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의 내적, 인격적 충만 갈5:22~23
성령충만은 <외적>으로 은사gift, 권능power, 표적sign이 나타나는가 하면,
<내적>으로는 우리 내적 인격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 두 가지를 항상 함께 생각하셔야 한다.
헬라어로는, 이 두 가지가 정확하게 구별된다고 한다.
영어로는, 성령이 우리 위에 (외적)으로 임하시는 것과
성령이 우리 안에 (내적)으로 임하시는 것의 차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 성경은, 이 구분이 되어있지 않고, 그저 똑같이 ‘충만’이라고 한다. (확인 요)
◑외적 충만은 쉽게 고갈된다.
▲다양한 <외적> 은사
베드로가 설교해서 하루에 3천 명씩 주께 돌아온 것도.. 외적 역사이다.
기도의 능력, 전도의 능력, 신유의 은사... 외적 역사이다.
권위(격려, 위로)의 은사... 그가 만나기만 해도, 손만 잡아줘도 위로받게 된다.
이 외적 은사는.. 사람마다 다르고,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뭐든지 갖게 된다.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다.
▲외적 은사는 쉽게 고갈 된다.
그런데 이 성령의 외적 은사는, 마치 자동차에 연료와 같다.
또는 휴대폰의 밧데리와 같다.
살다보면 쉬 없어진다. 그래서 자주자주 다시 채워야 한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니고,
간절히 사모할 때, 주님이 뜻대로 다시 채워주신다.
◑내적 충만
성령의 <내적> 충만은, 인격적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이 바뀌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 9가지다.
어떤 사람의 인격이 달라진 것은.. 내적으로 성령충만을 받은 결과이다.
▲7집사 선택 조건은 <내적 충만>
초대교회에 7집사를 택할 때, 그 조건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란 조건이 붙었는데,
<내적 충만>을 뜻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가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고,
‘그의 인격적 변화가 나타났느냐?’에 따라 선택한 것이었다고 본다.
과실나무에 진액이 충만하면, 과일 열매가 맺어진다.
포도나무가 포도열매를 맺고, 사과나무가 사과열매를 맺는다.
예수님,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해지시면, 자연히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면.. 예수님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외적 권능>을 행하면서도, 성령의 <내적 열매>가 없을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성령충만한 사람이 <외적 권능>을 행하면서도
<내적 열매>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데, 예를 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권능을 행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2~23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도 행했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불법을 행했다’고 하셨다.
혹자는, 이것이 ‘성령의 권능으로 행한 외적 표적’이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권능을 행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가짜fake 능력/가짜 성령’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진짜 성령의 능력으로 권능을 행하다가, 나중에 교만해져서
인위적인 방식으로 (예전처럼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불법적인) 권능이 나타나기도 한다. 주술적인 권능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성령의 <외적 표적>과 <내적 열매>는 젓가락처럼 짝으로 가야 한다.
그럴 때 나타나는 외적 표적이, 진짜 성령의 외적 표적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외적 표적, 외적 권능이 그에게 있을 수 있지만,
성령의 내적 표적은 그에게 만약 없다면
그는 자기가 과거에 받은 외적 권능을, 계속 우려먹고 사는 사람이다.
계속 우려먹는 다는 뜻은.. ‘권능이 있는 체’ 한다, 속인다는 뜻이다.
혹은 진짜 자기에게 권능이 계속 있는 줄로 착각할 수도 있다. 과거에 있었으니까!
▲가장 좋은 것 the greatest of these
우리가 진짜 사모해야 할 것은,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완전히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2장에서 성령의 여러 은사를 설명한 후에
즉시로 ‘가장 좋은 것 the greatest of these’을 보여주겠다면서 고전12:31
이어서 ‘사랑’(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가르친다.
많은 권능을 행해도, 방언, 예언, 믿음 등 모든 외적 권능을 행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고전13:1~3
많은 사람들이, 외적으로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사모하면서도
내적으로 열매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사모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가장 좋은 것 the greatest of these’이라고 말했다.
▲내적 충만을 받은 사람은 <아름답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하실 때
자기에게 돌 던지는 자를 향해 축복하고, 천국 가실 때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다.
‘내적 충만’,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을 보여주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그런 ‘내적 충만’을 잘 보여주셨다.
그래서 도리어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들을 사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진짜 성령충만한 사람은, 핍박 받고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증거가 나타난다.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외적 권능>을 받은 사람들 중에
자기 믿음이 좋아서, 자기가 그런 대단한 권능을 받았다는 착각에 빠져서 살다가
끝을 비참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교만의 열매를 맺으며 살다가, 그것을 거두고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외적 권능>을 받은 사람들이 주의할 것은
자기에게 <내적 열매>가 맺어지는 증거가 나타나는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적 권능>은 나타나는데, <내적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법>인 것이다. 즉 ‘변질된 권능’이다.
그런데 종종 우리 주변에 보면,
<외적 권능>을 받은 사람이 쉽게 변질되는 것을 본다.
<외적 권능>이 없는 사람은, 변질될 건더기도 없지만,
그것을 받은 사람은.. 교만해져서.. 결국은 심한 경우 이단이 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부분 성도에게 <외적 권능>을 안 주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안 주시는 것이 성도들에게 <안전>하니까... 90% 샛길로 빠져버린다.
물론 우리가 외적 권능을 못 받는 주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가 샛길로 빠질까봐 두려워서라기 보다는,
내가 <성령충만>하지 못해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그렇다.
▲외적 표적과 내적 열매가 같이 나타났다.
사도행전 2장에 불의 혀같이 성령의 세례(충만함)이 나타났다.
①그때 사람의 수가 3천명, 5천 명씩 더하는 <외적 역사>가 나타났다.
사도들도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행2:43
②그 교회에 다음과 같은 <내적 열매>가 나타났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랑의 열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화평의 열매)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기쁨의 열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4~47
다 중요하지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마음을 같이하여>이다.
<마음이 나눠진 교회>는 죽었다 깨어나도..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신다.
오늘 우리 교회는 ‘마음이 하나’되었는가? ... 성령이 충만한 교회다.
▲전우들이 하나 되는 교회
여러분, 옛날 독립군이나 아니면 월남전에서 같이 전투했던 군인들이
나중에 식당에서 모여서 밥을 같이 먹는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위하여, 돈독하게 하나가 되겠는가?
영화를 보게 되면, 이런 장면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간접체험 하게.
우리 크리스천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마귀와의 영적전쟁의 최일선에서 각자가 싸우는데,
이런 뜨거운 전우애, 하나 됨이 있어야지
내부에서부터 분열되면.. 마귀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가 그랬다는 것이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다 팔아도..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마음이 하나’되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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