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 (이사야 43장 4-7절) <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두려움을 몰아내고 반대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두려움을 몰아낸다(4-5절). 두려움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다(요일 4:18). 사랑과 감사가 넘치고 삶을 긍정하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진다. 왜 사람이 스트레스의 제물이 되는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이 사랑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은 내면의 스트레스를 몰아내는 큰 힘이다. 사랑은 상처 입은 마음도 치료하고 육신의 치유 능력도 크게 높여준다.
어떤 아내가 남편의 방탕과 무질서한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병에 걸렸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까지 미워만 했던 남편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변화를 알게 된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면서 아내의 위장병이 씻은 듯 낳았다.
일반적인 위장병 치료약보다 불화 해소가 더 효과적인 위장병 치료약이 될 때도 많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도 위대한 치료약이 된다. 병이 스트레스니 디프레스로도 생기기에 현대 의학에서는 모든 병을 의학으로만 고치지 않는다. 사랑을 치유를 낳는 또 다른 치료약이다. 사랑을 주면 남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기 상처도 치유된다.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키도 사랑이고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위대한 치료약도 사랑이다.
가끔 기도하다가 이런 경험을 한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감사기도를 열심히 하고 나면 어느새 영혼이 환해진다. 그때 주변도 환해지고 얼굴도 환해진다.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이 사랑과 감사의 능력이다.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어둔 세상과 환경도 환하게 만들고 어둔 영혼도 환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가끔 운전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찬양이 절로 나온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런 영혼에 어찌 두려움이 틈타겠는가? 골방에서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터져 나오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그 영혼에 어찌 두려움이 틈타겠는가? 사랑해야 두려움이 사라진다. 사랑하는데 마음이 여전히 불안하면 그 사랑은 대개 실천이 없는 사랑이다. 말뿐인 사랑은 두려움과 불안을 오히려 가중시킨다. 오직 실천하는 사랑만이 인생의 어두운 먹구름을 사라지게 만든다.
< 소망을 품고 감사하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6절). 우리에게도 그런 약속이 있다. 같은 심판을 당해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그루터기는 남겨놓고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회복의 길을 열어주신다. 회복 후의 축복은 대개 이전의 축복을 능가하는 축복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라. 하나님께 큰 기대를 해도 그것만이 소망의 원천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큰 기대를 하신다는 사실도 소망의 원천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 보낼 때 그냥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존재로 큰 기대를 담아 창조해 보내셨다(7절).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은 나를 향한 기대를 결코 접지 않으신다. 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려고 힘쓰라. 누가 제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인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한 뒤에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것보다 더 영광 돌리는 사람은 가진 것이 부족해도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함없는 사람이다.
사람 제일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에 있다. 그 목적에서 이탈하지 말라. 실패는 죄가 아니지만 목적이 잘못된 것은 죄다. 돈을 벌고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목적이 너무 유치하고 이기적인 것이 문제다. 그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열정을 잃어버리고 환경에 따라 수시로 흔들리는 환경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뿐이다. 어떤 교인은 화려한 꿈은 있지만 목적의식은 없다. 화려한 꿈만 꾸면 현실감이 없게 되지만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현실감이 있다.
화려한 꿈만 꾸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과 의식이 없지만 목적의식을 가지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긴다. 꿈과 비전이 있다면 현실적인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꿈은 화려한데 현실적인 책임감이 없어서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꿈과 비전은 허무한 공상일 뿐이다. 꿈과 비전에 합당한 ‘부끄러움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자신도 자신을 신뢰하면서 인생의 두려움도 극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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