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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섬김의 삶//누가복음 8장 1-3절

by 【고동엽】 2023. 1. 23.

건강한 섬김의 삶// 20010826

2001-12-07 23:39:34 read : 629

 

주일 낮예배// 누가복음 81-3

 

< 끝까지 함께 하는 신앙 >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을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이 되는 제자는 똑똑한 제자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는 제자입니다.

때로 지도자가 거친 바람을 맞아 휘청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 나서서 지도자를 붙잡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저는 벤허을 보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벤허를 태우고 가는 노예선을 중심으로 해전이 일어나

사령관이 탄 배가 파선했을 때 벤허는 그 사령관을 구출해 뗏목에 올라탑니다.

사령관은 전쟁에 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지만 벤허가 자결을 못하게 붙듭니다.

왜 그렇게 사령관을 붙듭니까? 사령관을 살려야 자기도 살기 때문입니다.

결국 둘 다 구출 받고 사령관은 전쟁영웅이 되고 벤허는 그의 양자가 됩니다.

 

제자는 스승이 어려움에 처할 때 그를 붙잡아주어야 합니다.

스승을 붙잡아줄 때 하나님은 그 제자를 붙잡아주고 축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성경에는 스승을 잘 붙잡아 주었던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스승 사울이 오해받는 것을 알고 앞서서 바울을 변호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신뢰했고, 하나님은 디모데의 길을 열어주셨고,

나중에 디모데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인 에베소 교회의 담임이 됩니다.

스승의 뜻을 잘 받들어 젊은 나이에 훌륭한 위치에 서게 된 분이 디모데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누가 필요합니까? 디모데와 같은 참 제자가 필요합니다.

때로 나의 부모, 나의 멘토, 나의 선배, 나의 후배가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힘들어할 때 그분을 꼭 붙잡아 주는 사람에게 축복의 길이 열립니다.

축복과 성공은 이웃을 격려하는 사람 것이지 밟고 넘어가려는 사람 것이 아닙니다.

 

제자는 단순히 배우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스승을 격려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아들은 부모로부터 무조건 얻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드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님의 힘이 약해졌을 때 더욱 부모님께 도움을 드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짧은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함께 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1절에서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했고, 3절에서 여자들이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함께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신앙이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혼자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홀로 된 불꽃은 아무리 위대한 불꽃이라도 곧 꺼지고야 말 것입니다.

 

주님과 좋을 때에도 함께 하고, 힘들 때에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떠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고통 중에도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은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영국 트리니티 대학에 '조셉 스크라이븐'이란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들뜬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약혼녀가 익사했다는 충격적 소식이 들렸습니다.

급히 달려가 보니 약혼녀의 시체는 깨끗했고 얼굴은 원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약혼녀의 시체를 붙들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늘을 원망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완전히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몇 달 동안 넋을 잃고 지내는 그에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조셉! 친구 좀 사귀어라!"

"어머니! 저는 앞으로 다시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을 겁니다."

"여자 친구는 없어도 괜찮아! 그러나 주님이 너의 영원하신 친구임은 잊지 말아라."

그 어머니의 말을 듣는데 갑자기 마음에 천국 소망이 생기고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만에 처음 책상에 앉아 마음을 쏟아 붓는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서 붓을 들어 시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487)

 

주님의 친구 되심을 확신하며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제자들과 가룟 유다의 차이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인간적으로는 가룟 유다가 훨씬 똑똑했지만 끝까지 함께 하는 태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재빠르게 가려다가 멸망과 불행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함께 했던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별히 좋은 때보다 어려운 때 얼마나 함께 한 시간이 많으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연륜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합니다.

인내의 기간을 통해서 고난에도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최소한 3년은 같이 있어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공동체에서도 고난의 세월을 앞서 맞았던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능력이 부족하고, 컴퓨터를 모른다고 "저리 비키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함께 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

 

그런데 "함께 했다"는 것을 "몸만 함께 했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 구절에서 "함께 했다"는 것은 "함께 참여했다"는 말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를 드려 사랑하는 대상이 가는 방향에 힘써 참여하는 것입니다.

뱀처럼 웅크리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함께 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해 줄 것인가?"를 노려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어디 두고 보자!"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디 두고 보자!"고 하지 마시고 "참여해 보자! 힘써 보자!"고 하십시오.

교회생활에서도 "목사님이 이번에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고 하지 마십시오.

자기 상황에 초점을 맞춰 남의 사랑을 시험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속으로 "목사님이 이번에 돌 예배 드려주나 두고 보자!"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무 얘기 없으면 "목사님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마음이 돌아섭니다.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한 한국말이 있는데, 바로 "밴뎅이 속과 같다"는 표현입니다.

관심 받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상대도 이해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아기를 위해 돌 예배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님에게 이번에 아이 돌인데 돌 예배 드려달라고 말해 보자!"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했는데 이유 없이 거절당하면 그때 "신뢰가 깨졌다!"고 하면 되는 데

그런 말은 안 하고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고 하면 좋은 열매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므로 "두고 보자!"는 신앙 스타일보다 "해 보자!"는 신앙 스타일을 가지십시오.

 

이 근처에 있는 큰 교회 목사님은 심방하는 것도 참으로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부목사가 여러 명이 있는데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심방하는 것을 따로 여기고,

"우리 집에는 담임목사님이 오는가 두고 보자!"고 잔뜩 시험 들려고 준비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이라면 매우 바쁘겠지만 그래도 담임목사님을 원하면 말하면 됩니다.

"목사님! 이번에 바쁘시더라도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한번 와 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심방을 와서 축복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항상 "어디 두고 보자!"고 하지 마시고 "말씀을 한번 해 보자!"고 하십시오.

그런 태도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여도 그것이 마음을 함께 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마음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삶이 더욱 성공적인 모습이 될 것입니다.

특히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함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힘쓰고 협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의 복음 전파 사역에 헌신적인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섬기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데 함께 했던 열두 제자이고,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자기 소유로 복음 전파 사역을 도왔던 여인들입니다.

 

우리는 드러난 제자들만 훌륭한 줄 압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여성 제자들의 섬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섬김이 있었기에 복음 사역이 더욱 힘있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들만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 후원과 물질 후원도 중요합니다.

그러한 드러나지 않는 섬김과 후원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살지게 하는 원천입니다.

 

< 고난과 시험은 축복의 산실입니다 >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자들은 어떻게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었습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2절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치유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여자들이 귀신에게 해방되고 질병에서 치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귀신들렸을 때, 그리고 병들었을 때 정말 사회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만났을 때 신앙으로 이기고 나면 그 시험은 축복의 산실이 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고난과 시험을 예수님 안에서 축복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입니다.

 

신명기 816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광야의 시험을 허락한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복을 줍니까?

사람을 겸손하게 낮추기 위해 시험해 보고 마침내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복의 기회가 더 많이 열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어떻게 잘 치러 가난한 심령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큰 시험을 당하면 막막합니다.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시험이 오면 곧 하나님의 축복도 올 것으로 믿고 더욱 주님 붙잡고 열심히 사십시오.

하나님은 시험만 의젓하게 잘 치르면 시험 당한 것만큼 복을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복을 주실 때 물질생활을 시험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생활에서 진정 하나님의 원리대로 순종할 때 물질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복을 주실 때 자녀와 관련된 시험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에도 믿음으로 그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자손을 창대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이겼을 때 수많은 영적 자녀를 주시고

결국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자녀를 가진 믿음이 조상이 된 것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하나님의 능력의 기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어려움을 만나면 "이 어려움이 언제 끝나나?" 하면서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 탄식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회로 만들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축복의 기회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은 어려움 속에서 은혜를 체험한 여인들이었습니다.

 

< 은혜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섬김의 삶 >

 

그처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의 삶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힘써 섬겼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섬길 때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계산하면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계산이 아닙니다. 가장 정확한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계산하지 않고 섬기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삶의 열매도 많아집니다.

섬김이 없이 잎만 무성한 삶은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고 공동체를 힘들게 만듭니다.

잎만 무성한 사람들은 대개 편견이 있고, 소극적이었고, 부정적이고,

핑계가 많고,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소중한 꿈과 비전을 꺾습니다.

그래서 잎만 무성하면 많은 영혼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전합니다.

그래서 섬김을 통해 열매를 맺는 삶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대개 보십시오. 인생의 성공은 보통 사람됨됨이의 성공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잎사귀만 무성한 삶이 아니라 열매 맺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야 합니다.

흔히 농 속의 비단옷이 마루바닥을 쓰는 걸레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없어지고 닳아지고 고생이 되어도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입으로만 신앙을 말하는 잎을 보지 않고 진실한 섬김의 열매를 보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 본문에서 '자기들의 소유로'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고 복음 사역에 함께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복음전파에 협력해야 할까요?

 

먼저 섬길 때 많은 것을 가져야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조그만 섬김이 큰 역사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으로 섬기십시오.

손밖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식당에 가서 봉사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음악에 재주가 있습니까? 음악으로 봉사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의 소유로 생각하고 사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그 삶이 진정 감동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상영되었던 타이타닉에는 수많은 희생적인 영웅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주인공 제프는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린 영웅입니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끝까지 배의 키를 붙들고 있던 선장 스미스도 영웅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더 살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선원들도 다 영웅들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멋있는 영웅은 끝까지 찬송을 연주했던 밴드 대원들 같습니다.

 

그 밴드 대원의 대장은 월레이스라고 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의 신음이 넘치는 그곳에 하늘의 소망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신 음악이라는 재능을 끝까지 영혼을 섬기는데 사용했습니다.

누가 영웅입니까? 자기의 것을 사용해 영혼을 구하는 사람이 진정 영웅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천국 소망을 나누어주는 삶보다 더 위대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 물질로 섬기는 삶도 중요합니다 >

 

그리고 헌신할 때 물질적 헌신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신앙의 성장과 열매 맺는 삶을 위해서 물질적 헌신도 중요한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물질에 매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주머니도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비교적 순진한 목사님들의 고민입니다.

그 목사님들은 물질적 헌신은 신앙 성장의 좋은 요소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얘기를 잘 못합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헌신을 교회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돈 얘기'로 여기면서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물질을 소중한 일에 쓰는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삶이 나의 영혼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고 보람있는 인생을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물질 얘기를 교회가 배부르게 되기 위한 조치로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물질적 헌신 생활은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또한 물질적 축복의 산실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교회가 건축만 하지 말고 없는 자를 도와야지."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교회가 건축에만 돈을 쓰지 말고, 없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과 그런 생각은 하면서 내 돈으로는 돕지 않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한 일,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물질적인 헌신이 신앙을 반증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마음에는 결코 자리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눠주어야 사랑을 아는 자가 될 것입니다.

 

< 따뜻한 말과 하나되려는 마음으로 섬김 >

 

어떤 분은 자기가 가진 소유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줄 것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중에서 최고의 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한 격려의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말 한마디를 통해 자신감을 심어주고 삶의 용기를 가지게 하는 것은

어떤 선물보다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가지고 많이 섬기십시오.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가슴아픈 말 한 마디도 안 들어보신 분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교회 안에는 말이 참 많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 "혼자 다 하냐!"고 하고, 조금 쉬면 또 쉰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형제에게 비판의 말, 판단의 말, 원망의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들은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이고, 주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남의 말 한마디 때문에 내가 상처받았던 것처럼

내 말 한 마디로 형제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큰 섬김만 섬김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아주 작은 섬김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화로도 형제를 대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따뜻한 미소와 친절한 인사, 격려의 악수로도 형제에게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결코 주님의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말과 더불어 하나되려고 하는 마음도 참으로 소중한 헌신입니다.

그러한 마음은 가장 소중한 헌신이면서도 믿음의 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인간관계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 사랑과 우정도 깨지고 삶도 깨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되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합니까?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행복은 나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고 나의 성을 쌓는 것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비우고, 내가 얻은 것을 버리고자 할 때 진정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뚜렷하게 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주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의 삶과 섬김의 정신은 신앙성장의 가장 위대한 원천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이외의 대상을 위해서 쓸 때 신앙은 성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섬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와 어른들이 먹여주고 입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미숙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역시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울기만 하면서 섬겨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숙한 존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은 남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 성숙해진다는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나를 섬기는 사람보다 내가 섬기는 사람이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많은 선진들처럼 섬김을 통해 축복 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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