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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회심

복음과 부흥과 참된 회심 세션 1 롬1:14~15

by 【고동엽】 2024. 12. 31.

복음과 부흥과 참된 회심 세션 1                롬1:14~15                     출처

Truth and Gospel Conference 세션1 

 

오늘 이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된 것이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셔서 기쁩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호주까지 오는데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저를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에도 어려움들은

계속되었지만,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그 무엇도 아닌 약함을 살피사

그분 자신의 영광과 그분 자신의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할 모든 일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 편에서는 말이죠.

 

저는 제 인생의 상당한 기간동안

찰스 스펄전의 저서를 많이 읽으며 보냈는데

아주 많은 그의 설교들, 특히 십자가에 대한 설교들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설교를 하다니 저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이 얼마나

큰 실패입니까!' 라고 스펄전은 말합니다.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이해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는, 아무리 가장 정교한 형태로라도

십자가에 대해 도저히 여러분께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래 전 제가 젊었을 때, 저는 아주 좋지 않은 동네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파트 안에서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4번의 총 소리가 들렸고 또 한 번, 또 한 번이 들렸습니다.

 

             

저는 아파트 밖으로 달려나가 주차장을 둘러보았고

한 여인이 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겁에 질려 문을 쾅 닫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어렸고, 생각할 겨를 없이 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려가서

그 문으로 제 어깨를 밀어넣고 문을 두드려 열었습니다.

제가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한 남자가 권총을 들고

빙빙 돌다가 제 배에 권총을 찔러댔습니다.

 

저는 바로 주위를 들러보았고 사방이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저는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권총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반대편에서 들어온 보안요원이었습니다.

저는 쓰러진 남자에게 가서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를 받치고 수건을 달라고 소리친 다음 그의 가슴에 쑤셔넣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다음 일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경찰관이 제 손을 때리고 있던 것입니다.

       

저는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고 그 경찰관이 '그를 놓아줍시다.

청년, 그를 놓아줘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 냄새, 그 사건의 모든 것을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셨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소 목장을 운영하셨고 제가 10살이나 12살 즈음에

우리가 동물을 안락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새끼를 낳고 죽기 직전이거나, 다리가 부러졌거나

하는 상황들이 생기면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소총을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심지어, 아버지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들이 아버지께 일어났던 겁니다.

 

저는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을 알고 있고,

혹은 중동의 전쟁에서 돌아오신 분들을 상담한 적도 있습니다.

 

그들이 본것,그들이 경험한 것은 그들의 삶을

잠시동안만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죽는 날까지 뇌리속에 달라붙어있습니다.

 

너무나 참혹하고 너무나 극적인 사건들을 겪으면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 사건의 포로가 됩니다.

그 사건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측면에

그 사건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도 바울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믿으며

우리 각자 모두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과 제가 복음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예수 그리스도 그 분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들을 더 많이 이해할수록

점점 더 우리는 복음에 사로잡히며,

점점 더 복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 것입니다.

 

             

제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은

기독교에 윤리가, 계명이, 율법이.

지혜의 원리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을 지키고 따라야 하며 한쪽으로 미뤄서는 안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독교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도덕적이고 깨끗하게 사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기독교가 당신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우상숭배를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분 Jesus 은 너무나 마음을 사로잡아 소위 과학자들이

말하는 블랙홀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너무 가까이 가게 되면.

당신은 끌려들어가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그 분은 그렇게 사로잡으십니다.

그분의 사역을 별개로 하고서도 말입니다.

            

그분 자신만으로도 너무나 흡입력이 있어서

그분은 당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그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듣기 시작하면

특히 그분의 성육신에서, 그분의 죽음에서, 그분의 부활에서,

당신은 더욱더 그분께 사로잡혀 포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복음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복음을 포기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복음의 능력을 완전히 포기해버렸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이 복음을 보고 세상을 볼 때,

세상의 강함을 봅니다.

 

마치 굳게 닫힌, 출입하는 자가 없는 여리고와 같습니다.(수6:1참고)

                  

그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이것으로부터 이 모든 교회 성장과

선교에 대한 전략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 모든 개념과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오늘날 복음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복음주의 evangelical 라는 용어는

더 이상 전혀 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非복음적인 것들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몇십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 주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4영리' 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알기 원하시는 5가지' 정도가

복음 제시인 양 축소시켰습니다.

몇 분 안에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복음입니다. 이것은 진짜

복음이 아니며, 그 안에는 전혀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난 수십년간 우리가 복음을 축소시키고, 축소시키고

복음의 영광을 덜어내고 덜어냄에 따라,

복음의 능력은 점점 더 적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포기한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교회가 스스로 재건할 유일한 방법은,

교회가 그 영광을 회복할 유일한 방법은

복음을 이해하는 길로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도덕적인 남자나 여자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가정에 충실한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보수적인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정립한다면,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것들이 바로잡히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목사님,

하지만 복음이라뇨,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있어요.

인간은 죄인이고,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죠'

그리고 사람이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아니요,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식 모조품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축소시킨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재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겁니다.

 

이제 저는 이 첫번째 시간에 저를 많이

곤란하게 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보기 원하는 첫번째 본문은

이미 조금 다루었는데요.

잠시 로마서 1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4절에서 바울이 뭐라고 말하는지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

 

가장 먼저 이 부분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빚진 자라."

 

말 그대로, 빚을 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의 빚은 완전히 청산되었습니다.

당신의 죄의 빚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위해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서 갚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사랑의 사역은

당신에게서 무언가를 이끌어냅니다.

 

당신은 이제 빚진 자입니다.

당신은 이제 이전에 살아왔던 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당신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나가서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니요, 이것은 그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에게 빚진 자입니다.

그분이 죽으실 때 당신도 죽었기에

당신의 삶은 더이상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갈 2:20)

당신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습니다.(고전6:20)

 

그리스도를 섬기십시오.

당신의 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당신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7)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당신의 모든 생각과 당신의 모든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큰 (은혜의) 빚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보다 무한히 더 존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나누어야 할 빚진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잃어버린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위대한 이유로, 나는 그리스도께 빚진 자입니다.

 

▲제가 선교사님들께 계속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지역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생각하며

밤새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던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잃어버린 바 되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잠들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많은 선교사님들은 제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하지요,'

 

'저는 그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 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수많은 밤을 잠들지 못하고 보냈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바로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마땅히 경배받으셔야 하는만큼

경배받지 못하고 계신 것을 깨닫고

그것 때문에 잠들지 못한 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당신이 하는 모든 사역의 위대한 동기는,

특히 복음과 복음 전파와 선교를 나가는 것에 관해서는,

그 불쌍한 사람들이 우선적인 동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그보다 더 강한 동기가 필요합니다.

 

기독교 안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의 우선적인 동기는

반드시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이 되어야만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남미의 쇼핑몰로 들어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그 모든 잃어버린 바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고 합시다.

 

아주 잠깐동안은 모든 게 괜찮을 겁니다만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누군가 당신이 이단이거나 악마라고 소리치기 시작하고

군중 전부가 당신을 향해 달려들어 붙잡고

 

당신이 집에서 만든 작은 설교단, 당신의 작은 확성기,

당신의 흔적들을 모두 잡아 길바닥에 던져버릴 것입니다.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주워 그 쇼핑몰로 다시 설교하러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런 현지인에 대한 사랑보다는 훨씬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심을 보기 원하는

갈망을 갖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단지 사람에게

빚진 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 빚진 자입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행하신 위대한 사역 때문에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라비안 교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역하고 있는 선교단체인 Heartcry를

형성한 뼈대 중의 하나인데요.

 

신대륙의 한 섬의 노예 소유주에 대한 이아기를 들은

몇 명의 모라비안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그 노예 소유주는 무신론자였는데, 자신의 노예들에게 그 누구도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약 어떤 목사님이 파선을 당해도

다른 배가 와서 그 목사님을 데려갈 때까지 감금해두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2명의 모라비안 소년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지 않으면 그 섬에서 전도할 수 없다기에

그 노예 소유주에게  말 그대로 스스로를 (흑인처럼) 노예로 팔았습니다.

 

          

2명의 유럽 소년들이, 그 섬에 있는 

복음을 듣지 못한 여러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들이 함부르크의 부두에서 배를 타고 떠날 때,

그들 모라비안 선교사 중 1명이 그의 가족,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아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어린양께서 그분의 고난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선교사 청년은 바르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영혼들을 사랑했고 그 사람들(노예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복음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진정한 자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그는 그 이상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동기는 그리스도가 그를 위해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동기를 빼앗아갈 겁니다.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조차

그들은 당신을 싫어할 겁니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에게 자신을 헌신하려고

할 때조차 당신을 외면할 겁니다.

        

그 사람들이 당신 사역의 동기라면,

당신의 동기는

기복이 많고 아주 약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의 동기라면,

그분은 절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기에 언제나 견실할 것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자 여러분이 주목하셨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다른 종류의

복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요즘 선교사들에게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정한 방법을 훈련받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또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정한 방법을 훈련받거나,

X-세대나 베이비붐 세대에게 혹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정한 방법(테크닉, 방법론)을 훈련받는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은 말도 안 됩니다!

 

▲누군가 제게 아구아루나 Aguaruna부족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하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구아루나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 men 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부족 출신이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언어를 쓰든, 국적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구원하는 메세지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여야 하며

당신이 입을 열 때 그 메시지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이 말입니다"

보시다시피 당신은 복음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너뛰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지금 마치

4백 개의 강의를 하나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당신이 이해하셔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완전히 터무니없습니다.

복음은 어떤 의미에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회심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모든 일이 초자연적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사역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께서

그분의 가장 위대한 방법들로

일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뿐인 복음의 메세지에 충실할 때 말입니다,

따라서 제가 어디로 가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동일한 메세지를 설교할 것입니다.

      

인간은 이 메세지 외에는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무엇이라도 이것에 더하거나 제한다면

복음의 능력을 축소시킬 뿐입니다.

저의 영리함이 더 드러날수록,

우리는 복음을 더 적게 보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본문을 봅시다.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

 

바울은 그의 육체에 복음을 부끄러워할 만한

이유들을 다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잠시 함께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철학자,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역에 들어갔습니다. 행17:16-22

그들은 모두 거기서 논쟁하고 있었고 바울도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듣고 싶어했습니다.(행17:18)

 

바울은 그 가운데로 걸어가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유대인인 것을 압니다.

자 이 사실은 자동적으로 그들의 눈에서

바울을 경멸의 범주에 들어가게 합니다.

 

'나는 유대인이고 천지를 지으신 유일한

참 하나님을 믿습니다.'(행17:24)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이 말은 완전히 어불성설입니다

또 모두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왜 바울이 방금한 이 말이 모두를 화나게 만들었을까요?

 

바울이 천지를 지으신 유일한 참 하나님이 계시다고 했을 때

너희의 다른 모든 신들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복음을 바꾸기만 한다면서 지금이라도

미국의 모든 토크쇼에 나가게 될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단 한 가지입니다. 정관사를 부정관사로 바꾸면 됩니다.

 

제가 예수님을 '어떤 구원자 a Savior'라고 한다면

저는 할리우드의 유명인사가 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예수님이 '그 구원자 the Savior'라고 할 때

자동으로 다른 모든 구원자들을 배제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방에 들어가서, 그런 거리에서 '아니요

당신들은 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들은 모두 틀렸습니다. 모두가 틀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길 the way 이고,

그 진리 the truth 고. 그 생명 the life 이십니다".(요14:6)

 

그 말은 이 지적이고 학구적인 군중들로부터

조소와 조롱과 웃음을 불러왔습니다.

'이 편협하고 옹졸한 바보가 자기 혼자서만 인간 실체에 대해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이해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메세지의 쟁점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걸어가 당신들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에게 물을 겁니다.

자, '그럼 뭐가 옳은 겁니까?'

 

우리는 대답합니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되신 아들이 한 분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그리스 철학을 배우신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은 선한 것이고, 물질적인 것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말하는 것은 이 군중(그리스 철학자)에게

할 수 있는 단연 가장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에 맞춰주는 척 합니다.

 

'좋습니다. 바울.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구요.

그분은 가이사에게 태어나셨나요?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그분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에서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들과 제사장들과

귀족들과 지식인들은 그분을 알아봤겠네요.

그분은 어디 궁전에서 태어나셨습니까?'

 

그분은 가난한 젊은 여인에게서 태아나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아니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했습니다.

'오, 어린 소녀가요?

그녀는 몇 살이었습니까?'

 

수도를 벗어난 먼 지역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가 임신을 했다는 거죠

아버지도 없이, 하나님이 아버지시라고 밝혔졌구요.

 

바울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이겁니까?

네, 그것이 바로 제가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이 어떻게 바울을 비웃었을지 상상이 되십니까?           

       

그리고나서 또 그들은 동의하는 척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바울이 대답합니다.

'그리고 사람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위대한 선생님이 되셨고 인정받으셨겠네요.'

 

'네, 그분은 위대한 선생님이 되셨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으며

심지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고 귀신을 쫓아내셔서

사람들 사이에 소요을 일으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전부가 분명 그분을 인정했겠네요.'

        

'아니요.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1:11)

그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그분의 능력을 입증하셨나요?'

'아니요.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셨다구요 바울?

그러면 그 죽은 구원자가 우리를 어떻게 돕습니까?'

              

'제삼일에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아 이제 이해하겠네요 바울.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부활의 순간에 그분은 틀림없이 이스라엘 전 국가와

팔레스타인에 사는 로마 사람들에게까지 나타나셨겠네요.

이제는 물론 그들 모두가 그분을 인정했겠지요.'

 

'아니요. 그분은 부활하셨지만 우리

소수에게만 스스로를 보이셨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오 그분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건 그렇고,

 

가이사는 주(主)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 유대인이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 모두에게

여러분의 모든 궤변과

모든 우상들과 완전히 모든 것에서부터 돌아서서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지라도

그분을 예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바울의 메세지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이제 좀 감이 오십니까?

하지만, 이 메세지를 통해 몇 사람이 거기서부터

그를 따랐고 일부는 회심했습니다.(행17:34)

 

교회사 전반에 걸쳐 우리가 기꺼이 수치를 견디고,

단지 복음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해하고 세상에 그 복음을 전할 때,

교회가 그 메세지에 순결하고 충성했을 때,

대단한 추수를 거둬들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그 메세지를 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두었을 때,

교회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 목적을 잃어버렸으며

아무에게도 감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교회의 웹사이트를 방문했는데 제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제게 미소짓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동역자 목사님께 여쭤봤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없을까요?

 

제 말은, 그들은 모두 슈퍼모델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긍정적인 사람들의 공동체'

같은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첫 번째 페이지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간판으로

그들 자신, 그들의 공동체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어야죠

당신이 나타났을 때 그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멋질지 말입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제 귀한 친구 잠비아 출신의 콘라드 음바웨 Conard Mbewe는

제가 오늘날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분인데,

 

제가 몇 년 전에 유럽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약간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들이여! 사도 바울이 교회를 시작하려고 할 때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시오.'

 

그는 플랜카드에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3)'고

쓰고는 그 도시 한복판을 걸어갔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명함이었습니다.

당신을 긍정해줄 한 무리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라 말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

이것이 언제나 맨 첫 장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이 메시지입니다.(롬1:16)

 

▲신학적으로 보면, 한 사람의 마음이 거듭나는데

제가 믿기로 우주의 창조 때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주를 '엑스 니힐로 ex nihilo' 무無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원하실 때는, 타락한 부패 덩어리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재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메시지, 즉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 말고는 이에 대한 인간적인 설명은 불가합니다.

 

▲저는 정말 변증학을 높이 평가합니다.

정말로요 또 현대 변증학자들 중 일부,

라비 재커라이어스 Ravi Zacharias를 좋아하고,

변증학의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군도 Segundo라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파카밤바 Paka Bumpa라고 불리는

페루와 안데스산맥의 북쪽 지역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복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채 그는 그저

미신적인 가톨릭 신앙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는 성인 聖人들을 예배하고 죄사함을 위해 돈을 내며

그 성인의 이름으로 술 파티를 여는

그런 종류의 일들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저 단순한 복음을 전해 듣고서, 그는 그의

마을 전체에 대해 맞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산 채로 끓여 죽이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는 복음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10가지의 적법한 역사적인 이유를 얘기해달라고 한다면

그는 한 가지도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는 심지어 예루살렘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복음 전도의 단순한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그가 이렇게까지 믿게 됩니까?

 

그는 완전히 믿게 되어 단지 몇 시간의 제자도 후에

그의 마음의 보물이 된 그 메시지를 부인하느니

차라리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이렇게밖에 설명할수 없으실 겁니다.

 

단순하지만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못박히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회개하고 믿으라는 메시지가 그에게 선포되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그의 중심의 마음에

이것이 진리라고 증언해주신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초자연적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들 중 일부의 간증을 들어봐도,

그들은 다른 지성인과의 논쟁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중심을 거듭나게 하셨으며.

우리 마음을 조명하시고

우리가 들은 것이 진리라고 증언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은 너무나 변화되어서 우리는 그 메시지를

생명 그 자체보다 더 갈망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주목해보십시오.

이 모든 일, 이 복음은 초자연(=기적)적입니다.

초자연(천지창조와 같은기적)적인 일입니다!

당신이 반드시 이해하셔야 하는 점입니다.

 

▲저는 여러 방면에서 은사주의 운동이

우리에게 대단한 손해를 입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라고 물으신다면,

그리고 제가 은사주의 운동이라고 말할 때는 (건전한 은사주의가 아니라)

저는 격하고 광신적인 TV 복음주의자들과

이런 모든 부류의 이단적인 운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이 행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인

우리 종교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두려워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업 基業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은 초자연적입니다.

복음이 능력으로 선포되는 비결은 초자연적입니다.

 

가장 작은 아이라도 복음을 이해하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놀랍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 성경적인 교회,

성경적인 가정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모두 초자연적이고 모두 하나님의 일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사실을 우리 마음에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이나 단지 학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네, 우리의 복음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초자역적인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신이 복음에 무언가를 더할수록, 무언가를 제할수록,

당신은 복음의 능력을 점점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누군가 일어서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설교함으로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접기도를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그리고 열매을 맺어감으로 그들의 회심이 유효함을 증명함을 통해서 입니다.

 

◑다음으로 빨리 넘어갑시다.

디모데 전서를 함께 보겠습니다.

3장 16절을 봅시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즉 그는 공통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일반적이으로 인정되는 격언이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큰 비밀"을

진정한 경건으로 이끄는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리라"(딤전 3:16)

 

따라서 진정한 경건에서 자라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과 가장 훌륭한 촉매제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제가 전 세계의 아주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을 슬프게 하는 탄식은

스스로가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늘 같은 수준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겁니다.

 

그들이 소원하는 것만큼 진정한 신앙과

진정한 경건에서 자리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 이에 관련한 온갖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10가지 방법, 5가지 방법,

2가지, 3가지 등등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실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40일', 이것, 저것, 긍정의 힘, 같은 것들이 있지요

 

교회 안에 경건을 만들어내려는 이런 모든 것들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충분히 오래 사신 분이라면 이런 유행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또 사라지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런 것들은 기독교계 전반의 화제가 되자마자

무너져서 다시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방법에 대한 또다른 유행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성장합니까?

진정한 경건으로 이끄는 큰 비밀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폴 목사님, 저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압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복음을 알고 계신다고요!

 

저는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복음을 아신다는 걸 확신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저는 재림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합니다.

재림은 중요한 교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분야에서

제게 많은 은혜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시고 저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실 때 저는 정말로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알아두실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여러분은 재림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실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만 번의 영원을 천국에서 보낸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미주리의 귀한 설교자 찰스 라이터 Charles Leiter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2 명의 여자분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교자가 일어나 '오늘 저는 믿음에 대해 설교할 겁니다'고 말했을 때

그 2명의 여자분은 '아 우리는 이미

믿음에 대해 아는데요'라고 말했답니다.

  

'뭐라구요? 이미 믿음에 대해 아신다구요?

당신은 무엇을 아십니까?'

 

우리가 믿음에 대해 성경을 공부하며 수천년을 보내도,

믿음에 대해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복음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형제님, 영광 중에 있는 인간과 천사의 가장 강력한 지성도

여전히 이러한 것들을 자세히 보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졸업한 지 몇 년 후에 결단한 것이 있습니다.

저의 삶을 한 가지에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 연구에 있어 선호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모든 영역을 연구해야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것보다 성화에 대해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재림에 대해 연구하기를 좋아합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보시면 재림에 대한 수천권의 책을 보실 수 있죠.

 

그리고 그 책들은 모두 서로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한 가지 일을하기 원합니다.

제가 연구할 영역은 복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저는 복음에 관한 성경의 모든 구절을 모아,

조직신학적인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성육신 이전의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삶, 부활, 승천,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통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제 인생의 연구로 삼았습니다.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한 지 23년이 넘게 흘렀고

때로는 하루에 몇 분, 하지만 대개는 하루에 몇 시간,

그리고 때로는 하루 종일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제가 결단한 것은, 모든 절을 각 절의

원어부터 철저히 연구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그리고나서 몇몇 초기 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어거스틴으로 갔다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로 건너가고

대개는 마틴 로이드존스 부근에서 멈춥니다.

 

그렇게 하면 꽤 많은 양인데요.

저는 각 절을 철저히 연구해서 복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십 몇 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제 막 마쳤습니다.

 

그리고 과거 저자들이 흔하게 다루었던 것들이자

요즘 교회에서는 언급조차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말 그대로 제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때로 제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알고 웃습니다.

저는 스스로 너무 은혜를 받아서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오늘 연구하신 말씀은 뭔가요 폴 목사님?

오늘은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그분은 놀라우십니다.

그분은 완전히 놀라우십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그 복음을 깊이 있게 연구해 보시면

당신은 이 복음을 던져 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당신을 사로잡습니다.

당신을 가두고 당신을 속박합니다.

이 복음은, 당신을 좀 더 나은 천국 시민이 되게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복음에 대한 것으로 두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충만하게 연구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는지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공항 혹은 도시를 가로질러 갈 때

저는 제 앞에 산더미 같은 교통법규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동행하시며 함께 거하시는 분이 계시고

그분을 거스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는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분 존재의 모든 것과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 때문에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경건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니라 하셨으니"(딤전 4:1)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바울은 다른 어디서도 이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 우리는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표현을 찾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도입부는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을 나타냅니다.

 

이 경우에는 뭔가 대단히 끔찍하고 무서운 일,

1절과 2절을 읽고 나면 우리는 거의 바울이 적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귀신의 가르침, 미혹하는 영,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 적그리스도나 혹은 그런 부류를 가져올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3절에 이르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

 

이게 다입니까?

 

바울, 방금 말 그대로 '사탄의 무리가

교회에 들어와 귀신의 가르침을 가르칠 거라고,

그들이 완전히 끔찍한 것들을 가르칠 거라고

 

우리가 생각하게 만들고

그들이 가르칠 건 고작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 거라구요?

 

             

왜 우리에게 이런 도입부를 준 겁니까?

특히 미국의 상황에서는, 여러분들 일부에게도

같은 얘기일텐데, 우리는 많은 음식을 삼가고 있지 않죠.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게 아니라 과식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결혼을 하고 있는데 이 본문이

우리에게 어떻게 상관이 있습니까?

 

이 경고가 우리에게 어떻게 상관이 있습니까?

친구들이여, 당신이 이 경고를 이해하신다면

이 경고는 당신을 겁나게 할 겁니다.

이 경고는 모든 것이 당신과 상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특정한 교훈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생활양식의 특정한 규칙이

 

하나님의 아들이 갈보리에서 우리의 죄를 지고 죽으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어는 정도는 복음을 대체하거나 최소한 복음보다 조금이라도

더 중요하게 교회에서 가르칠 정도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 한 남성분이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Paul 형제님'

'저희 교회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으니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홈스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형제님, 형제님도 홈스쿨을 하시잖습니까?

'네 저도 압니다.'

'형제님,저도 홈스쿨을 합니다.'

'네 압니다'

 

'하지만 홈스쿨은 제 표제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저의 표제이십니다."(고전 1:23 참고)

 

제 생각에 그들은 만약 제가 주일 저녁에

교회에서 간증을 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5년전,

저는 홈스쿨을 소개 받았습니다.'라고 할 사람들입니다.

 

저는 미국에서만 하더라도 여러 교회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바라건대 여기는 (그 주제가) 도착하지 않았길 바랍니다.

 

제 말은, 저는 온갖 대화들을 듣는데 그것들을

온통 가족에 대한, 온통 홈스쿨에 대한 것입니다.

온통 정유(精油)에 대한, 온통 유기농 음식에 대한,

온통 그렇고 그런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저는 설교단상을 들어 사람들을 싶을 지경입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제가 홈스쿨을 하는 것, 집에서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과 당신의 교회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위에 언제든, 무엇이든 올려준다면

당신은 이단이고 우상숭배자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잘못 배치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복음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파생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복음에서부터 흘러나와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보십시오,

저는 좋은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우선적으로 제 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특정한 방식으로 먹으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가능한 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제가 교회에 올때, 제게 예수님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저와 예수님에 대해 대화해주십시오.

새롭게 나타난 어떤 유행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모든 대화를 잠식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 위에 두는 그 무엇이든,

심지어 선한 것이라도 지옥에 마땅한 우상숭배입니다.

심지어 선한 것이라도 말입니다.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제 아이들을 '제자 삼는다',

제 아내를 '제자 삼는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표현을 선호합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복음화'합니다.

제 아내를 '복음화'합니다.

저는 그들을 복음으로 씻기기 원합니다.

 

오 물론 우리는 잠언과 아주 중요한 모든 다른 것들을 공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과 모든 것들을 봅니다.

하지만 주로 다른 모든 것들보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빠르게 한 구절만 더 보고 마치겠습니다.

로마서 12장1-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사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 본문은 성경의 다른 모든 본문들과 같이,

우리는 오늘 강해설교에 대해 많은 걸 듣고 있는데요.

 

일부 강해설교는 가능한만큼 정확할 수 있지만

완전히 죽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해설교는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이 본문은 반드시 "그리스도와 복음의 빛 안에서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으 삶에 필요한 정수를

이 본문에서 뽑아내지 못할 겁니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과,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이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질 건데요.

이 본문으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나서 5분의 휴식시간을 갖겠습니다.

 

저는 이 본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으셨나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회개하십시오.

여러분 모두는 그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스펄젼은 그 책을 100번 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심의 복음과 하나님과의 동행, 그리고 이 세상에

도사리는 위험에 대한 최고의 예시 중 하나입니다."

 

그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번연이 아주 분명하게 얘기했고

성경이 분명하게 기록했지만 간과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해석자이십니다,"

 

한 찬송가 작사가가 말했듯이 '그리스도가 명확하게 하십니다.

그분이 해석자이시고 그분이 명확하게 하십니다.'

(God movies in mysterious way 주 하나님 크신 능력中)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것들 중에 하나인데요.

만약 당신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그분께서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자세히 설명해주시던 제자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눅24:24-45)

 

주님께서 '이제 내가 이 모든 것이 내가 누구인지에 비추어 어떻게

해석되는지 알려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눅24:25-27;44-45)

 

'이제는 너희가 깨달을 것이다.내가 빛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너희를 위한 하나님의 해석자이고

하나님을 자세히 설명해 줄 사람이다.'

'너희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이 본문은,만약 당신이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복음을 제외하고 읽을면, 주요 핵심을 놓치는 겁니다.

 

따러서 이 본문은, 여러분이 조금 피곤해 보이셔서 잠시 쉬겠습니다.

5분 뒤에 돌아와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함께 볼 건데요.

만약 당신이 저와 함께 하실 수 있다면,

이건 그렇게 지루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복음으로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2개보다는 강의가 더 필요할 겁니다.

 

따라서 만약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우리는 그저 계속 계속 진행할 겁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을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든 삶의 최우선이 되시고

빛이 되시기를 사랑하는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분께서 우리가 그 안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보는 빛이요

우리의 위대한 동기와 목표와 목적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어린양께서 그분의 고난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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