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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cum verbum , perver bo

by 【고동엽】 2011. 7. 1.
 
 

 

 cum verbum , perver bo                

 

CUM VERBUM [성령은 말씀과 함께] 과 PER VERBO [성령은 말씀과 상관없이] 임하심이다.

중세교회에 있어 구원의 도식은 어거스틴이 전한 은혜의 구원의 원리를 왜곡시킨 반 펠라기우스 적이었다.

 

즉 인간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공로)가 연합하여 완성된다는 이론인데 이 견해가 인간의 공로사상을 만들어 냈다.이 구원관이 중세의 여러 가지 미신적 종교행사를 만들어  중세인들은 성자들의 공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성자들이 구원을 받고도 남은 공로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성자들의 남은 공로를 얻기위해 성자와 성유물 숭배사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교회가 보유한 성유물의 사례들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렸던 광야의 만나 부스러기,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 가운데서 군중들을 먹이고 남은 보리떡 조각, 예수님이 어릴 때 뽑았던 치아, 그리고 그의 할례시에 잘라낸 표피, 예수님이 12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던 물그릇등 수많은 성유물들이 돌아다녔다.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베들레헴에 교회를 세우고 헌당식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 조각이 유럽에 유입되어 가는곳마다 기적을 일으켰다고 하는 루머가 돌고있었던 것이다.

 

  이런 행위들이 우상숭배적이고 미신적인 구원관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공로에 의존한 행위였다. 즉 그들은 성자들을 잘 숭배함으로 구원의 공로를 얻을수 있다고 심리적으로 확신하고 믿었다.  여기다가 중세인들은 교회에 바치는 헌금이나 기부금들이 그들의 구원의 도움이 된다고 가르치고 또한 믿기까지 했다(오늘날 현대교회들 가운데도 적지않는교회가 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자신할수 없을것이다).

 

즉 인간의 노력과 공로가 구원의 수단이었다. 구원은 믿음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중세의 비뚫어진 구원관을 배척하고 종교 개혁자들이 내세웠던 것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기독론 중심의 구원관이었다.

 

이 구원관을 말하는 유일한 근원은 성경이다.  성경이 바로 우리 구원과 행위의 유일한 척도임을 제창하여 구원의 새로운 페러다임인데도 말씀없이 신앙의 길을 주장하는 것이 곧 PER VERBO 이다.   오늘날 장로교회 즉 개혁교회 외에 소속된 감리교,순복음교회, 침례교,성결교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수 있겠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가 아니고 내가 말하니 하나님이여 듣고서 내게 복을 주셔야하는 하나님편의 의무감이다.교회에 내는 감사헌금 혹은 십일조 등을 내가 신실히 내니 그대신 하나님이 되돌려 복을 쌓을곳이 없을정도로 꼭줘야 된다는 그러한 하나님과 나와의 쌍무적 관계 혹은 무역관계등으로 가르치며 믿고있는 것이 비일비재가 아닌가하다.

 

그러나 루터나 칼빈,쯔빙글리 등의 수많은 개혁가들은 성령은 언제나 말씀과 함께 임하시는 CUM VERBUM 인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히 은혜의 교리에 서있어야 하겠다.  또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던 중세기적인 신앙 가운데 하나는 구원이 자신의 심리적인 확신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겅우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기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당돌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구원은 개인의 주관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심리적인 확신이야 시시때때로 바뀔수도 있다.  설교를 하는 목사나 가르치는 교사들이 교인들의 구원에 대한 심리적인 확신을 확인하려고 대단히 노력한다.

 

이것은 특히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인 확신을 갖기를 강요하고 주장한다.  인간의 내적 확신에 의해구원을 확인하는 것은 중세인들의 인간 공로사상이며 웨슬리안의 방법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인 확신을 구원의 방패로 삼기 때문에 오늘날 온갖 종류의 이단들이 교회를 어지렵히고 있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보장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를 통해 속죄함을 받고 영생하는 구원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그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고 믿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성경이 보장해주는 것이지 인간의 감정의 확신이 보장해 주는 것이아니다. 이것이 웨슬리안과 칼빈주의와 다른 점이다.  이것이 잘못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와의 다른 점이다.  이것이 성령파들과 말씀중심의 개혁신앙과의 차이점이다. 이것이 중세의 공로주의와 개혁교회의 은혜교리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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