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예비하는 마인드 (창세기 22장 15-24절) <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라 >
2017년 3월 5일 한 여성이 환갑날 교정기관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남은 생을 예수님을 위해 살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매일 <월새기(월간새벽기도)>로 영혼의 양식을 삼고 매달 교정기관에서 힘들게 번 돈의 일부를 <월새기> 후원금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2018년 말 <월새기>에 있는 신명기 24장 14-22절 말씀 강해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입니까?”
마침내 2019년 7월 24일 그녀는 출소했다. 곧 그녀는 교정기관에서 힘들게 번 상당한 목돈을 <월새기> 후원금으로 보냈다. <월새기> 사역 팀은 그런 눈물 섞인 후원금을 대하면 깊은 감동에 젖는다. 그런 눈물의 헌신자들을 통해 <월새기> 사역이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헌신을 대할 때마다 매달 한 권의 책을 집필하고 발행하는 과정에서의 모든 수고를 잊고 기쁨과 보람이 넘친다.
후원금을 보낸 다음 날 그 후원금을 보낸 성도가 <월새기> 사무실로 전화했다. 그 전화를 본부장이 받자 그녀는 한참 울기만 했다. 그리고 사연을 말했다. 아들이 몇 개월 전에 죽어 대전 납골당에 있다는 얘기였다. 뒤늦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정기관에서 성경 8독 이상을 하며 하나님을 추구했는데 왜 하나님은 축복 대신 극심한 상처를 주시는가?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면 알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은 신비다.
그 아픈 얘기를 듣고 <월새기> 사역을 돕는 둘째 딸이 말했다. “아빠! 제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 3일만 슬퍼하는 것을 허락할게요. 꼭 3일만 슬퍼하시고 다시 새롭게 일어서셔야 해요.” 필자도 말했다. “한나야! 네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 너무 너무 슬플 거야. 그러나 3일만 슬퍼하고 일어설게. 너도 엄마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면 3일만 슬퍼하고 다시 일어서야 해.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다 지켜볼 거야.”
성도의 고난은 신비이기에 믿음이 좋아도 큰 시험은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 하나님은 몇 십 년의 검증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훈련과 성숙을 위해 때로는 시험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물으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간단히 말하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렵지만 잘 지면 반드시 부활의 은혜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시험에 있어도 결국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이 예비된다.
< 축복을 예비하는 마인드 >
하나님은 시험 후 아브라함에게 다시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다. 알고 보니까 시험은 축복의 전주곡이었다. 그처럼 시험을 축복으로 만들려면 어떤 마인드가 필요한가?
1. 헌신 마인드
본문 16절에서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표현이다. 어떤 말씀인가? 아브라함이 독자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려고 했기에 큰 복을 주고 후손이 크게 번성하고 대적을 정복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16-17절). 나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 바치고 희생하려고 하면 잠깐은 손해 보는 것 같고 현실에서는 잃는 것 같아도 하나님도 기억해주시고 사람도 기억해주고 역사도 기억해준다.
왜 요새 교회가 신뢰를 많이 잃었는가? 교회가 희생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왜 요새 선교 후원이 많이 줄었는가? 최상의 희생 모델이 되어야 할 선교사에게 실망한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망스런 얘기가 들려도 헌신 마인드가 약해지면 안 되지만 그런 얘기가 자꾸 들려오면 실망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희생하지 않고 받기만 좋아하면 점차 호감이 없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다가 심지어는 관계가 끊긴다. 희생이 있으면 희망도 있고 희생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한 성도가 A 선교사를 신실하게 후원했다. 여윳돈이 생기면 그 선교사에게 먼저 보냈다. 그런데 계속 보니까 선교사가 희생의 모델이 되기보다 일반인보다 희생하는 모습이 없어보였다. 그는 마치 ‘호갱’이 된 느낌이었다. ‘호갱’이란 “고갱님!”이라고 하는 달콤한 소리에 속아 물건을 사고 서비스 비용을 지출하는 ‘호구 고객’의 비속어다. 마음이 후한 것을 이용해 땀과 희생도 없이 받으려고 하면 사람의 마음도 잃지만 하나님의 마음도 잃는다.
한 공동체에 헌신적인 사람이 있어 리더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헌신자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점차 그 헌신자의 위치가 견고해졌다. 맡은 일도 많아졌다. 그때 헌신적인 마음을 잃지 말아야 사람 마음도 잃지 않는데 그가 어느 때부터 발언이 많아지고 주장이 강해졌다. 자기 위치가 커졌다고 느끼고 헌신하고 절제하는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때부터 그가 사람 마음을 잃으면서 결국 자기 위치와 자리도 다 잃었다.
그런 일들은 공동체에서 수시로 생긴다. 진실한 희생은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얻게 하지만 계산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생했거나 처음에는 진실하게 희생했다가 변질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잃는다. 나의 진실한 희생이 변함없도록 자리가 높아져도 마음이 높아지지 말고 늘 받는 삶보다 주는 삶을 체질화시키라. 주기를 좋아하면 언젠가는 높임 받지만 받기를 좋아하면 언젠가는 버림받는다.
2. 순종 마인드
본문 18절을 보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시험을 축복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순종이다. 하나님은 이미 축복을 예비하시고 순종을 통해 축복을 담는 그릇이 되었는지를 보고 크게 순종하면 큰 축복을 내려주신다. 지금보다 좀 더 순종하라. 순종이 작으면 작은 문제도 태산 같은 문제가 되고 순종이 크면 태산 같은 문제도 작은 문제가 된다.
성경은 부모님께 순종해도 큰 축복을 약속한다. 십계명에서 축복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이 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다. 역사상 최종적으로 불효자가 잘 된 예나 효자가 못된 예가 거의 없다. 이삭이 복된 존재가 된 이유는 아버지의 뜻에 죽도록 순종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순종해도 축복받는데 하나님께 순종하면 더욱 큰 축복을 받는다.
복된 삶을 원하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께 효도하라. 순종적인 효심이 없으면 다른 축복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그 축복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금방 무너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면 조만간 자신을 얽맨 문제들이 신기하게 풀린다. 잘못된 것에도 무조건 순종하라는 말은 아니다. 잘못된 곳이라고 확신하면 새로운 순종 대상을 찾아도 좋다. 다만 기본적으로 순종의 영성이 탁월한 성도가 되라.
잘 순종하고 싶어도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깊이 기도한 후 하나님의 크신 뜻과 정의와 진리와 선한 양심을 따라 새로운 순종의 길을 선택하라. 의와 불의에 대한 가치판단을 명확히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너무 자기 주장을 앞세우는 것은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힌 불의나 사탄의 인본주의가 될 수 있다. 사탄의 인본주의는 사람을 생각해주는 척 하면서 사람을 자기중심주의로 생각하게 만들어 불순종의 영으로 사로잡는다. 그런 불순종의 영을 잘 분별하고 극복해서 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지극히 주의하라.
3. 선교 마인드
본문 20-24절에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후손이 기록되어 있다. 나홀은 아내 밀가를 통해 8명의 아들을 낳았고 첩 르우마를 통해 4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12명의 아들은 후에 아람의 열두 지파 조상이 된다. 유대인들은 아람 족속을 이방인으로 여기지만 아람 족속이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후손이고 나홀의 막내아들인 브두엘이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버지였고(23절)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 부부가 낳은 야곱의 12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형성된 것을 볼 때 이스라엘과 아람은 혈통적으로는 가까운 관계다.
그런 이스라엘과 아람이 대대로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보면 계층, 성별, 지방, 국가, 인종을 초월해 선교마인드를 가지는 삶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고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아브라함의 복과 관련된 말씀 바로 다음에 나홀의 후손 얘기를 있게 하셨을 것이다. 축복받으면 거기서 끝나지 말고 그 축복을 이방인에게도 전하는 선교 마인드를 늘 마음의 바탕에 깔고 살라는 암시다.
다만 선교 마인드를 가질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무조건 차이가 없게 만드는 것을 정의 혹은 선교 마인드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없는 자에게 내 것을 나눠서 남을 자발적으로 도우려는 선교 마인드는 필요하다. 그러나 있는 것과 없는 것 자체를 불의한 현실로 보고 강제적으로 그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까지 차별로 여기는 것은 결코 선교 마인드가 아니다.
내게 어떤 것은 없어도 다른 것은 있다. 그처럼 내게 있는 것으로 각자 위치에서 교회와 사회와 영혼을 세우고 섬기고 나누는 것이 선교다. 차이를 인정하라. 천국에도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 상급 차이가 있다. 믿음생활에서도 교인을 넘어 성도가 되고, 성도를 넘어 제자가 되고, 제자를 넘어 후사까지 되는 차원 높은 삶을 꿈꾸라. 세상은 외형을 보고 차이를 두지만 하나님은 외형을 보고 차이를 두지 않고 오직 내면의 진실을 따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어느 날 한 사장이 목회자를 찾아와 “늘 받은 은혜에 감사해요.”라고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대화 내내 끝까지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 감사했고 미리 헌금봉투에 담아 준비한 감사헌금을 겸손히 드렸다. 모든 모습이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그 다음 주에 또 다른 사장이 그 목회자를 찾아와 받은 은혜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입술로는 감사했지만 자기를 높이는 말을 수시로 했고 가끔 팔짱도 꼈다. 그리고 바로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감사헌금을 드렸다. 목회자는 둘을 보면서 차별하지 싶지는 않아도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람 앞에서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후자처럼 행동하지 말라.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상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선교 마인드를 가지면 사람을 외형으로 차별하면서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반대로 차이까지 차별로 인식하면서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상처 마인드와 선교 마인드는 거의 정반대다. 선교 마인드를 힘써 배양하면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크게 줄어줄고 씨를 뿌리는 일에 힘쓰면서 어떤 소외 상황도 잘 극복할 수 있다. 늘 선교 마인드로 무장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아름답게 이뤄내는 초석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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