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6 주일설교(1026 속회관계전도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마태복음 11장 28~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이 가지셨던 마음이 제 마음 속에 아주 통렬하게 임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형편을 정확하게 꿰뚫어 아시고 오늘 여기 계신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은 정확하게 따로 구분하여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하시는 마음입니다.
오늘 실제로 어떤 무거운 짐을 가지고 계시든지 예수님 안에서 그 짐이 다 놓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능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지 겉으로는 잘 모릅니다.
나라의 형편도 그렇습니다. 어떤 위기를 닥쳐보니까 실제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문제가 곪아있었는가 하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숨겨져 있던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은 나만 혼자서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는 수고하고 무거워하는 많은 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자살하였다는 우울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전에 자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신문에 보도되는 것은 연예인이나, 증권맨 등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사람들, 화려하게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보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자살 충동을 느낀 청소년이 63.4%나 된다고 합니다.
무차별 살인 사건도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열등감, 좌절감, 분노, 마음의 상처 등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었는지 전문가들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왜 이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지금이 과학 문명시대라고 하지만 앞으로 영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마다 사주나 점을 보는 코너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콘텐츠입니다. 세계 초 일류 기업의 회장들이 요가를 한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무리 많아 가져도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해결받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를 알기까지는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삽니다.
[15분]이란 연극이 있었습니다. 막이 오르자 희망과 환희와 행복으로 가득찬 젊은이가 나타납니다. 그때 의사 한 사람이 나와서 이 젊은이를 진찰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5분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순간 청년의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우편 배달부가 편지 한 통을 전해 주고 가는데 그것은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10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배달부가 또 다른 편지를 한 통 놓고 갑니다. 수 억대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이 5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편 배달부가 또 한 통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승낙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1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1분 동안 괴로워하다 쓰러져 죽음으로 연극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의 실체입니다. 명예도 재산도 사랑도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진학의 문제, 가정의 문제 등을 다 포함하지만 더 깊은 곳의 문제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쉼을 얻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입니다. 근심도 두려움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 아닌지는 마음에 누리는 평안을 확인해 보면 됩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와서 설교라고는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에게도 이 말씀은 중요하지만, 그동안 오래도록 예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오늘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게로 오는 자는 그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두려움과 염려가 없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해서 두려움도 염려도 없어지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슨 재주로 우리를 두려움과 염려가 없는 놀라운 평안을 주신다는 것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어떻게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신다는 것인지 여러분,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자신 것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자시고 우리를 죄에서 저주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와 저주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장 12절-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동네를 지나시는데 문둥병자를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당시 문둥병자들은 철저히 죄인 취급받았고 전염성때문에 정상인 근처에도 다가가지도 못했습니다. 이 문둥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호소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3절에 보니 그때 예수님께서 그 문둥병자 몸에 직접 손을 대시고, 내가 정말 네가 깨끗하게 되길 원한다고, 문둥병이 떠나게 되길 원한다고 하시면서 그를 깨끗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문둥병자가 고침받은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으면 어떤 복을 받는 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몸의 문둥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문둥병과 같은 죄가 있습니다.
여러분, 문둥병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서도 안되고 누구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병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와 같은 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나만 알고 있어야 되는 은밀한 죄가 우리에게는 다 있습니다. 이것이 드러나면 큰 일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정말 감추고 감추어야 될 죄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마귀는 그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참소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이 죄 문제입니다.
나만 아는 죄,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이건 절대 안돼!’라고 생각하는 죄들. 아무도 만질수 없는 죄, 누구도 만져서 안되는 죄들. 반복해서 회개하고 회개해도 해결되지 않는 죄. 그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겠고 예배도 드리기 싫어지는 죄들. 하지만 너무 고통스럽고, 때론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여전히 우리를 무겁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진짜 죄가 드러나면 우리 중에 우리를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그것들을 더럽다, 싫다 하시지 않으시고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네가 이 죄 문제에서 해결함 받기 원한다. 깨끗하게 되길 누구보다도 더 원한다. 내가 너를 정결케 만들어 나와 대화하고 더 교제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문둥병자들처럼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호소하면 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 앞에 자신의 더러운 것을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고백하고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외면하거나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도소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먼저 들어온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소?" "감기 때문에 들어왔습니다.어느 집에 도둑질 하러 갔다가 감기 때문에 기침을 하는 바람에 붙들렸지 뭡니까?“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 원인은 우리 안에 문둥병과 같이 숨겨진 죄 때문입니다. 이 점을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케 하여주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요, 구원의 복음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지셨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보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지막지한 로마 군병의 채찍을 맞다가 쓰러집니다. 쓰러진 예수님을 보면서 로마 군인은 잔인하게 웃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을 이기지 못할 것을 여긴 신문관이 그만 하라고 제지합니다. 그때 쓰러진 예수님 손이 바르르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채찍을 맞는 자리에 다시 섭니다. 그것을 본 로마 군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독한 마음을 품고 다시 채찍질을 합니다. [영상]
예수님은 왜 쓰러진 채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나요? 왜 굳이 다시 일어나서 스스로 채찍질을 받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하여야 할 죄값을 다 치루셔야 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챨스 피니 목사님은 미국 최대 부흥사였습니다. 그는 집회 때마다 예수님의 속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어느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강단으로 올라가는데 군중 틈에서 험상궂은 얼굴의 거구 한 사람이 나와서 피니 목사님의 팔을 잡고 "당신이 피니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 하니 "만날 수 있소?" "이 시간을 마친 후 뒷 문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하니 주위 사람들이 다 위험하니 만나지 말라고 권하였으나 약속했으니 만나야 한다며 갔습니다. 그 사람이 피니 목사님에게 따라오라고 하며 육중한 건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더니 무뚝뚝하게 물었습니다. "당신 어제 밤 설교한 것이 사실이요?" "무얼 말이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 사람이 침묵을 지키더니 "당신,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이 사실이오?" "예. 사실입니다." 하니 괴한은 권총을 더 가까이 들이대면서 "이 총으로 다섯 사람을 죽였소. 이래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이요?" 그러자 피니 목사님은 "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실내 휘장을 걷고 노름기구, 술병 등을 보이면서 "누구든지 내 집에 들어오면 빈털털이로 나가서 미치지 않으면 자살을 하고 마오. 이래도 그 말이 사실이오?" "예. 사유함을 받습니다." 하니 사람이 또 커튼을 걷어 치며 "저 좋은 2층집이 내 살림집이오. 10년 전 뉴욕에 사업차 갔다고 미모의 여인을 꾀어 내 아내로 삼고, 처자를 때리고 딸이 달려들자 난로에 내동댕이쳐 팔이 부러져 장애아가 되었소. 내 집은 완전히 지옥이오. 이래도 그 말이 사실이오.?" 그러자 피니는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잡으며 "듣기 참 민망하오. 그러나 요한일서 1장 9절은 분명한 사실이오." 하니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고 “알았소. 그만 가 보십시오. 고맙습니다.” 하더랍니다.
다음 날 그 집에 갔더니 그 사람은 머리는 산발하고, 두 눈은 너무 울어서 충혈이 되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집안의 부정한 세간들을 모조리 때려 부숴 전쟁 치른 집에서 아내와 딸을 얼싸안고 목놓아 울고 있더랍니다. 부인은 "당신은 이제부터 가장 좋은 남편이오." 하고, 딸은 "아빠는 이제부터 가장 좋은 아빠야."하고 좋아하였고, 그는 새로운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 문제가 해결될 때, 죄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이 떠납니다.
사람들이 왜 한결같이 죄 짓는 쪽으로, 나쁜 방향으로 끌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죄와 마귀에게 끌려 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섬깁니다. 미신이나 사주팔자나 날을 지키는 것이 다 귀신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나무에 절하고 돌에 절합니다. 부적을 가지고 삽니다. 그 우상에 누가 붙어서 역사하는지 아십니까? 귀신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체를 드러내고 마귀의 무기를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십자가 복음은 귀신을 꺾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마귀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됩니다. 이 때부터 저주가 떠나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새 삶이 시작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십자가로 내 죄가 사함을 받고 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시게 됩니다.
어느 분이 예수 믿은 간증입니다. 장사가 안되어 낙심하고 자리에 몸져 누었는데, 군대 동기가 찾아 왔답니다. 그는 상이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그래도 당신은 건강하지 않소? 나는 오른 쪽 팔이 없소. 장사 다 망해서 빈손이라지만, 팔이라도 온전히 있는 것만도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오. 하더랍니다. 그 말이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에 감동이 되어 물었답니다. 당신은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소? 그 친구가 당신도 예수 믿으시오! 하더랍니다. 눈물로 전도하더랍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회심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습니다. 당시 저는 장애인이 될 절박한 처지였는데, 부러진 다리를 고쳐달라는 것 보다 더 큰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알아주시고 저를 안아주실 수 있다면 소원이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 다리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미국 여행 중에 기독교 서점에서 성화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회심할 때 고백했던 그 소원을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상)
저는 이 그림이 여러분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품에 안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아시고 여러분을 품에 안아주시는 이 복처럼 진짜 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복이 꼭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평안의 축복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지금 여기서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경험되어야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자가 됩니다. 만일 여기서 경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기 믿음, 누리는 평안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직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축복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 시간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전도하신 분들이 그동안 얼마나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특별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왠 까닭인지 아십니까?
우리 모두 구주 예수님을 만났고, 천국에 대하여 알았고, 천국을 맛보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았습니다. 운명과 저주의 굴레가 다 벗겨졌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달라졌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만 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초청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정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기로 약속하신 무거운 짐이 다 벗겨지고 죄와 마귀의 손에서 놓임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울부짖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제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제 삶에 진짜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합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돈을 벌고 공부를 많이 하면 내 인생이 해결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는 너무 곤고합니다. 두렵습니다. 지쳤습니다.”
여러분,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울부짖는 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게 울부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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