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잡힌 믿음을 가지라 (사도행전 15장 6-11절) < 회의를 지혜롭게 활용하라 >
회의할 때 자존심을 내세우면 결정 내리는 과정은 사라지고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상황만 펼쳐진다. 말싸움은 수치와 원한과 맹목적인 증오심을 낳아 바른 판단을 내리기 더 어렵게 만든다. 토론에서 지고도 그 과정에서 지혜를 발견해 내어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진짜 승리자다. 회의를 잘못하면 회의 무용론에 빠지지만 회의를 잘하면 공동체의 질서와 시스템 확립에 매우 유용하고 리더십도 강화시키고 창조적인 발전도 이룰 수 있다.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 회의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다. 회의에서 바리새파 출신 신자들은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유대교를 믿을 때도 지나친 율법주의로 문제가 많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인 상황에서도 율법주의적인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마치 무속신앙을 가졌다가 믿게 된 사람이 점과 푸닥거리를 앞세운 무속신앙의 틀을 따라 믿으려는 모습이다.
유대인은 할례를 몸에 새긴 하나님의 언약 표식으로 여겼기에 할례를 행해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생긴다고 여겼다. 그런 종교 문화적인 바탕에서 믿음을 가진 일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어도 할례는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그런 주장은 복음의 절대성을 훼손한다고 여겼다. 그 문제를 논의하려고 사도와 장로들이 모인 것이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인 예루살렘 교회 회의였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결정할 때 회의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회의(會議)가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회의(懷疑)가 생긴다. 회의는 일정 시간 안에 끝내고 적절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다. 토론이 격화되면 잠시 쉬었다가 회의를 속개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회의가 길어지면 감정의 개입 여지도 커지고 사탄이 틈타면서 결론내리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특히 끝장 토론은 인격에 대한 반대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기에 삼가는 것이 좋다.
< 균형 잡힌 믿음을 가지라 >
회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회의를 통해 지혜로운 결론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균형 잡힌 건강한 사고가 필요하다. 책상에서의 배움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의 경험도 중요하다. 바울처럼 현장에 뛰어 들어가 실제로 체험하며 배운 사람은 대개 의견이 단순해진다. 그렇다고 바울이 현장의 체험만 믿고 외골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세울 정도로 신학적인 지식에도 탁월했다. 결국 신학만 있어도 안 되고 신앙만 있어도 안 된다. 신학과 신앙을 겸비해야 바른 신앙이 된다.
어떤 이단 교주는 “신학자는 마귀의 자식이다.”라고 자주 말한다. 자기 맘대로 신령하게 얘기하는 것을 신학이 잘못되었다면서 막으니까 본인 입장에서는 신학이 마귀 학문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를 기르는 것은 목회자가 아닌 신학자이고 목회자를 기르는 곳은 교회가 아닌 신학교다. 그만큼 신학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것을 깨닫고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음성이 신학에 의해 점검되고 걸러지기를 기뻐하는 성도가 참된 성도다.
하나님 나라에는 목회자도 필요하지만 신학자도 필요하다. 광의의 가슴으로 부풀리는 일은 목회자가 주로 담당하고 협의의 가슴으로 걸러내는 일은 신학자가 주로 담당한다. 걸러내고 깎아내는 삶도 있어야 진리가 잘 보존된다. 신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저께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어제와 오늘이 다른 하나님처럼 인식되고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하나님 말씀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말씀처럼 된다.
시대에 따라 말씀을 적용하는 상황은 변해도 말씀의 본질적인 내용은 변할 수 없다. 말씀의 본질적인 면을 굳게 고수하게 하는 신학자의 역할은 목회자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신앙을 가져야 비상도 이뤄지고 축복도 따라온다.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하다. 완벽하려고 하는 것은 비정상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사랑의 실천에도 균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받아주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받아들이려는 사랑과 변화시키려는 정의를 겸비할 때 성도답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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