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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게 필요한 4가지 (누가복음 6장 12-19절)

by 【고동엽】 2023. 1. 6.

제자에게 필요한 4가지 (누가복음 6장 12-19절) 1. 기도 준비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던 어느 날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결정 전에 산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다(12절). 예수님은 중요한 일 전에 대개 먼저 기도하셨다. 기도는 예수님께도 변화를 선도하는 능력의 원천이었다. 아마 이렇게 기도하셨을 것이다. “하나님! 내일 제자를 선택해 발표하려고 합니다. 누구를 12제자로 선택할까요?” 기도할 때 가시적인 복을 달라는 기도도 필요하지만 좋은 선택을 위한 기도도 필요하다.

 예수님은 과시적으로 기도하지 않았기에 기도할 때 산과 같은 한적한 곳으로 따로 가서 기도하실 때가 많았다. 공중기도 때는 어쩔 수 없이 남이 듣지만 원래 기도는 남에게 듣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듣는 상황에서 기도하면 가식적이고 과시적이고 형식적이고 설교적인 기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의 기도를 즐겨하셨다. 예수님은 제자 선택을 위해 기도했지만 사실상 제자로 선택되려는 사람도 기도로 준비해야 한다.

 기도로 준비하라는 말은 “하나님! 제가 복된 존재가 되게 하소서.”라고 하루 8시간 이상 기도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참된 기도를 할 때 꼭 나타나는 것은 실행력과 실천력이다. 결국 기도로 준비한다는 것은 그 기도대로 되도록 필요한 준비도 병행한다는 뜻이다. 학생이 시험 패스를 위해 기도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그것은 참된 기도가 아니다. 기도하면서 믿음도 준비하고 인격과 도덕성도 준비하고 실력도 준비해야 한다.

 기도로 준비하면 인물이 되기를 원해도 자리를 탐하는 욕심은 없어진다. 기도 없이 준비하면 성공과 자리를 탐하게 되지만 기도로 준비하면 그런 탐심이 없어지기에 더 잘 준비될 수 있다. 원래 바른 학자는 직책을 구하지 않는다. 사심 없이 어떤 분야에서 학문적인 성취를 이루면 대개 어느 시점에 하늘의 선택을 받아 어떤 자리로 올라서고 또한 그 자리를 나보다 공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바른 수순이다. 그것이 기도로 준비된 사람이 어떤 자리를 맡아야 하는 이유이고 또한 어떤 자리를 맡은 후에도 계속 기도로 자신을 준비시켜야 하는 이유다.

2. 주권 인정

 밤새 철야 산 기도를 마친 후 아침에 예수님은 주권적으로 제자들 중에서 12명을 택해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 사도라 칭하셨다(13절). 예수님은 많은 무리 중 12명 이상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다수를 멀리하고 오히려 소수를 선택했다. 그 선택된 제자를 지상 최대의 복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예수님에게 제자는 활용 대상이 아닌 계승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재력과 인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역의 일부를 남겨주고 계승시키기 위해 제자를 선택하셨다. 즉 얻기 위해 다수의 제자를 선택하지 않고 주기 위해 소수의 제자를 선택하셨다.

 목회자는 많은 사람이 다가올 때 잘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다가오는 다수의 무리를 잘 물리친 것은 사랑이 없어서나 품어줄 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왕국을 쌓고 다수의 무리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계산이 없이 소수에게 천국 비전과 영향력을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제자훈련도 무리를 많이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면 부작용도 생기고 영향력도 오래 가지 못한다. 제자 삼는 일은 공부와 훈련을 잘 시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드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자기 비전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와 사역까지 힘써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제자를 삼아야 한다.

 제자란 사역을 위해 활동시키는 사람의 의미보다 사역 계승을 위해 준비시키는 사람의 의미가 크다. 사역을 시키는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일하는 힘이 생기고 만 명도 시킬 수 있지만 사역을 물려주는 것은 사람이 많을수록 물려받는 힘이 줄어들고 만 명은커녕 백 명에게도 물려주기 힘들다. 결국 물려줄 것이 무한하지 않기에 제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제자는 중간 리더로 끝나지 않고 선한 뜻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까지 잘해야 하기에 예수님은 주권적으로 합당한 제자를 선택했다. 그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해야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이 왜 선한 결단을 못하는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의 부족 때문이다. 신앙은 결단이다. 주권을 인정하면 결단도 쉬워진다. 어린아이가 높은 곳에서 “저 이제 뛰어내리니까 받아주세요.”라고 선언하지 않고 어른 얼굴만 바라보고 그냥 뛰어내린다. 어른이 받아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른은 자기를 무작정 믿는 그 아이의 행동이 어이없게 여겨져도 사랑스럽다. 어디서든지 믿음을 보이면 사랑을 받는데 믿음의 최고봉이 주권 인정이기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면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는다.

3. 평지 의식

 예수님이 열 두 사도들 및 그 외의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사방 각지에서 모여온 많은 무리들이 있는 평지에 서셨다(17절). 마태는 똑같은 장면에 대해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표현했다(마 5:1). 두 기록을 보면 예수님이 위치한 곳은 산언저리의 평지로 추정된다. 거기서 전한 말씀을 마태복음에서는 산에 올랐다고 표현했기에 ‘산상수훈’이라고 불리고 누가복음에서는 평지에 서셨다고 표현했기에 ‘평지수훈’이라고 불린다.

 비유적인 의미로 성도는 높은 산에서 은혜 받았으면 평지로 내려가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높은 태도로 욕을 먹으면 예수님도 욕을 먹는다. “도대체 누구 제자인데 저래?” 사람 처지가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다. 위에 있어도 아래로 내려갈 수 있고 아래에 있어도 위로 올라갈 수 있다. 평지 의식을 가지고 더욱 자신을 준비시키면서 위에 있게 되면 겸손하게 스스로 내려가려고 하고 아래에 있게 되면 정직하게 땀 흘려 올라가려고 하라.

 땀 흘려 준비하지 않으면 높은 자리가 계속 보장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이 계속 양반은 아니었다. 4대 내에 작은 벼슬이라도 하지 않으면 양반 신분이 박탈되었다. 조선 역사상 최악의 세도 정치 시대였던 순조, 헌종, 철종 때도 과거에 양반들만 합격하지 않았다. 과거합격자 중 평민은 순조 때 54%, 헌종 때 50.9%, 철종 때 48.1%였고 고종 때는 약 60%였다. 평민 합격 비율이 제일 낮았던 연산군과 숙종 때도 약 30%가 평민이었다. 결국 끊임없이 겸손한 자세로 배우지 않으면 신분 저하를 막을 수 없었다.

 어떤 자리에 불의하게 오르려고 하지 말고 땀 흘려 높은 자리로 오르려고 하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올랐으면 마음이 높아지지 말고 늘 겸손한 평지 의식을 가지고 낮은 자를 살피라.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두려운 일이다.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서 우유부단한 나쁜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높은 자리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면 좋지만 나쁜 본보기가 되는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도신경 고백 때마다 성도 입에 오르는 사람이 있다. 본디오 빌라도다. 그는 악마가 아니었고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잘못은 높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나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고 그 후에도 2천 년간 성도들의 입에서 매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그 이름이 부끄럽게 언급되고 있다. 높은 자리를 잘못 활용해 역사상 최악의 오명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자리가 높다고 마음도 높아지지 말고 늘 평지 의식을 품고 아래를 살피며 살라.

4. 말씀 중심

 예수께서 산기슭 평지에 섰을 때 제자들 외에 사방에서 몰려든 일반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유 능력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18-19절). 그때 예수님은 그들이 잘못된 능력 신앙에 빠질 것을 염려하셨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지상 최대의 천국 도덕률로 언급되는 산상수훈 혹은 평지수훈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능력보다 천국 도덕률인 말씀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평지수훈의 권위를 더해주었지만 능력은 과정이고 목표가 아님을 잘 알아야 잘못된 기복신앙에 빠지지 않고 거짓 능력을 내세우는 이단 교주에게 미혹되지 않는다.

 잘못된 능력 신앙이나 기복신앙에 빠지지 말라. 누가 축복받았으면 그 축복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더욱 집중하라. 특히 교회 직분자는 거짓 능력에 현혹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지키는 굳건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화려한 기적을 내세우며 다가오는 사람의 거짓된 소리에 미혹되어 영적 주파수를 잘못 맞추고 말씀과 사명을 놓치면 그때 다가오는 것은 혹독한 시련과 파멸이다.

 한 권사가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모도 떨어지고 학벌도 변변치 않고 혼수품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했다고 며느리를 구박했다. 그러다가 화를 억제하지 못해 기도하러 가겠다고 기도원을 찾았다. 기도원에서 밤중에 회오리바람 소리와 함께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아무개야!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이혼시켜라.”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우기면서 아들 가정을 기필코 파탄 냈다.

 하나님은 이미 이혼한 사람은 용서하시지만 신비하게 이혼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은 아니다. 말씀과 거룩한 사명 안에 있어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을 하고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나의 꿈과 비전이 된다. 그때 참된 제자로 선택된다. 말씀 중심적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제자 한 사람은 천국 공동체에 큰 힘이 된다.

 더 나아가 필자는 무형의 제자 역할을 하는 사역 도구나 사역 통로도 제자로 생각하고 싶다. 금년에 42번째로 완성시킨 <신명기강해>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영혼 구원과 변화를 위해 쓰임 받을 것이다. 또한 말씀 전파의 통로로서 <한국어인스타그램>과 <영어인스타그램>이란 2개의 작은 사역 통로와 <월간새벽기도 유튜브 동영상>이란 큰 사역 통로가 생겼다. 그것들을 의인화시키면 금년에 4명의 무형의 제자를 얻은 셈이다. 믿음과 기도는 배반이 없지만 사실상 땀도 배반이 없다. 하나님은 땀 흘린 만큼 거두게 하시고 준비된 만큼 선택 받게 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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