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절대불변의 사상이나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생각이 진리일 수 없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철학자·과학자)의 지동설을 들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중세시대 다수의 철학자나 신학자들이 천동설을 신봉하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해 이단아로 매도됐지만 오늘날 그 누구도 지동설을 부인하는 자는 없다. 신학(神學)도 예외는 아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신의 섭리를 인간이 해석하는 것이지만 결국 이것 역시 신(神)이 허락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신의 뜻을 전할 수 없는 인학(人學)으로 변질되고 만다. 성경에서도 이사야 55장 9~10절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천지차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함부로 해석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모순의 연속선상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다.
그 중심에 기독교의 장자라 하는 장로교에 칼빈(1509~1564, 신학자)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중세 종교개혁자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노용시에서 태어났다. 칼빈이 27세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함으로써 중세의 루터파나 개혁파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고, 오늘날 장로교인들과 전세계 신교도(新敎徒)들이 칼빈에게 빚진 바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서 수십만명의 불란서의 위그노, 영국의 청교도, 화란의 개혁파,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인들이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전해준 신앙이 칼빈신앙이다.또한 칼빈의 신학과 신앙사상을 칼빈주의라고 부르고, 이 칼빈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와 문화가 개혁되고 변화되었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는 칼빈주의의 장로교회가 67%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 중심의 기독교이다.장로교의 시조라 하는 칼빈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되는 것으로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최고의 거룩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반면 후대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칼빈을 최악의 기독교인이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국이라는 특별기구의 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종교적 판단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사소한 범죄까지 정죄하는 등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중세역사는 그를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가차 없이 사형을 집행했던 그야말로 비성경적 종교인으로 중세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 했고 원수마저도 품으라 하셨으며 십자가라는 실천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셨던 분이었다. 하지만, 칼빈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뜻대로 행함에 따라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칼빈은 인구 1만 3000명에 불과한 도시 스위스에서 종교국 수장이었다. 그 소도시에서 칼빈은 도덕경찰이라는 종교국을 장악하고 사형시킨 공식적 인원만 58명이며 추방한 인원도 76명이었다.(한국인구비례하면 5000만명일 경우 223,000명을 사형-강원도 강릉시 인구많큼 , 292,000명을 추방-강원도 원주시 인구많큼)칼빈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예정설을 비난한 자를 채찍질 후 화형 내지는 가혹한 고문 끝에 사형시켰다. 80세 노인과 그 딸은 아이들에게 세례 주기를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처형됐으며 부모를 구타한 소녀는 교수형에,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자유사상가들에게는 아무 이유 없이 이단이라는 오명을 씌워 사형시켰다.
역사가들은 칼빈이 사람들을 처형시킨 유형들을 ‘칼빈의 예정설, 성서 권위의 문제, 삼위일체설, 유아세례, 성만찬 등의 해석에서 칼빈과 의견을 달리했기 때문이었다’며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종교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기치를 내걸었지만 결국 칼빈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칼빈은 출판업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자 혀를 잘라 죽이고, 자신의 신학 이론에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살인으로 갚아줬다. 문제는 이런 무차별적이고 비성경적이며 반인륜적인 일들이 칼빈 시대에만 이뤄졌던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칼빈주의자들이 자행한 일명 마녀사냥은 자신들의 목적이나 개인적 복수를 위해 무기로 사용됐고, 그 중 가장 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이단’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하고 있다. 마녀사냥의 예를 들자면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 16~17세기에 걸쳐 3만여명이 처형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이단이라는 지칭과 권력자들의 권력쟁투에 의해 희생된 자들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게서도 이런 잔악성은 그대로 이어진다. 청교도들은 영국 성공회와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에 의한 핍박을 견디지 못해 새로운 대륙 아메리카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자들이다.
청교도들은 천신만고 끝에 원주민과 인디언들이 주인으로 살고 있는 신대륙에서 식량은 물론 주거지까지 도움을 받아 생활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오래가지 않아 은혜를 원수로 갚는 패륜적 범죄로 표출된다. 청교도들은 살만한 기력을 회복하자 원주민들과 인디언들을 이교도이자 사단 마귀의 앞잡이로 몰아 그들을 살육하면서 광활한 땅을 접수하기 시작한다.
청교도들은 이런 패륜을 저지르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정당화하는 후안무치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청교도들에 의한 인디언 및 원주민들의 처참한 학살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원주민 인구가 약 1억 7000만명이었으나 청교도 정착 300년 후인 1890년에는 원주민 인구가 25만명으로 엄청난 수가 말살당한 것을 볼 수 있다(1/680 로 줄어짐).하루에 1,550명씩이나 살해.
한국교회 역시 칼빈주의자들이 전파한 이단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교회가 정통교리라는 명목으로 이단정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70년 후반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는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이단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생존경쟁식의 이단정죄가 발생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 한국교회의 이단논쟁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지나친 신비주의적 신앙관 혹은 반사회적 신앙관을 보이는 신앙단체, 극단적인 교리관 즉 종말론적 교리관을 가진 신앙집단을 경계하는 차원이었다.이후 한국교회는 칼빈교단이 주도하는 반성경적 잣대로 특정 단체를 이단으로 매도하는 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만다. 대다수의 이단정죄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교단 내 정치적 입지를 염두에 둔 것이며 급기야는 신앙단체의 비성경적 모습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허위 인신공격으로 그 수준이 가히 치졸하다 할 정도다.결국 한국개신교의 주류인 장로교(칼빈주의자)는 자신들의 유익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인권도 고려치 않는 칼빈주의자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거짓스승, 무자격 이단 감별사
한국교회 하면 세계교회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시간에 부흥을 이룬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불과 120여년이라는 단시간에 많게는 1000만명이요, 적게는 860만명이라는 전체 인구 4700만명의 4분의 1이 개신교인이 됐으니 당연한 평가라 할 것이다.교회 수도 6만여개에 달하며 선교사 수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국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 역파송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칼빈의 교리 중 예정론을 보면 “선택과 유기에 대한 칼빈주의 하나님의 예정은 영원불변하다”는 것과 “천사와 사람의 개체의 영생과 예정에 변함이 없고 영생에로 예정된 천사들과 같이 사람들의 수도 확정적으로 불변적이다. 영생에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멸에로 예정되거나, 영멸에로 예정된 자가 다시 영생에로 예정되는 변동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굉장히 비논리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굳이 선택되지 않은 자가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물론 선택된 자는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용서가 된다는 위험하고도 엉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이 이미 구원을 받았거나 지옥이라는 형벌을 받을 것조차 결정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칼빈주의자들의 하나님대로라면 인간은 로봇에 불과할 뿐 애써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으며 예수님이 명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 역시 불필요한 것으로 선교사들은 헛수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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