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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4장25-35 / 주님의 제자로서 사는 길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4장)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묵상/눅 14:25-35)

 

◆ 제자의 길에 대한 오해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삶에는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진 고난도 있다. 돈도 써야 하고, 시간도 드려야 하고, 심지어 목숨도 바쳐야 할 일도 생긴다.

 

그러나 이 구절을 오해하면 가정을 돌보지 말고 오로지 교회 봉사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느 형제가 내게 와서 하소연했다. 자기 부인이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자녀들은 돌보지 않고 월화수목금토일을 모두 교회당에서 죽치고 산다는 것이다. 과연 이 자매는 주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제자일까?

 

매일 교회당에 살면서 봉사한답시고 자식을 돌보지 않는 자여, 당신은 단지 가정 일이 귀찮으며, 지겨운 데 반해 교회 일이 즐겁고 취미에 맞아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란 말씀은 내가 아무리 끌려도 포기해야 할 것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로버트슨 맥퀼켄 (Robertson McQuilken) 은 컬럼비아 성경 대학과 대학원의 학장이었다. 그는 매우 유능했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치매가 걸렸다. 자기 앞에 있는 중요한  사역들을 포기할 것인가, 아내를 포기할 것인가? 그는 정말 사역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둘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사역을 내려놓고 아내를 돌보는 일을 했다.

 

그는 치매 걸린 아내를 무려 17년이나 돌보았다.

 

이 사람은 '처자도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란 주님의 말씀을 어긴 것일까?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것이다.

 

어린 자식을 셋이나 양육하는 젊은 여선생이 있었다. 그는 매우 신앙이 독실한 분이었는데, 자식을 돌보느라 교회 봉사를 거의 할 수가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모름지기 주님의 제자라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자식들도 미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신이 죄송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생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자식을 맡기신 것은 잘 키우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고, 그것도 매우 귀중한 사역임을 말했다. 그 후 이 선생님은 죄책감을 버리고 열심히 자식을 키웠다. 그 후에 한 명을 더 낳아서 지금은 넷이나 되지만 기쁨으로 양육하면서 신앙도 여전히 독실하여 학교에서 신우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부모 공경, 자식 양육, 배우자 사랑(골 3:18-21)은 모두가 성경에서 명령한 바다. 결코 교회 봉사가 이들보다 앞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심인가?

무엇이 부모와 처자를 미워하는 것이며, 무엇이 목숨까지 미워하는 일인가?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다.

북한 공산당에게 붙잡힌 목사 가족은 땅 구덩이에 던져졌다. 생매장하기 직전에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이래도 예수 믿을 것인가? 아이들이 무섭다고 운다. 그때 목사 사모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위로하면서 말했다. "얘들아, 오늘 우린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

 

'자식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 자매는 우리에게 무척 소중한 존재들이다.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신앙까지 버릴 정도가 되면 안 된다.

 

우리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부모와 관계가 끊어져도, 자식을 잃어도, 이혼할 지경에 놓여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믿음이란 단순히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나를 위해 돌아가신 구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욥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욥 27:5)

 

 

◆ 끝까지 섬기는 제자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망대를 세우다가 중간에 그만둘 것이라면 처음부터 세우지 말았어야 했다. 주님께서 이런 비유를 드심은 제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잠깐이 아니라, 평생임을 일깨우신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듯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냉담해지거나 점점 흐지부지하고 사라진다. 처음에는 그렇게 헌신적이더니 나중에는 세속에 찌든 사역자가 된다.

 

아마도 주님을 사랑해서 봉사했다기보다는 자기가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 열심을 내다가 시들해졌거나 아니면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렇게 되었을 수 있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렇게 잠깐 충성하는 자들은 제자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신다. 모름지기 제자란 끝까지 따르는 자들이다.

 

수십 년 전에도 주님께 충성하던 자가 지금도 충성되게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감동이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이들이야말로 진짜로 주님을 아는 자들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 마음과 뜻을 다하는 제자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전쟁하는 임금이라면 이길 전략을 꾸미고, 그렇지 않으면 화친 전략이라도 짜야 한다. 생각 없이 통치하는 임금이야말로 백성에게는 최악이다.

 

이 말씀은 제자의 삶을 살려면 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야 함을 말씀하심이다.

 

우리 명철, 우리 지혜를 의지하지 말라고 해서, 생각 없이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종종 성도들이 너무나 생각 없이 사역하는 바람에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대로 하는 봉사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이것저것 생각해야 한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불쑥불쑥 생각난 것만 두고 사역하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한다.

 

기도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지만, 생각 없이 하는 사역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된다.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주님,

주님을 최우선으로 하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충성하게 하시옵고,

지혜롭게 사역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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