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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가 견고한 사람 (이사야 26장 1-4절)

by 【고동엽】 2022. 12. 24.

심지가 견고한 사람 (이사야 26장 1-4절) < 신의가 있는 사람 >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가 형성될 때를 하나님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새 예루살렘 성을 세우실 것입니다(1절). 그 성에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신의를 지킨 신실한 성도가 영원한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2절). 성경 연구가들의 말에 따르면 사도 바울은 키가 5척(150센티)도 되지 않는 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활달한 정치가형 스타일도 아니고 달변가도 아니었고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멋지게 사용하셨습니다.

 신의가 있는 사람이 되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계산적인 사람들은 대개 이익의 바람을 따라 넓은 문으로 갑니다. 성령충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무속적이고 기복적이고 마술적인 형태의 성령충만만을 좇습니다. 진정한 은혜와 성령충만은 무속적이고 기복적이고 마술적인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시련 중에도 믿음과 신의를 지키는 꾸준한 성품을 통해 나타납니다.

 꾸준하십시오. 한번 진실하기는 쉽지만 고난 중에도 계속 진실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꾸준함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쓸 때 나타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3장 30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늘나라에서는 기득권이나 오래 믿은 시간과 봉사의 관록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빛이 바래지 않는 꾸준한 현재적인 신앙입니다.

 누군가 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신학박사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대답입니까?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 믿음도 없이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구원과는 상관없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전통과 관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꾸준히 잘 믿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 심지가 견고한 사람 >

 하나님은 신의가 있는 사람도 쓰시지만 믿음의 심지가 견고한 사람도 쓰십니다(3절).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은 만세 반석입니다(4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영원히 의지하고 변덕이 없게 하십시오. 변덕스러운 사람은 제일 다루기 힘듭니다. 신앙생활에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십시오. 신앙이란 생명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굳은 사람을 찾아 축복을 내리시며 그를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주일에 예배하는 성도 중에는 2종류의 성도가 있습니다. 주일에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그분이 올까?”라며 목사의 고민의 대상이 되는 성도가 있고 어떤 난관과 질병에도 주일이 되면 반드시 예배드리러 온다고 믿음을 주는 성도가 있습니다. 날씨나 환경이나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가 되십시오.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주일은 변함없이 지키십시오. 그 이상의 다른 복의 길이 있겠습니까?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무속적인 신접상태나 황홀경 상태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아의식은 더욱 분명해져서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를 명확하게 깨닫고 이웃과 성경 말씀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성령충만은 몽롱한 상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드는 지혜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게 되면 내 마음과 성품이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으로 변합니다. 결국 인격의 변화란 의지의 결단이라기보다는 성령충만의 역사입니다. 그런 역사가 있으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됩니다.

 또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려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한 청년이 늘 데모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너무 암세포가 퍼져서 의사가 수술을 포기하고 3개월 시한부인생 선고를 했습니다. 청년은 친구의 부축을 받고 퇴원하면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1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곧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습니다. “아! 하늘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마음속에 새 역사가 이루어질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전도서 1장을 보면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새로운 유행도 대개 옛날에 유행했던 것의 반복입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지만 새롭게 보이는 새로운 경험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과 시간이 변하면 오늘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 날일 수 있습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크게 다른 날이 아니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같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결단한 사람에게는 새 세계가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똑같은 상황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으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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