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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 이해편◑/텅빈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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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엽 2025. 3. 19.

인간은 자기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영원을 흉내 내지만, 하나님의 입김 앞에서 그 모든 시간은 풀잎처럼 마릅니다. 인간은 보이는 것들을 움켜쥐며 자기 안전을 보장하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언젠가 무너지고, 만질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침묵합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가시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만을 붙잡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만 현실이라 부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안전이라 부르고,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만 성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은 불가시적이고 영원한 것을 놓칩니다. 인간이 영원을 놓치는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눈앞에서 침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귀가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치적에 날개를 달고, 자기 이름을 기념비처럼 세우며, 자기 의를 하늘까지 올리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가면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연출된 경건을 보지 않으시고, 포장된 열심에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는 그 깊은 속셈까지 들여다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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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자기 평안을 찬양하고, 풍요할 때에는 은혜를 말하면서도 실상은 자기 손에 쥔 것을 신뢰하며,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자기 삶의 장식품으로 삼으려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낚아채 자기 욕망의 크기에 맞추려 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성공의 도장으로 바꾸려 하며, 영원의 빛을 시간의 유리병 속에 가두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두어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종교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호출되는 이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한복판에서 영원을 열어 보이시는 분이시며, 심판의 한복판에서 은혜를 선언하시는 분이시며, 폐허의 한복판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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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리라”고 하실 때, 그것은 단순히 외적 환경이 조금 나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심연을 하나님께서 친히 건너오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 사이, 영원과 시간 사이, 생명과 죽음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던 그 깊은 골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 은혜로 메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그 심연을 건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종교심도, 도덕도, 업적도, 선행도, 눈물도, 결심도 그 심연을 다리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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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게도 눈에 보이는 것만을 붙잡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현실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언제나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에 잡힌 것은 언젠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인간은 시간의 강둑 위에 서서 영원한 성을 짓는다고 말하지만, 그 발밑의 흙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이라 부르는 것도 시간의 임대물이고, 명예라 부르는 것도 바람의 자국이며, 소유라 부르는 것도 잠시 맡겨진 그림자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하루를 영원처럼 꾸미지만, 죽음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가까운 경계선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피해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죽음에서 인간이 만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 너머에서 생명과 시간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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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적 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내밀고 싶어 합니다. 나는 이만큼 했습니다. 나는 이만큼 믿었습니다. 나는 이만큼 봉사했습니다. 나는 이만큼 견뎠습니다. 나는 이만큼 깨끗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인간의 모든 “이만큼”은 침묵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비입니다. 인간의 선행이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닫힌 문을 여는 은혜의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평안은 내가 나를 증명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참된 평안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모든 심판을 받으셨다는 복음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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