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회심 요3:1~10, 약1:18
'회심'이란 한마디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터닝 turning 입니다.
어느 한쪽 방향으로 가다가 거기서 이렇게 쭉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회심이에요
여러분들도 '회개'하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죠? *悔改
그리고 '믿음'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와 '믿음'을 합친 말이 '회심'입니다 *回心 주1)
회심 Conversion 이라는 것은, 가다가 방향을 돌이키는 것인데요,
근데 돌아오려면 무엇으로부터 돌이켜야 됩니다.
또 무엇을 향해서 가야됩니다. 이 양쪽 방향이 있습니다.
from : ~로부터, 이것은 회개입니다, 이것을 버리거나 떠나서
to : ~을 향하여, 이것은 믿음입니다.
이 둘을 합쳐서 '회심 conversion'이란 말을 쓰는데
이 회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에 관련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으로 이제부터 살아간다고 말할 때는
회심부터 이야기 해야 됩니다
그런데 회심이 왜 중요한가요?
여러분, 출발이 확실하지 않으면 나중에 굉장히 난처해 질 수 있어요
오늘 날 교회 안에 회심하지 않은 교인들이 꽤 많다는 생각을 제가 합니다
교인입니다 교회는 잘 나오고, 교회 생활도 다른 사람 비슷하게 다 합니다
그러나 자기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어요
교회 오래다니면, 교인들이 쓰는 '은혜받았다'는 등의 용어에 익숙해 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저 분은 참 믿음이 좋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면 전혀 거듭나지 않은, 전혀 회심하지 않은 그런 사람인 경우가 있어요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면, 복음을 바로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바로 듣고, 그 복음에 의해서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채
교회 나와서 교회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교회가 세상과 비슷한 것을 추구하는 그런 교회 가치관이 세속적인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신앙의 핵심을 구원과 회심과 성화.. 이런데 두지 않고
복 받는데 두는, 기복주의에 두는.. 그런 식으로 신앙 생활 하다 보면
회심하지 않은 교인으로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자 회심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제부터 설명 하겠는데요
회심을 말하기에 앞서, 반드시 중생을 말해야 됩니다
회심은 영어로 conversion 이고 *방향을 바꾼다는 뜻
중생은 regeneration 이에요 *다시 태어난다는 뜻
리제너레이션, 중생이 먼저 일어나야.. 회심, 컨벌전이 일어날 수 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왜 그런가? 중생은 뭐고, 회심은 뭔가? 이제 설명할 텐데
제가 중생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왜냐면 중생이 일어나야.. 그 결과 회심이 일어나거든요!
◑니고데모의 중생
중생에 대해서 성경에 가장 유명한 본문은 요한복음 3장 이에요
니고데모 라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예수님께 나름대로는 신앙고백을 하는 겁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런 일들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이렇게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이 '사람이 거듭나야 된다' 이렇게 답변을 하셨어요
지금 굉장히 대화가 이상합니다
니고데모가 하는 말에 예수님이 엉뚱하게 답변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게 엉뚱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가 알게 되요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3:1에 바리새인 이라 그랬어요, 또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랬어요
이 말은 유대인들의 최고 기관으로 산헤드린 이란 기관이 있어요
70명의 대표들로 이루어진 산헤드린 의 멤버입니다
한편으론 종교인(바리새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지도자(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요3:10절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모르냐?' 예수님 그렇게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란 말은 무슨 말인지요?
신학자라는 얘기해요 대단한 신학자이며 영적 지도자이다.. 이런 것입니다
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예수님은 사실은 제대로 랍비 교육도 받지 못한 아주 촌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만나겠다고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 지성인, 그런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이것은 니고데모가 굉장히 겸손하며 구도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 참진리를 찾고자 한다는
그런 걸 보여주고 있죠
그 다음에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온 선생입니다' 굉장한 표현입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오늘날에서는 어느 교회를 가든지 장로감입니다
이 정도 조건을 갖춘 사람이 교회 올 때
그 교회에서 인정 안 해 주겠어요?
근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 대해서 아주 차가운 반응을 보이십니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니고데모는 종교인이었지만 영적으로 죽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게 지금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니고데모는 외적으로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네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기 니고데모의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2가지 있습니다.
1)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다는 거예요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밤'이라는 말을 요한이 썼을 때는 뭔가 의도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밤에 찾아왔다'는 말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남의 눈을 피해서' 왔다는 말이 되지만,
그런데 요한복음 전체에서는 '밤'은 단순히 낮과 대조되는 어두운 밤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있어요
밤은 어둠이고 암흑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밤에 속한 사람이다, 영적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이다.. 그런 뜻이 됩니다
요13:30절에 가룟유다에게 예수님이 그 떡을 찍어서 주시면서
'네 할 일을 속히 하라'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러자 가룟 유다가 그 떡을 받은 후에 밖으로 나갑니다
'유다가 나가니 밤이러라'
가룟유다는 밤에 속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가롯 유다처럼 니고데모도 이 시점에서는 밤에 속한 사람이에요
2) 니고데모의 신앙은 어떤 것인가?
요2장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런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며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으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런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님이 그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어요
그걸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 믿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니고데모 입니다
'표적 신앙'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니까 '이 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아무도 당신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여러분, 이 표적 신앙은 신앙은 신앙이지만
아직 정말 예수님을 모르고 정말 예수님을 믿는 그런 신앙이 아니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표적을 보고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그들의 속에 있는 걸 아시니까 자기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표적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마다 무리가 예수님을 막 따라다녔어요
그러나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참으로 믿을 건 아니에요
예수님에 대해서 우호적이고 굉장히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를 종합해보면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하나님을 믿었어요 유대인이니까요
예수님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구도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고
성경도 신학도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가끔 만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성경을 줄줄줄 인용하고 신학적으로도 아주 박식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말을 해요 근데 진실한 신앙고백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거예요
니고데모는 표적 신앙입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이에요
교회 안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다른말로하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어도 겉으로는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뭐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서 이런 저런 일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지 않아요
예수님에 대한 우호적이겠지만, 사랑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
또 5절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말은 '구원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1)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있고
2) 위로부터 태어난다 는 뜻도 있습니다 둘 다 맞아요
한번 태어난 것은 육신적인 출생이죠, 근데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은 영적 출생,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은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난다 라는 뜻입니다.
요1:12~13절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born of God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중간 정리하면, 거듭남이란
1)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이며
2) 위(아버지)로부터 나는 것이며
3) 물과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은 구약의 에스겔 36장에 나오는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하여 말씀하신 거예요
에스겔 36장 24~27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요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고토(바벨론에서 본국)에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하시죠
근데 너희들이 돌아가게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말인가요?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의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 이것은 정결케 됨을 의미하죠
-그리고는 내가 너희 속에 내 영을 주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겠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말은 뭐냐면
하나님이 새언약을 말씀하셨는데
그 새 언약의 백성이 된다는 얘기예요
요3:5의 '물로 난다' - 이것은 우리의 내면이 정결케 씻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겔36:24~27
'성령으로 난다' -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겠다' 겔36:24~27
그래서 새언약의 백성이 되면 영혼이 씻어 깨끗함을 받고
성령을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거듭남 이에요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답합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거듭났다
근데 그 대답은 뭐냐면 회심입니다
회심은 중생의 결과다 - 제가 아까 이렇게 말씀드렸죠
우리가 변화되는 체험을 합니다 그것은 회심이에요
내가 믿으니까, 내가 깨달으니까, 내가 회개하니까
그래서 중생의 결과로 어떤 사람이 변화되는 그 모습(회심)을 봅니다
근데 그것은 결과이지, 중생 자체가 아니에요
중생은 하나님이 신비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
성령께서 당신의 뜻대로 우리들 내면 깊숙이 일으키시는 변화입니다
◑이제부터 <중생>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8:54~
▲1중생은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중생은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안에 영이 죽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서 '살리셨도다'는 우리 말로 번역하다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집어 넣었어요
원래 성경은 '너희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다' 입니다
모든 인간이 중생하기 전에, 거듭나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죽은 거죠 몸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근데 영적으로 죽은 것은, 영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을 가지고 있고, 영이 활발히 활동합니다
그 중에서도 영이 더 특별하게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죠 무당이라든지, 신내린 사람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며, 영적인 활동을 합니다
우리는 영으로 무엇인가 느끼기도 하는데
그런데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니까
죄와 허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 어떤 지식도 없고..
정말 그 안에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냥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참으로 내가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살아나는 겁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살아나자
비로소 이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생생해지고, 하나님이 실제가 되고
내가 하나님과 관계하고 교통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우리가 살아나는 것,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는 것.. 이것이 중생입니다
중생(한자나 우리 말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 重生)이란 말은, 거듭남과 같은 뜻입니다 동의어입니다
팔링 게네시아 인데 신약성경에 딱 두 번 나옵니다
마19:28 '세상이 새롭게 되어 (중생해서)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리라'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함과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래서 중생은 씻음이고 새롭게 하심입니다
이렇게 중생은 신약에 두 번 나오는데, 중생과 같은 개념의 내용들은 신약성경에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거듭남, 위로부터 남, 다시 태어남' 입니다
'중생'과 '거듭남'은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중생은,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나는 것인데,
누가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까?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엡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를 살리셨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죽은 영을 살리시는 것.. 이것이 중생입니다
▲2 중생은 전적으로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바람이 임의로 부매' 바람이 자기 뜻대로 붑니다
성령께서 중생시키시는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중생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어요
내가 중생하겠다고 노력할 수 있습니까?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에요
영적으로 죽은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합니까? 영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너 좀 움직여 봐, 팔 좀 들어 봐
아무리 우리가 말을 해도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일이에요
중생은, 즉 출생하는 것은 출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누가 낳아주는 거지 자기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와지는 것처럼
영적으로 태어나는 일도, 우리는 수동적입니다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약1:7~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위 말씀처럼, 중생은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는 것입니다
▲3 중생은 순간적이며, 내적으로 일어나는 일로서
우리가 알 수 없다
중생은 순간적입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중생했느냐/ 안 했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생하고 있다' 이렇게 과정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영적으로는 둘 중 하나입니다 죽었느냐/살았느냐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났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내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내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은밀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회심도, 우리가 회개하고 믿는 것도,
우리안에 내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생과 회심은 어떤 차이가 있냐면
회심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외적 행동, 외적인 열매니까)
그러나 중생은 내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은밀하게, 심지어 우리도 모르게 일어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죽은 우리의 영을, 우리 안에서 순간적으로 살리시는 그런 것입니다
▲4 중생의 결과는 회심으로 나타난다
여러분, 지금 제가 중생, 회심 자꾸 이렇게 말하면서
순서를 말하는데요,
중생과 회심은 동시적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요
예수님을 믿고 변화가 됩니다
그럼 그것을 회심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그 회심은, 먼저 하나님이 그의 죽은 영을 살려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믿을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사람이 회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반드시 회심으로 드러납니다
중생했는데 아직까지 회심하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중생했으면 회심한 것이고,
회심했으면 중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차이는 있어요
중생은, 순간적이지만,
회심은, 과정적입니다
우리의 변화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회심의 기간이 몇 개월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심의 그 어떤 과정 중에
어느 한 순간, 중생을 했죠
정말 영적으로 갑자기 속에서 살아나는 일이 있었겠죠
그래서 제가 이 중생과 회심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은, 원인입니다
회심의 원인!
하나님이 우리 죽은 영을 살려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 죽은 영을 살려주셨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인데
우리가 중생의 순간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어렴풋한 시기는 알겠죠)
우리는 회심만 아는 거예요 그 열매가 나타나니까요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내가 깨달았고, 내 속에 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죄를 회개하게 되었고.. 이렇게 내가 변화된 측면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변화되었는가? 그것은 그 이전에 내 죽은 영을 하나님이 살려 주셨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변화가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런 입장을 칼빈주의라 그럽니다
칼빈주의에서는 중생이 회심에 앞서 일어난다고 하죠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믿는 것은 내가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믿고 나면
그 다음에 중생이 뒤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입장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자신들의 경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믿고나서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보니까 믿게 된 것인지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보니까 믿고 있어요 왜 내가 믿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믿기로 결단한 것입니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나놓고 보면
내가 믿기로 결단한 그 자체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그래서 중생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죽은 우리의 영을 살리시는 것이고
그 결과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회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회심은 조금 과정적이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데,
중생은 순간적이고, 경험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중생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하나 다루겠습니다
중생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까 중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면 말씀을 통해서 하십니다
우리가 중생 자체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중생이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그 상황 속에 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생을 일으키시는데,
중생은 말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아까 약1:18절에서도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말씀으로 낳으셨다' 그랬어요
또 벧전1:22~23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여러분,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케 되어 형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게 회심입니다
왜냐면 내가 순종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믿는 것이니까요, *어떤 외적 열매
진리를 믿고 순종해서 내가 변화되고, 내가 형제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심은 무엇의 결과로 일어나냐면, 거듭남의 결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십니다
이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이것을 성경에서 그 예를 살펴보면,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죽었다가 살아났느니라)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5절에 '죽은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말씀)을 듣고 살아난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요11장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가 나사로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예수님께서 듣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빨리 베다니로 오십시오!' 마르다와 마르다가 그렇게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히려 더 미그적거렸습니다 그래서 이틀이나 지난 후에 있는 곳에서 떠나십니다
그래서 나흘이 지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는데, 마리아와 마르다는 울면서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은지 벌써 나흘이 되었습니다' 라고 했죠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서 돌을 굴려 놓으라 하시고 *유대인은 동굴 무덤
그랬더니 마르다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기 때문에 냄새가 납니다'
이미 썩어가는 시신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 밖으로 걸어나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나사로야 나오너라' 해서 나사로가 살아나올 때나사로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 것입니다
이때 나사로가 자의적으로 듣고, 자의적으로 반응한 것입니까?아닙니다 죽은 시체가 어떻게 음성을 듣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나사로에게 들어가서나사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100%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마치 천지창조 때 '빛이 있으라' 하시매 없던 빛이 생겼습니다빛이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듯이죽음 가운데서 생명을 생성하시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그래서 나사로가 살아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이때 여기서 '듣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니까 우리가 듣는 것입니다내가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생은 말씀 속에서 역사합니다
이것을 '효과적인 부르심 Effectual Calling 또는 Effective Calling' 이란 용어로 설명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나고 중생한다 그랬습니다
근데 말씀을 '귀로 듣는 것'은 일반적인 부르심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서 제가 전하는 말을 다 귀로 듣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목사님이 막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람들이 자기 귀로 듣습니다
이렇게 귀로 듣는 것을 '일반적인 부르심'이라 그래요
그냥 복음을 듣는 거죠
그런데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그렇게 귀로 들을 때, 죽은 영이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영이 죽어 있으니까요
그 중에 그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살려내시는 역사가 있어요
그 죽은 영이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나는 것, - 이것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부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려내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 역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때,
어떻게 살리시는가?
말씀으로 살리십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은 세상의 일반적인 이야기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오해합니다
말씀은 도덕적인 가르침, 도덕적인 설교가 아닙니다
말씀은 무슨 철학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말씀은 그런 지식적인 정보가 아닙니다
정보를 담고는 있어요, 그러나 말씀은 영이고,
이것은 생명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모든 사람이 귀로 듣지만
일부 사람들은 성령께서 그 말씀을 그 마음안에 깨닫게 해 주심으로써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
이것이 중생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듣고 살아나기 때문에 어떻게 됩니까?
그 말씀을 믿게 되는 거죠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게요
지금 제가 하는 모든 얘기는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 그 얘기입니다
◑중생은 오로지 하나님의 주도적(주권적) 역사입니다!
나의 의지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 일부 사람들은 믿습니다
반대로 일부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왜 일부 사람들은 믿고, 왜 일부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설교를 잘 하면.. 사람들이 믿고
설교를 못하면.. 안 믿을까요?
이것은 성경적인 답이 아니에요
아무리 설교자가 유창하게 설교를 해도
꿈쩍도 안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의 입으로 복음을 전해도
거기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 그런데 성령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그 죽은 영혼을 살리셔서 그 사람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 말씀을 통해서
아까 나사로의 시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말씀이 죽은 나사로를 일으킨 것처럼, 살려낸 것처럼
성령께서 복음을 들을 때 복음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죽은 영을 살리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가 듣고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이 일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부르고
그 결과 살아나는 것을 '중생'이라 그럽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이제 믿게 되고, 알게 되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게 되죠
이 부분을 "회심"이라 부릅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
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러분, 지금 제가 복음을 들을 때
일부 사람들은 믿고, 일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근데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위와 병행으로) 이 세상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마음이 혼미해져 가지고
그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밭의 비유는 '길가'입니다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네 종류의 밭이 있었어요
길 가, 돌 밭, 가기 밭, 좋은 밭
그런데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은 이런 것입니다
여기서 '길 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니고, 밭과 밭 사이에 나 있는 좁은 길입니다
밭과 밭 사이에 있는 그 길을 지나가면서
씨 뿌리는 자가 양쪽 밭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근데 씨를 뿌릴 때, 일부는 그냥 그 씨뿌리는 자가 걸어다니는
그 좁은 길(길 가) 위에 떨어집니다
거기는 사람이 계속 밟고 다니기 때문에 단단합니다
그래서 씨가 떨어지면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릴 수 없어요
그냥 길 위에 놓여질 뿐이지요
그러면 새들이 와서 쪼아먹는 겁니다
지금 정확히 이 고후4:4, 6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똑같이 학교 졸업하고, 똑같이 똑똑하고, 똑같이 말씀을 듣는데
한 사람은 믿고, 한 사람은 못 믿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 또한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설명하면, 우리 죄로 인해서 그렇습니다
롬1:18절 부터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여기서 '불의로 진리로 막는 사람들'이란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기 무의식 속에서 억누릅니다
자기 죄로 인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기 속에서 억누릅니다
그래서 롬1:22~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그래서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우둔하게 되고 어두워지고..
그래서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인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상실하고 억누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거부한 그 자리에
거짓 신이 들어와서 거짓 신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본성으로) 압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기가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그럼 언제 알게 될까요? 나중에 심판대에서 알게 됩니다
심판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할 겁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았다, 처음부터 하는 하나님을 내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억누르고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을 다른 식으로 설명하면
사탄이 우리 마음을 혼미케 해서, 복음의 광채를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게 되는 사람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렇게 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춰주셨어요
이것을 '성령의 조명' 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오니까 우리가 환히 보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빛이 들어오는 이것을
우리가 하는 게 아니고
수동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그 빛을 비춰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이런 것들을 제가 지금 여러분께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냐.. 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중생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중생하라, 거듭나라! 이런 명령은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무슨 명령이 있느냐면
'회심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명령도 많이 나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 명령도 많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면 됩니다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됩니다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나중에 회개하고 나서 되돌아 보니까
내가 회심한 것이, 그 이전에 성령께서 내 마음에 역사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구나!
그 성령께서 내 죽은 영을 살려주셨고,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믿게 된 것이구나.. 이렇게 회심의 원인인 중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 자체를 아는 게 아니고
중생의 열매인 회심을 보면서
나에게 중생이 일어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람이 부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바람이 자유로이 불거든요
그러나 바람이 부는 결과는 압니다
우리가 바람결을 느낄 수도 있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봐서도 압니다
이것이 중생이요, 거듭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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