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셔먼의 영적 전쟁 약4:7 출처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
한국인의 특징은 “김치”뿐만 아니라 “기도”에 있다.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기도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기도 스타일을 세상 다른 나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런 깊은 기도 생활은 이 민족의 깊은 고통의 역사 속에서 나왔다.
그런 고통 속에서 신앙의 아름다움이 꽃핀다.
어떤 사람의 찬양은 다른 사람과 달리 매우 뜨겁다. 그 이유는 고통이다.
삶에 고통을 많이 경험하는 사람은... 찬양이 간절하고 뜨거울 수밖에 없다.
◑1. 기독교는 고통에서 출발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통을 당하셨다. 또한 거절당하시는 고통,
매 맞으시는 고통 등을 당하셨는데,
이와 같이 고통은 기독교의 본질 중 하나이다.
한국 기독교가 이런 눈부신 성장을 이룬 이유도 바로 고통 때문이라고 본다.
일찍이 한국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삶(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국 성도들이, 다른 나라와 달리, 십자가를 졌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밤에 나가면 많은 십자가 네온사인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 외국인들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지만
사실 십자가는 본질상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스런 사형 도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도록 허락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이 있으시고, 지혜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인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라고 한다. 사53:10
더 나아가 고통이 하나님의 뜻 이었다고 말한다.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 하리 로다 사53:10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십자가의 고통 뒤에는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
한국은 지난 역사에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 보라!
지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축복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지
(해외에 나가보면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한국만 봐도, 십자가 후에 부활이 온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 준다.
▲그러므로 항상 십자가 뒤에 있는 기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 12:2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이 오지만,
항상 그 너머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그 고통을 참아 나간다. 예수님처럼.
▲영적전쟁 없는 열매는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능력의 대 주재이시므로, 승리는 확실히 보장된다.
부활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앞서 십자가(영적전쟁)도 반드시 있다.
그러나 십자가만을 바라보지 말라. 그 너머에 있는 기쁨을 바라봐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슬픔이 있지만(강의당시가 김선일 씨 순교 즈음임)
우리는 그 뒤에 벌어질 많은 열매를 바라보고 기뻐해야 한다.
◑2. 마귀의 공격(고통)은 당연히 있다.
미국의 영적전쟁 세미나에서 어떤 사업가가 간증을 했다;
나는 교회에서 중보기도 팀을 맡았는데, 우리 교회 수 천 명의 성도 중에
가장 성숙되고 잘 준비된 사람들만 뽑아서 훌륭한 팀을 구성했다.
그 팀은 해외로 다니면서 금식하며 중보기도사역을 했다.
거기서 어두움의 세력들과 맹렬하게 싸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축복을 기대했는데
막상 우리를 기다린 것은 예외 없이, 사단의 심한 공격이었다.
어떤 팀원은 이혼의 위기에 몰리고,
어떤 사업가는 사업이 거의 쫄딱 망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원인을 알기 힘든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왜 중보 팀원들이 예외 없이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차라리 우리가 거기 안 갔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는 그런 높은 차원의 영적전쟁을 치르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나봐’
그 사업가는 이렇게 패배적인 엉뚱한 간증을 했다. 그러나
영적전쟁에 마귀의 심각한 공격attack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은 공통적으로 가르친다; “네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치신다;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3. 마귀 공격의 특징
▲1. 모든 성도는 공격을 받는다.
성도가 마귀의 공격을 당하면 그것을 주변 성도에게 잘 못 털어놓는다.
왜냐하면 부끄럽기(수치스럽기) 때문이다.
‘뭔가 내게 잘못된 것이 있어서 이런 공격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모든 하나님의 선택된 성도들이 공격을 받았다.
구약에 가장 흔한 사실은, 성도들이 대적에게 늘 공격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대적에게 공격당하는 일은 자연스런 일로 여겨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충분한 믿음이 있다면 마귀 공격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공격받은 성도의 가정을 보면서 ‘뭔가 문제가 있음에 틀림없어!’한다.
사업이 잘 안풀리는 성도를 보면, 속으로 그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생각들은 미신이며, 이방종교들의 생각이다.
반대로, 저들의 고통을 통해 어떤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비록 죄로 인한 고통이라도, 선한 열매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또한 번영하는 것을 보고 무조건 ‘잘 순종해서 그렇구나!’ 생각해선 안 된다.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세상에서 번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또한 고통당하는 이웃을 보고는, 그들을 부끄럽게 바라봐서도 안 된다.
그런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라! (죄와 잘못 때문에 고통이 올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고통의 원인은 마귀의 공격에서 온 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라.
목회자는 공격의 대상이며, 빌리 그레함도 늘 공격 받았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살려던 모든 사람들이 공격을 받았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타인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아프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한다. ‘그는 뭐가 잘못되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재난은 일상적인 일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므로 우리는 언제 불행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운전도 살살 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너무 모든 것을 ‘신앙’과 관련시켜 남을 판단하지 말라.
▲성도가 공격을 받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죄로 인한 공격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격받을 때, 자기 죄를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①만 생각하는데, 항상 ②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② 하나님이 공격받도록 허락 하신다는 것이다.
죄 가운데 살고 있지 않았지만, 성도가 공격받은 예가 성경에 많이 있다.
그러므로 너무 ‘죄 때문에’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마귀가 공격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계속 공격을 당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이 계속 세계에 복음 전하는 선교사를 내보내기 때문이다.
세계에 가장 어두운 곳에,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선교사들이 가기 때문.
그런 이유로 원수는 한국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
한국의 저력을 보고, 더 크기 전에 한국 교회를 꺾으려 들 것이다.
여호사밧은 유다의 선한 왕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백성들이 의롭게 살도록 잘 이끌었다.
그의 치세 당시 남 유다 왕국은 흥왕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이방 나라에 포위되어 공격받도록 허락하셨다.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고난과 공격이었다.
★왜 그런 공격을 받는가?
하나님이 이기적이셔서selfish, 성도가 공격당하도록 방치 하시는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아버지께로서 온다. 약 1:17
그런 하나님이 공격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것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과 연단도 좋은 것인 이유는, 그 뒤에 소망이 이루어지는 축복 때문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마귀의 공격을 허락 하셨다. 왜 그런 고통을 주셨을까?
그것은 욥으로 갑절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포도나무도 열매를 잘 맺게 하려면 가지를 쳐 준다.
그래서 고통이 오는 것은 더 많은 열매와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뿌린 씨가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그 씨가 먼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공격받도록 허락하신다.
God is good! All the time! (미국 교회에서 잘 쓰는 서로 주고 받는 표어)
우리는 이 말을 잘 외치지만, 실제로 잘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귀의 공격을 당하고 고통이 오면 곧 의심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그 모든 것에는 불의한 일, 고통, 실망, 배신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4. 하나님이 마귀의 공격을 허용 하시는 이유는?
▲1. 원수가 멸망 받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충분한 시간을 주신다.
노아 시대에 홍수를 보내실 때도, 앞서 노아는 120년간 의를 전파했다.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찾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래서 죄인들이 회개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시간이 차면,
죄인들은 성도들을 공격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패하고 망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가 공격받는 이유는, 원수의 멸망을 위해서다.
▲2. 이제 성도가 충분히 성숙했다는 뜻도 된다.
대적의 공격 허락은 ‘인정, 신뢰’compliment의 의미도 있다.
우리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신이 앞으로 마귀의 공격을 받게 되면
‘하나님, 저를 이렇게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뿌듯하게 여기라.
‘저희 교회/국가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멸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공격을 허락하신다.
그 결과, 우리를 통해 원수 마귀를 멸절시키신다.
▲3. 하나님은 우리가 진짜 영적 용사가 되기 원하신다.
만약에 내가 오늘 당장 올림픽에 나가서 레슬링 금메달을 따고서
시상대에서 텔레비전 앞에 서서 자랑스럽게 인터뷰를 한다면
시청자나, 당사자인 나 자신이나 모두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기가 아니고서야, 내가 어떻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는가?
그러나 내가 실제로 많은 땀 흘림의 연습을 하고, 많은 고통의 연습을 겪고
때로는 경기에서 질 때도 있고, 부상을 당하기도 하면서
거친 몸싸움을 이기고 진짜 올림픽에서 승리자가 되었을 때,
TV 시청자들이나, 나 자신 스스로 모두 그 승리에 감격하게 된다.
그러니까 세상에 저절로 승리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기쁨도 없다.
우리가 대적과 처절한 싸움에서 피나는 전쟁을 통해 승리했을 때,
거기에 감격이 있으며, 그것이 진짜 승리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공격과 고통을 허락하신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믿기는 믿지만, 이런 영적전쟁을 회피하고 있다.
우리는 정통 교회에 다니면서, 정통 교리를 “믿는다.”
그렇게 잘 믿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확하게 머리로 잘 믿어도, 여전히 원수는 꿈쩍도 안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은 원수들을 우리 앞으로 보내신다. 공격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원수들로부터 포위당하도록 허락하신다.
여러분 고난이 집중적으로 닥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한 개를 이기면, 더 큰 것이 닥치고, 그 뒤도 첩첩산중으로 다가오는 것...
우리는 거기서 도망가면 안 된다. 자기 스스로 정죄할 필요 없고
그런 집중적 고난을 당하는 타인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
원수 마귀와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영적전쟁에 당당히 임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승리를 하려면,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해 말씀으로써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셨다.
십자가의 철학적 논리에 대해 강론하지만 않으셨다.
실제로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
그래서 원수를 물리치셨다. 그 세력을 꺾어버리셨다.
우리가 운동하지 않고, 어떻게 근육질 가진 용사가 될 수 있는가?
역기를 들면서 운동하지 않고서, 어떻게 근육을 키울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영적 용사도 저절로 되지 않는다. 전쟁 후에 탄생된다.
우리는 교회에서 승리의 찬송을 박수치면서 부른다.
부활절마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셨다”고 외친다.
그런데 정작 싸움터에 나가서 후퇴한다면... 찬송도, 외침도 도루묵이다.
◑5. 후퇴하면 안 된다
2천년 전에 마귀가 십자가에서 패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마귀가 우리를 계속 공격하는가?
우리가 마귀의 공격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즉, 후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퇴하면... 마귀는 여지없이 우리를 더욱 밀어붙인다.
앞서 언급한 사업가처럼 ‘처음부터 뛰어들지 말 것을’.. 후퇴하면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2001년 911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 선교 계획이 많이 취소되었다.
사스(조류독감) 공포가 일어날 때에도... 선교사들이 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작전상 후퇴의 지혜도 필요하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전선에서 완전히 후퇴해서는 안 된다.
▲대적은 우리가 후퇴할수록, 후퇴하는 만큼... 전진해 들어온다.
우리가 밀리는 만큼 침입할 것이고, 우리가 밀어붙이는 만큼 후퇴할 것이다.
우리가 계속 밀리면, 평생 우리는 밀리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신 사실을 믿지만,
전선에 나가 담대히 싸우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는 이기게 된다.
우리가 그가 이기도록 허락하기 때문이다.
마귀로 하여금 더 이상 여러분을 밀어붙이지 못하게 하시라.
여러분의 승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딤후 1:7
여기 ‘두려워하는 마음’이란 - ‘후퇴하는 마음’이다.
1980~90년대에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미전도종족에게, 모든 민족에게로 갔다.
어떻게 보면, 지난 2천년 교회역사가 이루지 못한 일들을
단 20년 만에 이루었다. 우리는 해냈다.
그러자 모든 원수마귀들 역시 총 궐기하고 있다. 그래서 총 공세로 나온다.
그래서 세상에 지금 이런 (전례 없었던) 부정적인 일들이 생긴다고 본다.
그 결과, 지금 많은 선교사들이 후퇴해서 귀국하고 있다.
마귀는 이미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후퇴하지 않는 한
우리를 밀어붙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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