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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2012)년 바울서신 강의안3

by 【고동엽】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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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학년도 바울서신 강의안 3 “갈라디아서 서론(序論)” 1. 갈라디아서의 중요성 갈라디아서는 역사적인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이 이 땅의 역사에 실재하였던 갈라디아교회들에게 보낸 역사적인 편지이다(1:1-4). 그럼으로 갈라디아서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는 갈라디아서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갈라디아서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갈라디아서에 대한 이해는 깊어질 것이며, 반대로 갈라디아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면 빈약할수록 갈라디아서에 대한 이해는 빈약하고 독단적이거나 주관적인 이해로 빠질 수 있다.1)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과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것이 갈라디아서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도외시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존중하여야 한다. 갈라디아서는 16장으로 구성된 로마서나, 각각 16장과 13장으로 구성된 고린도전∙후서와 비교해 볼 때 6장 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서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갈라디아서가 중요한 편지가 아닌 것처럼 취급되어서는 아니 된다.2) 갈라디아서는, 저명한 갈라디아서 주석가중의 한 사람인 베츠(H.D. Betz)가 말한바와 같이, 이 세상에 현존(現存)하는 기독교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3) 사실상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역사의 기원과 뿌리를 밝혀줄 수 있는 가장 초창기 기독교문헌 중의 하나이며, 또한 지나간 이천 년간의 기독교역사에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신약성경 중의 한 부분이다.4) 그러기 때문에 갈라디아서는 바울신학은 물론, 초기기독교 정체성과 신학을 파악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출발점과 안내서로 불리어진다.5)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1)갈라디아서의 해석사에 관해서는 John Riches, Galatians through the Centuries (Oxford: Blackwell, 2008)을 보라. 2)Leon Morris, Galatians. Paul's Charter of Christian Freedom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6), 13: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가장 짧은 서신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덜 중요한 서신으로 간주해서는 아니 된다. 갈라디아서는 위대한 주제들, 기독교교회가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할,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의 매일 매일의 삶에 영향을 주는 위대한 주제들을 취급하고 있다.” 3)Betz, “In Defense of the Spirit: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as a Document of Early Christian Apologetics," Aspects of Religious Propaganda in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ed.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76), 99-114. 4)기독교회에 미친 갈라디아서의 영향력에 관하여서 R.N. Longenecker, Galatians (WBC 41, Dallas: Word Books, 1990), xliii-lii; Betz, “Galatians," ABD 2, 873-874를 참고하라. 5)James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xiii를 보라. 갈라디아서 주석을 쓴 R.N. Longenecker는 그의 주석 Galatians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1)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2) 바울의 연대기를 확립하는데 있어서, (3) 초기 사도시대 역사의 과정을 추적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4) 신약 성경의 많은 비평적, 정경적(正經的) 이슈들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잣대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도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여러 서신중에서 가장 먼저 - 2 - 갈라디아서를 가리켜, 자신의 “사랑하는 Katie von Bora”(루터의 아내 이름)라 부를 만큼, 갈라디아서를 그 어떤 성경의 부분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Luther, Werke, 40:2), 자신의 종교개혁의 신학적 원리인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근거를 거기서 찾았다.6) 갈라디아서의 중요성은 지난 1980년대 초부터 등장한 “새 관점의 바울연구”(the New Perspective on Paul)7)로 인하여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8) 왜냐하면 새 관점의 바울연구가들이 제기한 주요 쟁점들, 이를테면,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인간의 율법적 행위와 공로에 구원적 의미를 부여하는 율법주의적 종교(legalism)인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9)인지, 바울이 유대교를 율법의 행위를 통한 의를 추구하는 종교로 규정한 것은 유대교에 대한 역사적-사실적 묘사인지, 아니면 사실상 유대교를 왜곡한 것인지,10)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의(義)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학적 묘사인지, 바울이 율법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그의 회심과 소명 초기부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의 복음을 받았고, 따라서 율법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11) 아니면 후일 그의 이방 선교현장에서 할례, 음식법, 절기 등 유대인들의 정체성의 보루가 되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회적 장애물이 되고 있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지,12) 바울은 죄를 단순히 율법의 어김으로만 보았는지, 아니면 율기록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서 있는 신앙고백적인 요소를 떠나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과 그 밖에 전 신약성경을 올바르게 알기위해서는 갈라디아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xIi). 6)루터와 갈라디아서와의 자세한 관계에 대하여서는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Iiii-Iiv를 보라. 루터는 그의 생애 초기(1519년)에 갈라디아서 주석을 썼고, 그리고 그의 생애 후기(1538)에 그것을 다시 수정 보완하였다. 그러므로 루터의 갈라디아서는 그의 사상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루터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전망의 바울 연구가들 중에 Luther를 비판하는 자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이 Luther만큼 바울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다. 7)신약학계에 새로운 전망의 바울연구는 사실상 E.P, Sanders의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1977)으로 제기되었으나, 그러나 “새 관점의 바울 연구”(the New Perspective on Paul)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 문제를 폭넓게 부각시킨 것은, James D.G.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Bulletin of the John Rylands University Library of Manchester 65 (1983), 95-122이다. "새로운 전망의 바울연구”의 쟁점들에 관한 소개를 위해서는 M.B. Tompso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Cambridge: Grove Books, 2002); Stephen Westerholm, "The 'New Perspective on Paul' at Twenty-Five," in The Pradoxes of Paul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4), 1-38; Donald Macleod, "The New Perspective: Paul, Luther and Judaism," Scottish Bulletin of Evangelical Theology 22 (2004), 4-31; Don Garlingto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An Appraisal Two Decades on"; Mark M. Mattison, "A Summary of the New Perspective on Paul"; 최갑종,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무엇이 문제인가?”『바울연구 III』(서울: UCN, 2011), 179-230을 보라. 8)Thomas R. Schreiner, Galatians.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2010), 13: "With the rise of the New Perspective on Paul, the meaning of Galatians is intensely debated" (새 관점의 등장과 함께 갈라디아서의 의미는 더 한층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9)자신의 저서,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 (Philadelphia: Fortress, 1977)에서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Covenantal Nomism"로 규정한 E.P. Sanders에 따르면,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 안에 들어가는 것은(“getting in")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이며, 그러나 이 언약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staying in") 율법에 대한 인간의 순종이 요구되며, 인간이 율법을 어길 경우에는 하나님은 심판만이 아니라 다시 속죄의 수단을 제공하는 자비를 보여주신다는 것이다(Paul and Palestinian Judaism, 422). 따라서 Sanders에 따르면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율법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율법주의로 보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10)H. Räisänen, Paul and the Law (Tübingen: Mohr-Siebeck, 1987)에서 바울은 유대교를 왜곡하였다고 주장한다. 11)Sanders는 바울의 율법에 대한 비판은 율법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보다도 그의 새로운 기독론과 구원론, 곧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그의 유명한 말을 따르면, “바울이 발견한 유대교의 잘못은 그것이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며”(Paul and Palestinian Judaism, 550-53), "문제에서 해결이 아니라, 해결에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다”(Paul, the Law, and the Jewish People, 68). 12)James Dun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BJRL 65 (1982-83): 95-122; ”Works of the Law and the Curse of the Law (Galatians 3:10-14)," NTS 31 (1985): 523-42; "The Theology of Galatians: The Issue of Covenantal Nomism," Pauline Theology Volume 1, ed. J.M. Bassler (Minneapolis: Fortress, 1991), 125-146은 바울의 - 3 - 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잘못 알고, 율법을 지키려하고 또 남에게 지키도록 강요하는 율법의 남용도 포함하고 있는지13) 등등의 쟁점들에 대한 해답도 결국 갈라디아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14) 갈라디아서는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목적을 위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썼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갈라디아서 연구에 들어가면서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질문들이다. 하지만 갈라디아서의 서론에 해당되는 이와 같은 질문들과 관련해서, 솔직하게 말한다면, 갈라디아서가 사도 바울에 의해 쓰여 졌다는 이 한 가지 사실 외에는, 오늘 신약학계에서 합의된 것은 없다. 갈라디아서가 쓰여 진 연대, 수신자들, 역사적 상황, 바울의 적대자들, 쓰여 진 편지의 문학형식, 중심적인 주제 등등의 문제들은 아직도 현금의 신약학계에서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15) 그 주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신약성경 중에서 갈라디아서가 그렇게 중요하면서 왜 학자들 사이에 갈라디아서에 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계속 논란을 벌이고 있는가? 그 주된 이유는 우리가 갈라디아서가 바울에 의해 쓰여 졌다는 한 가지 사실 외에는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베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얼마 후에 그들에게 쓴 편지인 갈라디아서를 제외하고는, 갈라디아에 있었던 기독교 교회에 관하여 현존하는 그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갈라디아의 교회들이 정확하게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지, 갈라디아교회들이 현존하고 있을 당시 어떠한 종교적, 문화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읽은 다음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등등에 관하여 답변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고고학적 발견도, 성곽의 유적도, 비문도, 비석도, 혹은 그 밖에 어떤 다른 역사적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16) 갈라디아서 주석과 관련하여 갈라디아서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그림에 대한 선 이해(先理解)없이 갈라디아서 본문에 직접 들어가는 것은, 마치 거대한 서울 도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안내지도 한 장 없이 복잡한 서울 도시를 직접 진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갈라디아서 연구에 있어서는 신약개론이나 총론 분야에 해당되는 갈라디아서 서론의 모든 문제들을 지나치게 길게, 그리고 세밀하게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글에 긴요한 핵심적인 부분에 관하여 필자의 입장을 제시하도록 할 것이다.17) 이 부분에 보다 깊은 연구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출판된 표준적율법에 대한 비판은 그의 선교현장에서 유대인들의 정체성과 경계선의 보루인 율법이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 걸림돌이 되는 사회적 장애요인이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으로 본다. Dunn의 율법에 대한 사회적인 재해석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김세윤, 『바울신학과 새 관점』 (서울: 엠마오, 2002)을 보라. 13)R. Bultmann,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 1951), 264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노력자체를 이미 죄로 규정한다. 14)새로운 바울 연구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인 요약을 위해서는 Gerd Theissen, "The New Perspective on Paul and Its Limits: Some Psychological Considerations," The Princeton Seminary Bulletin 28 (2007): 64-85; 최갑종, “바울에 대한 ‘새 관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개혁신학」제 28권 (2010): 38-103;“한국교회와 구원론: 새 관점에 대한 복음주의의 대응: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이신칭의’교훈을 중심으로.” 「성경과 신학」제 55권 (2010): 1-40을 보라. 15)특별히 E.P. Sanders, 김진영옮김, 『바울, 율법, 유대인』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5); 홍인규, The Law in Galatians (JSNT Suppl. 81; Sheffield: JSOT Press, 1993); James D.G.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Frank Thielman, Paul & the Law (Downers Grove: IVP, 1994); Hendrikus Boers, The Justification of the Gentiles. Paul's Letters to the Galatians and Romans (Peabody: Hendrickson, 1994); Mark D. Nonos, ed., The Galatians Debate (Peabody: Hendrickson, 2002)에 실린 논문들을 보라. 16)Betz, "Spirit, Freedom, and Law. Paul's Message to the Galatian Churches," SEA 39 (1974), 145. 17)이 부분에 보다 깊은 연구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신약개론 책이나 혹은 성경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갈라디아서에 관한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Donald Guthrie, New Testament Introduction (London: IVP, 1965,1970), 450-471; Werner G. Kümmel,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Nashville: Abingdon Press, - 4 - 인 신약개론 책이나 혹은 성경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갈라디아서에 관한 항목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2. 저자(Author)문제: “갈라디아서는 누가 썼는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하는 점은 최근의 신약학계에서 공인된 사실이다.18) 지난 세기에 몇몇 학자들, 이를테면, 바우어(B. Bauer), 리란드(L.G. Rylands), 멕규렐(F.R. McGuirel) 등이 한 때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권(著作權)을 의심하였고,19) 그리고 오나일(J.C. O'Neill)은 갈라디아서 5:13-6:10절을 위시하여 여러 부분들이 나중에 첨가된 것으로 보았지만,20)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희박하고, 학계의 호응도 얻지 못하고 있다.21) 무엇보다도 갈라디아서 자체가 바울의 저작권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가 바울 자신의 편지임을 입증해주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갈라디아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두(序頭)인 1:1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기록하여 편지를 보내는 당사자임을 밝히고 있으며, 편지의 결론인 6:11 이하에서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는 자신의 친필을 첨가함으로써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와 결론 사이의 여러 곳에서 자신만이 기록할 수 있는 독특한 개인적인 일들을 기록함으로써 이점을 더욱 뒷받침 한다. 예를 들면, 1:13-17에 나타나 있는 바울 자신이 과거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였던 일과 복음 전도자로서의 소명, 1:18-19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베드로와 야고보와의 만남, 2:1-10에 나타나 있는 자신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건, 2:11-16에 나타나 있는 그가 베드로를 책망한 일, 4:13-16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했던 일과, 그리고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에게 보여주었던 호의 등등이다. 이들 이외에도 갈라디아서에 나타나 있는 기독론, 율법론, 이신칭의론, 성령론, 종말론 등 중요한 신학적 내용과 문체 등이 의심할 수 없는 바울의 편지임이 분명한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의 신학적 내용 및 문체 등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쓴 편지임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따라서 베츠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신약학자들은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권을 의심하지 않는다.”22) 그러므로 우리는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23) 우리가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물론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손으로 썼다고 볼 필요는 없다. 로마서가 바울의 대서 역할을 한 더디오에 의해 기록 된 것처럼(롬 16:22),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익명의 전문적인 필사자(筆寫者)에 의해 쓰여 졌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종종 편지의 말미에 이 부분은 특별히 자신이 직접 손으로 썼음을 강조하고 있는데(참고 갈 6:11; 살후 3:17; 빌몬 19; 고후 16:21; 골 4:18), 이것은 편지의 다른 부분은 전문적인 필사(書記)에 의해 대필되었음을 보여준다. 양질의 종이나 펜 등 필기도구가 발달 되지 않은 고대 헬라-로마 사회에서 찢어지기 쉬운 양피지나 파피루스 종이에 글을 쓰기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었다. 1975), 294-304;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WBC (Dallas: Word Books, 1990)에 있는 “Introduction,” H.D. Betz, “Galatians," The Anchor Bible Dictionary, Volume 2, 872-875; James D.G. Dunn, "Introductio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Peabody: Hendrickson, 1993), 1-20; G.W. Hansen, "Intoduction," Galatians (London: IVP, 1994), 113-28. 18)Cf. Kümmel,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rev. ed., tr. H.C. Kee (Nashville: Abingdon, 1975), 304f; Longenecker, Galatians, lviii-lix; Schreiner, Galatians, 22: "No significant Scholarly debate exists on whether Paul wrote Galatians." 19)Bruno Bauer, Kritik der paulinischen Briefe (Berlin: Hempel, 1852); L.G. Rylands, A Critical Analysis of the Four Chief Pauline Epistles (London: Watts, 1929); F.R. McGuire, "Did Paul Write Galatians?" HibJ 66(1967-68): 52-57. 18)Neill, The Recover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London: SPCK, 1972), 67-86. 21)Betz, Galatia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9), 1; Longenecker, Galatians, lviii-lix. 22)Betz, Galatians, 1. 23)James Dun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Peabody: Hendrickson, 1993), 2-4. - 5 - 그래서 대다수의 바울 당대 편지들은 전문적인 서기에 의해 대서되었다.24) 예를 들면 바울보다 조금 일찍이 활동했던 로마의 문인 키케로는 “내 편지가 서기의 손에 의해 쓰여 지고 있는 이 사실이 내가 얼마나 바쁘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Letters to Atticus 4:16.1)라고 말하면서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키케로는 다른 곳에서 자신이 직접 손으로 편지를 밝히고 있는 점을 보아(Cicero, Letters to His Brother Quintus, 1:15b, 1), 편지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대의 일반적인 관례대로 전문적인 서기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1에서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고 하면서 자신이 편지를 직접 쓸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1-6:10 까지는 당대의 관습대로 서기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물론 바울이 활용한 서기의 역할과 그 범위에 관하여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서기가 단순히 바울이 직접 구술해 주는 대로 받아 적는 역할만을 하였는지, 아니면 바울이 편지에 쓸 내용을 미리 알려주었고 서기가 그것을 문장화하여 편집하였고, 그런 다음 바울이 그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하여 수정하였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편지의 내용에 관해서는 서기가 아닌 바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바울이 키케로 이상의 문필가였고, 그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과 편지의 중간에 바울이 직접 편지를 쓰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바울에게 있어서 서기의 역할은 편집자가 아닌 단순히 바울이 불러주는 내용을 받아 적는 대필자였다고 볼 수 있다.25) 3. 수신자(The Recipients):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특정한 역사적 정황에 처해 있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다(1:2; 3:1). 그렇다면 바울이 누구를 대상으로 이 편지를 썼으며, 이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수신자들을 가리켜, “갈라디아 교회들”, 또는 “갈라디아 사람들”(1:2; 3:1)로, “형제자매들로”(1:11; 3:15; 4:12,28,31; 5:11,13; 6:1,18), “나의 작은 자녀들”(4:19)로 부르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게바(1:18; 2:7,8,9,11,14), 야고보(1:19; 2:9,11), 요한(2:9); 바나바(2:1,9,13), 디도(2:1), 아브라함(3:6,7,8,9,16,18,29; 4:22), 하갈(4:24,25), 이삭(4:28) 등을 언급하고 있고, 그밖에 바울의 반대자들을 지칭하는 익명의 사람들을 8 번 언급하고 있지만(1:7; 3:1;4:17; 5:7,10,12; 6:12,13), 오직 갈라디아 사람들만을 두고 2인칭으로 부른다.26) 바울이 이 수신자들을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자들”(4:8)로,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은 자들”(3:2-5)로 말하고 있는 점을 보아서, 우리는 이 수신자들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 크리스천들이라고 단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수신자들의 정체성(Identity)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지난 100년 동안 신약학계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이 문제에 관하여 수많은 연구논문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일치된 답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배경은 이렇다. “갈라디아”라는 말은 본래 소아시아 북쪽, 현재의 터키 서북쪽 지역의 이름이었다. 주전 3세기 경 독일 다늅강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일단의 셀족 사람들(Celtic People, 혹은 Gauls로 부르기도 함)이 영국과 프랑스와 이태리 및 발칸반도와 터키 서북쪽 지역으로 이주해갔다.27) 24)G.J. Bahr, "Paul and Letter Writing in the First Century," CBQ 28 (1966): 465-77; E.R. Richards, The Secretary in the Letters of Paul (Tübingen: Mohr, 1991); J. Murphy-O'Connor, Paul the Letter-Writer. His World, His Options, His Skills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95)를 보라. 25)최갑종, 『사도 바울. 그의 삶, 편지, 그리고 신학』 (서울: UCN, 2001), 124-125. 26)단 하나의 예는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안디옥 사건에서 베드로를 두고 한번 2인칭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2:14-16). 27)희랍 작가들은 이들을 Gala vtai(Galatians) 혹은 Ke vtai(Celts)라 불렀고, 라틴 작가들은 이들을 Celtae(Celts), Galli(Gauls), 혹은 Galatae(Galatians)라 불렀다. 영국에서는 이들은 주로 “Celts"로, 프랑스에서는 “Gauls"로, 소아시아지역에서는 “Galatia"로 불러졌다. - 6 - 이들 중에 터키 서북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은 그곳에 정착하였고, 그들의 지역은 “갈라디아”로, 그리고 그들은 “갈라디아 사람들”로 호칭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갈라디아 사람들은 로마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였고, 그 결과 본래의 갈라디아지역은 주전(BC) 189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는 속국(屬國)이 되었다. 갈라디아가 로마의 속국이 되자 로마제국은 처음에는 갈라디아사람들 중에 왕을 뽑아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갈라디아”라 불러졌다. 그러다가 주전 25년 이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갈라디아 출신의 마지막 왕 아민타스(Amyntas)가 전쟁에서 죽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이 지역을 로마제국에 통합하였다. 그런 다음 총독을 파송하여 직접 갈라디아지역을 통치하였다. 로마제국의 총독이 갈라디아지역을 통치하면서 갈라디아지역은 남쪽으로는 밤빌리아, 북쪽으로는 본도지역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다. 바울 당대에 이르러 갈라디아지역은 사실상 소아시아 중앙부분을 포함하여 북쪽으로는 흑해에 접하고 있는 본도지역에 이르기까지, 남쪽으로는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밤빌리아 전 지역까지 확대되었다(Pliny, Historia Naturalis 5.147). 그래서 바울의 제 일차 선교여행지였던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행 13:14-14:23) 등도 갈라디아지역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보면 바울의 제일 차 선교여행지를 포함하여 로마제국의 행정지역인 갈라디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갈라디아 사람들로 불러질 수 있었다.28)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갈라디아 사람들” 혹은 “갈라디아 교회들”이 바울 당대 이전의 본래 갈라디아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는지, 아니면 바울 당대 로마제국의 행정적인 지역인 갈라디아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북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로,29)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남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30)로 부른다. 북부 갈라디아설에 따르면 갈라디아지역과 갈라디아사람들은 본래 갈라디아지역으로 불리어 졌던 소아시아 중북부(현재의 터어키 북부지역)의 도시들인 앙고라(Ancyra), 페시누스(Pessinus), 타비움(Tavium)과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지칭할 수 있고, 남부 갈라디아서설에 따르면, 갈라디아지역과 갈라디아사람들은 로마제국에 의해 확대된 갈라디아지역인 현재 터키 남부에 해당하는 밤빌리아의 주요도시이며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지였던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 이고니온(Iconium), 루수드라(Lystra), 더베(Derbe)지역과 그곳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할 수 있다. 만일 전자가 옳다면,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제 2차나 혹은 제 3차 선교여행 때에 세워진 교회에 보내진 편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후자가 옳다면,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 중에 세워진 안디옥, 이고온, 루스드라, 더베 교회에 보내진 편지로 볼 수도 있다.31) 이 둘 중에 어느 주장이 더 타당성이 있는 28)보다 자세한 내용은 Longenecker, Galatians, lxii-lxiii를 보라. 29)이를테면, J.B. Lighfoot, Saint Paul's Epistle to the Galatians (London: Macmillan, 1890, 1986), 18-56; J. Moffatt, An 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New Testament, 3rd ed (Edinburgh: T. & T. Clark, 1918), 83-107; W.G. Kümmel,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London: SCM, 1965); H.D. Betz, Galatians, 1-5; H. Schlier, Der Brief an der Galat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49); A. Oepke, Der Brief des Paulus an die Galater, 3rd ed. (Berlin: Evangelische Verlagsanstalt, 1973); F. Mussner, Der Galaterbrief (Freiburg: Herder, 1974); D. Lührmann, Galatians (Minneapolis: Fortress, 1992). 30)이를테면, W.M. Ramsay, A Historical Commentary on St. Paul's Epistle to the Galatians, 2nd ed. (London: Hodder & Stoughton, 1900); E. deW. Burt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Edinburgh: T. & T. Clark, 1921); F.F.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Grand Rapids: Eerdmans, 1982); R.N. Longenecker, Galatians, lxviii-lxxii; C.J. Hemer, The Book of Acts in the Setting of Hellenistic History (Tübingen: Mohr Siebeck, 1989); F.J. Matera, Galatians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92); J.D.G. Dunn, A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London: A. & C. Black, 1993); G.W. Hansen, Galatians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94); Richard Bauckham, "James, Peter, and the Gentiles," The Missions of nJames, Peter, and Paul: Tension in Early Christianity, eds. Bruce Chilton and Craig Evans (NovTSup 115; Leiden Brill, 2005), 135-36; Eckhard J. Schnabel, Paul and the Early Church (Downers Grove: IVP, 2004), 1298-99; Schreiner, Galatians, 24-29. 31)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 정체성 문제가, Schreiner, Galatians, 22: "It should be said at the outset that - 7 - 가? 북부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갈라디아”라는 말을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지였던 남부 지역의 도시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바울이 첫 번째 선교여행지였던 안디옥을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과 구분하여 “비시디아 안디옥”(행 13:14)으로, 루스드라와 더베를 갈라디아지역의 도시가 아닌 “루가오니아의 성”(행 14:6)으로 부르고 있다. (2) 사도행전에 나오는 무시아, 브루기아, 비시디아 등은 특정한 지역의 이름이지 로마 행정구역의 이름이 아니다. 따라서 갈라디아도 로마의 행정구역 이름이 아닌 특정한 지역의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 (3) 사도행전 16:6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이라는 말도 행정구역이 아닌 브루기아와 갈라디아에 속한 어떤 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4) 갈라디아 2:1-10에 있는 바울의 2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방문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바울의 갈라디아에 대한 두 방문은 사도행전 16:6과 18:23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의 갈라디아 방문을 암시하고 있는 갈라디아서 4:13의 언급은 사도행전 16:6과 18:23절의 갈라디아 방문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5) 고대의 작가들이 북부 지역의 갈라디아 사람들을 종종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하였는데, (이를테면, Caesar, De Bello Gallico 2.1; 4.5; 6.16; Cicero, De Divinatione 1.5; 2.36-37) 이것은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을 묘사한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갈라디아 사람들은 인종(人種)적으로 보아야 한다. (6) 바울은 사람들을 지칭할 때 로마의 행정 구역적관점이 아닌 특수한 지역적이나 인종적인 관점에서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3:1의 “갈라디아사람들”을 인종적인 관점에서 보아야한다.32) 반면에 남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바울 당시 북부 갈라디아지역은 남부 갈라디아지역처럼 발달되지 않았다. 바울은 주로 주요 도로를 따라 도시지역을 따라 선교여행을 하였기 때문에 북부 갈라디아지역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라디아 4:13-14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바울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북부 갈라디아지역을 방문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33) (2) 갈라디아교회를 혼란케 한 유대주의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은 남부 갈라디아지역이지 북부 갈라디아지역이 아니다. (3)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이 남부 갈라디아지역에서 교회를 설립한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행 13-14장), 북부 갈라디아지역의 선교에 관해서는 사도행전은 물론 바울 서신 어느 곳에서도 일체 언급되고 있지 않다. (4) 바울 당대 로마제국에서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호칭되었지 민족에 따라 호칭되지 않았다. 로마 시민권자로서 바울은 이러한 관례를 따랐을 것이 분명하다. (5) 바울은 고린도전서 16:1-4에서 갈라디아교회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헌금할 것을 부탁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 20:4에 따르면, 바울의 예루살렘방문에 동행한 사람들 중the destination of the letter does not fundamentally change its interpretation,"의 지적처럼 갈라디아서 본문 자체의 해석에는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의 연대, 역사적 배경 등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흔히 북부 갈라디아설은 늦은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남부 갈라디아설은 이른 연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Betz, Galatians, 5,12에서 북부 갈라디아설을 주창하지만 이른 연대를 고수하고 있으며, 반면에 R. Fuller, A Critical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London: Duckworth, 1966), 26에서 남부 갈라디아설을 선호하지만 늦은 연대를 주장한다. 32)북부 갈라디아서의 논점들에 대한 자세한 비판적 언급을 위해서는 Schreiner, Galatians, 25-26을 보라. 33)북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은 사도행전 저자가 바울의 제 일차 선교 여행지였던 남부 갈라디아지역에서 바울이 병들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갈라디아서 4:13-14의 언급은 오히려 북부 갈라디아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 8 - 에 남부 갈라디아지역의 대표자는 두 사람 언급되고 있지만(가이오, 디모데) 북부 갈라디아 사람들은 일체 언급되고 있지 않다. (6) 사도행전 16:6에 따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바울의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다”고 언급되어 있다. 반면에 사도행전 18:23에 따르면 바울의 제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되면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니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두 지명의 선후가 뒤바뀌어 있는 것은 아시아에서 보면 브루기아 지역 다음이 남부 갈라디아지역이 되고, 반면에 시리아 지역에서 보면 남부 갈라디아지역 다음에 브루기아 지역이 된다. 갈라디아에 관한 이러한 사도행전의 언급은 이것이 북부 갈라디아지역이 아닌 남부 갈라디아지역임을 암시한다. 북부 갈라디아설과 남부 갈라디아서설 중 어느 것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34) 하지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남부 갈라디아설에 비중을 두고자 한다. 첫째, 사도행전에서 두 번 언급된 “갈라디아”(행 16:6; 18:23)의 명칭이 선후(先後)가 뒤바뀌고 있는 것은 남부 갈라디아 지역으로 볼 때에 문맥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사도행전 저자는 13-14장에서 바울의 제 일차 선교여행 중에 로마의 행정지역상으로 갈라디아지역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곳에서 직접 교회를 세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지만 북부 갈라디아지역에서 교회를 설립하였다는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자체가 유대주의자들 때문에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북부 갈라디아 지역 보다 남부 갈라디아지역에 유대인들이 쉽게 올 수 있다는 점은 남부 갈라디아 설을 지지해 준다고 볼 수 있다.35) 셋째, 바울이 편지를 쓸 때마다 주로 수신자들을 행정상의 거주 지역을 배경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고전 16:19; 고후 8:1; 9:2),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바울이 취급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바울의 초기 사역의 내용인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문제와 관련된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문제라는 점도 남부 갈라디아 설을 지지해준다고 하겠다.36) 따라서 필자는 침묵의 논증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북부 갈라디아설 보다 역사적인 증거에 근거를 두는 남부 갈라디아 설을 따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라고 본다.37) 그렇게 될 경우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은 사도 바울이 제 1차 선교 여행 시에 세운 교회들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늘 생각하여야할 사항은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문제는 수신자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남부 갈라디아 설을 따르든, 북부 갈라디아 설을 따르든 그것이 갈라디아서 이해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38) 4. 바울의 반대자들: “갈라디아교회를 혼란하게 한 반대자들은 누구인가?” 갈라디아서는 어떤 점에서, 던(James Dunn)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39) 바울서신들 가운데서는 34)흔히 북부 갈라디아설은 비평적 성경학자들이, 반면에 남부 갈라디아설은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성경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J.G. Machen, E.F. Harrison, R.H. Stein은 복음적이고 보수적인 학자로 알려졌지만 북부 갈라디아설을 주장하고 있고, R,H. Fuller는 비평적인 학자로 알려졌지만 남부 갈라디아설을 선호한다. 보다 자세한 언급은 Longenecker, Galatians, lxviii-lxix를 보라. 35)H. Ridderbos, "Galatians," ISBE 2 (Grand Rapids: Eerdmans, 1982), 380. 36)이 문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토론은 F.F. Bruce, “Galatian Problems. 2. North or South Galatians?”BJRL 52 (1969-70): 243-66; Longenecker, Galatians, Ixi-Ixxii; C. Hemer, The Book of Acts in the Setting of Hellenistic History (Ind.: Eisenbrauns, 1990), 227-307을 참조하라. 37)역시 Longenecker, Galatians, lxx. 38)Matera, Galatians, 20;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7: Schreiner, Galatians, 29. 39)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p. 1: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is one of the fiercest and most polemical writings in the Bible"(“바울의 갈라디아서는 성경 가운데서 가장 날카롭고 가장 논쟁적인 서신이다.”). - 9 - 물론 전체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편지이라고 말할 수 있다.40) 이례적으로 감사에 대한 언급이 생략된 간략한 인사에 이어(1:1-5),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부터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전파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갈라디아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으로 대체시키거나 변질케 하고 있는 익명(匿名)의 반대자들에 대한 저주의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1:8-9). 그리고 서신 여러 곳에서 계속하여 이 익명의 반대자들을 언급한다. 3:1절에서는 이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을 미혹하는 자”로, 4:17에서는 이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좋지 못한 목적을 가진 자들”로, 5:7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자들”로, 5:10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혼돈하게 만드는 자들”로, 5:12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자들”로, 6:12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하려는 자들”로, 그리고 6:13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갈라디아 교인들의 육(肉)을 통해 자랑하려고 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갈라디아서 곳곳에서 익명의 반대자들에 관하여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자들이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을 개척하고 떠난 후 갈라디아교회를 찾아온 반대자들 때문에 제기되고 있는 위기상황을 바울이 직시하고, 그것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으로써 쓰여 졌다라고 말하고 있다.41)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이들이 갈라디아서의 주인공이 아니며, 바울이 이들을 목표로 갈라디아서를 쓰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라디아교회를 혼란하게 한 이들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그들이 갈라디아교회를 찾아왔으며, 그들의 핵심적인 주장이 무엇이며, 갈라디아교인들이 무슨 연고로 이들의 주장에 미혹당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42)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파한 복음의 진리,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하게 하고(1:7; 2:5), 그 복음을 주신 하나님(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고, 이 은혜의 복음을 전파한 바울 자신의 사도직분을 훼손시키며, 바울자신이 개척한 갈라디아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으며(1:1,6-12),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갈라디아 교회 안에 분쟁과 분리와 다툼을 일으키고 있는(5:15,20,26),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면하려 하고, 갈라디아교인들의 육체로 인하여 자랑하려고 하는(6:12-13) 이 익명의 “반대자들”(1:7; 5:10,12; 6:12-13)은 누구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첫째, 바울 자신이 갈라디아서에서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출신배경을 들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43) 둘째, 우리는 갈라디아서와 독립된 이들 자신들의 문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점이다. 우리가 그들에 관하여 얻을 수 있는 자료는 사실상 바울 자신이 쓴 갈라디아서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갈라디아서 그 자체의 구조나 분문 분석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주장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버클레이(J.M.G. Barclay)가 제안하는 “거울-독법”(Mirror-Reading)이, 그 자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밖에 없다.44) 40)물론 우리가 Dunn에 동조하여 갈라디아서를 전체적으로 “논쟁적” 서신으로만 간주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의 문학적 분석을 할 때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갈라디아서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일종의 권면적 서신이다. 논쟁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권면을 위한 기반으로서의 논쟁이다. R.G. Hall, “The Rhetorical Outline for Galatians. A Reconsideration," JBL 106/2 (1987): 277-87을 보라. 41)예를 들면,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7; Bruce Longenecker, "Galatians," ed. James D.G. Dunn, St Pau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64-65. 42)Cf.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xv: “바울을 그의 역사적 문맥에서 살펴보는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을 왜 그가 말하고 있는 가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그가 서신에서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To hear Paul in his historical context is to recognize more clearly not only why he says what he says, but also what it is actually is saying in the letter."). 43)바울이 이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는 다는 것은 독자들이 그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한다. 44)Cf. J.M.G. Barclay, “Mirror-Reading a Polemical Letter. Galatians as a Test Case," JSNT 31 (1987): 73-93. 이 논문은 역시 S.E. Porter & C.A. Evans가 편집한 The Pauline Writings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247-267에 재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인용은 후자에 수록된 페이지를 따른다. - 10 - 갈라디아서는, 비록 논쟁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낸 목회적인 편지이다.45) 문제는 갈라디아 교회의 신앙과 삶의 문제가 갈라디아 교회에 찾아 온 바울의 반대자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반대자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반대자들의 그 주장들이 왜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혀, 갈라디아교인들이 그들의 거짓된 주장에서 떠나 바울 자신의 가르침에 굳게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여 진 논쟁적-권면적 편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울 당대의 헬라-로마사회에서 논쟁적-권면적 편지양식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수사학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논쟁의 대상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내용과 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논쟁적-권면적인 편지에서는 자연히 논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의 두 주장이 날카로운 대조를 이룰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바울서신 중 그 어떤 서신에서보다도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주장과 바울이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이 서로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갈라디아교회의 신자들이, 더 이상 반대자들의 주장에 미혹당하지 않고,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갈라디아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이와 같은 날카로운 대조를 통하여, 반대자들의 주장의 허점과 잘못된 점을 들추어내면서,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과 우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의 복음/(반대자들의) 다른 복음(1:6-10); 바울의 신적 사도직에 대한 부정과 바울의 신적 사도직에 대한 강조(1-2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한 의/율법의 행위에 의한 의(2:15-16; 3:1-14); 그리스도 안에서의 양자됨의 자유 상태/율법과 세상의 초등원리의 지배 아래 있는 노예상태(3:23-4:31); 성령과 육(5:13-6:10); 그리스도와 할례(5:1-12; 6:12-16)등등의 날카로운 대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자체의 분석을 통해서 반대자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어느 정도 정당한 방법으로 인정될 수 있다.46) 그렇다고 한다면 갈라디아서 그 자체의 분석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바울의 반대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어떤 사람들은47) 이 반대자들을, 구약 창세기 17:9-14에 나타나 있는 아브라함의 할례언약에 깊은 영향을 받아,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처럼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한, 갈라디아교회 안의 이방인 크리스천들로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48) 이 반대자들을 갈라디아교회들 안에서 바울의 영적인 자유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려는 자유주의자들과 이들과 대조적으로 율법 및 유대적 요소를 강조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두 그룹으로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49) 이 반대자들을 갈라디아교회 안에서 할례를 구원의 수Barclay는 “거울 독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모든 신약성경의 비평적 방법 중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방법 중의 하나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반대자들에게 대답하는 본문을 우리가 어떤 사람이 반영되어 있으며, 공격아래 있는 논점들이 무엇임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약방법론과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거울독법은 필수적인 동시에 또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Hence the necessity for one of the most difficult and delicate of all New Testament critical methods: we must use the text which answers the opponents as a mirror in which we can see reflected the people and arguments under attack. Like most New Testament methods, such mirror-reading is both essential and extremely problematic.” 247-248). 45)최갑종,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 갈라디아서 5-6장에 대한 주해와 적용,” 「그 말씀」(1999/1): 54-71. 46)Cf. In-Gyu Hong, The Law in Galatians, 97-120. 47)예를 들면, J. Munck, Paul and the Salvation of Mankind (Richmond: John Knox, 1959), 130-4; L. Gaston, Paul and the Torah (Vancouver: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Press, 1987), 29-30. 48)예를 들면, W. Lütgert, Gesetz und Geist: Eine Untersuchung zur Vorgeschichte des Galaterbriefes (Gütersloh: Bertelsmann, 1919); J.H. Ropes, The Singular Problem of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1929). 49)예를 들면, W. Schmithals, "Die Heretiker in Galatien," ZNW 47 (1956): 25-67; Paul and the Gnostics (Nashville: Abingdon, 1972), 13-64; K. Wegenast, Das Verst„ndnis der Tradition bei Paulus und in den Deuteropaulinen (Neukirchen: Neukirchener Verlag, 1962), 36-40. - 11 - 단이 아닌 육을 초월하는 상징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영지주의자들로 본다. 또 어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이 유대교 신앙을 이방인들에게 확신시키려는 유대교 선교사나,50) 혹은 갈라디아교인들을 자신들과 같이 유대교 공동체 안에 결합시키려는 유대교 개종자들로 보려고 한다.51) 그러나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①반대자들을 3인칭으로 사용하여 2인칭을 사용하는 갈라디아교인들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 점과(1:7-9; 3:1; 4:17; 5:7,12; 6:12-13), ②자신의 유대적 배경을 부각시켜 유대적 관점에서 유대인의 핵심적인 문제인 할례와 율법을 논쟁의 주제로 삼고 있는 점(3-4장), ③갈라디아교회의 문제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 예루살렘에서의 회합(2:1-10), 안디옥사건(2:11-21)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관계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바울 연구가들은 이들 반대자들을 갈라디아교회안의 사람들이 아닌 외부로부터 갈라디아교회에 찾아 온 한 그룹의 유대인 크리스천으로 본다.52) 그렇다면 이들 유대인들은 어떤 자들인가? 무엇 때문에 이들이 바울이 설립한 갈라디아교회에 찾아 왔는가? 갈라디아서 자체에 대한 수사학적인 분석에 의존하여 우리는, 첫째, 이들이, 비록 바울이 볼 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파하였다 할지라도, 복음의 이름을 가진 것을 전파한 것을 보아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피하려 하였다는 점을 보아서 적어도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크리스천들이라는 것과,53) 둘째, 이들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의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인 신분의 표지들인 할례와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아브라함의 경우를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그리고 예루살렘을 강조한 것을 보아서 예루살렘 교회와 어느 정도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과, 셋째, 이들이 이방인인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그들이 유대인 크리스천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의로운 언약 백성”, 곧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에 대한 믿음에 덧붙여 할례를 받고 유대인처럼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 등을 한 것을 보아서, 이들은 예루살렘교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율법과 할례 등 유대민족의 종교적, 민족적, 사회적 정체성과 보류들을 기독교신앙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고수하고 전파하려고 힘쓰는 유대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참고 사도행전 15:1).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이 이들을 “유대주의자”(Judaizers)로 부르고 있다.54) 바울이 볼 때 이와 같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물론, 그 자신의 복음의 근거가 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반 복음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이방인 신자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누리는데 있어서 필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완성함으로써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여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시대의 유산인 할례와 율법을 새 시대에 있 50)예를 들면, Nikolaus, "Paul and the Opponents of the Christ-Gospel in Galatia," The Galatians Debate, 362-366. 51)예를 들면, Mark D. Nanos, "The Inter-and Intra-Jewish Political Context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The Galatians Debate, 396-407. 52)예를 들면, R. Jewett, Ridderbos, Kümmel. Bruce, Longenecker, Sanders, Dunn, 김세윤, 홍인규 등.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반대자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토론을 위해서는 Rober Jewett, "The Agitators and the Galatian Congregation," The Galatians Debate: Contemporary Issues in Rhetorical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 ed. Mark D. Nanos (Peabody: Hendrickson, 2002), 334-347; Hong, The Law in Galatians, 116-120; Gab Jong Choi, "A Study of the Role of the Spirit in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67-70; Schreiner, Galatians, 47-51을 보라. 53)John Muddiman, :Anatomy of Galatians," Crossing the Boundaries, ed. Stanley E. Forter, Paul Joyce, and David E. Orton (Leiden: Brill, 1994), 262-3; Mark D. Nanos, The Irony of Galatians: Paul's Letter in First-Century Context (Minneapolis: Fortress, 2002)는 이들 반대자들이 기독교에 호의를 가진 유대인들로 보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은 갈라디아서 본문 자체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는 Schreiner, Galatians, 51-52를 보라. 54)Cf. H. Ridderbos, "Galatians," ISBE 2, 381.; Longenecker, Galatians, xcv; Barrett, Paul, 22-33; J.L. Martyn, "A Law-Observant Mission to Gentiles: The Background of Galatians," SJT 38 (1985): 307-24; Schreiner, Galatians, 47-49. - 12 - 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 충분한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성령의 자리를 할례와 율법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55)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이들의 거짓된 주장에 미혹을 받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즉각적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제기되는 논쟁의 직접적인 이슈를 초대기독교와 유대교와의 정면적인 대립에서 야기된 문제로 보기보다, 오히려 초대 기독교 안에서 제기된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관계문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크리스천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이방인 기독교회 안에서 제기한 유대교의 연속선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제기하는 핵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 없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그 순간부터 그는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저들의 민족적, 종교적, 사회적 정체성인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유대적 절기와 음식법을 지키는 것을 직접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직접적으로 유대인의 정체성(Identity)을 배격하는 반유대교운동(Anti-Judaism)이나 혹은 반율법(Anti-Torah)을 제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56) 나중에 우리가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복음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되어졌고, 아브라함이 복음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며, 성령은 율법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성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57) 물론 이 말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교 문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 어떤 서신에서 보다도 유대교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실제로 바울은 오직 갈라디아서에서만 “유대교”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1:13; 2:14). 그러나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반대자들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유대교를 직접 편지의 주된 공격대상으로 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종말론적인 구속사건 이후 더 이상 유대인에게서나 이방인에게서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데 있어서, 필수 조건이 될 수 없는 할례나 유대인 음식법, 절기, 율법등 유대인들의 정체성의 보류들을,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의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바울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들의 삶의 정체성의 부분에 불과한 할례나 율법의 규례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받아드리도록 강요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민족적 선민사상이나 문화적 우월성의 과시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바울이 율법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인종과 신분과 성의 차이와 관계없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하고 완전한 조건이라고 선포한 바울 자신의 복음을, 정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요, 이러한 복음을 전파한 바울을 거짓된 복음전파자로 만드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은 바울의 복음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까지 상대화 혹은 무효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2:21). 그러기 때문에 갈라디아교회 안에서 일어난 상황은, 바울이 볼 때, 단순히 갈라디아교회 만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초대기독교회 안에서 바울의 복음과 그의 사도직과 선교의 사활과 연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바로 이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 곧 무엇 때문에 이들 유대주의자들이 유대민족의 정체성의 보류들에 불과한 할례나 율법의 행위들을, 바울의 이방인교회 신자들에게까지 강요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이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와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55)J. Becker, Paul: Apostle to the Gentiles (Louisville: Westminster Press, 1993), 292f. 56)J.S. Silker, Disinheriting the Jews: Abraham in Early Christian Controversy (Louisville: John Knox, 1991), 28-50. 57)R. Jewett, "The Agitators and the Galatian Congregation," 338-339. - 13 - 될 수 있다고 하는 바울의 복음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유산을 바울의 이방인 기독교 안에서까지 유지시키려고 노력하였는가하는 문제들이 대두가 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Luther) 이후로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왔던 것처럼, 이들 유대주의자들이 할례와 율법의 행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 이후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덧붙여 여전히 의와 구원, 곧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누릴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들이 된다고 믿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이기 때문인가? 말하자면 바울과 다른 기독론과 구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유대민족의 우월한 선민의식과 정체성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배타적 민족주의, 혹은 문화적 우월주의자들이기 때문인가? 이 문제는 1977년 E.P. Sanders가 오랜 연구 끝에 내어놓은 『바울과 팔레스틴 유대교,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이라는 책을 통해서, 예수 당대의 유대교가, 전통적으로 그렇게 믿어왔던 것처럼,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공로를 수단으로 하여 의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라(Not getting in), 오히려 이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고 약속된 의와 구원과 축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But staying in), 즉 은총에 합당한 응답으로써 율법을 지키는 것을 요구하고, 지키지 못할 경우 속죄의 길을 제시하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이라는 주장을 한 이래로,58) 지금까지 신약학계에서 열띤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나중에 별도로 보다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다만 여기서 간단하게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우리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언약적 율법주의”로 보든, 아니면 “율법주의”로 보든,59)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 및 율법의 행위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이들을 일종의 율법주의자들로 간주하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거듭 거듭,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도리를 강조하면서, 할례와 율법을 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는 사실로부터(예를 들면 갈 2:16),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할례를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제시하고 있는 사실로부터(예를 들면 6:12-14), 혹은 이들이 전한 복음을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것으로부터(1:6-9), 혹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과 병행하는 육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와 병행하는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으로부터(5-6장), 혹은 자신의 육적인 요소를 자랑하는 자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철저히 공로적 행위를 거부하고 있는 사실로부터(6:13-14), 바울의 반대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대신,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덧붙여 할례와 율법을, 갈라디아교인들에게 유대인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의와 구원에 이르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제시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다면, 바울 역시 그와 같은 강한 반대의 주장을 할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실제적으로 이들 유대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바울의 선교지인 갈라디아까지 찾아와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그들 자신에 대한 자기인식으로부터 분리시키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이 그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면, 그들 역시 할례와 율법을 여전히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결정하는 보류로, 의와 구원에 이르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신앙과 삶의 보루가 되고 있는 당대 팔레스틴 유대교가, 그것이 설사 1세기 유대교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바울이 한때 열심히 신봉하였던 바리새파 유대교라 할지라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임의로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이들의 배후에 있는 당대 팔레스틴 유대교 전체가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와 58)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7), 236, 422-423; 역시 Sanders, Judaism: Practice and Belief 63 BCE-66CE (London: SCM Press, 1992), 262-78). 59)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최갑종, "예수의 세계: 주후 1세기의 유대교,” 『나사렛 예수』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6), 47-90을 보라. - 14 - 은총을 완전히 배제하는 그와 같은 율법주의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60) 혹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구원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은총을 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데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공로가 배제되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이 필요하다는 것과,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들은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에 덧붙여 인간의 선행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삶을 누리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함께 여전히 유대교의 할례와 율법의 행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하였음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결코 그와 같은 요구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는 구원적인 의미를 할례와 율법의 행위에 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다른 말로 다시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결정권을 인간의 행위와 공유하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면, 바울도 그들에게 저주를 선언할 만큼 반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그들의 주장을 그토록 반대한 주된 이유는, 바울이 전한 복음에다 다른 무엇을 더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성령중심의 복음을 사실상 복음이 아닌 것으로 변질시키려 하였으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의와 구원의 필수적이고 완전한 조건인데, 거기에 유대교의 할례와 율법 등 인간적인 행위들을 추가함으로써, 결국 구원을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돌리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의 합작품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61) 사실상 E.P. Sanders가 말하고 있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율법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순종을 반드시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들은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최근에 라토(Laato)와 게더콜(Simon J. Gathercole)이 Sanders가 말하고 있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안에도 이미 율법주의(Legalism)가 들어있다고 말한 것은 정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62) 하지만 바울의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율법과 할례와 관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유대인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전파하는 것은, 구약 창세기 17장에서 할례를 영원히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삶을 사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실을 정 60)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예수와 바울 당대 유대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 그리고 유대주의자들의 배후에 있는 유대교는 할례와 율법 등을 지키는 것을 의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도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유대교는 자신이 한 때 열렬한 추종자였던 바리새파 유대교(갈 1:13-14; 빌 3:5)였을 것이다. 역시 Francis Watson, Paul, Judaism, and Gentiles. Beyond the New Perspective, revised and expanded edition (Grand Rapids: Eerdmans, 2007), 22-23. 61)이러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Timo Laato가 그의 책, Paul and Judaism. An Anthropological Approach (Atlanta: Scholars, 1995)에서 예수와 바울 당대 유대인들의 구원관 문제를 자세히 다루면서, Sanders는 바울 당대 유대인들이 구원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은총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강조하였지만, 그러나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었던 그들의 자유의지에서 기인한 율법에 대한 순종의 행위를 간과하고 있었다고 지적한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62)Laato는 그의 책, Paul and Judaism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인간학적인 전제들로부터 볼 때, 유대교의 구원관과 바울의 구원관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전자에서는 구원은 단지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이 그의 선행을 통하여 협력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후자편에서는 구원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되어 진다.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는 선행까지도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213f)."; Gathercole, Where is Boasting? Early Jewish Soteriology and Paul's Response in Romans 1-5 (Grand Rapids: Eerdmans, 2002), 160: “행위에 따라 최종적인 구원이 주어진다는 교리는 팔레스틴 유대교 신학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역시 T. Eskola, Theodicy and Predestination in Pauline Soteriology, WUNT 2.100 (Tübingen: Mohr, 1998), 56: "만일 율법주의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종말론적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한다면, 언약적 율법주의도 사실상 율법주의적 율법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 15 - 면으로 거부하는 것이요, 할례와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의 독특성을 무효화시키는 것이요, 유대민족의 메시야로 오셔서 친히 할례와 율법을 준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왜곡시키는 것이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성령을 모욕하는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의 메시지와 그의 선교사역은, 유대인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에 의해, 유대교 안에서 시작된 예수 운동을, 이 운동의 뿌리인 유대교와 단절시키는 것이요, 바울의 이방교회를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교는 물론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운동 자체를 훼손시키는 것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바울의 메시지는 당시 유대 팔레스틴 땅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로마운동(Anti-Romanism)과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열심당운동과 배치되어 유대민족의 공분을 초래하여 결국 기독교운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63)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참된 사도일 수가 없었고, 그가 전파하는 복음도 참된 복음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유대민족과 종교는 물론 새로운 메시야운동까지 위험 속에 빠뜨리는 거짓 교사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교정하여야 했고, 잘못된 바울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들을 바르게 가르쳐서 다시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5. 갈라디아서와 “새 관점의 바울 연구”(the New Perspective on Paul) 만일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자연히 갈라디아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율법주의적 주장과 샌더스(E.P. Sanders)가 문헌조사를 통해 밝힌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새 관점의 바울연구"(the New Perspective on Paul)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새 관점의 바울연구의 문을 연 샌더스는 예수와 바울 당대의 광범위한 유대문헌 조사를 통하여,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할례와 율법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의와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키는 율법주의적 종교(Legalism)가 아니라, 오히려 이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약속된 축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지키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이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64) 만일 주후 1세기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총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언약적 율법주의라고 하는 그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바울이 왜 유대주의자들을 비판하였으며, 결국 바울이 이들의 배후에 서 있는 자기 선조들의 종교인 당대 유대교에 대하여 왜 결별하게 되는 부정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몇 가지 가능한 답변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레이저넨(H. Räisänen)의 주장처럼,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반대자들을 율법주의자들로 규정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율법주의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율법주의자들인 것처럼, 혹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율법주의적인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잘못 왜곡시켰거나, 아니면 바울의 유대주의자들이나 유대교에 대한 비판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규정이라기보다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 63)R. Jewett, "The Agitators and the Galatian Congregation," 340-342. 64)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75에서 언약적 신율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언약적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한 사람의 신분은 언약의 기반 위에서 확립되고, 그리고 그 언약은 인간의 합당한 응답으로서 계명들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범죄하였을 경우 속죄의 수단을 제공한다.”어떤 의미에서 이와 같은 언약적 율법주의에 대한 정의에서는 율법주의적 요소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180에 나타나 있는 보다 더 자세한 진술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약적 율법주의 안에 율법주의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이 들어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이스라엘은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은 왕으로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여야 할 계명들을 주셨다. 순종은 보상이 주어졌고, 불순종은 심판이 주어졌다. 그렇지만 순종에 실패하였을 경우에는 인간은 하나님이 규정한 속죄의 수단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 수단에는 회개도 요구되어 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에 머물려는 바람을 계속 유지하는 한 그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들에 주어진 유업, 다가올 세상에서의 생명을 포함하여,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순종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언약에 머무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약을 보수로 받는 것은 아니다.” - 16 - 으로 보는 것이다.65) 또 하나는 샌더스 그 자신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이 율법과 유대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실제적으로 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 율법주의적 종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다메섹사건을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극적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에, 말하자면, 유대교의 문제를 의식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결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해결을 발견하고, 즉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대교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66) 샌더스 그 자신의 유명한 말로 다시 요약한다면, “바울의 유대교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은 단순히 유대교가 기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67) 또 하나는 던(James Dunn)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교나 율법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다만 바울 당대 유대민족의 정체성(Identity) 역할을 하고 있는 율법, 할례, 유대 음식법 등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을 방해하는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비판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68) 다시 말하자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행위를 믿음에 의한 의와 대립 시킬 때, 실제적으로 유대주의자들이 율법의 행위를 의와 구원의 수단으로 삼은 율법주의자들이나 공로주의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의 정체성에 불과한 그러한 율법의 행위들을, 그리고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민족적 우월성과 자랑의 근거가 되어 왔던 그러한 율법의 행위들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폐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을, 이방인들의 선교를 막는 장애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 있는 제안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반대자들을 율법주의자들로, 자기 당대의 유대교를 율법주의적 종교로 규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이 바울을 잘못 이해하여 바울의 반대자들을 율법주의자들로, 그리고 바울이 자기 당대의 유대교를 율법주의적 종교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69)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이들이 다 같이 부분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 중 그 어느 하나에게도 전폭적인 동의를 하기 어렵다고 본다. 우리는, 베렛(C.K. Barrett)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이 바울자신보다 주후 1세기의 유대교와 율법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70) 그리고 이미 앞에서 지적한바 있지만, 라토(Laato)는, 센더스의 문헌 조사를 재검토한 다음,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언약적 율법주의였다는 점에 관하여서는 동의하였지만, 그러나 이 언약적 율법주의 안에는 구원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은총에 덧붙여 필연적으로 추가되어야하는 율법주의가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71) 말하자면 언약적 선택(Getting in)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지만, 그 언약적 선택의 유지(Staying in)는 율법에 대한 인간의 책임적 순종에 의존한다면, 그래서 책임적 순종이 없을 경우 언약의 상태에서 축출된다면, 결과적으로 구원은 전적인 은혜가 아닌 은혜와 순종의 합작품이 될 수밖에 없고, 율법은 일종의 구원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72) 65)Paul and the Law, 266-267; Jesus, Paul and Torah, 188-189. 66)Paul and Palestinian Judaism, 475-97; Judaism, 509-10. 67)“This is what Paul finds wrong in Judaism: it is not Christianity.”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552. 68)Jesus, Paul and the Law, 186-88; 역시 F. Watson, Paul, Judaism and the Gentiles: A Sociological Approach, 62-72. 69)참고, 홍인규, “Does Paul Misrepresent the Jewish Law? Law and Covenant in Gal. 3:1-14," NovT 36 (1994): 164-182. 70)Barrett, Paul, 78. 71)앞에서 인용한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180에 나타난 보다 자세한 언약적 신율주의에 관한 진술을 보라. 72)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위해서는 기독교 이전 유대교 안에는 의로운 상태 유지 없이는 종국적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소위 남은자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 있었음을 강조한 Mark Adam Elliott, The - 17 - 사실상 이와 같은 라토의 지적은, 이미 필자가 오래전부터 샌더스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지적한바 있었던 것이다.73)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자기 당대의 유대교나 율법을 오해를 하였다거나, 혹은 갈라디아서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율법 비판을 단순히 수사학적인 표현으로만 보지 않는다. 혹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율법의 행위/율법을 비판한 것은 그것들이 이방인 크리스천들의 동등성과 그들의 선교를 방해하는 유대인들의 배타적 선민의식 혹은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회적 기능 때문만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이 이들을 반대한 것은 그것들이 인간을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는 복음의 자리, 곧 그리스도와 성령의 자리를 대신하려하거나 훼손하려고 하기 때문으로 본다.74) 바울이 안디옥과 갈라디아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싸운 것은 단순히 그들이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이방인들에게 강요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도행전 15:1의 지적대로, 그들이 이방인 크리스천들을 향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고 주장했고, 갈라디아 2:21의 지적대로 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다음과 같은 헹겔(Hengel)의 “새로운 전망의 바울 연구가들은 바울의 주된 관심이 바울과 고대 유대교와의 관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 바울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율법’이냐, ‘복음’이냐 하는 것 이었다”75)는 지적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반대자들을 율법주의자들로 규정한 전통적인 견해는 바울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결국 다시 한 번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 결정적인 문제로 떠오른다. 우리가 센더스의 주장에 반대하여 전통적으로 믿어 온대로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율법주의적 종교(Legalism)”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센더스의 주장대로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로 보아야 하는가? 이점에서 필자는 주후 1세기 유대교를 새로운 바울 전망의 연구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언약적 율법주의”든 혹은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율법주의”등 어느 쪽이든 획일적으로 보거나 단순화시키는 것은 다 같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제 2성전시대의 유대교문헌은 언약적 율법주의는 물론 율법주의적 주장을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상 우리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기 전에 이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의 규정도 필요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주전 3세기부터 주후 1세기까지의 현존하는 여러 유대 문헌들에 대한 최근의 검토는, 주후 1세기 유대교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종파나 계층의 문헌조사를 통하여 언약적 율법주의나 혹은 율법주의적 특성을 발견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확대하여 바울과 예수 당대의 유대교가 전체적으로 율법주의 혹은 언약적 율법주의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76)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Survivors of Israel: A Reconsideration of the Theology of Pre-Christian Judaism (Grand Rapids: Eerdmans, 2000)와, 유대교 신학에서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율법에 대한 인간의 행위에 의존함을 밝힌 Simon James Gathercole, Where is Boasting? Early Jewish Soteriology and Paul's Response in Romans 1-5 (Grand Rapids: Eerdmans, 2002)를 보라. 73)최갑종, “바울과 율법,” 『바울 연구 1』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2), 55-68; "홍인규의 The Law in Galatians에 대한 요약과 평가,”『성령과 율법』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4), 287-298. 74)지난 1990년 이후 새로운 바울전망에 관한 찬반 논의의 연구들이 수 없이 나타난다. 이들을 위해서는 “the Paul Page. Dedicated to the New Perspective on Paul." http://www.thepaulpage.com과 ”the Paul Page. The New Perspective on Paul: A Bibliographical Essay." http://.thepaulpage.com/Bibliography.html 을 보라. 75)R. Alan Streett, "An Interview with Martin Hengel," CTR 2/2 (2005), 14. 76)Sanders의 주후 1세기의 유대교의 재구성(reconstruction)에 관하여서는 적지 않은 유대인 학자들까지도 Sanders의 유대교 재구성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인위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E.P. Sanders의 Judaism (1992)에 대한 다음의 서평 논문을 보라: Jacob Neusner, JSJ 24/2 (1993): 317-322; S. Stern, JJS VLII (1993): 307-310; L.L. Grabbe, JTS 44/2 (1993): 643-644. - 18 -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교회 등 여러 교파들과 신학적 특색을 가진 교회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과 예수 당대의 유대교 안에서도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열심당 등 특색과 강조점을 달리하는 여러 종파와 운동들이 있었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기독교 안의 이와 같은 다양성을 외면하고 획일적으로 기독교는 이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언약적 율법주의”든 “율법주의”든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샌더스(Sanders) 그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77) 「제 4 에스라」와 같은 문헌은 물론, 제 2에녹서, 제 4에스라서, 그리고 제 2 바룩, 희락서 등 여러 유대 문헌 등에는 당대의 유대교가 언약적 율법주의보다 오히려 율법의 행위에 의한 의와 구원을 주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78) 이것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지역이나 계층 혹은 종파의 사람들은 언약적 율법주의가 아닌 행위-의를 강조하는 일종의 율법주의를 유대교의 주된 특색으로 신봉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때 철저한 율법신봉자이며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적어도 그의 반대자들을 가리켜 율법주의자들로 규정하였다고 한다면, 우리가 바울의 다른 본문들을, 예를 들면 로마서 9: 32-10:4과, 빌립보서 3:4-9절에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지만, 바울이 직접 대면했던 당대 유대교에서 주류 역할을 했던 바리새파 유대교 안에는 부분적이나마 율법주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중에 그 누가 감히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유대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뛰어난 유대교 학자였던 바울 자신보다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더 정확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문헌상의 증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두 가지 양극단을 동시에 피하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첫째는,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획일적으로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율법주의이라는 전제 아래서, 갈라디아서를 위시하여 바울의 서신들을 새롭게 재해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둘째는,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 있는 율법과 할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으로부터 바울 당대의 전체 유대교를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은 전적으로 외면하는 획일적인 율법주의적 종교로 규정한 다음 바울이 유대교를 정면적으로 거부하였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후 1세기의 비기독교적 유대문헌들이 복음서를 위시하여 바울서신의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복음서나 바울서신 해석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바울서신은 어디까지나 먼저 바울 서신 그 자체로 해석되어야한다. 다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는 우선적으로 갈라디아서 그 자체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갈라디아교회에 찾아온 바울의 반대자들이 예루살렘교회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모든 사도들이나 신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자들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이나 갈라디아서 2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과 이들 사이에 복음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79) 오히려 우리는, 마치 유대교 안에서도 언약적 율법주의자들과 함께 또한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예루살렘교회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의와 구원의 유일하고 충분한 조건으로 받아드리는 자들과 함께, 또한 할례와 율법을 여전히 의와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신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울의 반대자들은 바로 후자의 부류에 해 77)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409-418. 78)D.A. Carson, Peter T. O'Brien, and Mark A. Seifrid, eds., Justification and Varegated Nomism. Volume 1. The Complexities of Second Judaism (Gand Rapids: Baker Academic, 2001), 545; 최갑종,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의 접근과 개혁신학. ‘새 관점,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개혁신학회 제 28회 정기학술심포지움』, 2010년 5월 8일 총신대학교, 45-76을 보라. 79)물론 이 말이 바울과 베드로를 위시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 복음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같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2:11-21에 있는 안디옥 사건을 취급하면서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베드로는 이신칭의의 복음이 그의 신분은 물론 그의 전 삶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을 두려워하여 이신칭의의 복음에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인 행위를 하였고, 그 때문에 그는 바울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 19 - 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이 유대교 안의 율법주의자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하는 문제는 새롭게 검토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6.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The Main Theme): “에도스”와 “페도스”의 수사학 바울사도가 왜 갈라디아서를 썼는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많은 주석가들과 학자들은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느냐는 이신칭의 구원론의 문제로 생각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신 구원 사건을 통하여, 할례나 모세의 율법 준수와 관계없이, 인종(人種, 유대인과 이방인), 신분(身分, 종과 주인), 성(性, 남자와 여자)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3:28). 갈라디아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열광적으로 받아 드림으로써 갈라디아교회들이 구성되었다. 그런 다음 바울은 떠났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을 떠난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예루살렘교회 출신의 보수파 유대인 신자들(이하,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교회에 찾아와서,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보다는 열등한 자이며, 그가 전한 복음도 불완전한 복음이라고 하면서,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을 훼손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 곧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유대인의 할례와 절기 및 율법을 지켜야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인 구원받는 언약백성이 된다고 주장하였다(갈 1:7; 2:3-4; 3:1; 5:7-12; 6:12-13; 참고 행 15:1). 그들이 제시한 복음에 따르면, 그 사도직과 복음의 출처가 모호한 바울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갈라디아교인들이 유대인 신자들과 동등한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보충해서 언약백성들의 신분과 삶의 표지인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비로소 유대인 신자들처럼 참된 구원의 공동체, 곧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란 신분을 가질 수 있다. 갈라디아교인들은 유대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미혹당하여,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 곧 인종과 신분과 성을 초월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자신들의 구원과 신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한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받아드리고자 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자신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유대주의자들이 전한 거짓된 복음이 아닌 자신이 전한 복음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구원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하게 되었다. 1980년대에 일어난 새 관점 지지자들은 갈라디아서를 전통적인 구원론적 관점에서 보다도 오히려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문제, 곧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 아브라함의 후손인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가입하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교회론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샌더스(E.P. Sanders)에 따르면, 갈라디아서 3장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논증은 “믿음 자체에 대한 옹호나 행위 자체에 대한 반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보다 특수한 것인데, 그것은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을 요구하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다.”80) 이처럼 전통적인 입장이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점을 더 강조하였다고 한다면, 새 관점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수평적 관점을 더 중요시 한 것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전통적인 입장이나 새 관점 입장이나 다 같이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를 갈라디아교인들의 신분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80)E.P. Sanders, Paul, the Law, and the Jewish People, 19. - 20 - 전통적인 입장이든 새 관점의 입장이든 갈라디아교회들 안에서 제기된 근본 문제를 이와 같이 주로 크리스천신분의 문제로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 역시 이러한 신분의 문제로부터 찾으려한다. 이들은 갈라디아서를, 바울 사도가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 제기된 크리스천신분에 관련된 문제를 듣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쓴 편지로 본다. 이들이 볼 때, 갈라디아교회 안에 제기된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바로 바울 자신의 사도직과 그의 복음의 사활이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였고, 그의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의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만일 할례와 모세의 율법이 아브라함의 후손과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신분을 결정하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고, 성령의 선물도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 될 것이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거짓된 사도가 될 것이고, 자신의 과거, 현재는 물론 미래의 모든 이방인 선교사역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 문제를 크리스천 신분의 문제, 곧 단순히 구원론이나 교회론의 문제로만 보는 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중요한 근거를 주로 갈라디아서에 대한 전통적인 3등분의 구조분석, 즉 1-2장의 바울의 자서전, 3-4장의 복음과 율법의 대조, 5-6장의 윤리적 권면에서 찾고,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갈라디아서 전체를 이해하려 한다. 이들은 갈라디아서 1-2장에 나타난 바울의 자서전의 주요 기능은,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바울의 사도직과 그의 복음을 훼손하였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유대주의자들의 거짓된 주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신적 사도성과 신적 복음을 변증하는데 있다고 본다. 이들은 갈라디아서의 중심부를 차지하면서 복음과 율법 문제를 취급하는 3-4장을 갈라디아서의 가장 핵심부분으로 보면서,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문제가 신분의 문제이며, 따라서 갈라디아서의 중심적인 메시지도 신분의 문제와 관련된 구원(의/하나님의 백성/아브라함의 후손)문제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결정적인 근거로 삼는다. 즉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대신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제시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3-4장에서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크리스천의 신분/구원(의/하나님의 백성) 문제를 결정하는 수단임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갈라디아교인들에 대한 윤리적인 권면을 담고 있는 5-6 장이 3-4장의 내용과는 다르다는 점을 들어, 갈라디아서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기보다도 대게 일종의 부록으로 보고자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갈라디아서 3-4장에서 사실상 갈라디아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주장을 다 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라디아 5-6장은,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도, 별다른 중요성을 지니지 못한다. 갈라디아서에 관하여 전통적이든 새 관점이든 많은 주석가들과 학자들이 생각해 온 이와 같은 주장들의 문제점은 없는가? 과연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 문제가 크리스천신분만의 문제이며, 따라서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도 신분 문제와 관련된 구원(의)론 혹은 교회론 교리로만 보아야하는가?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한 사람의 신분을 결정한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로 보아야하는가?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3등분의 구조 분석과 그 기능 할당이 정당하다고 보아야하는가? 1-2장에 나타난 바울의 자서전의 주요 기능은 과연 바울의 사도성과 복음의 신적 기원만을 옹호하는 변증적인 것이며, 갈라디아서 3-4장을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문제와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심부분으로 보아야하는가? 반면에 갈라디아서 5-6장은 사실상 부록에 해당하며, 따라서 갈라디아 교회 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는가? 필자는 갈라디아서를 가르치고 연구해 오면서 갈라디아서의 3등분 구조 분석과, 그리고 이와 - 21 -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그리고 새 관점의 신분/이신칭의/하나님의 백성의 가입 중심의 갈라디아서 이해가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갈라디아서 해석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갈라디아서 본문 자체와 조화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가능성 있는 방안을 찾게 되었다. 첫째, 전통적이든 새 관점이든 기존의 입장은 갈라디아서가 왜 편지를 보내는 바울 자신에 관하여 말하는 1-2장의 "I"(바울) 부분과,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 관하여 말하는 3-6장의 "You"(갈라디아 교인들) 부분의 뚜렷한 대조를 가지고 있는 점을 충분하게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둘째, 기존의 입장은 갈라디아서 5-6장의 핵심적인 단어인 “성령”이 이미 3-4장에 등장하여(3:2,3,5,14; 4:6,29) 3-4장에 나타난 바울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충분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셋째, 기존의 입장은 갈라디아서의 5-6장의 전체 메시지를 이끌어 가는 성령과 육의 대조가 이미 3장의 서두(3:3)와 4장의 마지막(4:29)을 장식하면서 사실상 5-6장과 깊이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넷째, 갈라디아서 3-4장의 핵심단어 중의 하나인 율법이 무엇 때문에 5-6장에도(5:3,4,14,18,23; 6:2,13)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5-6장의 논증을 이끌어가고 있는 점을 충분하게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갈라디아서 3-4장과 5-6장의 중요 단어들과 중요 사상들이 상호 교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확인은, 3-4장과 5-6장은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밀접하게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1,2장, 3,4장, 5-6장의 3등분 구조보다 1-2 장의 "I"와 3-4장의 "You"의 2등분 구조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중에 갈라디아서의 문학적 구조분석에서 보다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지만, 고대 헬라의 수사학에 이미 이와 같은 “I", "You"의 2등분의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상대방을 가장 효과적으로 권면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연설가나 편지를 쓰는 사람이 가능 한한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에도스’(성품, 혹은 인격)를 먼저 제시하여야하고, 그런 다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페도스’(열정, 혹은 정서)를 제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Rhetoric, 1.ii, 3-5; 역시 Quitilian, Oratoria, IV.1.7).81) 갈라디아서의 “I"부분과 ”You"부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안디옥 사건(2:11-21)도 갈라디아서의 2등분 구조분석에 근거한 갈라디아서이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안디옥 사건은 “I"부분의 마지막에 있으면서 사실상 이 부분의 결론과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You"부분의 핵심적인 논제를 미리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안디옥 사건의 핵심을 여전히 신분의 문제로, 그리고 여기서 제시되는 바울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이신칭의로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82) 그러나 안디옥 사건의 본문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앞으로 이 부분의 주석에서 보다 자세하게 다시 거론되겠지만, 안디옥 사건의 핵심이,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서 이방인 신자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간주하지 않은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 자신이 믿고, 고백하고 가르치는, 그리고 바울과 예루살렘에서 합의하였던 그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동하지 않은 삶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일어나 자리를 떠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는 복음의 진리에 역행하는 위선적인 행동을 81)자세한 문제는 Stanley K. Stowers, Letter Writing in Greco-Roman Antiquit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1986), 58-96. 82)예를 들면, 이한수, “안디옥 사건과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 『바울신학연구』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3), 99-149. - 22 -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이방인 신자들로 하여금 억지로 유대인의 삶의 방식을 받아드리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2:13-14). 즉 안디옥교회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크리수천의 신분문제가 제기 된 것은 처음부터 신학적인 이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바울이 공유하고 있는 신학, 곧 복음의 진리를 베드로가 실천하지 못한 삶의 문제에서 야기되었다. 흔히 주석가들은 갈라디아서 2:16의 이신칭의 본문을, 안디옥 사건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물론 갈라디아서 전체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가리키는 본문으로 삼으려고 하는데,83) 이것은 갈라디아서 2:15-21의 본문이 베드로와 바울을 함께 묶는 15-17절의 “우리”본문과, 베드로를 배제하고 바울 자신의 삶의 자세를 강조하는 18-21절의 “나”본문으로 구분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데 기인한다. 이신칭의 교리자체를 말할 때 바울은 베드로를 포함시키는 “우리”를 주어로 삼음으로써, 이신칭의 문제, 곧 신분의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2:15-17). 그런데 이신칭의에 따른 자신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말할 때, 바울은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배제하는 일인칭을 사용하여, 베드로의 실패가 신분 문제보다 삶의 문제임을 강조한다(2:18-20). 만일 갈라디아서 1-2장의 주요 기능이 단순히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의 신적 특성을 변호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의 진리에 일치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바울 자신의 ‘에도스’를 갈라디아 교인들의 ‘페도스’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모델과 패러다임의 역할에 있다고 한다면, 1-2장의 절정 부분인 안디옥 사건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말하자면, 안디옥사건의 주요 기능은 베드로의 잘못된 행위를 부각시키려는데 주된 목적이 아니고, 바울과 베드로의 대조적인 삶을 통하여,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데 있다. 안디옥 사건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는 안디옥 사건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신분의 문제와 연결된 이신칭의교리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이신칭의 교리의 적용인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임을 확인시켜준다. 물론 갈라디아서 3-4장은, 전통적으로 그렇게 주장되어 온 것처럼, 한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갈라디아서 3-4장의 초점을, 어떻게 한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방인이 하나님의 언약백성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 3-4장에서 거듭 거듭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한 율법의 행위 없이 바울의 복음을 통해서 이미 의롭게 되었고, 이미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으며, 이미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비록 갈라디아 3-4장에서 크리스천 신분 문제가 거론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이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갈라디아 교인들이, 마치 안디옥에서 베드로의 경우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신의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기 있기 때문에 이를 재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점은 바울이 3:1 이하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가리켜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성령으로 새로운 신분을 시작하였으면서도 성령으로 자신들의 삶을 성화 시키지 않고, 오히려 육으로 마치려고 하느냐(3:3)하는 질문에서, 그리고 3-4장을, 성령을 따라 난 자유 한자와 육을 따라 난 종에 대한 대조로 종결하고 있는 점에서도(4:29-30) 확인된다. 갈라디아서 3-4장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는 결국 갈라디아서 3-4장은 갈라디아서의 중심부나, 혹은 5-6장으로부터 분리되는 독립된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5-6장의 한 부분이며, 5-6장의 절정을 준비하는 부분인 것 83)James D.G. Dunn, "The Incident at Antioch (Gal. 2:11-18)," in Jesus, Paul and the Law (Louisville: Westminster, 1990), 129-182; John M.G. Barclay, "The Antioch Episode and Justification of Faith," in Obeying the Truth (Edinburgh: T. & T. Clark, 1988), 76-83; Peter J. Tomson, "The Antioch Incident," in Paul and the Jewish Law (Minneapolis: Fortress, 1990), 222-230; P.C. Böttger, "Paulus und Petrus in Antiochien: Zum Verständnis von Galater 2.11-21," NTS 37 (1991): 77-100; Sabbas Agourides, "Peter and Paul in Antioch (Galatians 2,11-21)," in The Truth of the Gospel (Galatians 1:1-4:11) (Rome: Benedictina, 1993), 59-90. - 23 - 을 확인시켜 준다. 5-6장과 3-4장은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지만, 5-6장이 3-4장을 위해 있다고 보기보다, 오히려 3-4장이 5-6장을 위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5-6장은 갈라디아서의 결론과 절정 부분에 해당하며, 따라서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 문제도,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메시지도 신분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삶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복음에 합당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거룩한 삶, 곧 육에 따른 삶이 아닌 성령에 따른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지금까지 말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갈라디아교인들이 무엇 때문에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미혹을 당할 수 있었는가?84) 바울은 1:6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쫒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갈라디아교인들이, 비록 모든 갈라디아교인들이 아니고 일부이라고 할지라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유대주의자들이 전한 다른 복음을 쫒게 되었는가? 바울은 갈라디아 3:3에서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어떻게 육체로 마치려 하느냐?”(역시 5:16; 6:8 참조), 4:9 이하에서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갈라디아 교인들이 초등학문으로 되돌아가며, 유대인들의 절기를 지키려고 하였는가? 바울은 다시 갈라디아 5장 3절 이하에서 이들을 가리켜 “할례를 받는 자,”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이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하였는가? 갈라디아서를 전체적으로 일종의 성령에 대한 변증서로 보려고 하는 주석가 베츠(Betz)는, 갈라디아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에 미혹을 당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갈라디아교회 안에서 일어난 “육”(肉)의 문제, 곧 도덕적 무질서에 있었다고 가정한다. 베츠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갈라디아 교인들은 처음에 바울의 복음을 통하여, 곧 복음 안에서 역사 하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들이 이 세상의 초등 원리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통하여 우상 숭배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당대의 사회적인 커다란 장벽이었던 인종과 신분과 남녀의 장벽까지 해소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갈 3:28 참조). 그야말로 그들은 복음을 통하여 열광주의적인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당대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인 장벽이 제거되고 자유의 물결이 넘치는 이상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 곁을 떠난 지 얼마 후에 초기의 열광주의가 식어지면서, 그들은 복음과 성령을 통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자유로부터 새로운 문제, 곧 육의 문제인 무질서와 도덕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 육의 문제를 바울이 전해 준 자유의 복음과 그 복음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을 통하여 해결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에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도착하였고, 그리고 그들이, 바울이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를 율법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들의 가르침에 미혹 당하여 유대인의 할례와 율법을 통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무도덕적인 문제를 할례와 율법을 수단으로 삼아 극복함으로써 구원의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츠에 따르면, 갈라디아교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도덕법으로서의 율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논증하려하는 핵심적인 문제도 율법이 아닌 성령을 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85) 84)우리는 이 점에서 갈라디아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미혹을 받아 이미 할례를 받았거나 모세의 율법과 유대교의 절기 등을 지키고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혹에 넘어갈 위험에 처해 있었기는 하나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갈라디아서의 권면과 경고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오히려 편지의 내용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Cf. Troy Martin, "Apostasy to Paganism: The Rhetorical Stasis of the Galatian Controversy," Mark D. Nanos, ed. The Galatians Debate. Contemporary Issues in Rhetorical and Historical Interpretation (Peabody: Hendrickson, 2002), 76-77. 85)Betz, Galatians, 8-9, 28; "In Defense of the Spirit," 105-7; “Spirit, Freedom, and Law. Paul's Message to the Galatian Churches," 145-160. - 24 - 또 하나의 다른 견해는, 갈라디아교인들의 사회적 정황으로부터 그 문제를 찾아보려하는 것이다. 이미 바클레이(J.M.G. Barclay)를 위시하여 몇몇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86)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받아드리면서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은 기존의 소속 공동체로부터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소속 공동체로부터의 단절은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으로부터의 단절과 소외를 포함하였다. 다수 공동체로부터 단절을 당한 이 소수의 크리스천 공동체는 그들의 사회적 소외와 분리를 채워 줄 수 있는 다른 다수의 공동체와 문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갈라디아교회에 찾아 온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이 소속한 유대인공동체와 문화는 갈라디아교인들의 이와 같은 사회적-종교적 소외를 채워줄 수 있는 대안으로 이해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한 할례와 율법 및 유대교의 절기 등은 갈라디아교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받기 전 그들이 이교도 신앙에 있었을 때 익숙하였던 여러 가지 제의의식들과 유사하였다는 것이다.87) 즉 믿음 외에 그 어떤 종교행위 및 의식을 요구하지 않은 바울 복음을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이교도 신앙생활의 관습 때문에 인간 편에서 무엇을 할 만한 것이 없는가하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대주의자들이 이러한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것이다.88)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제안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런 요인이 작용할 수도 있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들이 갈라디아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에 미혹을 당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갈라디아 3:3이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에 미혹을 당한 주된 이유를 밝혀주는 중요한 구절 중의 하나이라고 본다. 바울이 볼 때 갈라디아교인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했거나, 혹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드리지 못한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받아 드렸다. 그들은 복음을 통해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에 대한 체험을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바울을 천사처럼, 그리스도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유와 동시에 십자가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령은 단순히 열광주의적인 기쁨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전 삶을 사랑과 봉사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바울이 전한 이신칭의의 복음은 “이미”가 주는 구원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직”이 시사하는 십자가의 삶, 기다림을 통해 오는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종말론적인 것임을 충분하게 감지하지 못하였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자신들의 신분과 삶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신분과 삶이 성령으로 시작할 뿐만 아니라 성령에 의해 계속 완성되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안디옥 사건에서 베드로가 그가 알고, 받아 드린 그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않았던 것처럼, 복음의 진리를 받아드렸으나 그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살지 못하였다. 그들은 성령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 받은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의 삶을 바르게 살지 못하였다. 갈라디아 3:3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성령으로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로, 즉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하는 할례와 율법의 도움에 의해 완성에 이르려 하였다. 그들이 복음을 통해 해방되었던 세상의 초보 원리들과 육의 멍에들에 다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해 허물었던 의식들과 장벽들을 다시 세우려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안디옥 사건을 통해서, 특별히 안디옥 사건에 나타난 베드로와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제를 보도록 하였고, 어떤 자의 길을 따라야함을 86)Barclay, Obeying the Truth: A Study of Paul's Ethics in Galatians (Edinburgh: T. & T. Clark, 1988), 68-72. 87)Susan Elliott, Cutting Too Close for Comfort.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in its Anatolian Cultic Context (London: T & T Clark International, 2003). 88)Clinton E. Arnold, "'I Am Astonished That You Are So Quickly Turning Away!' (Gal 1.6): Paul and Anatolian Fork Belief," NTS 51 (2005): 429-449. - 25 - 깨닫도록 하였다. 예수를 믿음으로 즉시 완전한 신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으로 믿음을 쫒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5:5)가 되어야함을 강조하였고, 그리고 옛 세계의 요소인 육의 길을 버리고 새 시대의 주인공인 성령의 길, 곧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계속해서 성령으로 살아야할 것을 권면하였다.89) 이처럼 갈라디아서 전체의 통합적인 시각에서 볼 때, 갈라디아서의 핵심적인 주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에 가입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신분의 문제이라기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가하는 삶의 문제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할례와 율법/율법의 행위들을 거부한 것은 단순히 유대주의자들이 그들을 언약백성의 가입조건으로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언약백성의 삶의 원리로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율법/육을 따르지 말고, 오직 성령을 따라 그리스도 십자가 중심의 삶을 살도록 권면한 것이다. 7. 기록 연대(The Date): "갈라디아서가 언제 쓰여 졌는가?" 갈라디아서의 연대문제는 전통적으로 갈라디아서의 수신자 문제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대다수의 북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은, 갈라디아서 4:13의 “처음에”라는 말에 근거하여, 바울은 적어도 두 번 이상 갈라디아지역을 방문하였으며, 그리고 이 두 번째 방문은 사도행전 18:23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두 번째 갈라디아지역 방문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들은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예루살렘공의회(AD 49/50)와 사도행전 18장에 언급된 바울의 고린도지역 선교(AD 51-52) 이후인 주후 53년 이후에 쓰여 졌다고 본다.90) 반면에 대부분의 남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은 바울이 제 1차 선교 여행 시에 가고 돌아오면서 갈라디아 교회를 두 번 방문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그리고 갈라디아서 1:18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1차 예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 9:26-30에 있는 바울의 제 일차 예루살렘 방문과 동일시하고, 갈라디아서 2:1 이하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제 2차 예루살렘방문을 사도행전 11:27-30/ 12:25에 언급되어 있는 바울의 부조방문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갈라디아서는 주후 49/50년경에 개최되었다고 보는 예루살렘공의회 직전인 주후 48/49년에 쓰여 졌다고 본다.91) 그럼으로 갈라디아서의 연대문제는 결국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두 예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어느 예루살렘 방문과 동일한 것으로 보느냐하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만일 사도행전 저자가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연대적으로 정확하게 모두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리고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예루살렘방문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연대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갈라디아서 2:1-10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자연히 사도행전 11:27-30과 12:25에 언급된 바울의 헌금 전달 방문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도 예루살렘 방문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1-10이 언급하고 있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사도행전 11장, 12장이 언급하고 있는 바울의 예루살렘을 동일시하기에는 적지 않은 난점들이 있다.92) 갈라디아서 2:1-10에 나타나 있는 바울이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이방인 선교 문제와 할례문제를 논의한 사건을, 사도행전 11장과 12장에 언 89)Cf. G.E. Ladd, "The Holy Spirit in Galatians," in Current Issues in Biblical and Patristic Interpretation in Honor of M.C. Tenney, ed. G.F. Hawthorne (Grand Rapids: Eerdmans, 1975), 211-216; W. Russell, "The Apostle Paul's Redemptive-Historical Argumentation in Galatians 5:13-26," WTJ 57 (1995): 333-57. 90)Betz, Galatians, 9-12. 91)Bruce, Galatians, 43-56; Schnabel, Paul and the Early Church, 1077; Witherington, Galatians, 8-20. 92)Richard Longenecker, Galatians, lxxiii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갈라디아서의 연대 문제는 바울연구에 있어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갈라디아서의 연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바울신학의 이해와 초대교회 역사의 재구성 문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 26 - 급된 부조방문과 동일시할 것인가, 아니면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할례 문제를 다룬 사건과 동일시할 것인가? 사실상 이 문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신약학계에서 아직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난제중의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이 두 사건은 동일한 사건으로 생각해 왔으나 그러나 현금의 신약학자들 가운데 별개의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남부 갈라디아설의 강력한 주창자인 부루스(F.F. Bruce)와 마샬(I.H. Marshall)은 갈라디아 2장의 사건을 사도행전 11장 30절과 12장 25절에 간단히 언급되어 있는 예루살렘 교회 부조문제로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파송하였을 때 이루어졌던 일로 간주한다.93) 즉 이때에 갈라디아 2장 1-10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의 사적인 회합이 있었다는 것이다.94) 표면적으로 보면 확실히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와 갈라디아 2장 1-10의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의 회합은 상당한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전자는 공적 회의임을 보여주고 있지만(행 15:22), 후자는 사적인 협의였음을 보여 준다(갈 2:2); 둘째, 사도행전 15장의 회의는 할례 문제를 이방인 크리스천들에게 부과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유대적 관습을 그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갈라디아 2장은 그와 같은 조건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셋째, 전자는 바울에게 있어서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후자는 두 번째 방문임을 보여주고 있다(갈 2:1); 넷째, 바울이 갈라디아서 1:20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고 선언하고 있는 점을 볼 때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사도행전 11, 12장의 부조 헌금전달 방문을 빠뜨렸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갈라디아 2장에 있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 11장의 부조 방문과 일치시키고,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방문을 갈라디아서 2:11-21에 있는 바울과 베드로의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간주하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 사도행전 11장은 갈라디아서 2장에 있는 그와 같은 모임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둘째, 바울의 부조 방문 때는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 문제가 아직 제기되지도 않았을 때이며, 바울의 본격적인 선교 여행 전이었기 때문에 갈라디아 2장에 나타나 있는 문제가 제기될 상황이 아니었다. 반면에 갈라디아 2:2은 안디옥교회와는 별도로 바울의 본격적인 이방 선교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95) 이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2:9의 선교 대상 분할에 관한 언급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미 교회의 파송을 받아 공식적으로 제 1차 선교활동을 시작하기 전으로 보기는 사실상 불합리하다.96) 셋째, 사도행전 11장의 방문 때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순교를 당하기전 이었다. 그런데 갈라디아 2:9에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기둥들의 언급에서 예수의 형제 야고보만 언급되어 있을 뿐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빠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갈라디아 2장은 야고보의 순교전보다 오히려 후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넷째, 갈라디아 2:1-10은 예루살렘 회의의 주제가 된 할례 문제를 취급하고 있지만, 반면에 갈라디아 2:11-21의 중심 주제는 할례 문제가 아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식사교제를 할 수 있느냐 하는 식사 교제 문제였다. 다섯째,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의 회심 후 3년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1:18), 그리고 다시 14년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2:1)는 바울의 증언을 감안한다면, 연대기적으로 2:1절의 예루살렘 방문은 주후 46년경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사도행전 11장의 예루살렘 부조방문이 아닌 15장의 예루살렘 공회의 방문으로 보아야한다.97) 93)F.F. Bruce, 신약사, 326-338; Paul Apostle of the Heart Set Free, 148-156; I.H. Marshall, The Acts of the Apostles, 242-247. 역시 R.P. Martin, New Testament Foundation 2 (Grand Rapids: Eerdmans, 1978), 109-117. 94)역시 이한수, “안디옥 사건과 바울의 이신칭의 복음,” 신학지남 제59권 2집 (1992년 여름호), 7-57. 95)Becker, Paul, 88: “이처럼 갈라디아 2:2절은 아마도 안디옥과 관계없는 바울의 선교적 활동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안디옥은 바울이 설립한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Thus Gal. 2:2 probably refers to the Apostles's missionary activity outside Antioch, because Antioch itself is not a church he founded."). 96)Hengel, Acts and the History of Earliest Christianity, 119. 97)만일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AD 30년에 있었고 바울의 회심이 AD 32-33년경에 있었다고 본다면 - 27 - 여섯째,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 11장의 부조 방문 때 갈라디아서 2장에 있었던 그와 같은 회의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똑같은 이슈에 대한 두 번의 예루살렘회의가 있었다는 결론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98) 그 밖에도 누가가 전하는 사도행전 15장과 바울이 전하는 갈라디아서 2:1-10의 보도 사이에 적지 않는 일치점이 있다. 예를 들면, 장소와 주제의 관련된 인물의 일치는 물론, 누가의 보도도 바울의 보도처럼 공의회에 앞서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의 사적인 모임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행 15:4). 바울도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을 소개할 때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먼저 소개함으로써 야고보가 공의회를 주도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는 누가의 보도와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갈라디아 2:11-21에 있는 바울의 베드로 책망 문제를 예루살렘 회의 전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이후로 보는 것이 문맥과 내용상 더 타당하다. 만일 안디옥 사건이 예루살렘 회의 이전에 있었다고 한다면, 베드로가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99) 그러기 때문에 본 주석가는, 비록 모든 난점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또 갈라디아 2 장의 사건을 바울의 예루살렘 교회 부조 방문 중에 있었던 사적인 회합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하더라도,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와 갈라디아서 2장 초두에 나타난 사건을 동일한 것으로 보려고 한다.100)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동일한 사건을 묘사하는데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동일한 사건이나 예수의 말씀을 그들 개개인의 독자들의 상황과 신학적 이유로 인해 조금씩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누가와 바울도 동일한 사건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101) 우리는 이미 누가 자신이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다메섹 개종 사건을 3번이나 수록하면서(9장, 22장, 26장) 그 내용들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 신약저자들에게 이와 같은 창조적인 구성의 자유를 주실 수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의 학문적 방법론의 안경으로 신약 저자들의 방법론을 제안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갈라디아서 2:1-10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방문을 동일시 할 경우 자연히 제기되는 마지막 질문은 바울이 왜 사도행전 11장, 12장이 말하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생략하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1:20에서 일종의 명세적 선언을 통하여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생략함으로써 그의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마치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는가? 이 질문에 관하여 우리가 정직하게 말한다면 바울이 왜 사도행전이 말하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방문을 생략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사실은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그의 필요성에 의해 갈라디아교회에게 보낸 편지이지 우리의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해 쓰여 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 기록될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은 바울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그의 회심 3년 뒤인 AD 35-36년이 될 것이고,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후에 있었던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방문은 AD 49-50년이 된다. 이것은 AD49-50년경에 있었다고 간주되는 예루살렘공의회의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98)Hansen, Galatians, 20. 99)여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Moises Silva, Interpreting Galatian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1), 129-139를 보라. Silva교수는 남부갈라디아설을 지지하지만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1-10이 동일 사건이며, 따라서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공의회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100)그레샴 메이쳔 (김남식역), 바울 종교의 기원 (한국로고스 연구원, 1988), 115-13; 브루스 M. 메츠거 (나채운역), 신약성서 개설 (대한 기독교 서회, 1983,1990), 216-218; R.H. Stein, “ The Relationship of Galatians 2:1-10 and Acts 15:1-35: Two Neglected Arguments," JETS 17 (1974), 239-42; M. Hengel, Acts and the History of Earliest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111-117; 신성종, 신약역사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88), 262-268. 101)이 문제에 관하여는 필자의 “공관복음서 문제,” 1세기 문맥에서 본 주기도문 연구 (성광문화사, 1985,92), 46-57, 111, n6을 보라. - 28 - 바울에게 예루살렘 방문을 포함하여 그의 생애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갈라디아서에 기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며, 지나친 월권이다. 바울은 그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어떤 것은 기록하고 어떤 것은 생략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갈라디아서의 논증에 꼭 필요하였기 때문에 기록하였을 것이고,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갈라디아서의 논증에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생략할 수 있었을 것이다.102) 만일 우리가 갈라디아서 2:1-10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AD 49-50년경에 있었던 예루살렘공의회 방문과 동일시한다면, 갈라디아서는 적어도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인 AD 5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북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처럼 갈라디아서가 고린도전후서가 기록된 이후인 AD 54년경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갈라디아서의 연대문제는 필연적으로 수신자들의 정체성과 나란히 가는 것은 아니다. 수신자문제와 연대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103) 필자는 수신자들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 갈라디아설에 서 있지만, 연대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갈라디아서 주창자들이 제기하는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인 초기연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부 갈라디아설이나 북부 갈라디아설 주창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제 삼의 입장을 견지하고자한다.104) 필자는 갈라디아서의 연대는 예루살렘 공의회 직후, 곧 바울의 데살로니가전서와 고린도전서 연대 사이인 주후 50년이나 51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갈라디아서 편지를 썼던 장소는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심지였던 고린도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105) 102)이점은 J.G. Machen, Machen's Notes, 91-93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역시 G.W. Hansen, Galatians, 19: “바울의 자서전의 요점은 그와 예루살렘에 있는 중요한 사도들과 관계성을 기록하는데 있는 것이지, 그저 그의 예루살렘 방문이 아니다. 그가 부조방문(행 11:27-30)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때는 사도들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3)Silva, Interpreting Galatians, 131: “갈라디아서의 후기 연대가 반드시 북갈라디아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남부갈라디아설을 반드시 초기 연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104)역시 Ridderbos, "Galatians," ISBE 2, 382f.; Dunn, The Theology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1993, 12-17; G.W. Hansen Galatians, 1994, 17-22; M. Silva, Interpreting Galatians: Exp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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