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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7,537편)〓/유기성 목사 설교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라 /행 20:1-12

by 고동엽. 2023. 1. 24.

2009.12.27 주일 설교(사도행전 강해 45)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라

20:1-12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오늘 본문은 설교 시간에 조는 분들에게는 정말 기분 나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시고 그 동안에 설교 중에 조셨던 분들은 퍽 상처받았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설교 중에 졸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위협적인 말씀처럼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자주 이 성경으로 설교 중에 졸면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교인들도 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오죽 설교가 졸렸으면 졸다가 죽었을까?’ ‘졸리는 설교는 죄악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인용하는 성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대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 주제는 사도 바울이 죽은 유두고를 살렸다든지 또는 설교 중에 죽으면 죽을 수도 있다든지 또는 졸리도록 설교하는 것은 죄악이라든지 이런 말씀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평소같지 않게 설교를 오래 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9)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 3년간 에베소에서의 제자훈련을 마치고 마게도니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행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중에 드로아에 이르러 1주일 간 머물며 설교를 했는데, 마지막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예배를 드리면 성찬식을 했는데, 성찬식이란 용어가 없었던 때라 성경에 떡을 떼려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일이면 떠날 형편이라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다 보니 설교가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떠나게 되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라 간절한 마음으로 한 말씀이라도 더 전하려고 하다 보니 설교가 길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누가는 의사였던 사람입니다. 누가가 죽었다고 썼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찬 예배를 집례하다가 내려가게 됩니다. 바울은 곧 내려가서 죽은 유두고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두고를 살려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다시 올라가 성찬식 예배를 마쳤습니다.

이 사건이 왜 기록이 되어져있을까요? 사도행전 속에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려서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 사건을 성경은 왜 기록해 두었을까요? 그것은 그때 당시에 말씀의 은혜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 새도록 듣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밤이 새도록 전할 그런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새도록 찬송 불러보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밤새도록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사도행전 때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핵심 주제는 사도 바울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도 아니고, “설교 중에 졸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아니고 설교는 짧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 당시 말씀의 은혜가 어느 정도로 컸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4절에 보면 이 때 사도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사도 바울과 동행하게 됩니다. 이는 에베소에서의 말씀 훈련이 크게 열매 맺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도에 자신의 일생을 건 모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라고 가지만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호텔에서 자면서 열흘 정도 다녀오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당시 전도자들은 걸어서 다녔고 강도의 위험, 매 맞고 감옥에 갇히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그 만큼 말씀의 은혜가 컸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 말씀 계속 듣고 싶고 그 말씀 전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고 싶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유두고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유두고가 설교 듣다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밤이 새도록 전할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밤이 새도록 들어도 좋은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길게 하려고 해도 들어줘야 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11절을 보니까 예배가 끝난 다음 다시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예배가 끝났는데 집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짐작하기는 설교가 끝나고 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일이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납니다. “말씀을 조금 더 해주셔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더 설교하고 밤이 새도록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역사상 교회가 부흥할 때 설교가 길었습니다.

대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는 10시간 동안 설교를 한 기록도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께서 젊어서 은혜 받을 때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 시간이 끝나가면 안타까왔답니다. ‘안돼 설교가 벌써 끝나면 안돼.’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 연속극 볼 때 그렇지 않습니까? 끝나는 것이 아쉽잖아요? 은혜가 임하고 부흥이 되면 그렇습니다.

 

중국 현지인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받거나 신학교에서 강의를 부탁받는 경우, 항상 듣는 것이 좀 길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저 길게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에는 내용과 상관없이󰡒무조건 짧게 해달라.󰡓는 부탁이 많은 것과 비교가 됩니다. 심령의 부흥이 다른 것입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전체를바꾸고 살리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들어도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밤새워 찬양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밤새워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밤새워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도 사도 바울처럼 한번 설교해 보세요!”

 

실제로 제가 설교에 열등감이 있고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었던 것이 나도 한번 설교를 재미있게 할 수는 없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제 설교가 좀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워낙 사람이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 설교도 재미있게 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재미있게 하시는 목사님도 계시더라고요. 보기에도 부러웠습니다. ‘나도 저 목사님처럼 재미있게 설교하면 교인들이 얼마나 행복해 할까?’ 그래서 재주도 없으면서 설교를 재미있게 한번 해보려고 쓸데없이 유모집 엄청 뒤져보았습니다. 세상 유모를 설교에 인용하니까 더 썰렁해지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하여튼 설교를 재미있게 한번 해보고 싶은 욕구가 제게 있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제가 이제 설교를 재미있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설교를 꼭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설교자는 오직 말씀만 정확하게 전하면 충분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에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설교가 재미없어도 설교의 역사가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증거되었느냐가 사실상 말씀의 핵심입니다. 설교자는 그것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데 꼭 맛이 있어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더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맛을 내게 하기 위해서 영양소 문제를 고려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먹는 밥이 음식점보다 맛은 없어도 몸에 좋은 이유는 영양소를 더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맛있는 식당의 음식을 자주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맛보다 음식에 들어 있는 영양분이 더 중요합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목사님들은 계속해서 설교를 재미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목사들이 꼭 설교를 재미있게 하려고 모방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정확한 말씀을 전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솔직히 사도 바울의 설교가 재미있었으면 유두고가 졸아서 떨어졌겠습니까?

 

 

미국 목사님 중에 설교로 유명한 분을 꼽으라면 척스미스 목사님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설교가 어려워서 목회를 포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주일 동안 내내 설교 준비를 하였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목회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한번은 성경책을 들고 청중을 보며 설교하는 빌리그래함 목사를 흉내내려고 무선마이크까지 샀지만 좌절만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목회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성경이 읽고 싶어졌답니다. 그동안은 설교 준비하느라 성경을 읽었지만 이제는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은혜가 되는 말씀에 밑줄을 긋고 묵상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성경 말씀이 너무나 달고 오묘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좋은 말씀을 혼자서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나누자고 생각하여 사모님에게 얘기를 했고 사모님과 아는 사람 몇을 불러서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 성경을 읽고 묵상한 것을 주일에 나누는 식의 강해설교를 처음 시작한 것입니다. 그 해에 40명이 모이고 이들이 마음을 합하여 교회를 시작하자고 하여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는 40년 동안 미국 전역에 천 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하고, 2004년 통계지만 미국에서 제일 큰 25개 대형교회 중 15개 교회가 척스미스 목사에게서 본질 목회를 배운 제자들이 차지했고, 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전 세계로 나아가 새로운 교회 모델을 이룩하였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전하였더니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말씀이 인생을 바꾸고 그리고 교회를 뒤바꾸어놓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정말 거듭납니다. 성질대로 예수 믿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를 진짜 믿으면 사람이 바뀝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바뀝니까? 말씀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목회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건물이 있는 교회, 이왕이면 좋은 교인들이 많은 교회에서 목회하고 싶었습니다. 그 조건만 채워지면 목회가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도행전을 읽고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길거리에서 살았고 감옥에서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들어갔을 때는 그곳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로마 감옥에서는 시위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비로서 진짜를 발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했던 그 복음!’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 문제는 사도 바울이 가진 복음을 내가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하는 점이지, 환경이 아무런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있다면 어디에서 목회를 하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사람이 변하고 교회가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니까. 말씀이 그 역사를 이루어낸다는 말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환경이 가장 나쁜 곳에서도 사람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됨을 보았습니다. 복음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기독교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의 내용은 "당신은 변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여 새로워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씀입니다!

 

제가 19844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 분은 그 순간부터 내 구세주였고, 내 인생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뜨거운 체험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라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옛날 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삶의 진정한 변화를 체험만으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하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려고 제 자신이 말씀 앞에 서면서 말씀이 제 삶을 바꾸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이 변화되는 교인들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서문에 기록하였지만 제자훈련을 마친 교인들의 변화는 정말 놀라운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말씀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고 나니까 성격도 바뀌고 삶도 바뀝니다. 여러분 중에 증인이 정말 많습니다.“나도 그런데.”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목사님 교회에는 정말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좀 당돌하지만, 많습니다.”하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만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지를 않습니다.

말씀의 은혜가 정말 깊고도 놀랍습니다. 가까이 가지고 다니는 성경 말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에서 주는 은혜를 받으려면 시간을 내셔야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 들을 기회가 얼마나 짧은지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도 얼마 안 가면 성경 읽기 힘들 때가 옵니다. 귀가 어두워 말씀 듣기가 어려운 때가 옵니다. 다리가 아파서 예배 드리러 나오기가 힘든 때가 곧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듣는 시간을 내셔야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를 떠나면서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전해주려고 애를 쓴 이유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로아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듣고 읽는 시간에 졸아서는 안됩니다.

유두고가 졸았던 것은 피곤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유두고는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집에 가서 그냥 자지 않고 그곳까지 왔으니 유두고 믿음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가 창문 턱에 앉았다고 했는데, 그가 태도가 삐딱해서 창문턱에 앉았다고 보기 보다는 등불이 많이 켜져있는 곳이라 아마 공기가 탁했을 것입니다. 신선한 공기를 쏘이면서 정신차려서 말씀 듣고 싶은 마음으로 그가 창문턱에 앉았을 것이라고 성경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래도 워낙 피곤한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결국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예배드리기 전에 할 수만 있으면 피곤하지 않게 좀 잘 쉬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 예배는 토요일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토요일에는 일찍 주무십시오. 텔레비전 일찍 끄십시오. 토요일 밤늦게까지 이 일 저 일하고 잠을 자고 주일에 오시면 안 조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정신적, 육체적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 드리는 일에 말씀 듣는 일에 시간을 내셔야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환상을 보았는데, 자신이 설교하는데 교인들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조는 교인들이 많고, 시계를 보거나 주보를 보거나 창문을 내다보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생각이 완전히 다른 데 가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설교 시간에 뒤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문이 열리는데, 지옥이 보이더랍니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데 자기가 목사인 것을 보고는 아우성이더랍니다. 자기들을 구원해줄 복음을 들려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안타까와서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들은 듣지를 못하더랍니다. 계속 복음만 전해달라고 절규하는 것을 보고는 깼습니다. 그리고는 설교하는 자세가 달라졌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너무나 짧습니다. 생명의 말씀, 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손에 가지고 다니면서도 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후회될 일인지 모릅니다.

 

미국 옐로우스톤(Yellow-stone) 국립 공원에서는 봄이 되면 직원들이 가을과 겨울에 죽은 곰의 시체를 많이 치워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살아서 생존 능력을 잃어버린 곰들입니다. 그래서 공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경고문이 적힌 전단을 받습니다.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이것이 오늘 날 많은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 때 듣는 설교가 전부인 교인들이 많습니다. 던져주는 말씀이 아니면 스스로가 말씀을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말씀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만 은혜를 받는 것으로는 결코 세상을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나가서 다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자기 스스로 읽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직접 말씀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제자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도들 각자가 목사의 도움없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도를 받게 해주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지 않느냐?"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교인과 목사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끝없이 새롭게 부딪히는 상황들을 어떻게 목사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드리고 해결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교인들 각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인도를 받아 그 때마다 대처해 나가는 것이 훨씬 이상적이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릴 때 설교를 들으면서 겨우 은혜를 받습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바로 그 시간에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말씀을 통해 인도를 받을 수 있어야 비로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은혜를 가장 깊이 받는 길은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은혜 받은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도 삶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마치 아이를 임신하고 流産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아직 불을 피우지 않은 장작과 같습니다.

위대한 전도자 D. L. 무디의 성경책 곳곳에는 "T & P"라는 표시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약자일까요? Tested and proved의 약자입니다. 즉 말씀대로 살아 보았더니 그대로 되더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똑같은 자세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말씀은 그저 듣고 배운 것으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말씀대로 살아보지 않으면 마치 패어놓고 때지 않은 장작과 같습니다. 아기를 임신을 했는데 그만 유산한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그저 아는 것으로는 은혜를 모릅니다. 왜 그동안에 말씀을 많이 듣는데도 말씀의 은혜가 내속에 감동이 아닐까? 실제로 내가 말씀대로 살아보고 그 말씀이 증명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교회 게시판에 양승경 성도의 간증이 올라왔습니다.

이 분은 젊은이교회 설교를 통하여 믿음을 삶에 적용하라는 도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한번 제대로 믿음을 선포하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믿음으로 취한 적이 없는 마음에 믿음의 도전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하라는 메세지로 들렸습니다.

이 교우에게 아토피를 앓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을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하나님이 치료하실 거야.”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말을 하는 자신에게도 믿음이 없었고, 듣는 아들 또한 지나가는 소리로 여기더랍니다. 아토피를 치료 해주려고 안 찾아다닌 곳이 없었고 좋다는 로션이며 민간요법까지 다 써보았지만 지칠대로 지쳐있을 때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 날 밤 아들에게 선포했습니다.“민철아, 하나님이 민철이 아토피를 치료하실 거야. 우리 이번 주 치유 기도회 때 안수 기도 받자.”아들과 함께 금요 성령집회에 와서 안수를 받았는데, 다음 날 핏자국 투성이로 성이 나있던 아토피가 사그러드는 듯 보였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한번 기도 받고 낫는 경우는 오히려 특별한 경우다. 계속 믿음으로 선포하고 기도해라.”그 순간 다시 믿음으로 선포했답니다. 밤마다 아이 몸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아토피를 뿌리 채 치료 해주시기를... 아토피로 괴로움을 주는 악한 영을 대적하고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구했습니다. 1주일 후 아토피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진짜 나았습니다.

며칠 후 자신의 아토피가 완전히 나은 걸 경험한 저희 아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엄마, 나 사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심한 적도 있었고, 부처나 다른 신들과 같은 신 정도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기도 받고 아토피를 고친 다음부터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신이구나, 진짜 살아계시구나 하는 걸 알았어.”

지긋지긋한 아토피를 치료받은 것 이상으로 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진정한 깊은 은혜는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볼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새해를 맞습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벽기도회, 그리고 송구영신 집회에 꼭 오셔서 2010년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붙잡고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것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가 떠나서 가나안까지 이르게 된 것처럼, 우리도 2010년 새해는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이 역사를 주장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은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게 말씀의 은혜의 더 깊은 자리까지 인도해 주옵소서. 말씀을 보는 눈도 열어주시고 말씀을 듣는 귀도 열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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