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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성도가 되는 길 (야고보서 5장 7-11절)

by 【고동엽】 2023. 1. 5.

행복한 성도가 되는 길 (야고보서 5장 7-11절) 1. 길이 참고 기다리라

 본문에는 인내와 관련된 단어가 5번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왜 현대인의 행복지수가 낮은가? 인내의 부족 때문이다. 너무 조급해하거나 너무 서두르면 행복을 음미할 틈이 없다. 여행할 때 가이드 설명을 중간에 끓어 질문하고, 식당에서 재촉해서 나온 음식을 금방 먹고, 비행기가 도착하면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한국인이란 말이 있다. 그런 조급한 습성이 행복지수를 낮추는 주요 원인이다.

 교회생활의 행복지수가 낮다면 그것도 인내 부족과 관련이 깊다.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짜증내고 기도 응답이 빨리 없다고 금방 기도에 회의를 품고 포기하면 어떻게 깊은 은혜가 주어지겠는가? 추수 때까지 기다리는 농부처럼 길이 참고 기다릴 줄 알라(7절). 신실한 믿음은 인내하는 삶과 비례한다. 기도 응답이 더뎌도 인내하고 사랑과 전도의 열매가 적어도 인내하라. 믿음의 인내는 어떤 능력보다 소중한 능력이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인내를 이렇게 정의했다. “인내란 복수할 힘이 있어도 자제하는 마음이다.” 부부싸움에서 굳이 승패를 나누면 누가 이긴 것인가? 소리를 작게 내고 참은 쪽이 이긴 것이다. 웃음까지 머금으면 더 이긴 것이다. 마음에 섭섭함이 없이 미안한 마음까지 가지면 완전히 이긴 것이다. 참고 인내하는 태도가 나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내는 쉽지 않지만 인내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하나님의 넘치는 보상의 열매가 주어진다.

 성공한 사람 중에 재주나 능력보다 탁월한 인내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자본과 인맥과 재능이 부족해도 인내심이 탁월하면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인간관계도 늘 좋을 수 없기에 어려울 때를 대비해 인내를 훈련하라. 왜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을 당장 심판하지 않는가?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다. 기도 응답도 당장 하실 수 있지만 내 안에 거룩한 성품과 성숙한 믿음을 심으면서 가장 적합한 때에 응답하려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속성 코스로 은혜 받는 비결만 찾지 말라. 인내가 생략된 성장과 축복과 은혜는 사실상 거의 없다.

2.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본문 8절에서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는 말은 쉽게 요동하거나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굳게 결심하고 하나님의 일을 꾸준히 담대하게 감당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개 앞에서 무서워하고 떨면 개는 그 떠는 파장을 느끼고 기가 살아 더 짖으며 달려든다. 그처럼 마음이 쉽게 흔들리면 사단이 틈을 보고 신나서 찾아온다. 왜 가끔 자신이 왜소해 보이고 믿음도 잘 자라지 않는가? 마음의 굳건함이 없어 생기는 두려움과 근심 때문이다. 조금 어렵다고 믿음에 회의를 품고 딴 것에 눈을 돌리면 은혜와 축복도 멀어진다.

 살면서 5가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첫째, 환경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래야 열등감이 틈타지 못한다. 둘째, 자신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래야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셋째, 남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래야 불평과 원망이 줄어든다. 넷째, 현재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래야 비전과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섯째, 의심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그래야 사탄에 당하지 않고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옛날에 약혼한 한 청년이 미국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수시로 약혼녀에게 편지를 보내 사랑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녀에게 그가 딴 여자와 동거한다는 이상한 편지가 왔다.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침착하게 그동안 그가 보낸 편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 편지들에 참된 사랑의 고백이 담겼음을 확신하고 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딴 여자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것이었다. 그 농간에 속아 그를 버렸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믿고 기다렸기에 마침내 공부를 끝낸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나의 신랑이고 나는 예수님의 신부다. 성경은 사랑하는 신랑이 보낸 약속의 편지다. 사탄은 예수님과 나를 갈라놓으려고 끊임없이 의심이 들도록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다. 그 농간에 넘어가지 말라. 내가 먼저 예수님을 멀리하고 의심하는 일은 있어도 예수님이 먼저 나를 버리는 일은 없다. 힘들 때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마음을 단단히 하나님께 고정시키면 인생길도 행복해지고 결국 축복도 넘치게 된다.

3. 서로 원망하지 말라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받는다(9절). 원망은 일종의 책임 전가다. 공동체에 책임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힘을 얻지만 책임 전가자가 많아지면 힘을 잃는다. 원망은 공동체도 힘들게 하지만 내 건강도 해친다. 감정은 몸 컨디션도 좌우한다. 사랑과 용서의 감정은 혈액순환을 돕고 위장활동을 촉진시켜 소화력을 키워주지만 미움과 원망의 감정은 혈액순환을 저해하고 위장 운동을 위축시켜 먹은 음식을 부패시키고 병을 일으킨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평안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생각하라. 아무리 큰 시련도 내 죄와 허물보다는 하나님이 적게 시련을 주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시련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더욱 큰 시련의 심판을 면제받을 수 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자기 죄와 허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고난이 생기면 원망 대신 자기 죄와 허물부터 살피라. 고난이 죄와 허물 때문이 아님을 확신하면 성숙을 위한 연단으로 알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하라.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원망할 일이 많았어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련히 잘 알아서 조치하시겠는가? 일이 내 뜻과 소원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고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 성도에게 실패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결과가 아니다.  

 손해되고 짜증나고 실패한 일도 나중에 보면 합력하여 선이 되고 축복의 재료가 될 때가 많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원망을 최대한 삼가고 축복의 때를 기다리라. 원망은 막 주어지려는 하나님의 축복을 결정적으로 막는다. 끝까지 참고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가장 큰 책임은 내게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와 평안을 잃지 않는 삶이 최대 지혜다. 현재의 힘든 처지를 원망하면 고난의 물줄기는 더욱 굵어지지만 현재의 힘든 처지에서도 감사하면 고난의 물줄기는 곧 축복의 물줄기로 그 흐름이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4. 최후 승리를 믿으라

 믿음의 선진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10절).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DNA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최후승리를 믿고 끝까지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이 너무 힘들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렇게 하세요?” 그러나 그렇게 하시는 것이 나를 향한 최선의 길이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 신비해서 잘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씨 뿌리는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부유해지고 건강해진 후 좋은 씨를 많이 뿌리겠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힘들 때 축복의 씨를 뿌리는 것을 더 기쁘게 보신다. 열매를 딸만한 곳에 가서 힘써 일하면서 열매를 따는 삶보다 씨를 뿌려야 할 곳에 가서 힘써 일하면서 씨를 뿌리는 삶을 선택하라.

 복된 사람은 인내의 과정이 없이 즐겁게 열매를 따려는 사람보다 고난 중에도 인내하며 축복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욥은 끝까지 참고 견디며 인내함으로 2배의 축복을 받았다. 그의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과 성숙이란 결말을 보여주시려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훈련과정이었다(11절). 고난 중에도 찬란한 꿈과 비전과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승리한다.

 성공한 사람이 누리는 것을 너무 부러워하거나 나쁘게만 보지 말라. 그에게도 극심한 고난의 때가 있었다. 그가 과거에 눈물과 땀으로 심은 축복의 씨앗을 살피면서 자신도 축복의 씨앗을 심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축복과 승리는 많은 영혼을 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의 마스터키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이 없으면 세상의 어떤 축복도 의미가 없다.

< 거룩한 비전을 따라 살라 >

 20세기 중반에 미국 텍사스에서 석유 사업으로 재력가가 된 세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존 뉴톤, 루이스 웨더포드, 사무엘 프레스톤이었다. 그들이 뉴욕에 놀러가 앰배서더 호텔 29층에 묵었다. 첫날 뉴욕 관광을 즐기고 밤늦게 술에 취해 호텔로 돌아왔는데 호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프런트 직원이 하룻밤만 2층에서 지내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들은 술기운에 호기가 생겨 29층까지 걸어 올라가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쉽게 올라갔는데 점점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29층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프런트에서 방 열쇠를 받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 1층까지 내려갈 생각을 하자 아찔했다. 바로 그때 청소하는 흑인 아줌마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활짝 웃고 마스터키로 방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손님!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수고하셨지만 방 열쇠가 없으면 방에 들어갈 수 없어요. 이 마스터키가 없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런데 진짜 마스터키는 예수님이지요.”

 존 뉴턴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스터키입니다.”라는 흑인 아줌마의 말이 머리에 계속 맴돌면서 어릴 때의 교회생활을 떠올라 두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가 오늘 즐겁게 놀았지만 마음은 왠지 더 허전하네. 우리가 돈은 벌었어도 길은 잃은 것이 아닐까?” 그날 밤 그들은 진지하게 대화하다가 성령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렇게 신앙고백을 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스터키입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았다. 텍사스의 재력가 3명이 자신의 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자 텍사스 지역에 대 부흥의 바람이 불었다. 그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사역을 기도와 물질로 돕는 후원자가 되었다. 그들로 인해 빌리 그래함도 큰일을 할 수 있었고 텍사스는 미국에서 가장 기독교가 왕성한 주가 될 수 있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기독교선교연맹(C&MA) 소속으로서 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교회다. C&MA는 세계선교를 중시하는 건전한 복음주의적인 세계적인 선교 교단인데 한국에는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런 상태에서 개척자로서 교단과 교회를 섬기면서 외로움도 많았고 피와 눈물과 땀도 더욱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과 흔적들이 귀한 열매들을 남겼다. 그 열매 중의 하나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이다.

 <월새기> 사역은 영혼구원과 영혼변화를 통해 세계선교의 꿈을 이루려는 문서선교 사역이다. 지금도 사역의 지경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지만 앞으로 때가 되면 사도 바울을 후원했던 루디아나 누가의 문서선교 사역을 후원했던 데오빌로와 같은 사명적인 심령과 거룩한 커넥션이 이뤄져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때에 <월새기 영어판> 발행도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세계선교를 위해 더욱 멋지게 쓰임 받게 될 것이다.

 1900년대 초에 C&MA의 창시자인 장로교 출신의 심슨 목사가 교단을 초월해 감리교 출신의 카우만 목사를 후원하고 센터 건축을 도와서 일본에 한국 성결교의 뿌리가 된 <동양선교회>란 세계적인 선교단체가 생겼다. 교단을 초월해 건강한 공동체와 영혼이 서로를 섬기며 큰일을 이뤄낸 것이다. 건강한 교회들이 교단을 초월해 한국 교회의 부흥과 갱신을 위해 협력해 헌신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런 비전에 나도 일조하겠다는 꿈을 가지라. 존 뉴턴과 빌리 그래함의 동역을 통해 이뤄낸 복음 확장의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룩한 비전을 따라 살면 하나님은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지혜와 사람도 주시고 삶의 기쁨과 보람도 넘치게 하실 것이다. 때로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고 나중에 예수님을 만날 때 더욱 기쁨으로 만날 것이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거울삼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인내하면서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천국을 확장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행복도 얻어 누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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