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신비
어느 날, 한 부인이 수도사를 찾아와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수도사는 교회 뒤 우물가의 물을 성수(聖水)라고 떠 주면서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성수를 마신 후에는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난 후에 삼키면 한 달 후에는 가정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그 뒤, 그녀는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정말 한 달 후에 망아지 같던 남편이 양처럼 변했다. 너무 신기해서 부인이 수도사에게 찾아와 말했다. “수도사님! 그 물이 정말 신비한 물이더군요.” 그때 수도사가 말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
침묵의 신비는 기다림의 신비에서 비롯된다. 나쁜 일은 대개 좋은 일과 잇닿아 있음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고 절망적인 순간은 희망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다. 사람됨과 인격성은 “침묵을 잘할 줄 아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때로 침묵은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삶보다 내적인 삶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면도 튼튼해야 하지만 내면이 더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침묵이 중요하다. 창조적 침묵은 내면세계를 튼튼하게 만든다.
어느 날, 미국에 사는 한 분이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한적한 호수로 여행을 갔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이 소리가 들려(Do you hear that)?” 딸들이 물었다. “무슨 소리요(Hear what)?” 그가 대답했다.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그러자 딸들이 동시에 말했다. “들리지만 너무 싫어요(Yes! And we hate it).”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침묵의 소리는 듣기 싫어하고 시끌벅적한 곳에 가야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침묵이 없으면 뿌리 깊은 영혼이 되기 힘들다. ‘건전한 소리(sound)’는 진리를 다가서게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noise)’는 진리를 멀어지게 한다. 때로 ‘목소리(voice)’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진리의 길을 막는 1등 방해꾼 역할을 한다. 고대에 왜 수도사들이 자주 사막을 찾았는가? 하늘의 소리는 사람 안에서 들리기보다 사막 안에서 들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영성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 과목은 바로 ‘창조적인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진리와 평화는 복잡한 소음 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조용한 침묵 중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더 많다.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는 현명한 사람이 10분이라도 더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란 것이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것과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지혜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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