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취할 자세 (창세기 28장 10-22절) < 자연 회복력을 믿으라 >
사람은 성인이 되면 더 이상 키가 안 자란다. 그러면 상당한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계속 활동하면 뼈가 닳아서 키가 줄어야 하는데 왜 줄지 않는가? 닳아 없어진 만큼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닳아 없어진 것보다 덜 생기면 키가 조금씩 줄고 더 생기면 키가 조금씩 커질 텐데 신기하게도 닳아 없어진 만큼 정확하게 자연적으로 그대로 생겨서 키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하나님이 설계해놓으신 자연 회복력은 생명에게는 놀라운 축복이다.
몸의 자연 회복력은 거의 전 부분에서 작동한다. 음식물을 먹을 때 엄청난 압력이 매번 이빨에 가해지면 이빨은 몇 년 안에 상당히 닳아 없어져야 하는데 왜 그대로인가? 닳아 없어진 만큼 복원되기 때문이다. 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식물이 소화기관을 타고 내려갈 때 위나 장도 마찰로 계속 닳아 없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닳은 만큼 회복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 회복력을 인식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미움과 원한을 떨쳐버리면 그 회복력이 극대화되어 건강도 회복된다.
왜 성인의 뼈가 육중한 사람 무게를 오래 지탱하고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가? 파골세포가 노화된 뼈세포를 잡아먹고 생성세포가 새로운 뼈세포를 계속 만들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면 붙는데 약 2개월 걸린다. 그때는 무조건 가만히 있어야 뼈가 붙기에 깁스를 한다. 늘어진 인대도 약 2개월이면 장력이 회복된다. 찢어진 인대도 약 4개월이면 복원된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생명체의 자연 회복력은 생각할수록 놀랍고 신비하다.
왜 허리에 통증이 생기는가? 척추는 일직선의 통뼈가 아닌 수십 여 개의 뼈로 연결되어 있기에 허리를 굽힐 수 있다. 그 뼈들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디스크가 손상되면 통증이 생긴다. 그때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 회복력을 믿고 가만히 있으면 손상된 디스크가 점차 회복되면서 통증도 없어진다. 그때 조급한 마음으로 통증을 없애겠다고 외부적인 자극을 자꾸 주거나 이상한 운동을 하면 회복이 더 늦어질 수 있다.
몸의 상한 부분을 회복시키려면 상당 기간 가만히 있는 것이 최고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 복원력에 대한 믿음도 없이 상한 부분을 고치려고 너무 서두르면 더 상하면서 회복이 멀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병들면 불안해하면서 여기저기 치유 집회를 다니고 ‘치유의 종’이라고 선전하는 사람의 안수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보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서두르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치유 능력은 크게 떨어진다.
병들면 인간적인 동선을 최대한 줄이라. ‘위대한 치유의 종’이라고 선전하는 사람을 찾아가지 말고 성경에서 다양하게 무수히 표현된 “너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앉아 깊은 차원의 기도를 드리라. 그러면 자기 성찰이 이뤄지면서 미안한 마음, 용서하는 마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맡기는 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때부터 혈중단백질, 호르몬, 건강한 피, 건강한 세포가 병든 부분에 급히 투입되어 하나님이 주신 자연 회복력이 극대화되면서 건강도 회복된다.
질병 외에 다른 고난과 고통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고난과 고통 중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조급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도 버리라.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아서 너무 사람을 만나러 다니지 말고 하나님 앞에 가만히 앉아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라. 그러면 회개하는 마음과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도 생겨나면서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따른다. 그것이 믿음이 가져다주는 축복이다.
< 고난 중의 취할 자세 >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자마자 에서의 손길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축복 여정에는 고난이 반드시 있다. 고난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보여드리면 고난은 승리로 변한다. 고난 중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라
야곱이 브엘세바 집에서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떠날 때 한 곳에 이르러 돌을 베개로 삼고 거기서 누워 잤다(10-11절). 그때 신기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보이는데 그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했고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그때 야곱은 신비한 꿈을 통한 은혜 체험으로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고난의 때는 무대 위의 연기자가 다 사라지는 고독한 때다. 그때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은혜 체험 기회다.
왜 사람의 가능성이 무한한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반전의 역사를 쓰지 못할 인생이 없다는 의미에서 사람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지금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아이큐 두 자릿수도 놀라운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의 가능성을 믿으라. 거룩한 비전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얼마든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필자는 현재의 자가용을 14년 넘게 탔고 교회 카니발은 10년 넘게 탔는데 아직도 차 번호판 숫자가 종종 기억나지 않는다. 그 면에서만은 아이큐가 50도 안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서 핸드폰 문자도 안 배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측면에서도 아이큐가 50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성경전권강해>와 <네트영어>의 비전을 진척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아이큐 50도 한 분야에 집중해 나아가면서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어떤 장벽도 극복해낼 수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
야곱의 꿈에서 사닥다리 꼭대기에 서신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셨는가?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야곱과 야곱의 자손에게 주고 땅의 사방으로 흩어진 야곱 자손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고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고 지켜주셔서 결국 야곱이 누웠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란 말씀을 주셨다(13-15절). 그 말씀을 듣고 심신이 지쳤던 야곱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도 있고 축복을 일깨우는 음성도 있고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도 있다. 고난 자체도 하나님의 음성이다. 고난은 진리를 깨우치고 영혼을 깨우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같다. 성경 말씀과 다양하게 들려지는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잘 받으면 고난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기에 고난도 크게 줄어든다. 결국 말씀을 잘 받는 것은 고난 극복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고난 예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가끔 목회자의 설교가 교인에게 상처 주는 말씀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바른 말씀이라면 소화하기 힘들어도 잘 소화시키라. “저분이 왜 저런 말씀을 할까?” 하고 쉽게 의문을 품기보다 먼저 성경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려고 하라. 설교자가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청중에게 상처가 최대한 없도록 배려할 필요는 있지만 그런 생각이 지나쳐서 바른 말씀조차 상처 유무를 저울질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혼이 점차 건강을 잃는다. 말씀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받으려고 해야 고난을 극복하는 넉넉한 힘도 주어진다.
3.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서원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구하는 실제적인 기도를 드렸다(20-21절). 기도할 때 추상적인 기도보다 실제적인 기도를 간절히 드리라. 이제까지의 기도생활을 잘 살펴보면 기본적인 필요를 구하는 실제적인 기도는 신기하게 잘 응답되지만 욕심이 들어간 허황되고 추상적인 기도는 잘 응답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 기도를 잘못하거나 기도의 목적을 잊으면 기도하면서도 시험에 들 수 있다.
기도는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란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남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라. 내가 기도하는 사람임을 남에게 보여주려고 기도하는 것은 금물이다. 보이지 않는 선행이 더 가치 있고 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보이지 않는 기도가 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중요하다.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도 가급적 티내지 말라.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라고 한다. 어색한 말이다. 그런 말이 없어도 자녀는 이미 부모가 기도하는 것을 잘 안다. 그런 무언의 기도가 큰 힘과 위안을 준다. 반면에 기도한다고 공치사 하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목회자가 “집사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사람이 듣기에는 좋아도 하나님이 듣기에는 안 좋을 수 있다. 사람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어 기도 응답 확률을 떨어뜨리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하라.
4. 하나님께 헌신을 결단하라
기도할 때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의 기도’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의 기도’도 드리라. 야곱은 기도하면서 2가지를 결단했다(22절). 성전을 세우겠다는 결단과 십일조를 하겠다는 결단이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신약시대와는 상관없는 구약시대의 계명이라고 하지만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따지는 것은 구실이다. 십일조는 은혜 받은 표시이자 교회를 사랑하고 거룩한 비전에 동참하는 책임감의 표시다. 신약시대가 구약시대보다 더 은혜를 받은 시대라면 논리적으로는 십일조 이상을 해야 맞다. 은혜는 더 받았는데 헌신은 덜 하자는 주장은 자체 모순이다.
십일조가 구약시대에는 ‘의무적인 법’이라면 은혜를 더 받은 신약시대에는 ‘최소의 자발적인 헌신’이 되게 하라. 은혜를 참된 은혜로 만들려면 은혜를 힘써 갚으려고 하라. 그때 은혜가 더 주어진다. 십일조를 구약시대의 계명으로 몰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부족을 나타낸다. 사랑하면 헌신이 아깝지 않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면 결코 아깝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
남에게 속아 5만원만 더 지불해도 속상하고 주차 위반으로 4만원 범칙금을 부과 받아도 하루 종일 속상하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재정을 십일조로 드리면서도 전혀 속상하지 않고 행복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자녀를 위해 큰돈을 써도 오히려 기쁘듯이 사랑의 힘이 커지면 믿음의 힘과 마음의 능력도 커지면서 욕심도 잘 극복하고 웬만한 시련도 잘 극복하게 된다. 그것이 십일조 생활이 주는 내면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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