 곳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 성경 공부를 금지시켰습니다. 만일 성경을 공부하다가 잡히면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아키바 랍비는 계속 성경 공부를 시켰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아키바 랍비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배고픈 여우가 강 옆을 걸으며 보니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어부들이 그물을 들고 자기들을 잡으러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맛있는 생선요리를 기대하며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육지로 올라 올래? 내가 안전한 곳을 가르쳐줄게. 어부들이 한 명도 없단다” 이 말을 들은 물고기들이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여우야, 너는 우리에게 이 물속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물고기에게는 위험하여도 물속이 좋은 것처럼 우리는 죽어도 성경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아키바는 말했습니다.
/강문호 목사(갈보리교회)

7.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오래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이리 뛰고 저리 피하고 야단법석이었는데 나이 많은 한 부인성도는 자기 집에 조용히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끝난 후 사람들은 그 노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소동 속에서도 의자에 기쁜 얼굴로 앉아 계실 수가 있습니까?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토록 흔드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생각과 그러는 가운데서도 나를 그의 손안에 안전하게 붙들어 주신다는 생각으로 기쁨에 잠겨 무서워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8. 안전지대

사람들은 보다 안정된 삶, 소위 ‘안전지대’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경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늙어도, 퇴출되어도, 권력에서 밀려나도 막강한 경제력만 있으면 편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금고를 사고, 경비시스템을 설치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위험의 표적입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중 시해된 분이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주위에는 국가 안전의 대명사로 불리는 육군참모총장 대통령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있었으며 말 그대로 안전하다는 안가(安家)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위험한 곳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안전지대(safe zone)를 찾지 말고 신앙지대(faith zone)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라”(시 4:8)

9. 안전한 장소

성경: "네가 만일 환난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잠24:10)
I
하나님의 울타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 항상 모든 재난과 인생의 충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울타리는 가시로 만들어진 울타리일 수 있다. 그리고 주의 사랑의 보호가 때는 재앙의 한 가운데로 투입되는 경우도 있으며, 갈보리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요구일 때도 있다.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가 머물 가장 안전한 곳은
주님의 뜻 안이다. 비록 못에 박혀 피를 흘리는 손바닥의 형상이더라도, 주님의 손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장소다.
-작은 이야기 속 큰 지혜(생명의말씀사)-, 마이크 메이슨

『세상에 그 어느 곳도 안전한 장소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를 은혜 안에 굳건히 서게 하실 뿐입니다.』

10. 견고한 방패

성경: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잠 18:10)

영국의 선교사로 아프리카 선교 및 탐험에 일생을 바친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경험담입니다.
“1855년 11월 20일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우리 140명 일행은 동북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전파자로서 아무도 방패를 갖고 있지 않았다. 방패는 곧 전쟁의 무기로서, 우리가 방패를 갖지 않은 까닭은 어떠한 싸움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이 길을 갈 때에 원주민 무리들이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려 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우리에게 싸울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아차리고서는 곧 돌아가 버리곤 했다. 비록 우리 140명 일행의 손에 방패는 없었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방패로 삼았기에 무사히 제1회 전도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로 피하는 사람은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환난과 시험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견고한 망대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므로 안전하고, 그 크신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시므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11. 내가 바로 너의 피난처라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1892-1978)은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신앙의 거인입니다. 그의 가족 들은 유태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온 가족이 독일의 라벤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수용소에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 때 가족들 중에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코리는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코리 텐 붐은 나치 수용소에서 4개월 간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어둑 컴컴한 바닥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 있었고 옆방에서는 낮밤 구분 없이 질러대는 비명소리는 죄수들의 비명소리 때문에 자신이 고문을 받는 것처럼 두렵고 떨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마치 자신을 짓누르는 벽을 밀어내기라도 하듯이 손을 뻗쳤습니다. 그리고는 공포에 질려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견딜 수 없어요. 이제는 믿음도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미는 걸음을 옮기다 고여 있는 물이 있는 것을 보자 급히 벽의 조그만 구멍으로 달려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 마치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 개미보아라. 바닥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는 숨을 곳으로 달려가지 않느냐. 코리, 너의 약한 믿음을 보지 말아라. 내가 바로 너의 피난처이다. 저 개미와 같이 너는 나에게로 달려오너라.'
" 그녀는 용기를 회복하였고 그 확신으로 수용소 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석방되어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연사로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33년 동안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고난과 기쁨에 관해서 증거하다 1983년 4월 91세 생일날 저녁,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코리 텐 붐은 자신의 연약함을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음을 그의 옥중생활에서 계속 체험하였고 이를 우리에게 전해준 믿음의 거장이라 믿습니다. 믿음이란 지극히 적은 일에서도 주를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라 아닌가 생각합니다.

12. 정면 돌파

자기 이름을 걸고 식당을 경영하는 집사님이 계신다. 한때 식당이 크게 번창하자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가 돈을 횡령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파동이 일면서 손님이 줄고, 공동 투자자들까지 압박을 가해왔다. 막다른 골목에서 도피할 생각도 했으나 기도하는 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문제를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전 재산으로 투자자들의 부채를 일부 갚고, 모자란 부분은 세월을 두고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재신임을 얻는 계기가 되어 다시 가게를 운영, 지금은 모든 부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다.
위기 앞에선 누구나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직과 용기로 난관을 향해 정면 돌파하는 사람은 전화위복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시 46:1)
/정삼지 목사(제자교회)

13. 할버지

할버지는 1년6개월 된 외손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할버지”라고 할 때마다 손녀가 어찌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손녀를 위해 내 방문을 항상 열어 놓는다. 손녀가 아프다며 “할버지” 할 때는 껴안고 기도해서 고쳐준다. 힘에 부치는 물건을 들고 “할버지” 할 때는 안아주고 도와준다. 어른들께 책망받고 울면서 “할버지” 할 때는 껴안고 편을 들어준다. 오히려 아이 앞에서 어른들을 책망하며 위로해준다. 할버지는 손녀에게는 피난처요, 전능자의 이름이요, 바위요, 반석이요, 의사요, 돕는 완전자다. 적어도 할버지를 믿고 할버지를 부르는 손녀에게만은 할버지가 전부다. 비로소 나는 여호와 이름의 의미와 그 이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롬10:13)을 실감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고훈목사(안산제일교회)

 

14. 피난처(Shelter)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만큼 과연 우리에게 편안한 자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 세상은 변하는데 안전한 자리란 가능한 것일까?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까지 가장 철통 같은 영공을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였다고 한다. 최첨단 레이더 장치와 적기를 정확히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를 출발, 소련연방으로 들어와 크렘린궁 상공을 돌다가 붉은 광장에 착륙했을 때 전 세계는 웃고 말았다. 러시아의 철통 같은 영공이 한 청년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혼율 급증은 가장 신뢰할 만한 제도인 가정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안전한가? 교회 성장이라는 신화를 일구어낸 한국 교회지만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 철통 같은 신앙구호가 선포되는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안 맞으면 시기와 험담으로 서로의 마음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신앙의 힘이란 무엇일까?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비로소 안전한 자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다. 소년시절부터 골리앗과의 싸움을 비롯하여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신앙으로 무장된 다윗이다. 그러나 다윗도 이제는 편안하다고 여길 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 여인을 강탈하는 죄를 저지르고 만다. 신분이 안전해도 심령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었는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시 도피생활을 떠난다. 바로 이 때 다윗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산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형통한 왕궁에서가 아니라 고난의 두려운 밤을 지내며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신앙고백을 잉태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자리는 권력의 자리도, 왕궁도, 부의 지위도 아닌 하나님 안에 있다는 발견,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의 힘이 아닐까? 자리나 건물을 지키려 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곱씹어야 할 때다. 하나님 안에 붙어 있으려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세워가신다.
/박신일 <벤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목사>

15. 피난처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상처받습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은 죽습니다. 중압감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투성이인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시편 46편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찰스 스윈돌의 ‘지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는 관계는 형식적으로 맺어진 업무적 관계나 잠깐 스쳐가는 타인이 아닌 가장 가깝다고 느꼈던 이들로부터 오게 됩니다. 신뢰의 깨어짐, 그리고 깊은 실망감 속에서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넘어집니다. 피할 곳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그 때 우리는 내내 외면해왔거나 혹은 쉽게 잊고 또 지나쳐버렸던 온전한 피난처, 하나님아버지의 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변치 않는 주님, 그 사랑의 품에서 다시 일어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벽종소리

16. 영원한 피난처

본문: 시46: 1- 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로마의 바티칸박물관 안에는 역대의 로마지도를 시대별로 그려놓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 그 중 나란히 그려진 두 지도를 비교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의 지도에는 폼페이시가 표시되어 있는데 바로 뒤의 지도에는 폼페이시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땅속에 묻혀버린 폼페이시는 훗날 수세기가 흐른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통해 수많은 시체와 당시의 생활상이 드러났는데 흥미로운 것은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천차만별이었다는 점입니다. 몇 구의 시체는 깊은 지하실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곳으로 피하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몇몇은 건물의 가장 높은 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높은 곳에 올라가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안전에 대한 욕구와 불안이 있습니다. 어쨋든 폼페이시의 거주민들은 모두 화산재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혹 당시의 재앙을 피했다손치더라도 결국 지금은 한줌의 티끌조차도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는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다람쥐는 작고 연약한 짐승이지만 결코 맹수에게 잡히지 않습니다. 다람쥐는 기발한 호신책을 갖고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몸집이 큰 동물이 습격해오면 다람쥐는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버립니다. 아무리 사납고 강한 동물이라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다람쥐를 잡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작고 나약한 다람쥐에게는 거대한 바위산이 천연의 요세인 셈입니다.

 


세파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이 아닐까요?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

17. 확실한 피난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단 하나의 확실한 피난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편 18:30)이십니다.
창세기 28장 13절을 보면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을 향해 가다가 해가 져 벧엘에서 한 돌을 베고 누웠습니다. 깜깜한 밤 수많은 별을 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했을 겁니다. 수많은 고민 속에서 낯선 벧엘에서의 그 밤 그의 일상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꿈에 여호와를 만난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야곱은 다음날 아침 그 딱딱한 돌베개를 제단으로 과연 하나님이 여기 계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인생의 광야에서 주를 만난 하루는 아침 이슬의 영롱함 이상의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만나길 간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매시간, 매일의 일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외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은혜인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피난처로 가는 길입니다(시 55: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오늘도 피난처이시며 보호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늘 하나님을 느끼고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주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이 시간도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18. 참으로 안전한 피난처

브라운이 열 살 되던 생일에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집으로 이사하였다. 빈민촌의 허술한 판잣집에서 살던 그에게는, 넓은 방이 세 개나 있고, 부엌에 수도도 있고, 유리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집은 마치 궁궐과 같았다. 그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첫날밤을 지낼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에게는 그 집이 피난처요, 위로요, 안전을 뜻하였다. 비가와도 지붕에 물이 새는 법이 없었고, 바람이 불어도 결코 방안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의 집 바로 옆에 목재소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화재 경보기가 아침잠을 깨웠다. 옷을 주워 입고 손에 닿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집어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얼마 후 집을 보니 몇 시간 전만 해도 피난처요, 위로요, 안전이었던 집이 지금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물질이 참된 피난처도, 안전도, 위안도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없어질 물건에 우리의 희망을 거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19. 영적피난처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유럽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 중에는 삶에 대해 번민 ,갈등을 느끼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랜시스쉐퍼 박사 부부는 1955년 스위스 알프스 산 한 계곡 웨이모라는 마을에 라브리를 개방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삶에 지친 영혼들이 라브리에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사역을 하였다. 여름철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리면 원두막이나 오두막에서 잠시 머물러 비를 피하듯이 라브리에서 인생의 폭풍과 소나기를 피할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현대인들은 너무나 힘든 삶에 지쳐 있다.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방황하며 갈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영적 피난처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줄 피난처가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문화적인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지만 더욱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해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고, 인생의 답을 주시는 분이 계신다. 바로 우리의 영적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영적 피난처요 우리들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오두막이다(마 11:28).
/양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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