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 20010429
2001-12-08 17:21:25 read : 233
주일 낮예배// 누가복음 11장 1-4절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자들이 가장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주님에게 설교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고,
능력 행하는 법, 사랑하는 법, 봉사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입니다.
왜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합니까?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생애를 보면 기도의 생애였고, 돌아가실 때도 기도하며 돌아가셨습니다.
기도해야 수직관계도 잘되고 수평관계도 잘되는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기도가 없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놀라운 축복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 먼저 기도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 기도하는 삶은 믿는 사람의 진실한 신앙을 나타냅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진정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기도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 산밑에서 제자들이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기도 없이 변론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으나 저희가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합니다. 왜 책망합니까?
기도하지 않고 변론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책망한 후 아이를 데려오게 했는데 아이가 주님 앞에서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애원을 했습니다.
"주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이 말은 아주 부정적인 말입니다. 우리는 "하실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지 말고,
"예수님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기도는 부정적인 삶을 긍정적인 삶으로 바꾸어 준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면 "안 된다"는 믿음이 "된다"고 하는 믿음으로 바꾸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안 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기도한 후에는 반드시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할 의욕도 안 나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게 될 가능성도 커지고 의욕도 생깁니다.
기도한 후에 의욕이 생기고, 일감이 보이고, 자기의 책임에 눈을 돌리고,
내일의 비전에 대한 감동이 생기고 이해력이 생기면 진짜 기도를 잘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자 아이의 아버지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말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그 아이를 깨끗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보며 제자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왜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좋은 것은 들어와야 되고 나쁜 것은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 안에 받을 것이 있고, 우리에게서 내보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지식을 받아야 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지혜를 받아야 하고,
또한 각양 재능과 영감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많이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는 들어와야 할 것만큼 내보내야 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만 나가면 다른 것은 좀 부족해도 행복의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질병과 근심, 고통과 불행, 나쁜 생각과 못된 습관 등은 내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심령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속성들을 무엇으로 내보내겠습니까?
기도 외에는 안됩니다. 기도할 때 하늘의 능력이 임해야 그런 것들이 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습니까?
그리고 기도할 때 중요한 원리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가지고 가면 안됩니다. 변론만 생깁니다.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기도하는 자마다 크고 오묘한 비밀을 보게 될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곳입니다.
자주 와서 기도하세요. 하루의 첫 시간 새벽에 힘써 교회에 와서 기도하십시오.
세상에 의지할 것 없을 때 어떻게 합니까?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가난해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약해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학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는 외모 및 물질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교회 출석에는 혹시 변명이 있을 수 있어도 기도에는 변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쓸모가 많은 사람을 가리켜 흔히 "생산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사람은 "생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 될까요? 기도하는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 됩니다.
믿는다고 말만하고 교회만 나와서는 안됩니다. 이제 기도하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는 가장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백 번의 탄식보다 한번의 감사가 낫고, 천 번의 한숨보다 한번의 기도가 낫습니다.
또한 만 번의 원망과 불평보다 한번의 찬송과 예배가 낫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서야합니다.
그래도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하기를 쉬었던 죄를 회개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기도의 비밀을 알아야 신앙생활이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여 능력을 받아 우리 안에 있는 더럽고 추한 것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이제 기도 모임에 최선을 다해 참석하십시오. 그래야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전능하신 주님도 기도하셨습니다. 하물며 연약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됩니까?
그리고 기도가 너무 중요하기에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기도하는 법까지 가르쳐줍니다.
이 주님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의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일까요? 4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감사의 기도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깁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생각하고 깨닫는 것보다 훨씬 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지만 깨닫는 것은 만 분의 일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은혜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철든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인격의 표시이고, 기독교인의 신앙을 반증하는 가장 소중한 열매입니다.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고, 감사하는 사람이 덕을 갖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아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감사는 내일의 승리의 원천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주 실패하고 좌절합니까?
그것은 "여기까지 도우셨다!"라는 에벤에셀의 탑을 세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라고 생각하면 내일도 도우실 줄 알 것입니다.
그 믿음과 그 감사가 우리를 일으키고 내일의 성공을 여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기도는 내 요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오래 기도해도 기도의 참 묘미와 기도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내 요구조건을 하나님 앞에 늘어놓기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다 보면
한가지 소중한 것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삶과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겸손의 기도
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말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나를 주관해달라는 기도이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앞세우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에는 두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소원으로 하는 기도로 자기가 만족하고 자기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소원으로 하는 기도로 하나님의 만족과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어느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의 역사를 이루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진정 응답 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와 그런 생각을 가질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살면서 왜 낙심합니까? 대개 큰 기대를 걸었다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수포가 되고, 친구가 배신하고, 자녀가 대학에 실패하면 낙심이 됩니다.
그래서 머리에 물수건 얹고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어려울 때 낙심하고 불평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가 임한 마음이 아닙니다.
오늘 한가지만 결심해보십시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의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건강하면 건강한 만큼, 부유하면 부유한 만큼, 재능이 많으면 많은 만큼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각오로 기도해 보십시오.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는 은혜가 넘치고, 우리 인생은 빛나는 인생이 될 것이고,
마음의 마음에는 평안이 넘치고, 우리 기도는 진정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3. 믿음의 기도
3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심을 주옵시고."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기도를 한다고 해서 무책임한 사람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으면 밖에 나가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결과에 대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들이 책임을 지십시오.
염려가 많은 사람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대개 자신들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염려를 일시적으로 치료해 주는 것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오직 내일의 염려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책임적 믿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책임을 다한 후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책임임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고 책임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염려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배분하지 않은 책임까지 본인이 떠맡으려 하는 불신의 행위입니다.
최선을 다했으면 앞날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반드시 선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에 반드시 반응하실 것입니다.
4. 평화의 기도
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이 구절에서 주님은 죄 사함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나의 어려운 형편을 무조건 해결해 달라는 청구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문제해결보다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더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주님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까?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혹시 무슨 잘못을 했거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서로 그런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애쓴다면 하나님이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요새 한국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수직적 믿음은 있지만 수평적 평화가 적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파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보수파와 진보파가 너무 대립합니다.
저희 교회는 장로교 통합측 교회이지만 절대 교단을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중요한 사실이 같으면 서로 감싸안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감싸안으면서 조금 차이가 나면 다양성도 일치의 한 표현으로 용납해야지요.
내가 못하는 일을 그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쳐줄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 인심이 너무 각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도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랑의 실천자는 적어지고 의로운 전사와 검투사는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말 이은경 집사님 처음 백혈병 진단이 났을 때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41세의 젊은 나이에 가장 아끼던 성도 장례예배를 인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크지 않은 교회에서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 받은 상처로 인해서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건이 만만찮았습니다.
치료비 얘기를 처음 들을 때 담임목사인 저에게도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단칸 지하 셋방에 살면서 직장도 없는 그 부부가 어떻게 그 많은 치료비를 감당합니까?
그러나 삼성의료원에 가서 창백하게 누워있는 이은경 집사에게 위로를 전했습니다.
"집사님! 치료비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터넷 생각이 나서 몇몇 유력한 곳에 사연을 게시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독교 방송국 게시판에 어떤 분이 제 글을 보고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당신 집과 재산이나 먼저 팔아 도와라. 여기 저기 게시판 다니면서 구걸하지 말라."
그 게시판 내용을 보고 속으로 "정말 집이나 재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게시판 내용을 보고 다른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도 정말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만 게시하고 있습니다.
순수함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글을 보고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마음이 각박해진 상태입니다. 기독교 게시판도 이러니 어찌합니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려고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큰 마음을 가지고 큰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작은 것으로 판단하고, 자기하고 조금만 달라도 이단이라고 정죄하면 되겠습니까?
보통 신령하면 "이것은 안된다. 저것은 안된다."라고 하면서 자기를 구별하지만
진짜 신령한 것은 땅을 감싸안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가 그런 마음을 품고 평화를 추구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좋은 일을 해도 평화를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면서 해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순전한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를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가족 사이에도, 교회 내에서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씨 에스 루이스(C. S. Louise)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류를 사랑하기는 오히려 쉽다. 문제는 내 곁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힘써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그 애쓰는 모습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그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우리는 매일 세수하듯이 깨끗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날만한 정결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미움과 욕망이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납니까?
불화의 장벽을 쌓고, 남을 해치던 손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또한 세상의 화려한 불빛에 현혹되는 마음으로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봅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에베소서 3장 20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그 은혜를 제한하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너무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풍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일의 무한한 세계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의 은총도 받아 누리지 못합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칠 때 다른 새들은 처마 밑에 숨지만 독수리는 비행을 즐깁니다.
강한 양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양날개는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에게도 말씀과 기도의 양날개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제 더욱 말씀 중심적인 삶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로 승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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