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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유기성목사 명설교(199편)

신앙인의 민낯 수1:1~18, 11:15

by 【고동엽】 2024. 11. 23.

신앙인의 민낯         수1:1~18, 11:15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실상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온전히) 믿지 않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은 정말 충격이고 끔찍한 얘기죠. 

코로나19 때문에 다 힘들고 어렵다고 말합니다. 
특히 교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다 사정이 어렵다'고 말하는 
그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에 진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철저히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

그동안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것, 
이것이 지금 현재 우리 한국교회와, 또 성도들의 신앙의 민낯입니다. 
그러니까 코로나19도 힘들지만, 코로나19 이후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여호수아서 1장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두려워할 만큼, 깜짝 놀랄만한 그런 영적인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떨릴 정도였습니다.

수1장을 지나면, 이제 2장으로 건너가야 되는데 
그렇게 다음 장으로 건너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지금 우리 신앙의 민낯도 환하게 보여주시는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여호수아서 말씀을 
매주 설교로 듣고 묵상하는 중에 
여러분의 신앙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 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40년 광야를 지나서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바로 그 직전에 
요단강만 건너면 이제 가나안 땅인데, 모세가 죽습니다. 

 

수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는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납니다. 
거의 하나님 급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죽음으로 다들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그 모세의 역할이 여호수아에게 주어집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라는 거죠. 

▲그런데 여호수아가 너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왜 두려웠을까요?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두려워 떨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수1장에 
6절, 강하고 담대하라 
7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렇게 3번이나 반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지금 여호수아가 두려워 떨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 여호수아가 왜 두려워 떨고 있나요?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가 모세 급은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죠.

 

△가나안 땅에는 이미 아주 강대한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여호수아는 40년 전에, 가나안 정탐꾼으로 이미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열두명의 정탐꾼으로 들어갔다가, 
그는 이 가나안 땅에 아주 강대한 족속이 살고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또한 그들의 성벽도 대단히 견고했지만, 

그는 '얼마든지 우리가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들어가자고, 갈렙과 함께 그렇게 외쳤던 사람이 여호수아 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이 무서워서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왜 그렇게 두려워 했을까요? 
그거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고보니까 
자기가 진짜 하나님을 (온전히, 철저히) 믿은게 아니었다는 것이 깨달아진 겁니다. 

이거 말도 안 될 일이죠. 
아니 모세를 뒤이어서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택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여호수아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여호수아처럼 신실하고, 그리고 자격도 있고, 그리고 경험도 있는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지 않았다... 

두려워 떨었다는 것은, 믿기는 믿었지만 온전히 믿은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걸 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1절에서, 여호수아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데 
먼저 모세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모세를 뭐라고 표현했냐면 '여호와의 종 모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던, 
정말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대로 행했던 '하나님의 종'이었어요. 

신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보통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하면 즉시 죽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만났고, 
늘 만나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고, 하나님께 손종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반해서 여호수아는 뭐라고 표현했냐면 
'모세의 수종자'라고 했는데, '모세를 보좌하던 사람'이란 뜻입니다. 1:1

(여러분,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 하고 비유해 보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직접 하나님이 대면하여 알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것을, 그저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모세의 시종이었거든요.

그러니 급수, 등급이 한참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을 얼마나 인격적이고 친밀하게 알고 교재했는지 
여호수아는 그걸 옆에서 지켜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의 엄청난 역사를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것도 곁에서 보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여호수아가 모세의 직분을 이어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되었어요. 
자기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있는 모세를 보고, 여호수아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믿었어요. 
그는 얼마든지, 지금이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모세를 보고 
'아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시구나!' 그렇게 믿었다니까요.

 

그런데 직분은 이어받을 수 있는데,

모세가 가진 능력을 고스란히 그대로 이어받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게 여호수아가 두려워했던 이유이지요...  

그런데 그 모세가 죽자, 완전히 상황이 달라져버렸어요. 
게다가 자기가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했던 역할을, 이제부터 자기가 해야 돼요. 

엄청난 두려움이 왔어요. 
그동안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그런 믿음이 아니었던 것이에요. 

모세가 죽으니까, 이제 자기가 현실에 부딪히니까

완전히 자기 믿음이 다 고꾸라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믿음과 신앙의 민낯이었어요...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 똑같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실제가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처럼) 신실하고 성실하고 충성스럽고... 
그러니까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지도자로 택하신 거죠. 

그때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제일 신실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 여호수아였다니까요. 

지금 우리 가운데도 정말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그리고 가정도 다 가족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도 하고 
그런 여호수아가 지금 우리 교회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으로는, 도무지 극복이 안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현실에 딱 부딪히면, 골리앗을 만나면, 요단강을 밟고 들어가려고 하면, 여리고성 앞에 서면

자기 믿음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티를 안 내고 감추려고 해도, 자기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을 겪으면서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은 
감염의 위험, 경제적인 위기만이 아닙니다. 

믿었던 교회마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성도 수의 감소, 헌금의 감소 등으로)  
도처에서 교회에 대해서 별의별 말들이 다 들립니다.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중에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은퇴하시기도 하고 
또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가는 일도 생기고... 

어느 순간에 보니까 나 혼자 남은 것 같아요. 
경제적인 어려움도 오고, 시험도, 유혹도 오고...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사람들이 (당시 여호수아를 주목하듯이) 다 나를 주목하네요. 
'당신은 하나님 믿죠?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금 코로사 사태 중에 

여호수아가 지금 부딪힌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그동안에는 모세를 믿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면하고 만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걱정이 없었어요.

모세가 나가서, 하나님께 물어보면 되었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모세가 죽어서, 상황이 달라진 거죠.

 

근데 이제부터는 여호수아 자기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아는 믿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거예요. 모세가 죽었으니까요.

여러분 믿었던 사람 다 떠나고, 나 혼자 남았고, 
(코로나로) 교회에도 다 모일 수가 없고, 나 혼자만 남은 것 같고, 
게다가 어느듯 사람들이 다 나를 주목해요. 

그럴 때도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그런 믿음이 있습니까?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민낯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두려운데"    *지금 본문에 여호수아가 두려워하고 있죠.
내 주위에 두렵다고 막 하소연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거예요. 

아니 나도 지금 힘든데, 

내게 찾아와서 위로해 달라는 사람이 오는 겁니다.

 

지금 나도 휘청거리는데, 

자기를 붙잡아달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오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에요. 

여러분, 반드시 감당못할 시험을 당할 때가 옵니다. 
그때를 대비해야 돼요...  

 

'아휴 나는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피해갈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담임목사, 장로, 권사)이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잖아요. 
가족들도, 친척들도, 모든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 말은, 여러분에게 (여호수아처럼)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은 '난 형편없어, 난 잘 모르겠어, 
난 주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어, 
나는 하나님이 때로는 전적으로 안 믿어질 때도 있어!' 

여러분 그리고만 있을 수 없을 때가 옵니다.
진짜 불잡아 줘야 될 (모세같은) 사람이 흔들리고,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여호수아처럼) 나만 주목해 보고 있는 순간이 올 때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거예요? 

혹시 여러분은, 귀신 정도도 무서워하는 믿음으로 지금 살고 있지는 않나요? 
행19장에 보면,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도대체 누구냐?'
이러면서 그들에게 달려들어서, 그들에게 봉변을 준 일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악귀가 들린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그 악귀가 만약 '내가 예수는 알지만,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며
이렇게 나에게 도전하면 어떻게 하냐 말이에요. 

그런 믿음으로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십니까? 

여러분 이제는 더 이상 의지할 어떤 사람을 찾으면 안 됩니다. 
그게 여호수아 신앙의 한계였어요. 
(모세같은)사람을 의지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결국 이렇게 돼요. 결정적인 순간에 그때 다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셨어요.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를 만나주셨어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5

 

그리고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하는 이 약속을 주셨어요. :5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족속을 내가 다 없애주겠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원군을 보내주겠다고도 말씀하지 않았어요. 
내가 신무기를 너희에게 들려주겠다.. 그러지도 않았어요.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 
'내가 모세와 하던 것처럼 너와 같이 만나주겠고 
너와 함께 하고,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5 

그렇게 되면서부터 여호수아는 완전히 바뀝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에 정말 철도 없이, 빨리 담임목사가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게 뭔지 실상을 잘 몰랐으니까요! 

저는 담임목사가 되기만 하면, 
마음대로 설교하고, 마음대로 목회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 저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담임목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 제가 맡았던 교구 식구들보다
제가 담임목사로 나갔던 교회는, 성도 숫자가 비교도 안되게 적었어요. 
그러니 뭐 목회가 힘이 들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단독목회를 하며, 담임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정말 예상치 못했던 중압감이 확 밀려오는 겁니다. 영적인 중압감이에요. 

새벽기도 참석인원도, 제게 있어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주일예배 참석인원, 지난 주에 비해서, 지난 달에 비해서...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거예요. 

모든 것이 다 담임목사 책임이에요. 
교인들 얼굴 표정 하나까지도..
웃는 얼굴인지, 찡그리는 얼굴인지, 그 책임도 담임목사가 져야 되는 거예요. 

과거에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도 안 썼거든요.

그때 저는 새벽기도에 몇 명이 나왔는지, 
주일예배에 몇 명이 나왔는지...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담임 목사가 되고나서는,

누구도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누구에게 보고할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명절 때,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새벽기도 인도해야 되니까요. 

부목사님은 명절이라고 보냈어요. 
명절기간 새벽기도는 제가 인도했어요.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어요. 

담임목사가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더라고요! 
그때 제가 알았어요. '아 내가 (모세에게 의존적이던 시절의) 여호수아의 신앙이구나!' 

사람을 늘 의식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그런 믿음으로는 
담임목사직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어요.

△제가 성남시의 이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해 왔을 때는, 문제가 더 심각했어요. 
전임 목사님이 이렇게 큰 여배당을 건축하고 부채가 많았어요.
그 건축비를 상환해야 했어요.
그리고 이 넓은 예배당을 성도로 채워야 했어요.

이런 모든 일들을 다 담임목사인 제가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되는거죠. 
훌륭한 장로님들이 같이 도와주셨고, 
제 아내도, 두 딸도 있어서 제게 위로가 되었고 
우리 부목사님들, 전도사님들 참 열심히 사역해 주었어요. 

교인들이 저를 생각해 주고, 격려해 주고, 저를 섬겨주고, 사랑해 주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것으로는 담임목사가 져야될 무거운 책임을, 조금도 대신 감당해 줄 수가 없었어요. 

심장 쇼크가 올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베드로를 물 위를 걷게 하셨던 그 주님, 
그 주님을 제가 만나야만 해결된다고 생각했어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을 살자! 
저는 선택사항이 아니었고, 필수였습니다. 

예수님과 정말 동행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그러면 사는 거고 
저도 사는 거고, 교회도 사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다 죽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1:5

그 약속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면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지,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사실 우리가 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실 것을.. 우리가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진짜 믿어져야 돼요.
귀로 들어서 머리로 아는 것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된다니까요. 

여호수아도 하나님을 믿었어요. 하나님이 죽었습니까? 모세가 죽었지요! 
'그런데 왜 너는 그렇게 무서워 하는거야?' 

여호수아도 안 다니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것은 안다니까요.
그런데 무서운 것을 어떻게 해요, 무서운 걸 두려움을 어떻게 하냐고요?  
그게 문제인 거예요.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영상으로 예비를 드리는 분들도 다 하나님을 믿으시잖아요. 

그럼에도 문제가 생길 때, 시험이 일어날 때.. 두려운 것도 또 사실이잖아요. 
염려가 되고, 좌절되고, 낙심이 되는 그 이유가 뭐죠? 

모세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여 믿는 믿음이 아니고 
여호수아처럼 사람(모세)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었던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똑같이 함께 하시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신 것은 :5
'이제부터 여호수아 네게서 믿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뜻입니다. 

6, 7, 9절에 반복해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6절, 강하고 담대하라 
7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라고 내가 명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알려면, 
우리의 마음이 강하고 담대한지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지,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코로나 19든지, 
나는 강하고 담대한가요?
그 증거가 나와야 하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합니다. 

그게 답이고, 그게 성공하는 길이고, 잘 되는 길인 것을 아는데 
곁눈질 하고 흔들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7~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공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룬다.. 
오늘 처음 들으셨나요? 

문제는 '알지만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요.
몰라서 지금 못 사는 게 아니거든요.

▲어느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목사님,  '나는 죽고 예수로 살라'는 목사님 말씀대로 제가 했더니 
정말 놀라운 삶을 살게 됐습니다.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시더라구요. 
참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한편으로는 좀 서운함이 있더라고요. 

 

어떤 분이 또 그러세요. "목사님 말씀대로 예수님과 그렇게 친밀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안 되네요. 나는 잘 안 돼요." 
그 말씀을 들을 때, 그분이 얼마나 참 안타까운지... 
그분의 심정이 얼마나 힘들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또 한편 너무 제가 서운하더라고요. 
왜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이렇게 표현을 하느냐 말이에요? 

아니 '성경 말씀대로 (살아봤더니)..' 이렇게 표현해야죠. 

제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살라,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해 보라' 
그게 유기성 목사가 하라는 말입니까? 

'제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아봤더니..'
'성경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셔야죠!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가 아니라요!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정말 성경대로 한번 믿어보고, 살아보자는 겁니다. 
저도 흔들릴 때, 휘청할 때가 많습니다. 
'안 되나 보다.. 이건 안되는 건가보다.. 도무지 못하겠어..' 이런 때도 와요. 

그때마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건지..' 다시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그렇고, 그렇게 살라고 명했구나' 

 

그러면 두 번 다시,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저는 갑니다. 주님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저는 (순종의 길로) 갑니다.' 
그렇게 살았던 것 뿐이에요.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거예요.


◑여호수아는 정말 하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순종했는지.. 수11장에 증언이 나옵니다. 

수11: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야 대단하잖아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거, 
모세를 통하여 주신 계명들을, 
하나도 행하지 않은 게 없었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수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살아냈습니다.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대면하면 만났기 때문입니다. 

수1장에서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으로서 있었던 믿음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났어요.  수1:1~5

그러고 나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있었어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었어요. 
결국 가나안을 정복했죠. 

▲여호수아가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서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확 모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그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요. 
여러분은 힘들고 어려울 때, 진짜 주님을 만난 사람 누군가를 찾지 않습니까? 

'정말 저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 같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은 그 사람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습니까?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모여요. 

▲가나안 동쪽 편에 
이미 자기 지분의 땅을 모세로부터 받은 세 지파가 있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면 이미 자기가 받은 땅들이, 요단강 동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같이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면 
전체 이스라엘 백성은 힘이 쭉 빠져요.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가나안 정복인데 
일부가 벌써 떨어져 나가면, 그러면 이건 전쟁도 제대로 안 되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같이 요단강을 건나야 된다.'  1:12~15 

그들이 즉각 응답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1:16~18

그들은 모세로부터 요단 동편 땅을 받았어요. 
그러니 여호수아가 이야기할 때 '당신을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세 지파는 여호수아에게 즉각 복종합니다. 
그리고 맨 앞장서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을 정복하러 들어갑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땅에 남겨두고, 
그리고 장정들은 군사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앞장 서서 요단강을 건너요. 

결국 그렇게 하나된 힘으로 가나안 땅이 정복된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진짜 만나고 붙잡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 나타나요.  (요단강 동편 세 지파를 보세요)


▲마치는 말

오늘 이 말씀은,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마음을 강하게 가지라' 그런 메세지가 아니에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을 대면하라는 겁니다. 
주변에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그때라도.. 
심지어 교회도 없는 때가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나와 만나주시는 하나님!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여호수아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어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주신 약속이고, 그 약속은 이미 이루어졌어요. 

우리 안에 주님은 성령으로 오셨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 드리면서, 설교 들으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하셨을 거예요. 

여러분이 다 들으셨을 거예요.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받고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게 된 그 사건이 
오늘 이 예배 중에, 여러분에게 실제로 일어났어요! 똑같아요! 

여러분이 그 사실을 진짜 믿으셔야 돼요. 
'주님이 나를 만나주셨구나, 내안에서 내게도 말씀하고 계시는구나' 
그러면 충분하지요.

그 주님을 붙잡고 사는 거예요. 
그것만이 여러분이 이 세상을 이길수 있는 힘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밀이에요.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교회가 살아요. 
한국교회가 다시 살고, 우리나라가 사는 거예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끝내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시고,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제 우리 기도합시다. 
여러분의 신앙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놓으십시오. 
'나도 여호수아처럼, 한 민족이 지도자가 되어도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  
나는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일 거라고 알고 있는데 
그들이 다 변할지라도, 뒤로 물러갈지라도
여러분은 확신있게, 자신감있게 주님을 따라가는 그런 믿음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 제가 오늘 여호수아처럼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겠다..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제 속에서 믿음이 다시 분명하게 소생되게 하시고 
살아있는 믿음 되게 하옵소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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