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로 돌아가기 |
제 목 :그 사랑의 승리
본 문 :요한일서 4 : 16 – 21절
어느 백화점에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서 그 고객들이 불평이 컸습니다. 고장나서 그런 게 아니고
본래부터 그렇게 느린 것이었습니다. 이제 고객들이 너무 심해서 백화점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
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힘을 계산해서 일주일만
에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장치, 새로운 디자인의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지배인은 이 보고서를 받고 만족하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지배인은 얼굴이 이지러졌고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러
한 소식을 이 백화점에서 일하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듣고 나와서 하는 말이 “내게 단돈 5만원만 주면 이 문제를 해
결하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울 때가 있나. 속는 셈치고 5만원을 줬어요.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가 가서 커다란 거
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가 떡 걸어놨어요.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 들어가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게 느꼈는데 거울이 있다보니깐 얼굴을 비춰보고,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
떤 여자들은 루즈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얼굴로 웃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덜커덩! 벌써 다 왔네.”
그리고 내리게 됐어요.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요샌 말로 말하면 ‘심
리학적 차원의 해결’입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거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엘리베이터는 그냥 있
어요. 여전히 느릿느릿해요. ‘느린지? 빠른지?’ 는 내 기분이에요. 그 순간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에 있는 것
이에요.
유명한 교육학자인 피터 드러커의 The Effective Executive라는 책이 있는데 “자기 경영” 이라는 책입니다. 그 속에
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시간은 저장하지 못한다. 돈은 저장할 수 있어도 시간은 저장하지 못한다. 또한 시간에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 시간이다.” No Substitutive 시간은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어요. 다만, 주어진 시간이 있
을 뿐이에요. 문제는 이것을 길게 만들기도 하고, 짧게 만들고, 중요한 시간을 만들기도 하고, 완전히 진공시간! 멍청하
게 없애 버릴수도 있어요. 결국은 “시간 경영은 인간 경영이요, 내 생명 경영이다.”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시간은 느리지 못해요. 고쳐할수도 없어요. 문제는 오래 살고 짧게 살고는 그 시간! 얼마나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 가느냐! 에 있는 것이에요. 그 결론은 “사랑” 이예요. 사랑하면 시간의 의미가 커지고 사랑이 빠져들
면 시간은 길어지고, 지루해지고,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랑해서 사랑이 꽉 차있는 그런 시간이라면
흔히 말하기를 “천년이 하루 같다.” 그래요. 또, 괴롭고, 무겁고, 힘들고……. 의미를 잃어버린 시간이라면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이 시간입니다. 문제는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과 함께 사느냐? 사랑 안에 사느냐?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느냐?
그것이 그 시간의 부피를 시간의 의무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고, 삶의 의미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8절은 대단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진 그러한 본문이기에 한 말씀 더 드립니다. 어느 목
사님이 젊은 사람 두 사람을 세워놓고 결혼 주례를 했어요. 이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갔는데 신혼여행 어디 갔던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신혼여행 가있는 젊은이들에게 밤에 자기 전에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자라! 그래서 성경 한 절을
전보로 쳐주었어요. 그리고 자기 이름을 딱 넣어서 전보를 쳤는데 아무 내용도 없이 요한1서 4장 18절이라고 했습니
다. 본문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에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그런데 전보치는 사람이 실수를 해서 ‘일’자
를 빼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요한1서 4장이 요한복음 4장이 됐어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요한1서 4장이 아
닌, 요한복음 4장 18절을 딱 읽어보았더니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나니. 지금 있는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로다.” 참! 기
가 막혀서……. 그랬다고 그래요. 이 요한일서, 요한복음 가끔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사랑이라는 것은요, 사실 보면, 사랑은 없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있습니다. 세상에 사랑받지 않고 사는 사람
도 없고, 다 사랑 속에 살고 있어요. 문제는 그 사랑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에 “하나님은 사랑
이다. 그 사랑을 알고 믿었느니.”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전부 사랑이다. 하
나님의 역사는 사랑이다.” 그래요. 똑같이! 누구에게나 같이 사랑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 사랑을 몰라요. 믿지를 않아
요. 그러면 거기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안양교도소에 가끔 가서 전도하고 그런 때가 있었어요. 특별히 세례식
이 있습니다. 일년에 몇 번. 그럼 대대적으로 교도소에 준비된 사람들을 세례를 주는데 가서 여러 목사님들이 가서 세
례를 주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안양교도소에 있는 방마다 스피커로 제 설교 테이프가 나가거든요. 그래서 안양교도소
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잘 알아요. 그런데, 거기서 출소한 청년하나가 날 찾아왔어요. 그리고 “제가 안양교도소에서 만
기로 출소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와서 세례를 풀 때, 고맙게도 목사님이 저를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출소했
는데 나 직장 좀 소개해주세요.” 참 힘들데요. 이럴 때 참 목사가 힘들어요. 어떻하면 좋지요? 전과 7범을 누구한테 내
가 소개하겠어요. 참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글쎄, 내가 예수 믿게 하고 세례 주는 것도 할 수 있지만, 직장 소개하
는 건 제 소완이 아니고 제 일이 아닌데……. 좀 어려구만.” 했더니 이 청년이 당당하게 하는 말이 “내 그럴 줄 알았어
요.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버려서 나는 아버님, 어머님도 모릅니다.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담장
너머 나와 가지고 불량배들하고 살다가 전과 7범자가 되고 이렇게 형무소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이 나이까지 살았습니
다. 세상에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목사님, 사랑, 사랑 하는데 도대체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가 자기 자식을 버리
는 세상인데…….” 큰일났어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되나? 제가 그를 앉혀 놓고 “자! 그럼 다시 생각해 보자. 사람은 말
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 속에 사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중요한 사랑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4살까지!” 아
무리 머리가 좋아도 4살 기억은 못하자나요. 그러니까 중요한 사랑은 4살 전에 다 받은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자!
보자.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니까! 자기 핏줄이니까! 먹이고 살리고 도와줬다고 하자! 오늘 너와 아무 상관도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기저귀 갈아입혀주고 그래서 살아남지 않았느냐?
사랑이 없다면 네가 살아 있겠느냐! 너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너를 사랑해서 네가 이만큼 오늘이 있는 게 아니겠
느냐?” 그 말에 아주 목을 놓아 울더만요, 아주 한참을 울어요. “사실 그래요, 그 고아원 원장님 참 고마운 분이었어요.
그 아주머니 저를 특별히 사랑해준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이러면서 고마워하는 거예요. “봐라! 다른 사람보다 너는 특
별한 사랑을 받고 있느니라.” 얘기 끝에 벌떡 일어서더니 가겠다고 그래요. “내가 직장 소개 못해 줬는데 어떻하냐?”
그랬더니 “괜찮아요.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넉넉히 살아갈 것이고요, 형무소 다시는 안 갈 겁니다.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그리고 명랑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랑을 못 받은게 아니에요. 다 받았지요. 어쩌면 나만이 특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어요. 그 사랑을 모르고 그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문제예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어요. 엄청난 사랑으로 자기 사랑을 계시해
주셨어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
죠. 그래서 사랑을 안으로 영생으로 사랑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죠. 오늘 성경 말씀에 강조하는 가운데 하나
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다.” 꼭 잊지마세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랑받는게 아니예요. 주도성이,
initiative가 거기 있어요. 그가 먼저 사랑했어요. 지금도 먼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세요. 그런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강요해서 얻는 게 아니고요, 사랑은 강탈할 수도 있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사랑을 받는 게 좀 모자라
다고 해서 박박 바가지를 긁으면서 사랑해 달라고 조르지만요, 그게 사랑이 그렇게 되는 게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
까? 사랑은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해서 깨닫고 감동하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되요. 유명한 데니
스 웨이틀리 교수님의 책 가운데서 “Seeds of Greatness”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위대함의 씨앗” 이런 책입니다.
그 속에 아주 재미있는 사랑에 대한 분석이 있습니다. 이건 말입니다. 러브! 사랑이라는 말은 L.O.V.E 넉자로 되어있는
데 그 넉자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L-Listening이다. 사랑은 듣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이 열리면서 듣는 것이다. 사랑
하는 사람에 말은 들리거든요. 또 뿐만 아니라 재미있거든요. 취하거든요. 점점 더 듣고 싶거든요. 아마 사랑은 그렇습
니다. 그 사람의 말을 계속 듣고 싶으면 사랑하는 거구요, 그 말이 듣기 싫어지면 물간 거예요. 그런 줄 알면 되요. 끝없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요. 그게 사랑이에요. 사랑은 듣는 것이다. 마음이 열리면서 들리는 것이고 끝없이 듣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Overlooking 이다. 사랑은 눈감아주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랑은 덮어요. 아니, 덮어지지 않아요. 사랑으로 보니까 죄가 보이지 않아요. 실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허물이 보이고 실수가 자꾸 보이면 사랑은 끝난 거예요. 사랑하면 이것도 저것도 다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나이 들면 이런 얘기를 좀 합니다. 주책없이…….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손자, 손녀 같이 하거든요. 어리잖아요.
귀엽거든요. 그거 또 먹여주고 그러는데……. 이놈들이 밥먹다말고 식탁 위로 막 기어올라가요. 그냥! 참 안됐지만 할
머니가 이렇게 말하데요. “너는 내 아들이면 너는 가만 안 둔다.” 참! 이상해요. 그렇게 벌벌 기어다니는게 이쁘기만 하
더라구요. 어떻하면 좋아요? 율법은 없어요, 오직 은혜만 있어요. 예쁘기만 보이는데 어떻하라고. 버릇 나빠지는데 뻔
히 알면서도 예쁘기만 해요. 그게 사랑이라는 거예요. 뭘 따지고 말고 해요! 사랑의 사각으로 보면 다 그렇게 그렇게 예
쁘게만 보여요. 이걸 아셔야돼요! 사랑은 또한 V- Valuing이에요.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이 창조를 말해요. 사랑하
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해져요. 그 의미가 소중하고 또 사랑받으면 내가 소중해져요. 그러니까 “나는 쓸데없다.
나는 버려진 존재다.” 라고 하는 사람은 사랑하면 내가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어요.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거지요. 또
한, 사랑은 E. Expressing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은 행동이다. 사랑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 수 있나요. 사랑하니까! 끌어안고 사랑하니까 만지고 사랑하니까 봉사하고 섬기는 거예요. 무언 가라도
주어야만 되요. 이거는 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사랑은 행동이다. 참고로 여러분 , 그가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아는 순간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면 감격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믿어야 되요. 중요한 것이에요.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자꾸 믿어져요. 이것이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원천,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돼있
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사랑의 뿌리
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는 고로 사랑 뒤에는 마땅한 행위가 따릅니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은 마땅함입니다. 사랑 받
았으니 사랑하고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고……. 바울을 보세요. 로마서 5장에서 말합니다. “내가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
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가 나를 구속하시고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가 나를 십
자가로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그런고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내가 사랑받았
어요. 이 어떻게 말하겠어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누가 나를 이 사랑을 막을 수가 있겠어요. 이건 마땅한
것이야! 이것은 보상행위가 아니에요. 이것은 율법이 아니에요. 당연히 그러할 뿐이에요. 그런가 하면 사랑은 힘으로
작용합니다. 저는 오래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집회를 열러 갔다가 샌프란시스코에 유명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히피족이 많고 지금은 또 동성연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어요. 그걸 내가 꼭 가보고 싶다!
내가 하루 종일 거기서 보낼 것이다. 거기서 점심도 먹고 그러면서 다녀보았는데,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더만요, 남자들끼리 끌어안고 입맞추고 그러는데요. 못 봐주겠더라고요. 징그러워서……. 세상에 모 이런 세
상이 다 있나? 그런데가 있어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구경거리예요. 그런데 거기 가서 들은 얘깁니다. 제 후배 목사
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어떤 여자가 잘 믿는 사람인데 의사예요. 자기가 하고 있는 병원 일에 쫌 바빠서 남편을
돌아보지 못하고 등한시했어요. 남편이 그만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에이즈가 걸렸어요. 에이즈라고 하는 무서운
병에 걸렸어요. 이걸 알고 아내가 위로 했다는거 아닙니까? 감동적이에요. 자! 병원에 일한다 치고 삼십년동안 바삐 돌
아다니면서 자기를 돌아보지 못해서 이렇게 밖으로 나가서 에이즈 병에 걸렸는데 이건 내 잘못이요! 완전히 내가 잘못
한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이 이대로 에이즈 병으로 죽으면 나는 당신을 죽게 한 사람으로 그 가책 속에서 살다가 죽어
야 하는데 이건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 같이 죽읍시다! 그리고 10년동안 별거하다시피 했는데 다시 신방을 꾸미고 뜨
겁게 사랑했다는 거 아닙니까! 에이즈 환자를……. 기도하며 신앙 속에서 열심히 했더니요, 에이즈 병이 전염되지 않
더랍니다. 이 사랑에 감동해서 남편이 또 사랑하고……. 그 남편의 병까지 나았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이게 가능하
냐고요? 의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별 아가페적인 특별한 사랑을 화끈하게 하면 아주 고질, 높은 질의 T임파구가
듬뿍 나와서 에이즈균, 에이즈바이러스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답니다. 사랑은 능력이야! 힘으로……. 사람을 구원하고 인
격을 구원하고 병을 고치고 예수를 사랑하고 세상을 바꾸고……. 여러분, 나약함 나의 두려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
까? 사랑을 이해하지 못해서요. 아니,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니에요. 받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받고 있는 사랑
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 현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확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
은 사랑이라고 고백하고 그 사랑에 충만하게 될 때, 거기 두려움이 없습니다. 거기에 질병도 없습니다. 거기에 참 평화
를 능력이 나와 세상이 이기는 능력이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 자료 18,185편 ◑ > K자료 1,91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자유인의 윤리:신 24 : 17 – 22 (0) | 2023.01.27 |
---|---|
산을 옮기는 믿음 :마 17 : 14 – 20 (0) | 2023.01.27 |
그의 은혜와 내 은혜 : 고후 12 : 7 – 10 (0) | 2023.01.27 |
판단치 못할 지혜본 문 : 11 : 33 – 36절 (0) | 2023.01.27 |
내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 /마태복음 16: 13~20 (0) | 2023.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