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박해 중에 임한 큰 기쁨 행8:1~8
▲핍박을 통해서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언제나 예수로 사는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로 살게 되면 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됩니다.
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과/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살게 되면, 좋은 일이 생기나/어려운 일이 생기나
마음이 크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환경보다는,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핍박이 너무 심하여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을 가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기가 어려워지니까 뿔뿔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는데,
그 사이에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아시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치 산이 메말라 있는데 불씨 하나가 바람에 날려서 퍼지게 되니까
그 불씨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나중에 온 산을 뒤엎는 산불이 되는 것과 같은 모양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심령 중심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정말 이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놀라운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불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 부흥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8:1,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큰 핍박 중에 큰 기쁨
'흩어졌다, 두루 다녔다'는 표현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들어선
성도들의 형편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생생히 말해줍니다.
집도 교회도 다 버리고 목적지가 없는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이들은 눈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으십니까? 집도 없습니다.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십니까?”
그들은 고난도 두렵고 침묵만 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8:8절에 보니 본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큰 핍박 8:1>과 <큰 기쁨 8:8>,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함께 기록된 것은
성령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날 때 가만히 계셨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문에 교회가 무너졌습니까? 정 반대입니다.
예루살렘의 박해 때문에 초대 교회는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은 사방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유대와 사마리아, 소아시아, 유럽까지 교회는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전도의 주체가 사도들에서 평신도로 넘어 갔습니다.
스데반이나 빌립 같은 평신도들은 구제 사역을 위하여 뽑혔지만
이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8:1절을 보십시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4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상상치도 못했는데, 핍박을 통해 대위임령이 성취되다
여러분, 혹시 어떤 성경 구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명히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대 핍박으로 인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예루살렘의 대핍박으로 인하여 성취되리라고는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대핍박이 일어나서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무지 살지 못해서 피난을 가게 됐는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들이 흩어지면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그리고 교회가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 대핍박은
한편 생각하면 성도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도 말할 수 없는 손해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속에서도 역사하시고
그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심 가운데 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두움, 환난도 창조하신다
지난 주일 큐티 중 말씀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환란도 창조하신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예루살렘의 대핍이 일어나는가 싶지만,
그 일속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스데반의 순교도, 그리고 예루살렘의 대핍박도,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서 그랬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일속에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피난도 전도여행이 되다
5절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로 갔다고 했는데,
이것은 빌립이 당시 얼마나 다급했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대 핍박이 아니었다면 결코 사마리아로 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눅9:52-56절에 보면, 얼마 전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 땅에 들렀다가
그곳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야고보와 요한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말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라고 제자들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로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런 사마리아에 빌립은 왜 갔을까요?
유대인들이 여기는 (부정한 곳이라고) 따라 오지 않을 곳이기에 간 것입니다.
빌립은 피난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참 놀랍게 이 부분을 설명하기를 빌립이 사마리아로 간 일에 대하여
‘피난 갔다’고 하지 않고 ‘전도했다’고 했습니다.
마치 전도 여행을 간 것 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8:5, ..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빌립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피난 다닌 일을 전도 여행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은 분명히 사마리아에 전도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송을 받아 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전도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지요? 빌립이 성령 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는 곳이 어디든지, 전도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생명으로 살게 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혹시 어떤 어려움을 겪어서 피란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전도 여행이 되고 선교 여행이 된다는 말입니다.
▲참 성도는, 일상의 삶이 곧 전도가 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들었고 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귀신들린 자가 놓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통하여 친히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대 핍박 중에 이런 큰 기쁨이 일어난 것은
빌립이 성령충만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란을 당하여 잠시 당황하였지만 곧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마리아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갈급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피난길이 전도 여행이 된 것입니다.
그는 선교사 파송을 받은 것이 아니지만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전도하세요! 그래, 전도 해야지!’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면.. 삶 자체가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살면 우리가 직장 나가는 것이 전도고,
학교 다니는 것이 전도이고, 출장 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그래서 사마리아에 큰 구원의 역사, 큰 기쁨이 일어난 것입니다.
언제 핍박을 당하여 피난하여야 했었는지 다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적용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으로 불붙은 성도였습니다. 그들이 흩어졌습니다.
메마른 산에 불씨가 흩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엄청난 산불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아시아에 복음의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 때만큼 교회 성장이 크게 일어났던 때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여 나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면
환란도 핍박도 두렵지 않습니다.
전에는 꼭 환경 따지고 사람 따지고 자리 따졌습니다.
우리 자신이 약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좋은 환경 주세요. 하나님, 좋은 자리에 가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로 살게 되면 그럴 필요가 없어집니다.
오히려 “어려운 곳에 보내 주세요! 아무도 안 가겠다면 저 있잖아요!” 하게 됩니다.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고 믿어지니까
믿음 때문에 그런 기도가 나오는 것이고
실제로 그 삶은 놀라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담대함을 꼭 누리실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힘들고 어려워 삶의 기반이 다 흔들려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8장의 이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말씀도 기억이 안 나면
<큰 핍박과 큰 기쁨>이라는 단어만이라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큰 핍박! 큰 기쁨! 이대로 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세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도록 기도를 해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흔히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결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리가 없습니다.
평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가르쳐주시지,
어려움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혼란스럽게 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려울 때일수록 당신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질문이 바로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그만 마음이 조급해지고 두려워하고 염려하여
자기 자신에 집착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런 질문으로는 하나님 계획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자아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올 때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으시고
전제 조건을 달지 않고 ①“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이루시려는 것들이 깨달아집니다.
그 다음에 ②“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소상하게 다 밝혀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다면 근심과 두려움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순종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간단한 이 진리를 붙들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천인 명설교편◑ > 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열매에 담긴 축복의 비밀 레23:9-21 (0) | 2024.11.24 |
---|---|
축복의 물줄기가 터진 사람 고전15:10 (0) | 2024.11.24 |
폭포수 같은 하나님의 사랑 습3:17 (0) | 2024.11.24 |
풍랑 속의 믿음 행19:21-41 (0) | 2024.11.24 |
하나 되는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엡4:1-6 (0) | 2024.1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