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사려 깊게 하라 (요한복음 8장 48-59절) < 말을 사려 깊게 하라 >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몰아댔고 더 나아가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48절). 인류를 구원하러 온 사랑의 예수님을 무섭게 찌르는 말이다. 예수님도 너무 어이가 없어 너희가 나를 무시한다고 말씀했다(49절).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얼마나 무도한 말인지 인식도 못한 채 함부로 말했다. 말은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기에 사려 깊게 해야 한다.
무서운 개가 있는 곳에 <개조심>이란 팻말을 세우지만 무서운 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서운 혀다. 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마음에 <말조심>이란 팻말을 세우라.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다. 말실수가 잦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벌써 말이 나가버린다. 그렇게 말을 내뱉은 후 후회하지 말고 사려 깊게 말하라. 일반적인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 상처를 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어느 날 한 목사가 끈기 있는 기도를 강조하려고 이렇게 말씀을 전했다. “여러분! 성공적인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끈기입니다. ‘했다. 말았다.’ 하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재능과 실력이 부족해도 끈기만 있으면 성공합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끈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공부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졌던 한 성도가 시험에 들어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그러면 제가 끈기가 없다는 말입니까?”
듣는 사람에 따라 맞는 말씀도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상대의 상처를 도지게 할 수 있다. 그때 “그런 말을 가지고 왜 상처를 받아.”라고 하지만 그런 말을 가지고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잘 사는 삶이란 상급을 추구하는 삶보다 상처를 살필 줄 아는 삶이다. 배려하는 언어생활이 부족하면 깊은 신앙 경지에 이룰 수 없다. 남의 기대에 어긋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남의 상처를 도지게 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늘 사려 깊게 말하라.
< 말을 사려 깊게 들으라 >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55절).”고 하자 유대인들이 말했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30대 초반의 예수님을 보고 오십 세도 못 되었다고 한 말을 보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상당한 연륜 있는 분으로 보였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말을 통해 이 땅에서 고생했던 예수님의 흔적과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심한 조롱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돌로 예수님을 치려고 했다(58-59절).
왜 그들이 흥분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사려 깊게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사려 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려 깊게 듣는 것도 중요하다. 말은 언제든지 내게 상처를 주는 말로 들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사려 깊게 해야 하지만 사람이 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말로 인한 부작용을 염려해서 입을 꼭 닫고 있으면 삶이 위축되고 공동체의 분위기도 냉랭해진다. 그것은 말조심을 하려다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소한 말로 인해 잘 상처 받지 않는 대장부 마음을 훈련하라.
요새 많은 사람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 나는 남이 어떤 상황을 헤쳐 나가는지 잘 모른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낙심해있는지 모른다. 그때 말하라. “당신과 함께 할게요. 계속 전진하세요.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 말이 그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수가 된다. 하나님이 주신 언어 능력으로 축복, 격려, 위로의 말을 많이 해주라. 때로는 “당신 훌륭해요.”라고 한 말이 그의 뇌리에 남았다가 지극히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새롭게 일어서는 용기의 원천이 된다.
낙심한 사람에게 내가 주는 격려의 한 마디는 그가 축복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데 큰 힘을 준다. 잘못되었다는 말이나 비판적인 말은 가급적 삼가라.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는 살면서 많은 비판을 이미 충분히 받으며 살고 있다. 그가 나로 인해 기쁨을 찾도록 칭찬과 축복과 승리의 말로 그에게 생명수를 건네주라. 그처럼 늘 성화된 언어생활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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