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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님

by 【고동엽】 2023. 1. 12.

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님  

 

 

 

 

 

 

 

 

                                         23:1-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

 

 

 

                        이다.

 

 

 

 

 

 

 

 

어떤 사람이 큰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그분은 그 실패로 인해서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초점 잃은 눈길로 벤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라보니 정신병에 걸린 어느 여인이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라는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 찬송을 듣는 순간 이 사업가의 마음에 뜻하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 이분이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그래, 맞아, 주님이 지켜주시는데 뭘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 그분은 마침내 퇴원을 합니다. 퇴원 후 그는 심기일전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조그만 포장마차를 차려놓고 닭고기를 열심히 튀겼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요리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국제적 판매망을 차려 한국에도 KFC라는 체인점이 설치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주인공 커넬 할랜드 샌더스입니다.

 

 

 

그 분은 누구보다도 실패 속에서 헤매고 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 실패 속에서 살아갈 때 그는 마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심정은 암담하고 비참하고 소생이 불가능하고 희망의 싹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묘한 시간에 정신이상자의 입을 통해서 찬송을 듣게 되었고 그 찬송의 힘을 타고 오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는 다시 소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신비한 존재입니다.  

 

 

 

시편 23편은 모든 신앙인들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은 시편 전체 150편의 백미라고도 불립니다. 다윗은 산선수전을 경험하고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나드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만나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때로 극심한 처지에 놓였을 때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인도하심으로 그 무서운 고난을 극복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오묘하게 경험한 영적 체험들을 오늘 시편23편에서 시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나들며 그 와중에서 다윗은 여러 번 만난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을 신앙적 고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참 심오한 존재입니다. 그 심오함에 하나님의 섭리가 가세합니다. 그 인생의 심오함을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얼마나 감미로운 시입니까. 여유와 낭만이 있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런 시입니다. 그런데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감미롭고 달콤한 시만은 아닙니다. 여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 다니는 고뇌와 아픔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생이 어떤 존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는 존재”

 

 

 

 

 

 

 

 

본문 1-2절을 보면 인생의 바람과 희망과 소망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이것은 하나의 소망이고 희망이고 비전이고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목표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고 기대입니다. 진정 삶에서 중요한 목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기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꿈을 주셨고 희망을 주셨고 기대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기대와 소망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윤기 있게 하는지 모릅니다.

 

 

 

일찍 남편을 여윈 과부의 가장 큰 희망과 기대는 외아들을 향한 꿈과 소망입니다. 그래서 “너만 크면”하고 온갖 소망을 그곳에 둡니다. 그 기대 때문에 이 과부가 살아갈 힘과 소망과 인내가 주어집니다. 모든 병자에게는 한 가지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며칠 있으면 낫겠지‘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병을 낫게 합니다. 재수생에게는 “내년엔 목표를 이룰 거야”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이 고민스런 재수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힘입니다.

 

 

 

운명을 눈앞에 둔 사람은 천국이 최대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 지켰으니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폴리캅은 죽어 가면서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죽어갔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갈 때 하늘에서 서서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죽어갔습니다. 희망은 미래이고 장차이고 기대이고 소망입니다. 희망과 소망과 미래와 기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는 이런 희망과 소망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앞을 보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뒤를 볼 때 인생을 이해하는 것”

 

 

 

 

 

 

 

 

시인은 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지금 지난날의 고난을 되돌아보고 고백합니다. 생각하면 지난날의 시간은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압살롬에 반란을 당했을 때,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모두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시간들이 다 지나간 다음 이 시간에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모두가 꿈만 같습니다. 기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것을 느꼈고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인생의 심오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아주 조용하게 섭리하십니다. 그래서 감각이 없는 사람은 그 섭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무지하고 무감각해서 나오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시고 움직이신다면 그것이 무슨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보이게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고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에 나타나고 느껴지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섭리를 보려고 하면 나의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어두운 면이 있고 밝은 면이 있을 것입니다. 어두운 면은 한때 실패와 어려움과 병들었을 때입니다. 그 어려웠던 때를 자세히 회상해 보면 그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때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생애에서 밝았던 때는 성공했던 때이고 행운이 주어졌던 때입니다. 사람들은 그때 우연히 재수 좋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을 해 보면 그때 그 일들은 결코 우연도 아니고 재수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섭리하셨던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걸어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지난날의 인생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뒤를 돌아보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생애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4절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말은 참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과 걱정과 불안함의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실제로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사울로부터 피신하여 도망 다닐 때 하루도 밤에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 밀고를 통해 고발되어 포위되고 잡힐지 모르는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도피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때 잠을 자려면 온갖 두려움과 걱정들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렇게 위험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위험은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3)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때 걱정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근심하며 걱정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역사를 보면 많은 기능신들이 있고 많은 종교와 신전들과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걱정과 근심들로부터 해방 받으려는 인간의 불안한 마음에서 만들어 놓은 기능신들 입니다. 사람은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면 한 가지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부질없는 걱정들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것을 알면서도 오늘 또 그렇게 걱정하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다음 10년쯤 지나서 오늘을 되돌아보면 또 웃음 지을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 4학년 때 잠이 깨는 것이 싫었습니다. 잠만 깨면 늘 마음 가득히 몰려오는 걱정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 걱정은 “내가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때 목회에는 별로 생각도 뜻도 없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걱정과 불안함이 마음 가득히 몰려와서 그것들을 잊으려고 극장엘 많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참 부질없고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 생각과 내 계획보다 훨씬 더 좋은 길을 예비하고 준비해 놓고 계셨는데 나는 부질없이 걱정하고 불안해 몸부림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질없는 일입니까.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걱정하고 근심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걱정이나 근심이나 불안함은 사탄이 주는 독약입니다. 그러니까 잠자리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어가서도 이 걱정 저 걱정하면서 생각이 많기 때문에 곧 바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잡념들을 떨쳐버리고 내일의 문제를 내일로 미루고 잡념을 없애버리면 곧 바로 잠이 올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걱정하는 존재입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 실패들, 사고들도 유익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하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해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걱정했던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때로 포위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던진 칼이 심장에 박혀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또 밀고를 당해서 잡힐 뻔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는 참 아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

 

 

 

  그 때는 참 암담하고 아찔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일들로 인해서 적들 앞에서 하나님은 나를 더 영광되게 하셨으니 감사한 일이 아니냐 하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걱정과 근심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도 있습니다. 그 때는 참 암담했습니다. 그 때는 하늘이 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몸부림을 치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결국 그 하나님의 은혜로 병에서 놓임 받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IMF때 갑자기 실직을 했습니다. 그 때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젊은 나이게 갑자기 실직을 했으니 이제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하고 마음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 뒤 많은 고민 끝에 작은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런데 그 사업이 잘 됩니다. 그런데 그때 직장에서 살아남은 동료들은 이제 실직하고 고민하고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일찍 매를 맞은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생각하면 또 은혜입니다. 자연산 고기가 가두리 양식장에서 자란고기보다 훨씬 값이 비쌉니다. 넓은 바다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먹이를 구하느라 수고하는 동안 더 힘 있고 생동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실의 채소보다 비 맞고 자란 자연산 채소가 훨씬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아 값이 비쌉니다. 그것은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찬 공기 속에서 스스로 억세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많은 뜻하지 않은 일들을 만나서 고민하고 밤잠을 설치고 놀라고 황당해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사람은 그 어려운 일들 때문에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한 원숭이가 두 마리 새끼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는 늘 품에 안고 다니며 먹이를 먹였지만 또 한 마리 새끼원숭이는 본체도 안하고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끼 원숭이는 매일 혼자서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느라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거렸습니다. 어느 날 다른 지역의 원숭이가 습격해 왔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사랑하는 새끼 원숭이를 안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정신없이 옮겨 다니며 도망 다녔습니다. 그런데 미움 받던 새끼 원숭이는 혼자서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싸움이 끝났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품에 안고 있던 사랑하는 새끼 원숭이는 그만 숨이 막혀서 죽어 있었고 그때 미움 받던 원숭이 새끼는 저 높은 나무위에 올아 앉아 열심히 열매를 따먹고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아주 자신 있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 되시고 진리 되시고 생명 되십니다. 그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고 동행하면 그분은 나의 삶 전체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나를 안내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의 길 되시고 진리 되시고 생명 되시고 인도자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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