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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한국교회 자화상

by 【고동엽】 2008. 5. 4.
 

한국교회 자화상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교회(소망교회)에 다니는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이 물의를 일으킨 끝에 여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했다. 부동산 투기와 자경(自耕)확인서 조작 의혹으로 크게 비판을 받았던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은 사의를 밝힐 때까지도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고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수석의 땅이 있는 운북동 일대 주민들의 말과 운북동 영농회장의 증언을 살펴보면 박 수석이 거짓으로 일관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끝까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박 수석의 모습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교회가 오버랩되는 것은 이상한 현상일까.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 ‘기독교’와 ‘부동산 투기’

이전 정부들에 비해 이명박 정부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 두 가지는 ‘기독교 인맥’ 그리고 ‘부동산 투기’라 볼 수 있다. ‘기독교 인맥’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던 장로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 인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 역시 이명박 정부 초대내각 구성과 최근의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부터가 부동산 투기 그리고 관련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독교 그리고 부동산 투기. 사실 이 두 용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어울려서도 안 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세상에 평화를 전하며 슬픔과 비참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는 실체적인 ‘이상’이다. 반면에 부동산 투기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며 이로 인해 생명을 끊은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비극을 초래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하기 어려운 이 두 특성이 한 정부에서 나타나는 극히 기형적인 현실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가.

 

불의를 저지르는 교인, 불의에 침묵하는 교회

일반적으로 한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영적·윤리적·사회적 성숙도는 그 시대의 교회의 영적·윤리적·사회적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교인들이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공급받는 곳이 바로 교회이거니와,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는 공동체적 경험의 장도 교회이며,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사명을 확인하게 되는 곳도 바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적 교계 구조에서 교회의 영적·윤리적·사회적 성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바로 목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대통령을 비롯한 기독교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혹이 근본적으로 교회의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리일까. 교회의 존립기반이 성경임에도 스스로 성경말씀을 희석시켜 전파하는 모순적인 현대 교회의 모습이, 결과적으로 사회 속에서 모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독교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이번 사건과 관련지어서 보면, 한국교회가 집요하게도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동산 문제다. 이미 대다수의 교회들이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부동산 투기를 자행하고 불로소득으로 예배당을 키웠음을 부정하기 힘든 마당에, 어찌 성경에서 말하는 토지에 관한 가르침이나 경제에 관련된 원칙들을 선포하고 외칠 수 있겠는가. 교회의 세금 문제나 사학법 문제 등에는 거의 협박 수준으로 언론사를 압박하고 단체행동도 서슴지 않던 교회지도자들이, 유독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에 분노하신다 그러나 교회와는 달리 성경은 이러한 불의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다.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자신의 채소밭으로 삼으려고 한 데서 비롯된 포도원 강탈사건에 대해 하나님은 악을 행하였다고 말씀하시며 무서운 경고를 선언하신다. 또한 이사야 5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공의를 져버린 사건으로 ‘더 차지할 곳이 없을 정도로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늘려나가 땅 한가운데 홀로 살려 하였다’는 사례를 들며 이들에게 재앙을 선포하고 있다. 이 외에도 땅과 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을 혐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 말씀의 내용들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하나님은 부동산 투기와 이에 따른 부정행위들을 정의롭지 못한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바로선 교회라면 이러한 불의에 대해 침묵하기 어렵다.

 

교회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공의의 길 따라야 한다

교회는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진리를 명확하게 전해야 한다. 교회가 섬기는 ‘리더’를 강조하며 은근슬쩍 그리스도인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대신, 정직하게 섬기는 ‘종’이신 예수의 모습을 전해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물질적 축복이나 기도 응답으로 왜곡시키지 말고, 공의의 하나님이 격분하실만한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일임을 가르쳐야 한다. 재테크라는 명목으로 세상의 불평등과 빈곤을 양산해내는 부동산 투기에 대해 교회가 먼저 그 죄악을 회개하고,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말씀의 검을 들이대야 하며, 세상의 손해를 감수하고 ‘공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도(公道)일까.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와 나아가 환경 전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공의의 길은 성경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희년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희년제도는 어떤 의미인가. 이는 ‘청지기적 사명’에 대한 강력한 요구이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토지는 다 내(하나님)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인간은 토지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땅의 가치’ 즉, ‘땅의 소산’을 독점하지 말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땅과 자연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된 자와 함께 나누는 이것이 바로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가 가장 먼저 회당에서 희년에 관한 이사야서 말씀을 읽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했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희년의 성취에 대한 예수의 사명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같은 이치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교회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교회가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 제시할 수 있어야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암울한 것은 경제성장률 6%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52개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남녀노소, 부자나 빈자, 교회나 세상 할 것 없이 땀 흘리는 노력을 피하고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 가장 썩어 있고 암울한 영역이다.  도덕적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장로대통령을 만들어내고 땅투기를 위해 거짓을 서슴지 않은 정부 관료를 배출하는 한국교회는 강단에서부터 진정한 회개가 일어야 한다. 교회강단에서 애매하고 영해화(靈解化)된 설교가 전해지기 때문에, 교인들이 피상적으로는 거룩함을 추구하면서도 전혀 공의롭지도 않은 원칙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요컨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박미석 수석의 모습에서 어떤 사회의 비난에도 회개하지 않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는 목회자가 듣기 좋은 말씀만 취사선택하여 가르치는 모습을 회개하고, 교회공동체가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을 가감 없이 선포해야 한다.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회색지대가 없는 말씀의 선명함을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이렇듯, 세상 기준의 모호함을 선명하게 대체할 수 있는 기독교라야 불의와 행악의 유혹을 이기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안정권/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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