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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창세기 29장 31-35절/

by 【고동엽】 2023. 1. 23.

결국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2002-05-28 14:13:46 read : 1357

 

창세기 2931-35/ 20020526

사랑이 많으신 공평하신 하나님

작년 월드 시리즈 5차 전에서 김병현 선수가 9회 말 2점 홈런을 맞고

경기장에서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었던 장면을 혹시 보셨습니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도 마음이 아팠는데 본인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팀 동료 중에 어느 누구도 김병현 선수를 욕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BK! 자신감을 잃지 말고 용기를 내라!"

금년에 김병현 선수가 큰 활약을 하는 데에는 그 격려의 힘이 컸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 옆에 계시면서 변함없이 우리를 격려해주실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용기를 내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확신보다 우리를 더 변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김병현 선수가 실수했을 때 동료 선수들의 따뜻한 격려가 그를 일으켰는데

하나님의 우리를 격려하신다면 우리에게 더욱 좋은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인지를 잘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레아는 동생 라헬보다 미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총애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레아의 태를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 아들을 계속 낳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어느 한쪽을 막으시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다른 한쪽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만 완벽한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모습만으로도 축복의 조건이 있고, 축복의 씨앗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자세는 그 축복의 조건과 씨앗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새로운 축복을 얻는 것'보다는 '축복을 발견하는 것' 속에 있습니다.

나에게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춰 살면 삶의 지경이 축소되고, 초라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살면 삶의 지경이 확대되고, 은혜로운 인생이 됩니다.

없는 것만 보면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만,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가 나옵니다.

 

< 인생을 속단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

 

우리는 눈앞의 것만 보고 인생을 속단하면 안됩니다. 신앙도 속단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꼭 참고 견뎌내는 기다림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승리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긴긴 시간 동안 고뇌와 눈물과 아픔과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우리의 손에 들려진 과일 하나도 하룻밤 사이에 익은 것이 아닙니다.

몇 번의 찬 겨울 눈보라를 맞았고, 몇 번의 뜨거운 여름 햇볕도 견디어 냈습니다.

또한 폭풍우와 비바람 속에서도 가지는 꺾어질지언정 뿌리는 뽑히지 않았기에

수많은 꽃잎이 이슬에 떨어지고 비바람에 날려 갔고 벌레들은 계속 물어뜯었지만

열매만은 끝까지 가지에 붙어있었기에 결국 탐스런 과일이 된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원하십니까? 다 승리하길 원합니다. 그러면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실망해서는 안되고, 응답이 늦다고 기도를 중단하면 안됩니다.

뜻대로 안되어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전진하면 반드시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57-8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습니다.

고난과 기다림이 없이 얻는 것들은 소중한 줄도 모르고 대개 쉽게 사라집니다.

그러나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 후에 얻으면 그 열매가 귀한 줄 알고 기쁨도 커집니다.

 

지금 자녀들의 행동이 못마땅하게 보여도 "됐다, 안됐다" 성급하게 말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열두 번도 더 바뀝니다. 계속 기도하며, 참고 기다려보아야 합니다.

사실 그 아이가 인생에서 성공하고 승리했는지는 주님 앞에 서봐야 아는 것입니다.

점수가 조금 많다고 성공했다거나 점수가 조금 모자란다고 실패했다고 해도 안됩니다.

10, 20년을 기다려봐야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과 바른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됐다, 안됐다"를 성급하게 말하면 안됩니다.

기도 응답 몇 번 받았다고 하나님이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것처럼 간증하는 것보다

내 평생 다하도록 숨질 때까지 믿고 충성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376)

 

<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

 

그러므로 본문의 레아는 야곱을 미워해서도 안되고, 라헬을 미워해서도 안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혜롭게 자신의 일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다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내 주위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낙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을 누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승리는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자기를 망하게 하고 실패케 하는 대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승리는 자신을 다스리는데 있고, 자신 안의 죄를 이기는데 있습니다.

 

내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나의 불행의 이유를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죄 때문이라고 보면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신앙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불신앙적인 것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가룟 유다를 제거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가인은 자기 경쟁 상대가 아벨이 아니었는데도, 경쟁 상대로 알고 아벨을 죽입니다.

사실 가인이 싸워야 할 상대는 자기 안에 있는 시기와 불신, 미움과 분노였습니다.

사울의 싸움 상대도 다윗이 아니라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자기의 시기심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자기 마음을 다스렸다면 그 삶에 얼마나 행복과 평안이 넘쳤겠습니까?

 

그러므로 야곱의 총애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레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야곱의 사랑을 얻어내고야 말리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인간적으로 호소한다고, 도덕과 윤리를 따진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레아가 남편의 마음을 얻으려고 라헬과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레아가 하나님 잘 믿는 성숙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레아의 행복은 억지로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레아의 행복은 그녀가 마음이 힘들어도 감사하면서 하나님 잘 믿는 아내가 될 때

그때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결국 남편의 마음도 얻으면서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다면 시간이 문제일 뿐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여러분! 사랑 받는 싸움, 사랑 받는 경쟁에 너무 몰입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했지 "사랑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받으려는 자신을 극복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 받아도 충분합니다. 그것이 있다면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의 태를 여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만약 레아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역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오늘날 성도들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웃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기도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영어로 프레이(pray)라고 하고 노는 것은 플레이(play)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인들은 교회에서 플레이(play)는 잘하는데 프레이(pray)는 못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웃는 능력'도 회복될 것입니다.

 

2. 말씀을 많이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보시고, 좋은 책도 많이 보시고, 다른 목사님들 설교도 많이 들으십시오.

자기 목사님 설교만 듣다가 다른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얼마나 신선한지 모릅니다.

이단이 아니고, 보통 목사님이라면 우리 교인들은 다른 목사님 말씀 많이 들으세요.

그러면 확실히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의 폭이 아주 넓어집니다.

사람에게는 폭넓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폭넓은 사고는 인생의 큰 자산입니다.

 

3. 우리의 대적 목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즉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하고, 미움을 심고, 시기하게 하는 사단 마귀가 대적입니다.

혹시 마음속에 분노가 있다면 그 분노를 이제는 사단 마귀에게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단 마귀가 주는 마음을 이겨야 합니다.

 

사무엘상 30장을 보면 시글락이 폐허가 되자 백성들은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분노의 대상이 자기가 아니고 아말렉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면서

그 분노를 아말렉에게 쏟게 해서, 결국 그들을 뒤쫓아가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처럼 살면서 분노가 생기면 그 분노를 대적 마귀를 향해서 쏟아 부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내 배우자나 내 주위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이 문제에서는 우리가 잘 믿고 교회에 잘 나온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도록 노략질을 하다가 안될 것 같으면

이제는 공격 방법을 바꾸어서 사람과 분리시키려고 노략질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의 대적이 우리 안에 파고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4. 희망이 넘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레아는 하나님이 조금 희망을 줄 때마다 감사하면서 희망의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을 때마다 그 아들 이름에 믿음과 희망을 섞어 이름을 붙였습니다.

1)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고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2) 둘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외로움을 들으셨다"고 시므온이라 지었습니다.

3) 셋째는 "여호와께서 남편이 나와 연합하도록 하셨다"고 레위라 지었습니다.

4) 넷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찬송이 되셨다"는 고백을 담아 유다라 지었습니다.

 

여러분! 희망이 없어 보일 때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외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14:28).

"안돼!"라고 하면 안되게 하실 것이고, "될 줄 믿습니다"고 하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말, 믿음의 혀가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 못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무 하나를 지시하셔서 모세는 그것을 쓴 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곧 마라의 쓴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라의 쓴 물에 던진 나무는 주님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져야 할 매우 중요한 나무가 있습니다.

 

잠언 154절을 보면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대로 아무리 환경이 쓸 때에도 따뜻한 말이 생명의 나무인 줄 알고

그 쓴 환경에 던지면 그 쓴 환경은 반드시 단 환경으로 곧 변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 힘들어하는 분이 보이면 찾아가서 따뜻한 말을 해주십시오.

다른 아무 말도 필요 없이 따뜻한 말, 푸근한 말, 믿음의 말, 사랑의 말만 해주세요.

여러분의 혀를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드는 생명의 나무로 만들기를 바랍니다.

 

요새 신문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교회도 침체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말도 들어보면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믿음의 말을 통해서 희망을 창조하려고 해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제일 처음으로 독일의 폭격을 당한 곳이 영국 런던입니다.

신문들은 "어제도 무수히 폭격 당했습니다"는 식의 부정적인 보도 일색이었습니다.

그런 신문의 보도를 보면서 시민들은 더욱 낙심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곧 런던 신문편집장들이 모여 "이제 희망을 보도하자!"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런던의 신문들에는 자국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과

후방에서는 피해 복구를 위해 애쓰는 모습,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들이 실렸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절망을 말하면 더 절망하게 되고, 희망을 말하면 진짜 희망을 잡게 될 것입니다.

 

< 언제나 길은 우리 앞에 있습니다 >

 

여러분! 어떤 일을 만나도 항상 하나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준비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젠가는 반드시 쓰실 것입니다.

사람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축복의 태를 열어주시면 됩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적은 이유는 하나님이 희망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능대로 살지 말고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본능에 따라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덥다, 춥다"고 하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본능적으로 반응하기보다 그 일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어려우면 세상 사람들은 그냥 낙심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 일의 의미를 살핍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다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새롭게 다짐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내 말로 다른 사람을 낙심하게 하지 않고 희망의 말을 하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해보십시오.

이런 믿음의 고백으로 어려워도 희망을 창조하고, 희망을 나누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는 키입니다.

"나는 너무 늦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늦었지만 하나님은 늦지 않았습니다.

마약에 빠진 사람은 호소합니다. "마약은 한번 손을 대면 절대로 못 끊습니다."

한번의 호기심으로 인생을 망치게 하는 마약을 끊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합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그것을 끊지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신뢰하면서 더 위대하신 의사이신 하나님은 신뢰하지 못합니까?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말합니다. "지금 수술했는데 결과는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면 대개 의사선생님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신뢰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희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짙은 구름이 드리워 세상이 캄캄해서 당장 내일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구름 뒤에는 해가 있고, 비가 그치면 다시 해가 비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어려움 뒤에서 더 좋은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주시고 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병아리처럼 보는 성도가 되지 말고 독수리처럼 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야를 높게 가지면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길인 줄 알고 가면 길은 열릴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선교사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간신히 한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해서 가는데 이 원주민이 길은 찾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밀림을 헤치면서 앞으로 걷기만 하니까 선교사님이 그 원주민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지금 제대로 가는 것입니까? 길은 안 찾고 왜 밀림만 헤치고 갑니까?"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밀림에는 길이 없습니다. 제가 곧 길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무리 인생의 길을 잃고 암담해도 주님만 믿고 똑바로 나가면 길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국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살아보세요.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희망의 뿌리가 죽지 않으면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희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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